- 장성택 자택서 김정은 등 5인 천안함 모의
- 공격 반대한 이제강 교통사고 위장해 제거
- “김옥 (김정일 부인) 꼴 보기 싫으니 외국 보내자”
북한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다만 북한 보도에 관한 비판도 과도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면서 우리의 안전과 번영, 통일 등 중대한 이익이 걸린 대상이다.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이 충분히 보장될 필요가 있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학자적 기준에 따르면 수년 전 국내 언론이 “김정일 후계자는 삼남 김정운”이라고 보도한 것도 소설에 불과하다. 이름도 틀렸고 출처도 불명확하며 단지 추정에 불과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실체적 진실을 미리 알려준 꽤 가치 있는 정보였던 것으로 지금 판명되고 있다. 북한 보도에서 익명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점은 정보원 보호의 필요성이 그만큼 높기 때문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최근 모 여권 인사는 사석에서 ‘북한 김정은 동향’ 문건을 공개했다. 김정일 사망 후 여권의 한 기관에서 작성한 것이라고 했다. 문건은 북한 고위 관계자가 직접 진술한 내용을 토대로 했다면서 발언 출처를 실명으로 명기해두고 있었다. 내용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회색분자’
문건에 따르면 2010년 3월 김정일은 심장병이 발병했다고 한다. 얼마 뒤 회복했지만 발병 당시엔 급박했다고 한다. 장성택(현 군사위 부위원장) 김경희(김정일의 여동생·현 인민군 대장) 부부는 자택으로 김정은, 이제강(당시 노동당 당조직부 제1부부장), 김옥(김정일의 마지막 부인)을 부른다. 이 자리에서 한국에 대한 해상공격이 논의됐고 3월 26일 천안함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장성택과 김정은은 공격에 반대한 이제강을 ‘회색분자’라면서 석 달 뒤 교통사고로 사망케 했다고 한다. 3월 말~4월 초로 예정된 김정일의 중국 방문이 5월로 연기된 것은 이 심장병 때문이었다고 한다. 문건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김정은이 고모부인 장성택에 대해 ‘한 배를 탄 동지’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고 쓰고 있다.
이 내용이 과연 사실일까. 김정일은 2008년 8월 뇌졸중 발병 이후 건강이 악화됐다. 2010년에도 캠벨 당시 미 국부무 차관보가 “김정일의 수명은 3년가량 남았다”고 말할 정도로 김정일의 건강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러나 문건이 지목하는 시기인 2010년 3월 김정일의 심장에 이상이 왔다는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에 대해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2010년 3월 김정일의 발병 여부는 그의 측근 외에는 알 수 없는 사안이다. 3월 31일경 김정일의 중국 방문이 계획되어 있었던 점은 사실로 확인된다. 왜 갑자기 연기해 5월에 갔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천안함 사건 당시 국내외 여러 기관은 김정은을 지목한 바 있다. 미국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2010년 7월 “김정은이 천안함 공격의 배후일 가능성이 있다”고 썼다. 당시 언론은 “천안함 사건 직후 ‘청년대장이 한 건 했다’는 소문이 북한 내에서 돌았다” “김정은의 명령으로 리영호 총참모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김격식 4군단장이 천안함 공격을 집행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문건은 김정은과 장성택이 천안함 공격의 배후임을 구체적 정황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방중 연기와 천안함 미스터리
북한이 김정일 방중을 목전에 둔 3월 26일 천안함 도발을 일으킨 것은 미스터리한 일이다. 김정일은 방중을 통해 세습 인정, 경제 지원, 6자회담 재개 협력 등 중국으로부터 얻어내어야 할 것이 많았다. 방중을 불과 며칠 앞두고 중국이 극도로 싫어하는 초대형 대남도발을 감행하는 것은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건에 따르면 김정일의 발병은 이런 의문을 풀어줄 가설이 되는 셈이다.
이제강은 2010년 당시 실질적 파워 면에서 김정일 다음으로 통했다. 이제강은 6월 2일 0시 40분 평양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여러 언론은 이 사건에 의문을 제기했다.
