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간어린이집 아동 1인당 월 126만 원 보조금
- 인건비, 급·간식비, 교구교재비…명목과 용처는 별개?
- ‘특별활동비’ 걷어 원장 호주머니로
- 인건비 80% 지원 ‘서울형 어린이집’도 사건·사고
- 민간어린이집 “보육료 더 늘리고 규제 풀어야”
지난 12월 11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전국 보육인 결의대회’.
구속 상태인 전 씨는 “특별활동비로 들어온 돈을 원 운영비 목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타인 명의의 통장을 쓸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빼돌릴 의도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참관하던 한 학부모는 “비리가 드러난 지 1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게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 하루 전날인 12월 11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광장. 영하의 날씨에도 붉은 목도리를 두른 보육교사 5000여 명이 모였다. 지난밤 내린 눈으로 젖은 바닥에 얇은 돗자리를 깔고 앉은 교사들은 4시간 동안 찬바람을 맞으며 “보육료 현실화하라” “구간결제 조항 취소하라” “민간어린이집 재무회계 원칙을 별도로 제정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이하 한민련) 소속 보육교사로, 한 집회 참가자는 “아이들을 내 자식같이 돌봤지만 늘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경력 10년에 하루 11시간 근무하는데 월급은 150만 원도 안 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동 10명 중 7명이 ‘민간’ 다녀
8조 원. 2013년 한 해 동안 무상보육정책에 쓰인 예산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3년 3월부터 만 5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전면 무상보육을 실시하면서 무상보육 예산은 대폭 증가했다.
하지만 앞의 두 단면이 보여주듯, 무상보육정책에 대한 이해당사자의 만족도는 높지 않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은 “전면 무상보육 실시로 부모의 보육비 부담이 줄었을 뿐 어린이집의 실질소득은 늘지 않아 운영이 어렵다”며 울상이고,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은 아동 학대, 공금 유용 등 어린이집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아 불안하다. 서울시 등 지자체는 무상보육비의 국고 보조율이 낮아 지자체 부담이 크다며 불만이다. ‘완전 무상보육’이라는 ‘핑크빛 미래’를 약속했던 무상보육 공약. 엉킨 실타래를 풀 방법은 없을까.
만 0~5세 어린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설립·운영 주체에 따라 나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설치·운영하는 국공립어린이집, 민간 사업주가 운영하는 민간어린이집, 개인이 가정에 설치한 가정어린이집, 사업체가 직원들을 위해 운영하는 직장어린이집 등이다.
현재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민간어린이집이다. 정부보육통계에 따르면 민간·가정어린이집에 다니는 영·유아는 76%. 서울의 영·유아 23만 명 중 16만 명이 민간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대다수 학부모는 국공립어린이집을 선호하지만 숫자가 워낙 입소 적어 경쟁이 치열하다. “국공립어린이집에 들어가려면 예비 부부가 예식장 잡을 때부터 입소대기신청을 해야 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민간어린이집은 ‘민간’이 설립했지만 실질적으론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된다. 민간어린이집은 매달 정부로부터 ‘교사 처우개선비’(교사 1인당 20만 원), ‘반 운영비’(0~1세반 20만 원, 2세반 15만 원), ‘아동별 기본보육료’(아동 1인당 11만5000~36만1000원) 등을 지원받는다. 여기에 2013년부터는 전면 무상보육을 실시하면서 실질 보육비인 ‘표준보육료’까지 정부에서 지원한다. 정부가 가정에 ‘바우처’로 지원하면 학부모가 ‘아이사랑카드’로 어린이집에 결제하는 표준보육료는 아동 1인당 22만~39만4000원이다. 국공립어린이집은 여기에 교사 1인당 최대 인건비 80%를 지원받지만, 민간어린이집은 인건비 지원은 받지 않는다.
