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기록 ‘조국의 시간’이 역사가 되게 할 순 없었다”
법치 요구가 정치가 된 세상, 내부 폭로 결심
“나는 文정부의 ‘청부 지식인’이었다”
진실 외면하고 진영을 택한 김남국
“윤 총장이 조국 사퇴시키라고 고래고래…”
노무현 트라우마에서 시작된 일그러진 검찰개혁
독재의 길로 접어든 문재인 정부와 파시즘 평행이론
‘조국 사태’의 실체를 파헤쳐 화제를 모은 책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일명 ‘조국흑서’)의 공저자 권경애(56) 변호사가 검찰개혁과 관련,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록한 책 ‘무법의 시간’(천년의상상)을 펴냈다. 앞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 지명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정리한 책 ‘조국의 시간-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이 5월 31일 발간되자마자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를 겨냥한 듯 권 변호사는 “승자의 거짓 기록이 역사가 되게 할 수는 없었다”며 ‘무법의 시간’으로 응수했다.
운동권 출신 변호사가 조국 민정수석이 주도한 검찰개혁의 치어리더이자 적극적인 조력자로 활동하게 된 과정, 조국 사태를 겪으며 극심한 혼란과 의구심, 배신감을 넘어 공포와 분노, 환멸에 이르는 과정이 내부자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묘사돼 있어 이 책은 정치 현장의 ‘사료’로도 기대를 모은다.
한편 주요 인물이 모두 실명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권 변호사는 “합법을 가장해 독재정권의 길로 접어든 문재인 정권에 대한 ‘공적 분노’가 이후 자신이 받을 불이익과 이 글에 등장해 비난과 비판의 표적이 될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 미안함을 압도했다”고 토로했다. 여기 소개하는 다섯 장면은 권 변호사가 직접 목도하고 기억하는 현장 기록이다. ‘무법의 시간’에서 발췌했다.
권경애 변호사는 “합법을 가장해 독재의 길로 접어든 이 정권에 대한 공적 분노로 ‘무법의 시간’을 썼다”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운동권 출신 변호사의 쓸모
#장면1 | 2019년 5월 8일 오후 7시경, 조국 민정수석으로부터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권력기관 개혁 관련한 저의 구상과 계획을 꿰뚫어 보신 글을 접하고 한편으로 놀라고 한편으로 감사했습니다.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 진보 측에서 부족하다고 공격하고 있는 상황인지라…언론에서 인터뷰 또는 기고 요청 들어오면 거절하지 말아주시길!”권 변호사는 ‘무법의 시간’ 집필에 착수하면서 제일 먼저 2년 전 조국 민정수석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첫 연락을 주고받던 날을 상기했다. 당시는 검경수사권 조정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및 공직선거법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려놓고 국회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던 시점이다.
검찰개혁 법안은 대부분 정부 여당 뜻이 관철됐지만 검찰에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사건)에 대한 직접 수사권을 남긴 것에 대해 우군이던 진보 진영의 반발이 커 청와대도 당황하고 있었다. 검찰의 권한 남용은 수사권과 기소권 독점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주장해 온 진보 시민단체로선 검찰의 특수수사권 유지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참여연대와 민변 모두에서 활동해 온 권 변호사(2020년에 두 곳 모두 탈퇴했다)는 자기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에게 특수수사권을 유보한 것은 경찰의 준비 부족을 고려한 현실적 타산과 검찰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타협이고 동시에 경찰에 대한 견제”라는 논리를 펴는 등 꾸준히 정부 측 안을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 조국 민정수석이 권 변호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인터뷰 요청 등을 거절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검찰개혁을 돕는다는 자부심에 권 변호사는 당시 그것이 정권의 ‘청부 지식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심경을 이렇게 썼다.
“(조국 민정수석은) 새벽 6시경 청와대로 출근하기 전에 보냈을 메시지 한 통을 시작으로 근무 중일 낮에도 종종 메시지가 왔다. 안쓰럽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야당이 줄곧 사퇴를 요구한 공격 대상이었지만, 입을 열기 힘든 대통령의 비서였으니 답답하기가 오죽할까 싶었다.”
