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호

김영춘 “겨우 살아난 해운업, 공정위 과징금 부과 재고해야”

‘해운업 부활 1등 주역’ 김영춘 전 해수부 장관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1-07-16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기재부 반대 무릅쓰고 시작한 ‘해운 재건 프로젝트’

    • 산업은행장 직접 찾아가 “도와 달라” 부탁도

    • 고효율 대형 선박 투자로 변곡점 맞아

    • 공정위 선사에 과징금 처분…업계 상황 전혀 몰라

    • 중소 선사 파산하면 산업 전반에 악영향 끼쳐

    7월 12일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중소 선사에 대한 공정위 측의 과징금 예고는 재고돼야 한다”며 “15년간 거래를 묶어서 과징금을 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는 가혹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허문명 기자]

    7월 12일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중소 선사에 대한 공정위 측의 과징금 예고는 재고돼야 한다”며 “15년간 거래를 묶어서 과징금을 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는 가혹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허문명 기자]

    한국 해운업이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하면서 기사회생했다. 코로나 시대 사람의 왕래가 적어지는 대신 물동량이 대폭 늘어난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가 2018년부터 추진해 온 ‘해운재건 5개년 계획(5개년 계획)’의 성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한국 해운업의 앞날이 캄캄했을 때 정부가 나서 과감한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공정위가 국적 선사 12개사를 비롯한 23개 업체에 560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를 예고하며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가까스로 살아난 해운업이 다시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는 분위기다. 해운업 성장을 이끈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서울에서 만났다. 공정위 이슈는 물론 해운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물었다.

    그가 문재인 정부의 첫 해수부 장관으로 취임한 2017년 6월, 한국 해운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 따른 장기 불황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직전 연도인 2016년 9월 한진해운이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지만 결국 2017년 2월 파산까지 한 것. 해운업 전체 매출은 2015년 39조 원에서 2016년 29조 원으로 뚝 떨어졌다.

    김 전 장관 취임 당시 상황은 암울했다. 그는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전 정부인 박근혜 정부의 한진해운 파산 결정에 대해 의구심이 많았다고 했다.

    “한진해운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2016년 9월, 국회 농림축산해양수산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한진해운을 파산시키고 현대상선(현 HMM)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한진해운이 기업 규모도 크고 국제적인 평판도 더 좋았는데 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왜 그랬다고 하던가.

    “HMM은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으나 한진해운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 회사 경영진을 경영에서 손 떼게 하고 국영기업을 만들어 해운산업을 살린 뒤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어찌 됐든 HMM만큼은 살려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해운업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엄기두 해운물류국장에게 전문가 자문을 구해 안을 갖고 오라고 했다. 정권 초기라 뭐든 해볼 수 있었고 게다가 문 대통령도 항만 도시 부산 출신이라 관심이 컸다.”
    - 그래서 어떤 안이 나왔나.

    “우선 대통령 공약이었던 한국해양진흥공사(진흥공사)를 설립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장관 취임 6개월 뒤인 2017년 12월 관련 특별법을 통과시켜 법적 기반을 만들었다. 진흥공사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적시한 구체적인 플랜이 5개년 계획이었다.”

    “‘폭망’하는 해운산업 두고 볼 수 없었다”

    - 5개년 계획의 골자는 뭐였나.

    “안정적인 화물량을 확보하고 선사들 간 협력을 강화해 해운업 경영을 안정화하는 것이다. 또 저비용·고효율 선박을 건조하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대략 8조 원에 달하는 돈이 필요했다. 2017년이 넘어가기 전까지 대통령 결재를 받는 게 목표였는데 숱한 반대에 부딪혀 계속 늦어졌다.”

    - 반대 논리는 뭐였나.

    “기획재정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했다. 해운산업에 국가 예산을 계속 쏟아부었는데 성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기재부 입장도 일리가 있었다.”

    - 어떻게 설득했나.

    “‘당장만 보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자’고 했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총 수출 물량의 99%, 액수로는 총 수출액의 70%가 배를 통해 해외로 나간다. HMM까지 무너지면 전부 외국 배로 실어 보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설득 끝에 2018년 3월에야 대통령 결재를 받았다. 2018년 부산시장에 출마할 계획이었는데 해운 수장으로서 해운업부터 살려야 한다는 주변의 절박감을 모른 척할 수 없어서 결국 출마를 접었다.”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이 지났는데도 해운업이 긴 불황에 허우적댄 이유는 뭔가.

    “당시 해운 업황은 세계 굴지의 선사들이 대형 선박을 소유해 원가 효율성을 높이는 시기였다. 그런데 HMM은 수차례 구조조정을 통해 오히려 선박을 팔아가면서 용선(傭船·빌린 선박)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선박 크기도 작은데다 글로벌 선사들이 보유한 고효율 대형 선박에 비하면 연비도 높아 고비용에다 엄격한 환경규제를 맞춰줄 여력이 안 됐다. 그런 상황에서 글로벌 선사가 운임을 낮추는 ‘치킨 게임’을 시작하자 당해낼 수 없었다.”

    김 전 장관은 “한시라도 빨리 최첨단 대형 선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말을 이었다.

