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이 땅의 지식인은 항일과 친일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받았다. 어떤 이는 자신의 안위나 가족의 행복을 앞세운 반면, 조국과 민족을 위해 가시밭길을 걸어간 이도 적잖았다. 대체 무엇이 이처럼 엇갈린 선택을 하게 만들었을까. 사람의 인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필적을 통해,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독립운동가의 성품을 분석해봤다.
“기미년 당시 일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들은 그 후 나를 주목하고 위협하고 또 유혹하여, 나는 끝내 민족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오직 죄스럽고 부끄러울 뿐이다. 내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뿐이었다. 첫째는 망명하는 길이요, 둘째는 자살하는 길이며, 셋째는 일본 군문(軍門)에 항복하는 길이었다. 첫째와 둘째 길을 택하지 못한 것은 늙은 부모에게 불효할 수 없어서였다.”
최린의 말대로 식민 상황의 지식인들은 자결하거나, 망명해 항거하거나, 아니면 일제에 협조할 수밖에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 기로에서 선택하게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스 사상가 헤라클레이토스는 한 사람이 오랜 기간 형성해온 성품이 이후의 삶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독립운동가들은 어떤 성품을 가졌기에 자신의 안위나 가족의 행복을 포기하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했을까?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글씨에 사람의 인격이 그대로 담겨 글씨를 보면 인격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글씨는 바로 그 사람’이라는 믿음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송나라 소식은 글씨에 신(神, 정신), 기(氣, 기상), 골(骨, 골격), 육(肉, 근육), 혈(血, 혈색)의 다섯 가지가 있다고 했다. 글씨를 사람과 동일하게 본 것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글씨를 분석해 사람의 성격 등 내면을 알아내는 필적학이 발달했다. 필적학은 사람이 글씨를 쓸 때 머리에서 손과 팔의 근육에 메시지를 전달해 선, 굴곡, 점 등을 만들기 때문에 필적은 내면세계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독일의 필적학자 프레이어(William T. Preyer)는 필적을 ‘뇌의 흔적’이라고 했다. 공자, 셰익스피어, 체호프, 융, 아인슈타인도 필적과 성격에 어떤 연관이 있다고 믿었다.
필자는 19년 동안 612명의 독립운동가, 236명의 친일파 글씨를 수집했다. 근대 인물의 글씨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어서 진위 감정이 매우 어렵다. 게다가 유명한 독립운동가의 글씨는 위작이 많고 그 반대의 경우는 동명이인이 많다. 진품을 수집하려면 글씨를 연구할 수밖에 없었고 수집품이 어느 정도 쌓이게 되면서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가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특징이 의미하는 것을 알아내고자 해외 필적학 책을 보면서 연구했다. 그래서 이르게 된 결론은 독립운동가나 친일파는 본래 성품 때문에, 우연이 아닌 필연적으로 항일 또는 친일의 길을 가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 독립운동가 글씨의 특징은 어떤 것이고 그 특징은 어떤 성격을 의미하는 것일까? 주로 친일파 글씨와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파악했다. 지금까지 국가에서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또는 대통령표창을 받은 사람이 1만 5180명이다. 이 중 필자의 필적 분석 대상은 독립운동가 711명, 친일파 270명에 그친다. 다만 건국훈장 가운데 대한민국장 수훈자 30명 중 22명, 대통령장 수훈자 92명 중 39명, 독립장 수훈자 821명 중 103명을 분석해 독립장 이상을 받은 독립운동가의 17.3%를 분석할 수 있었다. 친일파의 경우에도 2002년 당시 국회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주요 친일 인사 708명 중 151명(21.3%)의 필적을 분석했다. 자료의 한계와 일반화의 오류 등이 있을 수 있지만 진실에 다가서고자 노력했다. 이를 통해 얻어낸 독립운동가 필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아래 비율은 분석 대상자를 기준으로 구한 것이다.
특징 1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필획
한용운, ‘城北零言 逆境과 順境(성북영언 역경과 순경)’ 상편, 1936년, 8.5×15cm 13장/ 한용운이 1936년 3월 19, 20일 조선일보에 연재한 글 원고. 첫 장에는 수필 제목 ‘尋牛莊漫筆(심우장만필)’에 줄을 긋고 ‘城北零言(성북영언)’으로 고쳤다. 좌측 하단에 ‘萬海(만해)’라고 적혀 있다.