대통령의 ‘오프 더 레코드’까지 전달한 이광철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2019년 8월 민정비서관으로 승진했다. [동아DB]
TF 출범 직전인 6월 12일 이광철 행정관이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른 체계도를 갖고 직접 권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왔다. 권 변호사가 “검찰에 특수수사권을 남겨놓는 것은 찬성하지만,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사실상 폐지하는 것은 우려된다. 조국 수석도 교수 시절 수사지휘권을 통해 검찰이 경찰을 통제하게 하자는 의견이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광철 행정관은 “검찰에 특수수사권을 남겨두는 것은 대통령님 생각”이라며 “이것은 오프 더 레코드”라고 했다. 어느새 권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 지시까지 공유하는 ‘내부자’가 돼 있었다.
#장면2 | 2019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이 열린 날 이광철 행정관, 김남국 변호사(서울변회 TF에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와 셋이서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조국 민정수석 방으로 올라갔다. 사법연수원 동기(33기)인 김미경 행정관도 합석했다. 김 행정관의 남편이 서울변회 박종우 회장이라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처음 알았다.
조국 수석은 그날이 청와대 근무 마지막 날이라고 했다. 그는 몹시 유쾌해 보였다. 내가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로 화제를 바꾸며 “굉장히 시달리실 텐데요”라고 하자 김미경 행정관이 “언니가 지금처럼 열심히 도와주시겠죠. 도와주셔야죠”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이제 우리도 궁금했던 강남좌파 재산이며 가족들 얘기도 전부 알게 되는 거죠?”라고 잘못된 부탁이라도 받은 양 슬쩍 밀쳐냈다. 잠시 말을 멈추고 있던 조국 수석이 “합법 아닌 건 없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조국 수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여전히 환한 표정으로 “합법 아닌 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한 번 더 반복했다.
권 변호사는 그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의 기억을 이렇게 기록했다.
“공직 임명의 잣대를 상식과 공정이 아니라 합법과 불법으로 바꿔치기한 그 문장(“합법 아닌 건 하나도 없습니다”)은, 그날 조국 수석의 빛나던 눈빛과 두 행정관의 따뜻한 환대의 기억들을 통증으로 바꿔놓았다.”
조국 비판 글 올리자 5분 뒤 걸려온 전화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이 2019년 7월 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조국 대통령민정수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모펀드로 어떻게 장난치는지를 잘 모르는 지지자들에게 어처구니없는 해명으로 핍박받는 ‘노무현2’를 연기하며 강렬한 방어와 지지를 끌어모아서 세상 모두를 속일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들 지지자들을 개돼지로 보고 있다는 거다. (중략) 윤석열 수사 배제하고 사건을 묻으려고 검찰과 ‘거래’를 시도한 게 그저 법무부 고위급 간부들의 충정일 뿐이라고? 조 장관은 ‘또’ 모르고? 어디까지 가려고 이러는 건가?”
글을 올린 지 5분 만에 2주 전 민정비서관으로 승진한 이광철로부터 전화가 왔다.
“(검찰총장을 배제한 특별수사팀 구성은) 그전에 민정수석실에서 검토는 했었지만,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해서 철회한 방안입니다. 조 장관님은 모르시는 일입니다.”
권 변호사는 조국이 그런 논의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광철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청와대와 논의 없이 독단적으로 검찰총장을 배제한 특별수사팀을 구성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말은 믿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날 이광철은 묻지 않은 말까지 쏟아냈다.
#장면4 | “그리고 그건 알아주셔야 해요. 임명 전날까지도 내부 의견은 반반이었어요. 임명 철회 의견으로 좀 더 기울기도 했어요. 저도 임명 찬성과 임명 반대 의견이 반반이라는 보고를 대통령님께 했고요. 대통령님이 임명을 강행하신 것은 윤석열 총장이 임명 전날에 전화해서 조국을 사퇴시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영향이 컸습니다.”