“장성택과 이제강은 북한 권력구도에서 ‘제로섬’ 관계였다. 군부 핵심인사 26인은 장성택계와 이제강계로 구분됐다. 이제강 사망 후인 6월 7일 장성택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되어 실질적 2인자임을 과시했다. 북한의 권력투쟁과정에서 실력자가 교통사고 사망으로 퇴장하는 사례가 여럿 있다.” (2010년 6월 21일 ‘주간동아’)
김정일 사망 후 장성택 김경희 부부는 김정은 체제의 최대 권력자로 부상했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이런 정황과 관련해 문건은 북한의 천안함 공격, 김정일 방중 연기, 이제강 사망, 장성택 2인자 등극, 김정은·장성택 밀월이 우연이 아닌 하나의 연결되는 맥락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의 마지막 부인 김옥(47)은 김정일 생전 노동당 서기실 과장이라는 직함으로 ‘문고리 권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김정일 방중 때 김옥은 승용차 옆 좌석에 동석하는 등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온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김정일 사후 김옥은 김정은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김옥이 지난 12월 21일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김정일의 시신에 참배한 뒤 김정은에게 허리를 90도 굽히며 깍듯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조선중앙TV에 잡히기도 했다.
문건에 따르면 장성택은 김정은에게 “꼴 보기 싫으니 김정일 사후 김옥과 그 아들을 외국에 보내자”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김옥에게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 나온 바 없다. 문건 내용이 사실이라면 김옥의 앞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장성택, 내부 동향 중국에 알려줘
문건은 장성택이 휴대전화로 중국 고위인사에게 북한 권부의 내부사정을 수시로 알려줄 정도로 친중 인사라고 쓰고 있다. 장성택은 북한의 전략광물자원을 잇따라 중국에 넘겨주었고 김정일을 움직여 유사시 중국군이 평양까지 남하해 주둔할 수 있도록 평양~원산 라인에 공장형 벙커 1000여 개를 만들기로 해줬다는 것이다. 문건은 장성택이 김정은 체제 하에서 자기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중국에 더 의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장성택은 지난해 북·중 황금평 공동개발 사업을 주도했고 기공식에 북측 대표로 참석한 바 있다. 장성택이 김정은 정권 내부 동향을 중국에 전해준다는 부분에 대해 백승주 센터장은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백 센터장은 “그러나 미국의 도청 우려가 있는 휴대전화보다는 주로 평양 주재 중국대사를 메신저로 이용할 것이다. 장성택이 중국 측에 이 대사를 보내달라고 먼저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문건은 김정은이 탈상(脫喪) 후 원로그룹 인적 청산에 나설 것이라면서 이로 인해 내부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장성택과 오극렬(80) 국방위 부위원장이 정적(政敵) 관계라며 권력투쟁을 예상했다.
오극렬은 2010년 9월 정치국 후보위원에도 오르지 못했다. “오극렬이 관할하는 외화벌이를 김정은이 직접 챙기려 하자 이에 저항하다 눈밖에 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동아일보’ 2011년 12월 30일) 강명도 경민대 북한학과 교수(강성산 전 북한 정무원 총리의 사위)는 “장성택이 오극렬의 수족을 잘랐지만 군부의 90%는 오극렬 쪽 장군이다. 결국 장성택과 오극렬, 두 계파 간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백 센터장은 “장성택의 형과 오극렬이 친구 사이로 두 사람 간엔 아직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친위세력과 장성택 충성세력 간 갈등이 표면화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사회엔 ‘천안함 침몰과 북한은 무관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이 문건 내용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은 ‘흥미진진하고 개연성 있는 정보’라고 판단할 것이다. 문건에 따르면 북한 새 지도부의 중국 종속 경향은 구한말 친일파를 연상케 할 정도다.
이 문건은 하나의 가설로서, 북한 최고지도자에 관한 관점의 다양성을 증대시키는 측면이 있다. 이는 북한에 대한 오판 가능성을 줄여준다고 본다. 다음은 문건의 주요 내용이다.
북한에는 시민사회나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종적 연대만 존재해 시민 봉기나 쿠데타 등 급변사태가 당장은 발생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은 김정일이 북한을 맡은 1994년과 다르다.
