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널 | 이상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한신대 교수(환경사회학) 김상협 KAIST 녹색성장대학원 초빙교수·전 대통령녹색성장기획관
■ 정리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인간과 자연의 지속가능을 위한 성찰
산업화만이 살길이라며 달려오던 시절에 생태주의란 먼 나라의 호사 취미 정도로 여겨졌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을 때도 그것은 환경오염 문제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듯하다.
환경·생태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사람들은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생태주의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생태주의자들의 정치세력화 가능성이 가시화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비롯해 도시 환경을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개선하는 일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한 사업이 실제로 바람직한 성과를 거뒀느냐에 대해서는 적잖은 논란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아스팔트 도로 옆에 회색 빌딩들을 꽂아나가듯 이뤄지던 도시개발 방식을 비판하며 생활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재구성을 논의하도록 하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산업화를 통해 어느 정도 생존의 조건을 확보한 뒤 더 나은 삶의 여건을 모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열심히 달려와 보니, 이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던 삶이었는지 비로소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됐다는 의미도 있다. 산업화·도시화를 반성하면서 과거 농업사회의 삶 속에서 이상적 생태주의의 모델을 찾는 것을 보면 우리가 지향해온 삶의 방향이 애초에 잘못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삶의 방식을 다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역사는 그렇게 쉽게 부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 누리는 물질적 풍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들이 그토록 원했던 것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노력한 결과다.
그럼에도 그러한 발전 방식에 대해 다시 성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산업화라는 발전 방식이 앞으로도 지속가능할지에 대한 회의적 전망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미 현재의 발전 방식이 지속불가능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다만 실질적인 대안을 가지지 못한 채로는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생태주의에 관한 논의는 가시적 대안의 모색과 함께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우리 삶의 방향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현재의 인간사회에 몰입된 우리의 시선을 인간들이 비롯된 삶의 근원이자 결국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서의 자연과 우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인간의 위대성은 인간 종족만의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구성원들이 함께 잘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졌다는 데서 비롯한다. 또한 생존해 있는 동시대인만이 아니라 현재의 세계를 만들어온 이전 세대들과 앞으로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살아가야 할 다음 세대들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이 현 세대의 책무다.
생태주의는 이념적으로 좌우를 넘어선 것인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매우 첨예한 현실의 이해관계와 연관된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념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산업화의 수혜를 풍요롭게 누리면서도 그 폐해를 여유롭게 차단하며 사는 사람들과 그 수혜를 적게 누리면서도 직간접적 폐해를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 생태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우리 삶과 지속가능한 사회의 방향을 논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특히 통일 관련 논의에서는 첨예한 정치적 이념 논쟁 속에 생태주의적 관점이 설 자리를 찾기 어려운 듯하다. 그렇지만 통일이 단지 현재의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는 차원이 아니라 한반도와 민족의 천년대계를 위한 것이라면, 통일 한반도의 구상에서 생태주의 논의를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산업화를 먼저 경험한 우리가 북한 지역에서 그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생태주의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통일 한반도의 구상 속에 그 희망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그려냄으로써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밝은 전망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김형찬|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2013년 12월 2일 김형찬 미래전략연구원 원장(가운데)의 사회로 이상헌 한신대 교수(왼쪽), 김상협 한국과학기술원 초빙교수가 생태주의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이상헌 생태주의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다. 환경 문제는 인간사회 바깥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경제, 정치, 문화에 녹아들어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 ‘환경의 정치화’라는 표현이 있다. 환경 문제가 정치화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 혹은 사회와 자연의 관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 즉 환경 문제가 정치화하는 과정에 대한 해석, 의견 같은 것을 통틀어 넓은 의미의 생태주의라고 하겠다. 좀 더 집중적으로 얘기하면 근대 사회의 자연환경 이용 방식, 즉 자연을 단순히 자원으로만 해석해 경제 발전에만 이용하는 방식이 역으로 인간사회의 작동에 문제를 일으키는 현실에서 ‘현재의 사회와 자연 관계가 과연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비롯한 이념을 생태주의라고 할 수 있다.