“누구한테 전화해서 소리를 질렀다는 말인가요? 대통령께?”
“저한테도 하고….”
이광철은 말끝을 흐렸다.
권 변호사는 당시 왜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윤 총장의 전화를 받은 사람이 이광철 자신이라는 건지, 윤 총장이 직접 대통령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건지 불분명한 데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청와대에서 벌어지는 내밀한 일을 더 캐물을 수 없었다. 같은 날(2019년 9월 9일)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윤 총장이 조국을 낙마시켜야 한다고 말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조국 임명을 강행한 건 윤석열 때문?
최근 여권 인사들이 다시 “조국 장관 임명을 앞두고 윤 총장이 문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했다” “윤 총장이 조국만 도려내겠다고 했다” 등 출처 불명의 이야기를 잇따라 전하고 있는 것도 이광철 비서관이 권 변호사에게 했다는 말의 연장선상에 있다.#장면5 |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며칠 후, 서울변회 TF팀 조찬회의에서 김남국 변호사를 만났다. 페이스북에 연일 사모펀드 관련 글을 올리며 적극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나를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임명하셨네.”(권경애)
“네. 임명 안 하실 줄 알았는데….”(김남국)
“나는 조국 장관과 이 정부가 수사에 개입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믿기 힘들고,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가 어떤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고.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지?”
“그래도 저는 진영을 지켜야죠. 조국 장관님을 수호해야죠.”
“진영을?”
“네. 저는 진영을!”
“아, 나는 그렇게 못 하겠다.”
그즈음 조국 수호 최전선에 선 김민웅 교수가 권경애 변호사의 페이스북에 “이 수사는 수사 자체의 논리를 떠나 검찰 기득권과 결합한 이 나라 기득권 세력의 총체적 반격”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권 변호사는 비로소 청와대와 민주당 수뇌부에게 윤석열 총장은 적폐청산의 영웅도 정권의 동반자도 아니라는 것, 정권을 위협하는 척결 대상일 뿐임을 깨달았다. 법치를 요구하는 것이 정치가 되는 세상.
‘무법의 시간’에 담긴 독재의 풍경
[조영철 기자]
하지만 이 부분은 끝내 기사화하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권 변호사는 “우리가 꿈꿨던 세상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퍼즐 맞추기가 끝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이 알게 된 일들을 어디까지 밝혀야 할지 주저하고 있었다.
- 공교롭게도 ‘조국의 시간’에 뒤이어 ‘무법의 시간’이 나왔다.
“원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대담에 검찰개혁 부분이 있었으나 다 담아내지 못해서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국의 시간’을 읽은 사람들이 ‘그것 봐, 사모펀드는 무죄야’라거나 ‘코링크PE는 익성 것이라며?’ 같이 이미 판결문에 나와 있는 사실까지 왜곡하더라. 조국은 자기가 진정 해명해야 할 부분은 해명하지 않고 ‘가족이 도륙당했다’며 다시금 검찰개혁과 윤석열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우리 사회가 망가진다.