민간어린이집들은 정부의 지원액이 어린이집 운영에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한민련 측은 “아이 1명당 정부지원금은 국·공립어린이집의 경우 월 306만 원이지만 민간·가정어린이집은 126만 원이다. 민간어린이집 아이들은 차별받고 있다”고 말한다. 민간어린이집의 수익이 적다보니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보육서비스 질은 낮아지고 보육교사 처우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
교사, 조리사 허위 등록
그렇다면 민간어린이집에 지원되는 정부보조금은 제대로 사용되고 있을까. 정부가 지원하는 표준보육비용엔 이용 명목이 있다. 만 0세 아동의 경우, 1명에게 책정된 표준보육비용 71만1300원 중 인건비로 80%(57만5000원), 교재교구비로 8%(5만6800원), 급간식비로 4%(2만7800원)를 쓰라고 정해져 있다. 어린이집을 관리운영하고 시설을 설치하는 등에 사용하는 ‘어린이집 운영비’는 표준보육비용의 8%(5만1700원)만 쓸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행해 실질적으로 민간어린이집 운영 지침서 역할을 하는 ‘2013년 보육사업안내’에도 “기타운영비는 보육료 수입의 15% 이내에서 지출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하지만 상당수 민간어린이집은 정부에서 받은 표준보육비를 원래의 목적대로 쓰지 않고 회계를 조작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동아’가 입수한 서울 모 어린이집 회계장부에는 원장의 남편, 아들 등 가족을 교사로 허위 등록해 정부지원금을 받은 후 그 돈을 원장이 수취한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등록 원아가 28명인 이 어린이집은 2년간 정부지원금 1억2500만 원을 불법으로 빼돌렸다.
표준보육비에서 비중이 가장 높고, 그만큼 문제가 많은 것이 교사 인건비다. 지난 10월 경기 동두천경찰서는 교사를 허위 등록해 수천만 원대 국고보조금을 가로챈 어린이집원장 A씨를 적발했다. 보육교사 B씨 진술에 따르면 A씨는 B씨를 8시간 근무하는 정교사로 채용했다고 정부에 등록했지만, 실제로는 하루 7시간 30분 근무하고 75만 원의 월급을 주겠다는 이면 계약을 맺었다. 원장 A씨는 처우개선비 등 정부보조금을 지원받아 B씨 통장에 98만 원을 선입금한 후 20여만 원을 현금으로 돌려받았다. 지난 9월 경기 시흥경찰서가 입건한 어린이집원장 C씨도 보육교사를 시간제로 채용해놓고 정교사로 등록해 정부 지원을 받았다.
전직 어린이집 교사 D씨는 “민간어린이집은 조리사의 인건비를 정부에서 100% 지원받는데, 상당수 민간어린이집이 조리사를 허위 등록해 보조금만 받고 정작 요리는 보육교사에게 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털어놨다. 한 교사가 조리를 하는 동안 다른 보육교사는 옆 반 아이들까지 10여 명을 한꺼번에 돌봐야 한다.
“100명에게 고등어 2마리”
급·간식비도 유용하는 사례가 잦다. 부모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아이들의 식사다. 표준보육비에서 할당된 아이 1인당 급·간식비는 하루 1158원(0세)~ 2204원(5세). 보건복지부 지침‘보육사업안내’에는 “급·간식비로 1인당 최소 1745원 이상 지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전직교사 D씨는 “실질적으로 1745원에 맞춰 식사를 주는 어린이집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가 근무했던 어린이집에 아이가 100명이 넘었는데, 점심 때 고등어를 딱 2마리 사와서 요리했어요. 오전 간식에는 식빵 3개 잘라서 아이 10명한테 주고, 1000ml 우유 2팩 사와서 아이들한테 입술만 적실 정도로, 컵 바닥이 보일 정도로 따라줘요.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녀와서 배고프다고 하면 어머니들은 대개 ‘뛰어놀다 와서 그렇구나’ 생각하시는데, 먹은 게 부실해서일 수도 있으니 꼭 챙겨봐야 해요.”