김상협 생태주의는 자연과 인간, 또는 자연과 인간 문명의 관계를 성찰하는 학문 또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기후변화가 가져왔거나 가져올 변동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 9월 말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기후변화는 왜 생기는가’와 관련해 ‘익스트림리 라이클리’(extremely likely)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인간에 의해 지구온난화가 발생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1999년에는 ‘아직은 판단하기 이르다’, 2007년에는 ‘베리 라이클리(very likely)’라는 표현을 쓴 바 있는데 이제 ‘인간책임론’으로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기후변화는 대단히 현실적인 문제가 됐다. 과거의 생태주의는 낭만주의 관점에서 말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으나 현실이 바뀌었다. 다보스포럼이란 별칭으로 유명한 세계경제포럼에서 향후 10년의 글로벌 리스크를 10개 항목으로 나눠 발표했는데, 그중 5개가 기후변화와 관련돼 있다. 요컨대 앞으로 생태주의 관점에서 할 일이 많은 것이다. 인류가 우선순위에 둘 사고방식이 될 소지가 커지고 있다.
‘환경’과 ‘생태’의 차이
김형찬 이 교수는 녹색당 지지자로 알고 있다. 녹색당, 녹색사상, 친환경, 생명사상 등 유사한 개념과 생태주의를 비교해달라.
이상헌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 문제가 일으킨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를 두고 이념적 스펙트럼이 달라지거나 생태주의 대신 다른 용어를 쓰기도 한다.
‘환경’이 들어간 낱말은 사회와 환경을 구분 인간 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환경을 우리가 이용하는 어떤 자원의 집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 시스템 자체에 대해선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환경을 바람직한 방법으로 이용할지에 주목한다. 보수적 견해를 가진 이들이 ‘생태’보다 ‘환경’이라는 낱말을 선호하는 듯하다.
생태라는 단어를 쓰는 이들 사이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지만, 생태주의자들은 대체로 인간 중심적 사고를 지양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인간 활동을 중심에 둔 사회조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지구 생태계 안에 인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생명체와 공존해야 하는데, 인간이 균형을 깨뜨리고 지구 시스템 자체에 문제를 초래한다’고 보는 것이다.
‘타자를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 식 사고가 생태주의를 관통하는 중요한 윤리적 원칙이 아닌가 싶다. 근본생태주의자는 칸트 식의 정언명령이 다른 생명체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다른 생명체도 우리와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다거나 우리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반면 말 못하는 생명체까지는 어렵더라도 인간만이라도 그렇게 살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녹색사상은 학문적으로 체계가 잡힌 것은 아니다. ‘녹색사상사’라는 책이 있는데, 계몽주의 시대부터 최근의 사회 이론까지 역사 속 이론가들이 자연과 환경을 어떻게 보아왔는지를 정리했다. 근대 이후 사상가들이 내놓은 이론 중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근대 문명과 관련해 비판적 의견을 내놓은 것을 추적해 녹색사상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인데, 생태주의보다는 포괄적인 범주라고 생각한다.
이상헌
지구 3.0 시대
김상협 생명사상은 충분히 존중할 만한 사고라고 하겠지만, 자칫하면 근본주의나 극단주의로 나아가 생태주의와 보통 국민과의 간극을 더욱 벌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롱뇽 사건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미국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이 쓴 ‘인간 없는 세상’에 따르면 인간 없는 세상이 생각보다 잘 돌아간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문명은 매우 취약하다.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의 사례도 묘사해놓았는데, 인간이 만들어놓은 것이 자연에 의해 아주 빠른 순간에 없어진다는 것이 와이즈먼의 얘기다.
인간 없는 세상이 어떻게 될지는 우리가 인간이므로 알 수 없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인간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요컨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식의 주장은 현실 세계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인 이상 인간 없는 세상을 살 수는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46억 년 전 지구가 생겼을 때는 인간 없는 지구가 존재했다. 지구 1.0시대다. 인간이 등장한 후 마구잡이로 자연을 착취하면서 괴롭힌 게 지구 2.0시대다. 현재는 지구와 인간이 서로 잘 지내야 하는 지구 3.0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구 3.0시대에 인간이 지속가능하게 살아가려면 ‘지구 책임적 문명’ ‘지구 의식적 문명’을 구축해야 한다.
김형찬 인간을 어느 정도 중심에 놓고 보는지에 따라 얘기가 달라질 것 같다. 인간을 제외한 지구의 구성원, 우주의 구성원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여러 갈래의 생각이 있을 것 같다.
