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호

누가 택배노조를 움직이는가[민경우 586칼럼]

리더들 대부분 진보연대 출신…노동운동의 정치화 우려

  • 민경우 민경우수학연구소장

    입력2021-07-1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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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택배노조 장악 후 파업 주도한 이는 민주노총 출신 리더들

    •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리더 출신

    • 주사파 활동가들 비정규직 노조에 포진 후 강경투쟁 경향

    • 강경전환…‘진보당을 통한 정치적 재기’ 목적과 밀접 관련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 [동아DB]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 [동아DB]

    2021년 6월 전국택배노동조합이 파업을 했다. 택배노조 싸움이 특별했던 것은 택배노조의 파업을 이끈 지휘부 때문이다. 나는 주사파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그 중 2006~2007년에는 진보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했다. 택배노조의 리더들은 내가 진보연대에서 활동할 때 동료들이었다.

    택배노조 위원장인 진경호는 민주노총 출신으로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리더였고 김태완은 1996~1997년 한총련의 핵심 간부였다. 박석운은 미스터 집행위원장으로 불릴 정도로 진보가 주관했던 거의 모든 대책위원회의 집행위원장이었다.

    나는 지금 중도성향 시민단체 미래대안행동(미대행)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택배노조의 파업이 본격화될 무렵 나는 대리점주들로부터 다양한 제보를 받았다. 제보 과정에서 앞에서 거명한 사람들이 등장했다. 대리점주들과 대화 내내 깊은 의문을 갖고 있었다. 왜 진보연대의 핵심 활동가들이 택배와 관련된 일선 노동현장까지 깊숙이 개입하게 되었을까? 나는 여기에 2000년대 한국 노동운동의 핵심적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2000~2020년간 노동현장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주사파, 민주노동당 당권 장악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이 5월7일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열린 총파업 투쟁계획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이 5월7일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열린 총파업 투쟁계획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일반적으로 주사파는 학생과 농민을 중시하는 편이다. 덕분에 1990년대 진보정당 활동과 노동운동에서 주사파가 차지하는 위치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주사파는 진보정당, 노동운동의 정치지형을 빠르게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 주사파가 민주노동당 당권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2004년 민노당 최고위원 선거에서 최고위원 13명 중 9명이 주사파 또는 NL(주사파.NL.자민통은 대체로 유사한 말이지만 상대적으로 온건파를 지칭할 때 NL.자민통이라는 표현을 쓴다)이었다. 2006년부터는 위원장-사무총장 등 핵심 요직도 주사파가 장악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2004년 4월 이수호 위원장을 시작으로 2000년대 내내 주사파 또는 NL에서 위원장이 배출된다.

    일단 권력을 장악하면 권력을 공고히 하고 그것을 통해 더 큰 일을 하려는 유인이 작동한다. 민주노동당은 2012년 유시민, 심상정. 노회찬 등과 연합해 통합진보당을 결성한다. 통합진보당은 2012년 4월 총선에서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를 실현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 7석, 비례 6석 등 도합 13석을 얻는 획기적인 성과를 올렸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해 진보정당이 의석을 확보하는 방식은 주로 비례였다. 지역에서 당선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역에서 당선된 것은 2004년 권영길, 조승수, 2008년 권영길. 강기갑 정도였다. 반면 2012년 선거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가 해당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는 것을 배경으로 무려 7곳에서 승리한 것이다.

    야권연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합의를 해야 한다. 민노당의 뿌리는 1980년대 중후반 운동권이었다. 덕분에 민노당의 강령 안에는 사회주의와 혁명을 지향했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민노당의 주사파는 당권을 장악하고 야당과 정책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제도권 정당으로 변모한다. 2000년대 중반 민노당은 점점 더 현실적이고 온건하게 변화한다.

    이석기 사태가 촉발시킨 진보세력 분화

    6월 9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 서울복합물류센터에 모인 택배노조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6월 9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 서울복합물류센터에 모인 택배노조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통합진보당 이석기 사태 이후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다. 통합성을 유지했던 진보세력은 여러 갈래로 쪼개졌다. 이중 다수가 정의당이 되었고 통합진보당을 계승하는 세력이 민중당을 거쳐 현재 진보당에 이른다.

    진보당의 전신인 민중당은 2020년 총선에서 실패했다. 민중당이 얻은 득표율은 무시해도 될 정도였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의석을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따라서 이들의 입장에선 새롭게 부상하는 노동운동에서 세력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세력을 확대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것이 정상급 활동가들이 직접 일선에 참가한 배경일 것이다.