    “연비도 높고 선복량(배에 실린 짐의 양)도 두 배로 늘리는 대형 선박을 우리도 갖추는 게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었다. 세계 해운동맹에 참여하고 효율적으로 선대를 배치하는 글로벌 선사들의 전략을 따라가는 것이 맞다고 본 거다. 기재부·산자부는 물론 해운업계 안에서조차 ‘불가능한 일’이라며 의심의 목소리가 나왔다.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배를 만든다는 게 과연 경제성이 있겠느냐는 시각이었다. 2016년에만 HMM은 8000억 원대 적자를 냈다. 경영권을 쥐고 있는 산업은행이 막상 지원을 못 하겠다고 하니 난감했다. 이동걸 은행장을 찾아가 직접 설득하자고 마음먹었다.”

    산업은행장 직접 찾아 “도와주십시오”

    2017년 12월 26일 당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부산신항 한진해운부두에서 열린 ‘부산항 컨테이너 2000만 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달성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2017년 12월 26일 당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부산신항 한진해운부두에서 열린 ‘부산항 컨테이너 2000만 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달성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당시 해수부 직원들은 “장관이 왜 은행장을 직접 찾아가느냐”며 말렸다고 한다. 다시 그의 말이다.

    “돈이 필요한 쪽이 을이다. 당연히 을이 갑을 찾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이동걸 행장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금융업계 논리만 들었을 테니 해운업계 쪽 이야기도 듣고 판단하시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산업은행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HMM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진흥공사가 보조적 역할을 하는 데 동의했다. 대신 이후엔 공사가 HMM에 대한 책임을 전부 지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자금을 받을 수 있었다.”

    - HMM이 지난해 첫 흑자를 내면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 셈이다.

    “5개년 계획을 시작한 지 2년여 지난 2020년 봄에 12척의 배가 건조됐다. 마지막 스무 번째 배가 바로 얼마 전인 지난 6월 29일 출항했다. 스무 척 모두 거리가 먼 유럽 노선을 운항한다. 거리가 길수록 연비가 좋은 선박이 운임 경쟁력이 높다. HMM은 이를 바탕으로 지난 5월 3대 해운동맹에 속하는 ‘디 얼라이언스(THE Alliance)’에도 가입했다. 디 얼라이언스에 가입하려면 큰 배가 꼭 필요하다. HMM은 지난해 순이익만 1500억 원이었고, 올해는 보수적으로 접근해도 3조 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호재’ 덕도 크지 않나.

    “코로나19가 아니었더라도 HMM은 흑자 전환에 성공했을 것이다. 한국은 수출입 물동량이 많은 국가이기 때문에 자체 물량만으로도 충분하다. 석유 가격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고효율 선박을 운항하다 보니 원가가 많이 절감됐고 유가가 오르자 가격경쟁력이 훨씬 높아졌다.”

    “국적 선사 망하면 산업 전반에 타격”

    한편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국적 선사 12개사와 외국 선사 11개사가 부당 공동행위를 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심사보고서 내용을 통보했다. 업계는 과징금 규모가 56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3개 중견 해운사인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의 지난해 영업이익(2700억 원) 총액의 배가 넘는 금액이다.

    - 공정위의 과징금 이슈가 해운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재고했으면 한다. 공정위는 국내에서 이뤄지는 선사들의 경제활동에만 주목한 것이다. 공정거래법이라는 원칙만으로 보면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해운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앞서 설명한 ‘해운동맹’이 공동행위 중 하나다. 특히 공정위가 문제 삼고 있는 기간은 글로벌 선사들 간 경쟁이 한창 치열해 한국 선사들이 고사 위기에 있던 때다. 선사들이 값을 더 올려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망하지 않으려면 최소한 이 기준 밑으로는 운임을 낮추지 말자는 합의였다. 또 선사들 간의 운임동맹은 외국 선사들도 하고 있는 일이다.”

    - 이번 과징금 부과가 현실화되면 중소 선사들은 다시 파산 위기에 몰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맞다. 업계가 죽고 사는 문제다. 중소 선사도 지난해 2분기까지만 해도 파산 위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흥아해운만 해도 부도 위기를 겪어 장금상선이 합병 형태로 떠안은 것 아닌가. 이보다 규모가 더 작은 나머지 선사들은 상황이 더 심각했으면 심각했지 나을 게 없다. 지난해 하반기가 돼서야 겨우 한숨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15년간 거래를 묶어서 과징금을 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는 가혹한 조치다.”

    - 어떻게 해야 하나.

    “해운업의 특수성과 관행을 공정위가 감안해야 한다. 해운법 중심으로 문제를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한 일이다. 해수부가 공정위에 업계 상황을 잘 설명해야 한다. 공정위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대통령이 해운업 상황을 고려한 주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물류대란 문제도 감안해야 한다.”

    - 물류대란?

    “글로벌 선사들이 코로나19 초기 상황에 선박량을 줄였다. 물동량이 지난해 하반기 크게 증가하며 물건이 있어도 배가 없어 수출을 못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중국 화주들은 운임의 30%에 해당하는 프리미엄을 얹어주면서 선박을 잡는다. 중국에서 이미 화물이 꽉 차 한국을 경유하지 않는 ‘코리아 패싱’도 발생하고 있다.”

    그는 “국적 선사의 생존은 한국의 수많은 중소기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했다.

    “물류대란으로 단기 계약을 맺는 중소기업은 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 국적 선사의 역할이 있다. 중국에 가서 웃돈을 받고 화물을 실을 수도 있지만 국적 선사이기 때문에 우리 물건을 먼저 실어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징금을 물리겠다고 한 것은 국적 선사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다. 선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반에 미칠 타격은 불가피하다.”

    #김영춘 #해운업 #공정위 #과징금 #신동아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