김상협 그러한 사유의 주체 또한 인간 아닌가.
김형찬 기본 개념에 대한 논의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자. 지난 정부에서 녹색성장을 국가 의제로 내놓았다. 10년 전만 해도 생태주의 개념이 한국 사회에서 주류 담론으로 논의될지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그런데 녹색성장이나 지속가능 발전이라는 말이 일반화한 것에서 미뤄볼 수 있듯 인식이 바뀌었다. 생태주의자들은 정부가 내놓은 지속가능한 발전이나 녹색성장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고 싶다.
‘녹색’과 ‘성장’의 융합
김상협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교과서에서 출발했거나 특정 사조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녹색’과 ‘성장’이라는, 상충하는 것을 융합한 의제 설정이라고 하겠다.
2008년 8월 15일은 국가로 치면 첫 번째 환갑이었다. 사람은 환갑 때 삶을 한 번 정리하고 여생을 새롭게 설계한다. 녹색성장 역시 환갑을 맞은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성찰하고 새로운 발전 체계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도출한 개념이다.
한국은 그간 에너지를 많이 쓰는 성장, 투입에 의존하는 성장에 치중해왔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지만, 앞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는 게 녹색성장이 지향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같은 양으로 더 많은 양을 산출하거나 더 적은 양을 투입해 같은 양을 산출하는 자원효율성도 강조한다.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도전인 기후변화를 정부가 처음으로 국정의 중심에 놓고 다뤘다는 점도 평가받아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처한 대응 과정을 새로운 성장 동력, 일자리 창출 수단으로 삼자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녹색과 성장이라는 상충하는 개념을 통합해 출발했기에 산업계, 환경단체 양쪽으로부터 협공을 당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녹색성장은 끝이 열려 있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열린 개념으로서 생태주의에서 귀담아들을 내용이 있으면 수용하고, 환경친화적 성장 전략이 있다면 그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
김형찬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는데,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발전 방식, 그러니까 산업화 중심의 발전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 같다. 이 교수께선 녹색성장 정책에 비판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상헌 녹색성장을 비판하는 방법 중 ‘나는 당신들과 생각이 다르니 녹색성장은 문제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비판은 그 안에 있는 모순을 드러내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 생태주의의 견해에서 녹색성장을 비판하지 말고 녹색성장 자체의 문제점을 들여다보자. 사실 녹색성장이라는 개념은 이명박 정부가 창안한 게 아니라 2000년께 해외 언론에서 먼저 나온 개념이다.
생태주의 vs 시장생태주의
김상협
이상헌 2005년 서울에서 유엔 아시아·태평양 환경개발 장관회의가 열렸다. 한국이 제안해 서울이니셔티브가 채택됐는데 이름이 ‘녹색성장을 위한 서울이니셔티브(Seoul Initiative for Green Growth SI)’였다. 서울이니셔티브는 “아시아 지역에 세계 빈곤인구의 3분의 2가 거주하는 상황에서 경제성장이 필요하긴 한데, 선진국의 경우처럼 자원을 낭비하거나 환경을 오염시키면서 이뤄지는 경제성장에는 문제가 있다”며 “자원을 적게 쓰면서도 부가가치를 높이자, 신재생에너지 등을 육성하자”고 주장했다. 생태효율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인 한국이 개발도상국과 같은 맥락에서 녹색성장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일단 의문이 든다.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녹색성장의 핵심사업이 4대강사업과 원자력발전소 확대였다. 이 두 사업이 들어간 것만으로도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자원을 많이 투입하는 성장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면서 스스로 모순된 행보를 보인 것이다. 원전이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효과는 그렇게 크지 않다. 지금 유엔과 세계은행의 수장 두 분이 공교롭게도 다 한국 출신인데, 개도국과 에너지 협력사업을 할 때 원전은 지원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녹색성장이라는 것이 낡은 패러다임 속에서 진행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생태주의 안에도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를 시장생태주의라고 한다. 시장 메커니즘에 대단히 우호적이면서 기존의 성장 방식을 유지하려는 생각이 강하면 이념적으로 그렇게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한다. 그러나 생태주의자의 공통적인 윤리 혹은 도덕이 앞서 말했듯 타자를 수단으로 삼지 말고 목적으로 여기라는 것이고, 이런 측면에서 미래 세대를 고려한다면 기존의 성장 방식, 즉 자원을 대량으로 소비하고 양적인 성장과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면서 위험비용을 다음 세대로 넘기는 발전 체제가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체제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기후변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피크 오일(Peak Oil·석유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됐다가 특정 시점을 정점으로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 식량, 물 부족 등이다. 성장의 한계가 도처에 존재하며 그러한 문제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상황인데, 낡은 패러다임 속에서 진행되는 녹색성장 정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매우 회의적이라고 본다.