이완용, 서간. 15×23cm 2장
특징 2 규칙성
이상룡, 서간, 1885년, 44×22cm
필적의 규칙성(regularity)을 판단할 때는 글씨의 모양과 크기, 글자 간격, 행 간격, 기초선, 기울기 등에 일정한 질서가 있는지를 주요 포인트로 삼는다. 행동이나 말, 걸음걸이에 규칙성이 있고 신뢰할 만하며 의지가 굳고 일에 잘 집중하는 사람은 글씨에서 규칙성이 드러난다. 언행이 일치하고 목표가 뚜렷하고 신뢰받는 사람의 글씨는 규칙성이 있다.
독립운동가의 글씨는 특히 규칙성이 두드러진다. 99.7%가 그렇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던 인물의 특성이 글씨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친일파 14.8%의 필적에서 규칙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게 보였다. 친일파는 상황에 따라, 조건에 맞게 자신을 변주할 수 있는 부류였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또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규칙적인 글씨를 쓸 수 없었던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특징3 균형이 잡힌 정사각형 형태
김구, ‘獨立萬歲 (독립만세)’, 1948년, 132×32.5cm
정사각형 글씨는 보수적이고 소심하며 곧고 바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당나라 때 서예가로 이름을 떨친 유공권은 “마음이 바르면 붓도 바르다”고 했다. 조선시대 붓글씨의 교과서였던 한석봉의 천자문 또한 매우 반듯반듯한 정사각형 형태를 띠었다. 반듯한 글씨와 바른 인성은 연관성이 크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쓰는지 여부로 독창성과 보수성을 짐작할 수 있다고도 한다. 배운 바대로 흐트러짐 없이 쓴다는 것은 규율과 도덕을 중시한다는 것이고, 달리 말해 고지식한 면도 있다는 의미다.
이와 반대로 친일파들의 글씨는 가로가 좁고 위아래로 긴 형태가 39.3%에 달한다. 이는 글씨 쓴 이가 독창적이고 즉흥적이며 감정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기회주의적 성향과 변덕스러움을 뜻하기도 한다.
특징 4 모나고 경직된 필체
이병기, 서간, 1919년, 9×14cm,
유연성의 차이는 글자 형태, 크기, 간격, 규칙성, 정돈성, 속도 등 모든 측면에서 나타나거나 그것들이 결합된 형태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보인다. 글씨의 유연성은 선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방향으로 곧고 일정하게 움직였는지, 글자 모서리에 각이 있는지, 모가 났는지, 획이 꺾어지면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였는지 등으로 판단한다. 전체적으로는 얼마나 둥근 원에 가까운지를 보면 쉽게 평가할 수 있다.
독립운동가의 이렇게 경직된 글씨는 한민족 역사상 다른 시기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필적학에서 글씨의 각은 강한 의지의 표상이다. 각진 글씨는 정돈돼 있고 깔끔한 느낌을 주는데, 이렇게 쓰는 사람은 빈틈없고 엄격한 실용주의자이며 다른 사람에게 비판적이고 유머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평가된다. 친일파의 글씨는 유려하지만 굽어 있는데 이는 의지가 약하고 남에게 비판적이지 않으며 유머 감각이 있음을 의미한다.
특징5 작은 크기
김창숙. 서간, 1897년, 42×23cm
글씨 크기는 자기 이미지를 드러낸다. 즉 글씨 크기로 내향성이나 외향성을 파악할 수 있고, 또 그 사람이 주변 환경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집중력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가늠할 수 있다.
큰 글씨를 쓰는 사람은 은연중에 자신을 어필하는데, 글씨가 커야 남의 눈에 잘 들어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이 많고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외향적인 사람이 주로 글씨를 크게 쓴다. 큰 글씨로 관대함이나 자신감을 드러내려 하고 집단으로부터 자신을 구분해 높은 성취감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그들은 용감하고 열정적이며 낙천적이지만 자기과시를 좋아하고 주의력과 절도가 느슨하다는 단점도 있다.