이런 현실을 아는 부모들은 어린이집에 우유, 간식 등을 별도로 보내기도 한다. 학부모 E씨는 “정부 지원에 급·간식비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이가 늘 배고파하는 것 같아서 매일 200ml 우유 하나를 보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간어린이집 측은 “일부 부도덕한 원장들의 문제”라며 “불공평한 회계 규칙 때문에 민간어린이집 원장이 불가피하게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민간어린이집은 별도의 회계규칙 없이 사회복지사업법의 사회복지법인 재무회계에 따라 회계처리를 하는데, 이는 어린이집 운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 정부는 당장의 보육비만 지원할 뿐 어린이집을 세우고 운영하는 ‘사업비’를 보전해주지 않아 어린이집 원장들이 ‘보조금 돌려막기’ 등 편법운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직 어린이집 원장 F씨는 “민간어린이집 한 곳을 인수하려면 권리금만 1억~2억 원이 든다. 투자비를 회수하려면 정부지원금을 명목대로 쓸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급·간식비의 경우 매일 기준을 넘는 날도, 못 미치는 날도 있는데 무조건 금액을 맞추라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는 보조금을 받지만 민간어린이집은 엄연한 사유재산으로 감가상각비 등을 국공립어린이집만큼 지원하기 어렵고 이런 이유로 편법운영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민간어린이집이 부모들에게서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비용이 ‘특별활동비’다. 특별활동이란 어린이집이 외부 강사를 초청해 영어, 발레, 구연동화 등을 가르치는 것. 특별활동비는 각 시도 지자체의 보육정책심의위원회가 상한 금액을 결정한다. 2013년 기준 서울 강남구의 민간어린이집 특별활동비 상한선은 23만 원, 노원구는 9만 원이다.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특별활동비 명목으로 걷은 돈의 85%는 특별활동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어린이집에서 특별활동비를 과다하게 걷거나 국가보조금을 받아 원장 임의로 운용하는 일이 발생한다. 특별활동 대행 업체로부터 리베이트 명목으로 뒷돈을 받은 경우도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2012년 10월 학부모에게 특별활동비를 과다 수납한 후 어린이집 운영비 통장에서 지출하고 일부를 업체에서 되돌려받는 수법으로 부당하게 리베이트를 수수한 어린이집 171곳을 적발했다. 이들 어린이집이 부당하게 얻은 수익은 한 어린이집당 최고 1억1000만 원에 달한다. 전직 어린이집 원장 F씨는 “특별활동 업체 대표가 본인 명의의 통장을 개설한 후 원장에게 돈을 돌려주는 것은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귀띔했다. 모 특별활동 업체 대표는 “몇몇 어린이집 대표가 우리 계좌로 입금을 한 후 60~70%를 현금으로 돌려달라고 한다. ‘을’의 처지인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전체 영유아 중 76%가 민간·가정어린이집에 다닌다.
어린이집을 믿고 아이를 맡겼다가 운영 비리 사실을 알게 된 학부모들은 분개했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한 학부모는 “없는 형편에 아이를 위해서 매달 8만 원씩 보냈는데 그 돈이 원장 호주머니를 채워줬다니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 어린이집에 대해 △서울형 어린이집 공인 취소 △300만 원 이상 수수 시 원장 3개월 자격정지 △리베이트 수수액 반환 등의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부당하게 걷어간 특별활동비를 학부모들이 바로 돌려받기는 어려울 듯하다. 2012년 11월 5일 적발된 어린이집 원장 31명은 집단 진정민원을 했고 서울 양천구 등 지자체는 경찰 조사가 발표된 지 8개월 후인 2013년 7월에야 행정처분을 내렸다. 서울시는 양천구 등 지자체에 2012년 10월부터 최소 4차례 행정처분을 독촉했고 이듬해 3월에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시설에 행정조치를 취하지 않아 행정의 신뢰성이 실추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행정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10개월 동안 해당 어린이집들은 서울시 등의 정부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처분에도 불구하고 적발된 양천구 어린이집 20곳이 행정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 불법 수수액 반환 문제는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적발된 어린이집 중 상당수가 집단 혹은 개인 명의로 소송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상희 서울 양천구 구의원은 “부당하게 걷은 돈을 학부모에게 돌려주는 것에는 인색하면서 환수금에 상응하는 소송비용을 감수하는 어린이집 원장들을 보면 도덕성이 의심스럽다”며 혀를 찼다. 한 가정어린이집 원장은 “이들 업체는 ‘다들 잘못했는데 나만 재수 없게 걸렸다’는 생각에 인정을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취재 결과 적발된 어린이집 중 자체 폐업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상 운영 중이다.
두 살짜리가 영어, 발레?
현행법상 어린이집 특별활동은 만 2세(24개월) 이상 어린이는 모두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엄마, 물” “이거 줘” 같이 두 단어를 겨우 붙여 말하는 수준의 만 2세 아이들에게 영어, 발레 같은 특별활동이 필요한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현직 교사 G씨는 “만 2, 3세 아이 대부분이 특별활동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뭐가 뭔지도 모른다. 수업도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특별활동은 원장과 학부모 등이 운영위원회를 거쳐 함께 정하지만 실질적으로 원장의 입김이 강하다.