原電 딜레마
김상협 비슷한 지적을 많이 받았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가 산업화 40년 동안 살아온 관성에서 벗어나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을 마련한 것으로 봐야 한다. 항공모함과 같은 큰 배가 방향을 전환할 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잘 못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전환하면 전복될 위험성도 있다. 녹색성장도 이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국가 패러다임으로 거대한 전환을 하는 중인데, 기존 패러다임에서 오는 관성의 힘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보면 변화 중임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그래서 나는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 1.0을 했다고 표현한다. 스마트폰이 계속 업그레이드되듯 앞으로의 정부가 녹색성장 2.0, 녹색성장 3.0으로 이를 계속 발전시켜달라는 염원에서다. 녹색성장 1.0에서의 의미 있는 전환을 손꼽으라면 먼저 법적 토대를 갖춘 점을 들 수 있다. 녹색성장기본법, 스마트그리드법, 녹색건축물 조성지원법, 배출권 거래에 관한 법을 만들었다. 이런 법은 만들기도 어렵지만 없애기도 쉽지 않다. 녹색성장이라는 의제를 국제적 자산으로 만들어 제도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OECD, G20이 녹색성장을 핵심 의제로 채택했다. 또한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한국에 유치했다.
녹색성장과 관련한 부분에 우리가 재정의 2%를 투입했다. 그중엔 이 교수가 보기에 진한 녹색도, 연한 녹색도 섞여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발광다이오드(LED) 분야에서 한국이 세계 1, 2위권으로 올라섰다. 전기자동차의 핵심인 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에서도 한국이 세계 1위다. 에너지 수요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는 스마트그리드 사업도 시작했다.
4대강 사업이나 원전은 녹색성장기획관 시절 내 소관 사항이 아니어서 뭐라 평하기 어렵지만, 하루아침에 원전을 짓지 말자고 할 수는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대안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 한국은 에너지에 관한 한 일본과 마찬가지로 섬이다. 독일은 왜 과감하게 원전을 철폐할 수 있었는가. 프랑스, 체코와 전력망이 연결돼 있어 전력 수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가교 에너지로서 원전의 가치를 살펴봐야 한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도 해외에선 물 문제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올바른 적응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녹색성장은 한 정권의 프로젝트로 추진된 게 아니다. 녹색성장 2.0과 관련한 10가지 과제를 새 정부에 인수인계하고 나왔다. 녹색성장에 대해 ‘보수 정부가 진정성을 갖고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 어디선가 수입한 생각일 거야, 쇼일 거야’ 하는 식의 편견을 갖고 보는 분이 있는 것 같다. 반대로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어온 분들과의 갈등과 충돌도 적지 않았다.
김형찬 새 정권이 들어선 후 ‘창조경제’가 관가에서 유행하고 있지만, 생태주의든, 녹색성장이든 지속가능한 발전의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는 게 큰 흐름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럼에도 앞서 말씀한 ‘관성’이 강하기에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일 것이다.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생태주의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태주의적 가치는 어느 정도로 실현될 수 있을까’에 대해 논의해보자.
전환마을 운동
이상헌 원전과 언젠가 이별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최근 나온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을 살펴보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진정성이 있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결국은 기존의 관성대로 나아갈 거면서 문제 제기를 하면 ‘너희들 역시 대안이 없지 않으냐’고 맞받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방향을 전환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말씀했는데, 대안도 마찬가지다. 당장 대안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준비는 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느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하루빨리 이뤄내야 한다.
전체 인류사를 보면 자본주의도 역사상 특정 시점에 등장한 것일 뿐이다. 어떤 체제든 등장하면 사라지는 게 이치다. 자본주의는 투자한 자본이 계속 자기증식을 해야 한다. 끝없이 자기 증식하려면 자연 자원과 노동력이 무제한으로 공급돼야 한다. 앞으로도 과거 자본주의가 발전해온 시기처럼 자연 자원과 노동력이 무제한으로 공급될 수 있느냐를 따져보면 대단히 회의적이다.