반면 작고 촘촘한 글씨를 쓰는 사람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작게 쓴다는 것은 집중력 있게 쓴다는 말인데, 다른 사람이나 외적인 것에 신경 쓰기보다 주변을 차단하고 자기 자신에 더 집중한다. 따라서 가까운 사람 외에는 잘 어울리지 못하고 내성적이며 보수적인 사람들이 글씨를 작게 쓰는 경우가 많다. 작은 글씨는 치밀함, 신중함, 현실감각, 냉정한 억제력, 주의력, 경계심, 근신, 겸손, 절제를 의미한다.
서양 필적학에서는 기초선을 기준으로 알파벳 크기가 약 3mm를 넘는지 여부로 글씨의 크고 작음을 판단한다. 평균 크기를 3mm로 보는 것이다. 또 전체 크기가 9mm가 안 되면 작은 글씨, 9.5~11mm 사이에 들면 중간 글씨, 11.5mm가 넘으면 큰 글씨라고 본다.
붓으로 쓰면 상대적으로 크게 쓰게 되는데, 조선 말기 서간의 글씨 크기는 평균 1~2cm 정도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독립운동가의 글씨는 92.7%가 중간 이하 크기이고, 반대로 친일파의 글씨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96.7%가 중간 이상 크기다. 친일파는 활달하고 매우 빠른 필치를 보이지만 독립운동가는 전반적으로 촘촘하고 소박한 필치가 특징이다. 이는 스스로를 잘 드러내진 않지만 자신과 타인에게 매우 엄격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독립운동가의 기질적 특성과 연관 있다.
반면 외향적이고 남에게 관대한 사람들은 불의와 타협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어디서든 예외가 있듯이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신익희, 조병옥, 이범석 같은 정치인이나 의병장들은 활달하고 큰 글씨를 썼다. 리더는 아무래도 활달하고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여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징6 느린 속도
이시영, ‘寒泉(한천)’, 94×43cm. 경남 합천에서 ‘晴蓑(청사)’라고 쓴 글씨와 함께 나왔다.
글씨 속도를 판단하는 기준은 글씨 크기, 획이 부드러운지 여부, 개별 글자의 마지막 부분이 소홀하게 처리됐는지 여부, 글자 일부가 생략됐는지 여부, 자연스러운지 여부, 글자나 행의 간격, 약식체를 쓰는지 여부, 마지막 획을 삐침같이 끌어올리는지 여부 등이다. 글씨 속도는 글씨의 숙달 정도나 나이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생각이나 행동의 속도를 반영한다. 행동이나 판단이 빠른 사람이 글씨를 늦게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글씨 속도가 느린 사람은 대개 서투르고 임기응변에 약하고 관습적이며 사려 깊고 정확한 걸 좋아하는 완벽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반면 빠른 속도로 글씨를 쓰는 이는 활동적이고 즉흥적이며 정보를 빨리 입수하는 능력이 있다.
독립운동가의 글씨는 중간 이하 속도를 가진 경우가 95.4%에 달한다. 중간 이상의 속도를 가진 경우가 97.1%에 달하는 친일파와 대비된다. 모름지기 군자는 세상을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매사 신중하며 깐깐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기에도 조심스러워 글씨가 막히고 껄끄러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한 독립운동가의 글씨는 작고 각진 형태가 많은데 이런 글씨는 빨리 쓰기 어렵다. 반대로 상황 판단이 빠르고 적응력이 강한 친일파들은 그 특성에 맞게 빠른 속도로 글씨를 썼다. 그들의 모나지 않고 크고 부드러운 글씨체도 빠른 속도에서 나오기 쉽다.
독립운동가 중 글씨를 빠르게 쓴 인물도 있는데, 손병희, 이범석 같은 정치가들이다. 이들은 글씨를 빠른 속도로 쓰면서도 기본 형태가 무너지지 않고 크기, 행과 글자 간격이 대개 규칙적이거나 적어도 전체적인 틀은 유지한다. 이에 반해 친일파는 글씨 형태가 불완전해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크기, 행, 글자 간격 등도 눈에 띄게 들쭉날쭉하다. 친일파의 글씨는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형세를 잃고 법도에서 벗어난 것이 많다.