경제난이 극심하고 민심이 이반되어 있다. 주민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이를 해소할 방책이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 2012년 하반기부터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중국·러시아 국경 인근에서부터 소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장성택 vs 오극렬 권력투쟁
장성택과 김경희는 국방, 공안, 정보기관, 당을 장악하면서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원로그룹이 체제 내에 공고하게 포진해 있다.
김정은은 장성택과 함께 인적 청산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의 군부 내 정적은 오극렬이다.
장성택은 2004년 자기와 가까운 인물들이 당 간부 자녀 호화결혼식에 참석한 일로 물의를 빚었다.
이제강은 이를 빌미삼아 장성택을 실각시켰고 장성택파 제거에 총력을 기울였는데 이때 오극렬은 이제강 편을 들었다.
2006년 김정일 1차 뇌졸중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김경희의 역할로 장성택은 당에 복귀했다.
오극렬은 2009년 군사위 부위원장에 올랐다.
2010년 3월 김정일은 심장병이 발병했다.
장성택은 김정일의 유고로 인한 급변사태를 우려했다. 관심을 돌리기 위한 묘안을 마련하고자 했다.
장성택은 자택으로 김정은, 이제강, 김옥을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에 대한 해상타격이 논의됐다.
이제강과 김옥은 역풍을 우려해 이 계획에 반대했다.
그러나 장성택은 김경희, 김정은과 논의를 거쳐 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어 김격식을 통해 3월 26일 천안함 사태를 일으켰다.
장성택은 이제강을 ‘회색분자’라고 판단하고 2010년 6월 2일 교통사고로 위장해 그를 사망케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김정은은 장성택에 대해 ‘한 배를 탄 동지’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김정일 심장발작 후 독일인 의사가 투입됐다.
김정일은 3월 말~4월 초로 예정된 중국방문을 연기했다.
김정일은 5월 다 낫지 않은 상태임에도 중국에 갔다.
2012년 4월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고 예정대로라면 강성대국을 선언해야 하는 시기다.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유화책을 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탈상 후 유훈통치 기간을 설정해 일정기간 내부통제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김정일 장례위원 대부분은 혁명 2세대로 70~80대 고령이었다.
탈상 후 세대교체와 인적 청산에 나설 것이다.
30~50대 노동당 기술관료 등 친위세력을 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경우 오극렬을 중심으로 한 군부 내 일부 그룹이 어떻게 나올지가 김정은 체제의 불안요인이다.
평양 외곽에는 오극렬을 따르는 부대들이 주로 포진해 있다.
김정은에게는 3~5년이 고비가 될 것이다.
김정은이 김옥을 해외에 보낼 가능성이 있다.
2010년 3월 장성택은 김정은과 함께 이제강 제거 문제를 논의하면서 김정은에게 “꼴 보기 싫으니 김정일 사후엔 김옥과 그 아들을 외국에 보내자”고 말했다.
김정은은 정적인 김정남 처리와 관련해 중국 정부와 협상할 것이다.
김정은은 체제 안정의 마지막 걸림돌인 김정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김정은 체제에서 중국 의존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특히 불안을 느끼는 장성택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중국의 후원에서부터 찾으려할 것이므로 중국에 더 기대려 할 것이다.
장성택은 수시로 휴대전화로 중국 고위인사와 통화한다.
평양 내부 사정을 중국에 신속하게 알려준다.
중국은 북한의 2009년 5월 2차 핵실험 때 직전에 통보받아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중국은 북한 내부 사정을 소상히 알려주는 장성택을 자국에 필요한 인물로 평가한다.
중국은 장성택을 북한의 대표적인 친중파 인사로 본다.
북한이 식량난 등으로 애로를 겪고 있을 때 장성택은 북한의 전략 광물자원을 중국기업에 알선해줬다. 평안도 함경도 광산을 중국에 넘기는 데 역할을 했다.
유사시 중국군 평양까지 남진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 시 한·미 연합군의 북한 진입에 대비한 중국군의 한반도 진출 및 북한 방위를 위해 평양~원산 라인에 공장 식 벙커 1000여 개를 설치할 수 있도록 김정일을 통해 성사시킨 사람이 바로 장성택”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