중국, 인도가 지금처럼 지구상의 자원을 엄청나게 사용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 인도가 도시화해 농민 인구가 급격하게 줄면 누가 우리를 먹여 살릴 것인가. 한곳에서 대량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송전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보내는 화석연료 위주의 에너지 공급 시스템이 앞으로도 지속가능할 것인가. 이처럼 우리의 미래 생존 문제와 관련한 질문을 던지면서 연착륙을 준비해야 한다.
생태주의자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발전 시스템을 지원해온 에너지, 물, 식량 시스템이 기후변화라든지, 자원의 고갈이라든지, 성장의 한계가 나타남으로 인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경제, 정치 구조는 물론이고 에너지, 물, 식량 공급 시스템을 예전과는 다른 식으로 바꿔야 한다. 아일랜드, 영국 등에서 시작된 전환마을(transition town) 운동처럼 석유 없이 살아가기를 비롯해 도처에서 작은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지금은 작은 규모에서 이뤄지기에 자본주의 시스템의 대안이 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지만, 그런 운동이 늘어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구체적으로 성과를 쌓아간다면 놀라운 결과를 도출해낼 수도 있다.
지속 불가능한 자본주의
김상협 한국 경제는 세계와 연결돼 있다. 우리가 네트워크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계속 페달을 밟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그럼에도 재생에너지, 이른바 기술 기반 에너지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각에선 기술을 맹신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한다. 한계도 있지만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예전에 한국의 산들은 민둥산이었다. 불법으로 나무 베는 것을 간단하게 해결한 게 뭔가. 구공탄이다. 당시에는 구공탄이 혁신적인 에너지 테크놀로지였다. 기술이 변화의 동인이 된다는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향후 20년 동안 중국, 인도 등 신흥국에서 30억 명의 새로운 중산층이 등장한다는 전망이 있다. 이런 소비층이 등장하면 지난 20년간의 에너지 증가율보다 2배가 넘는 증가율이 요구된다고 한다. 탄소배출량은 그 증가율의 몇 배를 넘는다. 과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0년 뒤에 하면 늦다. 이미 와 있는 미래라고 생각하고 대응해야 한다.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산업혁명 체제를 탈(脫)탄소 체제로 재구성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산업혁명의 기회가 열릴 수 있다.
김형찬 박근혜 정부가 주창하는 ‘창조경제’는 생태주의적 견해를 수용하기보다는 성장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정치에 한 발이라도 걸친 사람들은 창조경제로 노이로제에 걸려 있는 듯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창조라는 낱말을 끼워 넣으려고 안달이다.
이상헌 창조경제는 공부를 안 해서 그게 어떤 개념인지 잘 모르겠다. 앞서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생태주의자라고 해서 무조건 생산은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일단은 물질과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연착륙을 위한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다만 지금처럼 자원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자본주의는 지속되기 어렵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기업을 국영화하면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우리가 목도했듯 모두 실패했다. 흥미로운 게 마르크스는 주식회사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주식회사를 나중에 협동조합 체제로 전환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공산주의 사회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국가 소유라는 방식을 통해 자본주의를 통제하는 것은 마르크스가 매우 반대한 방식이다.
김형찬
협동조합 외의 다양한 공동체 경제 실험도 가능할 것이다. 각자의 이념적 의견에 맞춰 다양한 시도가 나타나고 공존하면 좋겠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면서 배척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서로가 가진 이념의 장단점을 보완해가면서 공동전선을 형성해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것이 생태주의 정신에도 부합한다고 본다.
남북 간 녹색협력 검토 필요
김상협 사회자가 ‘정권이 바뀌어 창조경제를 강조하는데, 그러면 녹색성장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뉘앙스로 물었다. 녹색성장의 에너지 정책 등을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형 에너지경제라고 표현하더라. 박 대통령이 내용상으로는 녹색성장을 상당히 많이 채택하고 있다. 장미를 장미라고 부르지 않아도 향기로울 거라고 얘기한 셰익스피어가 떠오르곤 한다. 장미를 장미라고 부르면 왜 안 되는 건지는 별도의 얘기지만….