특징 7 힘차고 강한 필획
손병희, ‘龍過江 必有風 信鳳人(용과강 필유풍 신봉인)’, 1904년, 34×133cm/ 용이 강을 건너니 바람이 불게 마련이지만 반드시 큰 인물이 있다. 조선에 큰 변화가 있어 어려움이 따르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낼 큰 인물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특징8 넓은 행의 간격
박은식, 奇植齋金剛紀行後(기식재금강기행후), 1891년, 62×27cm. 독립운동에 관여한 호남 출신 학자 奇宰(기재)가 금강산에 다녀와 남긴 글을 읽고 박은식이 쓴 소감문이다. 植齋(식재)는 기재의 호다.
필적학에서는 행 간격이 넓은 사람을 매우 조심스럽고 사려 깊으며 절약하는 습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반대로 판단력이나 자의식이 부족한 사람은 행 간격을 좁게 두는 것으로 본다. 독립운동가의 93.2%가 충분한 행 간격을 유지한다. 독립운동가는 타인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고 조심스러우며 사려 깊고 절약하는 성향의 사람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반대로 친일파는 조심스럽지 못하고 사려 깊지 않고 절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을 개연성이 크다. 친일파의 글씨는 63.9%가 행 간격이 충분하지 못한데 때로 행 간격이 너무 좁아 다른 글씨를 침범하는 경우까지 있다. 적극적인 친일파는 일제의 탄압과 수탈에 민족이 고통받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는데, 이런 배려심 없는 성향이 글씨에서도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특징9 좁은 글자 간격
조만식, 시고, 28.8×85.5cm. 조만식이 나관중 작 ‘삼국연의’에 나오는 제갈량의 시를 쓴 작품. 草堂春睡足(초당춘수족)/ 窓外日遲遲(창외일지지)/ 大夢誰先覺(대몽수선각)/ 平生我自知(평생아자지)로, ‘초당에 봄 잠 곤히 자고 일어났거늘, 창밖에 해는 아직 더디 오르누나. 큰 꿈을 누가 먼저 깨칠까, 평생 나만 홀로 아노라’라는 뜻이다.
조만식의 글씨는 글자 간격이 좁다. 독립운동가의 87.1%는 글자 간격이 좁은데, 친일파 중에는 44.5%만 그렇다. 그 기준은 영어, 한글, 한자에 따라 다르고 또 사용한 종이 크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글자 간격은 무엇을 의미할까? 필적학에서는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육체적 거리를 뜻한다고 말한다. 마음이 곧고 내성적이고 고지식한 사람은 글자 간격이 좁다고 평가한다. 반면 글자 간격이 넓은 사람은 자신에게 관대하고 외향적이며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자 간격이 상대적으로 넓은 친일파는 자신에게 관대해 국가와 민족을 배반하는 일을 스스로 수용하고 ‘일본의 지배’라는 새로운 환경에도 무리 없이 잘 적응했을 것이다.
글씨에 인품이 드러나고 인품이 인생을 결정했다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체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차이를 살펴봤다. 이런 차이를 기계적으로 쉽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체가 부분의 합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 글씨체여서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게다가 독립운동가나 친일파 모두 인원이 많아 일반화의 오류를 피하기 어렵다.하지만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에서 전체적으로 보이는 양상이 현저히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로써 글씨에 인품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분석을 종합해보면, 독립운동가의 전형적인 글씨체는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고, 규칙성이 두드러지며, 정사각형 형태로 반듯하다. 모나고 경직됐으며, 크기가 작고, 속도가 느리며, 필획이 힘차고 강하고, 행의 간격이 넓고, 글자 간격이 좁은 것이 많다.
반면 친일파의 전형적인 글씨체는 필획이 깔끔하지 않고 선과 선, 글자와 글자가 헝클어지거나 일부 겹치는 불안정한 것이 종종 보인다. 규칙성이 떨어지며, 가로가 좁고 아래로 길게 뻗치는 경우가 많고, 유연하며, 크기가 크고, 속도가 빠르며, 필획이 약하고, 행 간격이 좁고, 글자 간격이 넓다. 일부 친일파는 극도로 불안정한 필치를 보인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독립운동가의 글씨는 바름의 글씨요, 친일파의 글씨는 기이함의 글씨다. 사람은 긴 인생 여정에서 수많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역사에 오명을 남기지 않으려면, 최소한 씻을 수 없는 실수를 막으려면 평소 인격 수양에 힘써야 한다.
구본진
● 1965년 서울생
● 서울대 법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법학박사)
● 사법연수원 20기 수료
● 前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 現 법무법인 로플렉스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