    2000년 이후 비정규직 운동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학교비정규직노조(학비 노조), 마트노조, 건설노조, 택배노조 등이 그런 곳이다. 민중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던 학비노조의 김해정씨는 2020년 4월 선거 직전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민중당을 ”이정희 대표가 지키고자 했던 진보의 가치, 자주와 평화를 주장하다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는 이석기 의원의 염원을 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김해정씨 정도는 아니더라도 신흥 노조의 리더들이 진보당에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 장면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김씨의 라디오 인터뷰 내용 정도라면 이정희, 이석기에 대한 단순 지지라기보다는 같이 함께 하는 동료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노동조합은 대중조직이다. 따라서 조합의 리더들이 정견을 갖더라도 사람들의 생각을 고려하거나 반영하게 되어 있다. 노조의 리더들이 진보당에 보이는 애정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덕분에 민주노총을 둘러 싼 정치지형에도 상당한 균열이 시작되었다.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작년 민주노총 선거이다. 민주노총 선거 결과 경기동부 출신의 양경수 위원장이 당선되었다. 양 위원장의 당선은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의 기존 문법을 파괴한 것이다. 진보당을 지지하는 신흥 노동운동 세력이 발흥하면서 민주노총의 정치지형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직선제가 바꿔놓은 민주노총 정치지형

    태풍의 진원지는 직선제였다. 2004년 이후 민주노총 선거는 대부분 주사파 또는 온건 NL이 승리했다. 주사파가 기층을 장악하기는 하지만 산별 차원에서는 연맹 리더들이 온건 NL 성향이었기 때문에 양자의 연합을 통해 전체적으로 NL이 승리하는 양상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경기동부가 위원장이 되기는 어렵다. 경기동부가 위원장이 되려면 다양한 정파와 연맹 수장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대체로 경기동부의 신임 리더들보다 연맹위원장들이 경력이나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직선제가 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1차 시작은 2015년 쌍용해고자 출신 한상균 위원장이 당선되면서다. 한상균은 현장 투쟁을 중시하는 전투적인 인물로 2000년대 온건 NL 위주의 민주노총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직선제의 2차 돌풍은 양경수 위원장이다. 양경수 위원장은 기아자동차 하청 노동자 출신으로 경기동부 출신이다. 양경수 위원장은 경기동부 등 NL 강경파의 집중적인 작업으로 선거에 당선되었는데 민주노총 NL 내부에서 이변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한상균, 양경수 모두 민주노총 하층의 지지아래 직선제라는 새로운 거버넌스가 만들어낸 새로운 유형의 노동운동 리더였다.

    통진당 해산에 대한 대중적 평가

    이제 택배노조로 돌아가 보자.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주사파 노동운동 진영은 세 부족을 실감했다. 2020년 총선에서 보듯 현재의 진보당으로는 상황을 뒤집을 가능성이 전무했다. 유일한 방법은 2000년 이후 새로운 변화의 진원지인 비정규직 운동을 주도하고 이로부터 정치적 활로를 뚫는 것이었다.

    현재까지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학비노조, 마트노조, 건설노조 등에서 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노총 하층 노동자들 일부가 민주노총의 기존 질서에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90년대 민주노총은 생산직 대공장 노조와 보건.교사 등 사무직 노동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이들은 상당한 수혜를 입었고 이들을 배경으로 정규직 노동조합 중심의 민주노총은 안정화되었다. 이를 뒷받침한 것이 연맹과 정파들 사이의 타협과 간선제이다. 2000년대 비정규직 운동이 성장하면서 민주노총의 기존 질서가 이를 수렴하지 못하면서 진보당과 직선제가 대안으로 부상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통합진보당의 해산 과정에 대한 대중적 평가가 있다. 법률적인 진실을 넘어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는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한겨레신문과 같은 진보언론이나 정의당의 다수파인 인천연합도 통합진보당의 해산에 동의했던 것이다. 이는 보수 세력의 상당수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동의한 것과 같다. 진보당(민중당)은 이런 흐름을 부정하고 밑으로부터의 대중적 세를 통해 이를 뒤집어 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선거 결과, 학비·택배 노조 등의 동향을 보면 지속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셋째, 노동운동에 미치는 영향이다. 필자가 속한 중도적 시민단체 미대행은 택배 파업 과정에서 다양한 제보를 받았다. 제보 과정에서 주사파 활동가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노동운동의 방향이 강경한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제보를 많이 받았다. 운동이 강경한 방향으로 변화하게 된 동기가 진보당을 통한 정치적 재기라는 목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넷째, 노동운동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택배사업은 성장기 사업이다. 택배 노동자들의 수입도 상당하다. 택배 파업의 배경을 이룬 것은 택배사업이 성장하는 가운데 택배 물량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택배 노동자들에게는 정해진 구역이 있다. 택배 물량이 늘어났다는 것은 정해진 구역에 물량이 늘어났다는 것으로 수익성이 좋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택배사업은 늘어난 물량을 여러 이해관계자가 공생하는 방향으로 처리하면 되는 문제였다. 즉 투쟁보다는 협상과 조정이 필요한 전형적인 영역이다.

    택배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영업자다. 따라서 물량이 늘어났을 때 그것을 자신의 이익에 맞게 배분하려는 유인이 작동한다.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과로사 또한 그 어름에서 발생한 문제이다. 반면 택배 파업 과정에서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극단적인 주장이 난무했다. 그것은 택배사업을 지나치게 노동운동으로 보려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동운동을 정치화하려는 어떤 경향이 노동운동의 발전에도 장애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주사파 #택배노조 #통진당 #이석기 #신동아


    민경우
    ● 1965년 출생
    ●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처장·진보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 저서 : ‘수학 공부의 재구성’ ‘새로운 보수의 아이콘’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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