HSBC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녹색제품 기술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2005년에는 세계 15위 수준이었는데, 녹색성장 3년 차인 2010년에 세계 7위로 올라섰다. 이 추세대로라면 2015년 일본을 제치고 4위 정도가 될 수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흐름이 단절되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도 앞선 정권의 좋은 유산이 있다면 이를 이어받으면서 긴 호흡으로 국가를 운영할 때가 됐다.
이상헌 ‘유산’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4대강 사업이 사실상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영주댐 공사가 한창인데, 영주댐은 낙동강 수질 문제를 해결하려고 짓는 것이고, 앞으로도 4대강 사업은 계속해서 문제를 야기할 것이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사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밀양 송전탑도 언론에 보도됐듯이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 탓에 무리해서 짓고 있는 것이고, 사회적 갈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안 좋은 유산은 단절해야 하고, 좋은 유산만 계승해야 한다.
김형찬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자. 국가의 미래를 생각할 때 통일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통일과 관련해 생태주의를 말하면 한가한 얘기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통일 과정이나 통일 한반도에서 생태주의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말씀해달라.
김상협 결코 한가한 문제가 아니라 매우 중요한 문제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는 좌우를 뛰어넘고 국경을 넘어서는 공동의 문제다. 그런 면에서 남북 문제를 녹색의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엔환경계획이 2012년 북한의 환경과 기후변화 실태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산림의 3분의 1 이상이 훼손됐다. 중국에서 넘어오는 스모그 탓에 운송에 지장이 생길 정도라는 보고도 있다. 수질 오염 문제도 심각하다. 대동강과 보통강 등 심하게 훼손된 강이 많다. 청천강 예성강도 많이 손상됐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북한의 경제 규모에 비해 상당히 많다.
이명박 정부 때 구체화하진 못했지만, ‘그린 데탕트’라는 개념을 내부적으로 준비한 바 있다. 녹색을 매개로 북한과 접점을 마련해 긴장을 완화하고, 환경 및 기후변화와 관련한 북한의 대응에 국제기구와 함께 도움을 주겠다는 구상이었다. 기상 및 기후정보 교환에서부터 시작해 신뢰가 구축되면 조림사업 등을 통해 신뢰를 더욱 강화하고, 그다음에 물, 식량, 농업에서 협력을 심화해 궁극적으로는 에너지와 자원, 나아가 경제 전체에 대한 녹색 협력을 하자는 구상이었다. 그린 데탕트는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받겠지만 역으로 이를 타개하는 방책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에 ‘미래’를 이식하자
이상헌 우스갯소리부터 하나 해보겠다. 북한 환경법엔 핵실험을 못하게 돼 있다. 북한 당국은 스스로 만든 법을 어기고 핵실험을 저질렀다. 녹색이라든지 생태적인 면에서 남북 교류에 나서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통일이 되면 매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 등이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정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과거에 해온 발전 방식대로 북한을 발전시킬 것이냐, 아니면 다른 방식을 택할 것이냐가 그것이다. 생태주의 견해에서 보면 통일이 이뤄졌을 때 지구를 둘러싼 위협은 지금보다 더욱 커져 있을 것이다. 환경은 지금보다 더 오염돼 있을 것이고, 기후변화는 심각한 위기로 다가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예전의 발전 방식을 이식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실험해본 여러 가지 대안이 담긴 패키지를 만들어놓은 뒤 여건에 맞는 것을 북한에 이식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상협 통신·전력 전문가들은 북한의 상황이 백지나 다름없어 한국에서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보다 북한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리라고 전망한다. 일례로 분산형 에너지 체계를 설치하기도 아주 좋다. 워낙 낙후돼 있기에 조정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얘기일 수 있으나 북한에서 21세기의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본다.
이상헌 기회요인이 있는 반면 위험요인도 굉장히 많다. 교류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도 심각할 것이고,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며, 동북아의 지정학적 변화도 어려운 여건으로 작동할 것이다.
김형찬 생태주의, 녹색성장 등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관련한 정책을 북한 지역에서 선제적으로 도입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우리가 거쳐온 ‘과거’의 저임금 산업을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미래’를 북한 지역에 건설하는 방향으로 한반도를 디자인하자는 것이다.
김상협 옳다고 본다. 장기적 안목, 상생의 관점에서 진정성 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