특별활동을 신청하고 싶지 않아도 대체 프로그램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 교사 G씨는 “어린이집 정부보조금 중 ‘교구교재비’가 있어 어린이집은 특별활동을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적절한 교구와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하지만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부모 입장에서 특별활동을 안 시킬 수가 없다”고 전했다.
특별활동비 논란이 커지자, 어린이집 자체적으로 특별활동비를 합리적 수준으로 정해 받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백화점 문화센터의 경우 1시간당 1만 원꼴로 가격이 형성돼 있다. 우리도 비슷한 수준의 특별활동비를 받는다”고 밝혔다. 한 전직 복지사는 “복지관에서 특별활동 강사를 구할 때는 1시간 강사료에 참가자 수를 나누는 방식으로 비용을 산출한다. 어린이집도 특별활동비를 합리적으로 산출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어린이집 비리, 아동 학대 사건이끊이지 않으면서 어린이집을 감시·규제하는 법령이 늘어났다. 2013년 영유아보육법이 14번 개정됐는데 이 중 12번이 어린이집에 대한 감시·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장진환 한민련 정책위원장은 “어린이집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계속 옥죄려는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나상희 양천구의원은 “민간어린이집이라 해도 정부 지원을 받기 때문에 정부의 지도, 점검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서울시는 2009년 ‘서울형 어린이집’이라는, 국공립어린이집과 민간어린이집의 절충형 어린이집을 선보였다. 당시 오세훈 시장이 야심 만만하게 선보인 ‘서울시 여성정책 여행(女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공립어린이집을 크게 늘리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려우니 평가인증을 거친 민간보육시설을 서울형 어린이집으로 공인함으로써 국·공립 보육시설 수준으로 향상시키겠다는 시도였다.
민간어린이집 중 서울형 어린이집 인증을 받으면 시설장과 영아반 보육교사 인건비를 80% 이상 지원해주고 평균 보육료 수입의 10%를 시설임차료, 건물유지비 등 지출을 위해 지원해준다. 현재 서울형 어린이집은 2700여 곳에 달한다.
하지만 서울형 어린이집도 비리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서울 양천경찰서가 2012년 10월 적발한 어린이집 171곳 중 상당수가 서울형 어린이집이었다. 서울형 어린이집만을 위한 보조금 지원을 악용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경찰에 적발된 모 어린이집의 경우 원장이 서울형 어린이집과 민간어린이집 두 곳을 운영하면서, 서울형 어린이집에 민간어린이집 교사들을 등록해 불법으로 인건비를 지원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서울형 어린이집 지원에는 정부 보조금뿐 아니라 서울시민의 세금도 들어가는 만큼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자 서울시 측은 “비리나 부실 운영이 확인되면 어린이집 이름과 원장 이름, 위반 내용 등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한 번이라도 비리가 밝혀지면 어린이집 운영 허가를 취소하는 등 행정처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눈 가리고 아웅’ 지도점검
보건복지부는 어린이집을 지속적으로 지도 감독하기 위해 ‘평가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3년에 한 번씩 △보육환경 △운영관리 △보육과정 △상호작용과 교수법 △건강과 영양 △안정 등 6개 항목에서 평가하는 것.
하지만 학부모, 보육교사 등은 평가인증이 실질적인 감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전직 보육교사 D씨는 “정부 지도점검은 대개 예고하고 나오기 때문에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다”고 비판한다. 또한 점검 내용이 대체로 수치화·계량화해 장부 조작으로 얼마든지 ‘눈 가리고 아웅’ 할 수 있어 수차 지도점검을 해도 보육 환경, 아동 학대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
이 때문에 수치화된 평가인증 대신 보육교사 직접 면담 등 심층적인 평가 방법을 갖추자는 목소리도 있다. 보육교사 G씨는 “평가인증 과정에서 원장들이 돈을 최대한 덜 들이려고 다른 어린이집의 교구를 빌려오기도 하고, 허위로 등록한 교사들에게 ‘평가인증 기간에만 다녀달라’고도 한다”고 전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현재 불거진 어린이집 비리는 교사가 양심선언을 한 뒤 경찰이 수사에 나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보육교사는 철저한 ‘을’의 처지여서 원장의 비리를 발견해도 못 본 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년 전 서울 송파구 어린이집 비리를 고발한 한 교사는 “보육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직할 어린이집이 없다”며 눈물을 보였다. 보육교사가 어린이집 원장이 되려면 보육교사 1급 취득자의 경우 2년, 유치원 정교사 2급 취득자의 경우 5년의 보육 경력이 있어야 한다. 어린이집 비리를 고발하는 순간 원장의 꿈은 접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비리 알고도 쉬쉬”
부모는 자식을 맡기기 때문에 어린이집에 불평을 하기가 쉽지 않다. 한 학부모는 “내가 현직 검사인데도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허위 등록 아동을 발견했을 때 그냥 눈감을 수밖에 없었다. 원장에게 얘기하면 당장 내일 아이 맡길 곳이 없어질 것 아니냐”고 했다.
