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G 핵심 관계자 “민영진 사장이 지시한 것으로 안다”
- 브로커 강모 씨 주도한 남대문·수원 개발사업도 수사 대상
- 강 씨 “용산·남대문 사업에서도 KT&G에 수백억 벌어줘”
- KT&G “경찰 발표 사실과 달라…수사 결과 지켜보겠다”
청주공예비엔날레 아트팩토리로 변신한 옛 청주 연초제조창.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경찰이 내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KT&G 임직원 여러 명을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5월 16일 KT&G가 수년간 벌여온 각종 부동산 사업에서 컨설팅 용역을 맡았던 부동산 개발회사 나인드래곤홀딩스(이하 나인드래곤, 대표 강OO)를 압수수색하면서 공개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경찰은 의혹의 핵심인 KT&G 부동산 사업실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인지 압수수색 등을 실시하지 않았다.
부동산 관련 자료 폐기를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 KT&G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사업 관련 서류 일체를 보관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브로커의 고백
KT&G의 부동산 사업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는 6월 6일 KT&G 현직 임직원 6명 등 관련자 8명을 출국금지 조치했다. 민영진 KT&G 사장도 출국금지 대상에 포함됐다. 경찰에 따르면 2010년 말 KT&G는 청주 연초제조창 부지를 청주시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KT&G 측 부동산 용역업체인 나인드래곤을 통해 청주시청 이모 사무관에게 6억6000만 원의 뇌물을 건넸다. 이 씨는 돈을 받은 뒤 청주시가 시세보다 100억 원가량 비싼 가격에 부동산을 매입하도록 KT&G 측에 편의를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KT&G는 나인드래곤 강 대표와 상의해 뇌물 금액을 결정하는 등 사실상 로비를 주도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최근 강 씨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뇌물을 받은 청주시 공무원은 구속됐다.
지난 5월 17일 발매된 ‘신동아’ 6월호는 ‘KT&G 로비·비자금 의혹 전말’ 제목의 기사에서 KT&G가 2008년경부터 벌여온 각종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나인드래곤이 KT&G 측으로부터 상당한 특혜를 받아왔고, 이 회사 대표 강 씨가 사실상 KT&G 대리인 자격으로 각종 부동산 사업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특히 2조5000억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수원 연초제조창 개발사업에 강 씨가 참여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지난 수년간 강 씨가 KT&G로부터 최소 50억~60억 원의 금액을 컨설팅 비용 명목으로 받아간 사실도 확인됐다.
강 씨는 지난 5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KT&G 부동산 사업을 대행하면서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KT&G에 벌어줬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가 말하는 1000억 원에는 이번에 문제가 된 청주공장 부지 매각 과정에서 부풀려진 100억 원도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은 지난 5월 강씨가 직접 밝힌 내용이다.
“MB 처남 도움 받았다”
“2010년 KT&G의 부탁을 받고 청주 연초제조창 부지 매각사업에 뛰어들었다. 5년 이상 교착 상태에 있던 사업이었다. 1년 정도 고생한 끝에 일을 마무리했다. 2011년에는 KT&G가 추진하던 남대문호텔 개발사업에 참여했다. 2년간 매달렸고 결국 인·허가를 받아냈다. 그 과정에서 건물 용적률을 260%가량 높였다. 부동산 가치가 300억 원 정도 늘어났다. 알박기 문제를 해결하면서 88억 원을 추가로 (KT&G에) 벌어줬다. 청주사업에서 받은 컨설팅비는 10억여 원, 남대문 사업 용역비는 30억 원 정도다. 내가 KT&G에 벌어준 돈을 생각하면 절대 많은 금액이 아니다. 2008년엔 용산에 있는 KT&G 땅(500여 평)을 모 대기업에 560억 원을 받고 팔아줬다.”
부동산 관련 의혹으로 출국금지된 민영진 KT&G 사장
그러나 강 씨는 2011년 12월 김 전 사장이 저축은행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후에는 KT&G로부터 아무런 사업권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 씨가 뛰어든 수원 연초제조창 재개발, 남대문 호텔 건립 사업은 모두 김 전 사장이 구속되기 전에 이뤄진 계약이었다.
강 씨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부동산 사업을 해온 사업가”로 자신을 소개한 바 있다. 2007년경 서울시내에서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면서 KT&G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주장. KT&G 측도 “강 씨는 오랫동안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해 온 사람이다. 능력이 있고 많은 성과를 냈기 때문에 KT&G와 여러 건의 부동산 관련 용역 계약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강 씨는 2001년경부터 2개의 부동산 관련 법인(나인드래곤홀딩스, 나인드래곤코리아)과 1개의 개인사업체(안토니오코리아)를 운영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주목할 것은 강 씨가 KT&G 측과 사업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이들 회사의 매출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특히 지금 문제가 되는 나인드래곤의 경우 2008년만 해도 3억~4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2012년에는 20억 원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알려졌다.
부동산 사업 전체가 수사 대상
경찰 수사는 앞으로 강 씨가 간여한 KT&G의 부동산 사업 전반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경찰은 특히 강 씨가 30억6000만 원의 컨설팅 비용을 받아간 남대문 호텔 건립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 남대문시장 인근에 들어설 지하 7층, 지상 20층 규모의 이 호텔에는 390개의 객실이 들어설 예정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강 씨는 청주, 남대문, 수원 사업에서 주로 공무원들을 상대하면서 인·허가 업무를 담당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 과정에서 부정한 돈이 오고 갔는지, KT&G가 그 과정에 개입했는지가 수사대상”이라고 말했다.
강 씨는 수원 재개발 사업에서도 시공사 선정 등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도맡았다. 수원 부지에 모 방송사 스튜디오를 짓는 일에도 직접 개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KT&G가 부동산 사업과 관련된 전권을 사실상 그에게 일임했다는 얘기도 KT&G 내부에서 나온다. 수원 개발사업에서도 강 씨는 10억 원가량을 KT&G로부터 받아 관련 기업들과 나눠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KT&G와 협의해 공무원에게 수억 원대 뇌물을 건넨 그의 대담한 사업방식을 감안하면 다른 사업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한편 경찰 수사로 촉발된 부동산 개발 관련 의혹에 대해 KT&G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KT&G는 6월 7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N(나인드래곤)사는 계약서에 명기된 조건에 따라 KT&G로부터 성과급을 지급받았다. 경찰은 N사와 시 공무원 사이의 금품거래 과정에 KT&G가 관여되어 있다고 주장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