만성화한 민간어린이집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많은 이가 국공립어린이집 확충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국공립어린이집을 매년 150개씩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낮다. 지난 10월 발표된 2014년도 예산안에는 100여 곳을 짓기 위한 예산 210억 원이 책정됐으나 보육 현장에서는 국공립어린이집 한 곳을 짓는 데 대지비, 건설비, 시설비 등을 합쳐 50억 원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
국공립어린이집을 짓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다. 장진환 한민련 정책위원장은 “국공립어린이집을 지어도 그 어린이집에 다니는 소수의 아이에게만 혜택이 간다. 50억 원을 현재 운영 중인 민간어린이집 50곳에 나눠주면 훨씬 많은 아이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결국 국공립어린이집을 짓는 예산을 민간어린이집에 나눠달라는 얘기다.
민간어린이집은 추가 지원책 마련이 어렵다면 과도한 규제라도 완화해달라고 요구한다. 특히 논란이 많은 것이 ‘구간결제’와 ‘초과보육 금지’ 관련 조항이다. 구간결제란 아동의 출석일수에 따라 보육료를 차별화하는 것으로, 아이가 출석일수 11일을 못 채우면 정부에서 어린이집에 보육료를 지원하지 않는다. 장 정책위원장은 “아이가 아프거나 해외여행을 갈 때 출석일수를 채우지 못하면 어린이집은 등록된 아이의 보육료를 받지 못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어린이집이 보게 된다”고 주장한다.
‘초과보육’도 뜨거운 감자다. 정부는 “2014년부터 어린이집의 정원 외 초과보육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1세의 경우 한 반에 5명이 정원이지만 2명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장 정책위원장은 “어린이집들이 매년 적자를 보는 상황에서 초과보육까지 막으면 보육비 수입이 더욱 줄어 연쇄 부도가 난다”고 반박하지만, 학부모 대부분은 초과보육 폐지를 환영한다. 학부모 E씨는 “나 혼자 내 아이 하나 돌보기도 벅찬데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를 7명씩 돌보는 건 불가능하다”며 “초과보육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민간어린이집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보육교사 직접 지원을”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해결책의 하나로 떠오른 것이 보육교사 인건비 직접 지원이다. 현재는 교사 처우개선비 등의 지원금이 어린이집 원장에게 지급된 후 월급 형식으로 보육교사에게 간다. 현직교사 I씨는 “아이를 학대하는 것도,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것도 보육교사다. 보육교사 처우 개선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양육수당을 현실화해 가정보육을 늘리자는 주장도 있다. 현재 만 3세 이하 어린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으면 정부에서 매달 15만~20만 원의 양육수당을 지원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어린이집에 지원되는 보육료와 표준보육료를 합한 액수의 3분의 1 수준이다. 한유미 호서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양육수당을 높이면 전업주부 등이 아이를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아 민간어린이집의 난립을 막고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어린이집의 반일제 보육료와 종일제 보육료가 같은 것도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학부모들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공짜 보육’이 아니라 ‘질 높은 보육’”이라고 입을 모은다. 학부모 E씨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 보육비가 안 드는데도 상당수 엄마가 매달 150만 원 이상 들여 검증되지 않은 베이비시터에게 아이를 맡긴다”며 “인격적으로 훌륭한 선생님이 있는 안전한 시설에 아이를 맡길 수 있다면 추가 서비스 비용을 내도 좋다. 단 비용은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육정책을 둘러싼 각 이해집단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오늘도 130만 명의 어린이가 민간어린이집에서 꿈을 키우며 자라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