‘조국의 시간’이 진실이 아님을 알려야 했다. 검찰개혁이 어떤 의미이고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조국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속여왔는지, 조국이 진보의 아이콘, 검찰개혁의 아이콘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술한 논리인지 알리는 것이 이 책을 쓴 이유다. 나처럼 깊숙이 연루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독자들이 내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 정부의 실체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조국의 시간’이 출간된 후 서초동 집회가 재연되는 것을 보고 열흘 만에 절반 이상을 써서 마무리했다. 처음 가제 ‘독재의 풍경’을 구상하며 기초 메모를 충실히 해두었기에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조국 사태로 드러난 파시즘의 징표
- 이 시점에서 ‘조국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게 왜 중요한가.“2019년 서초동 집회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 상식이 파괴되는 기괴함을 느꼈다. 사모펀드는 법리 해석이 어려워서 그렇다 쳐도 입시비리 의혹의 진위조차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고한 일가가 윤석열의 정치적 야망 때문에 멸문지화를 당하고 있다’는 프레임이 생겨났다. 어느새 조국 수사는 검찰개혁을 저지하려는 검찰 쿠데타이며, 조국 일가는 검찰개혁을 주장하다 핍박받는 순교자가 돼 있었다. 자신들은 거악에 맞서 숭고한 촛불혁명을 수행하는 정의의 십자군단이었다. 이처럼 비상식적이고 맹신적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때 팩스턴의 ‘파시즘’과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가 그 괴이쩍은 사건을 이해하는 하나의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팩스턴은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를 지낸 파시즘 연구 권위자다. 권 변호사는 팩스턴이 열거한 파시즘의 징표를 갖고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집권여당과 지지자들 행태를 비교했다. 마치 평행이론처럼 맞아떨어져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고 한다. △정권을 잡고도 자기 집단이 기득권의 희생자라고 여기는 피해의식, △적으로 상정한 검찰과 언론에 대한 법률적·도덕적 한계를 벗어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정서, △반대자를 배제하기 위한 사이버 폭력으로 친문 순혈주의를 유지하겠다는 결속력,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에 대한 맹신, △친문친조 성공을 위해 윤석열과 한동훈 등 검찰과 ‘친검기레기’를 격파하는 폭력을 찬미하는 태도, △김용민·김남국 의원 등 강성 공격수의 용맹성을 당권 부여 기준으로 삼는 태도 등. 하나같이 파시즘의 징표로 보아도 무리가 없었다.
“수사 개입이 당신들이 말한 검찰개혁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 9일 오후 청와대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두 가지 사건이 내가 이 정권과 결별하게 된 변곡점이다. 9월 9일 조국 장관 임명 후 이광철과의 통화(장면3·4)와 10월 11일 ‘한겨레21’ 오보 사건. 검찰총장을 배제한 특별수사팀 구성을 제안했다는 뉴스를 보는 순간 ‘나쁜 놈들, 수사에 개입하는 게 당신들이 말한 검찰개혁이야?’라는 배신감과 분노가 치솟았다. 검찰 자체가 무소불위인 게 아니라 권력이 검찰을 무소불위 권력으로 이용한 것이 문제다. 이 고리를 끊고 검찰을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기관으로 만드는 것이 검찰개혁의 본질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권력으로부터 수사의 중립성을 보장하겠다는 검찰개혁의 대의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윤석열도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라는 제목의 ‘한겨레’ 기사는 이 정부의 파시즘적 음모를 간파하게 했다. 단 며칠 만에 오보로 드러날 허위 정보를 기사로 내보낼 정치적 필요가 있는 사람은 누굴까 생각했다. 김학의 사건의 비공식 문서인 ‘윤중천 면담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 이규원 검사이고, 그를 대검 진상조사단에 투입한 사람이 이광철이다. 이광철은 윤규근 총경과 민갑룡 경찰청장의 경찰권력 확대 의지를 활용해 검찰과 경찰의 대립 구도를 만들었다. 결국 언론을 통해 윤석열을 음해하도록 하는 데 이광철이 연루됐다고 생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설계한 검찰개혁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 어떤 걸림돌도 격파하고야 말겠다는 그의 충직한 권력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광철이 처음 사무실에 와서 이야기하는 순간부터 검찰개혁의 구체적 실무는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받는 이광철이 실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2019년 9월 9일 통화에서 이광철은 윤석열 총장이 조국 장관 임명 전날 전화해서 사퇴시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안 해도 될 이야기를 한 의도는 무엇인가.
“대통령이 조국 임명을 강행한 이유를 윤석열 탓으로 돌린 거다. 대통령의 임명권에 도전할 만큼 무소불위 윤석열과 검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소리를 질렀다는 것은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함부로 했듯 문 대통령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2003년 3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는 문재인 정권 검찰개혁 파행의 서막이었다. 당시 나는 검사시보였는데 뇌물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이 청탁 전화를 한 것을 추궁하는 검사의 질문에 대통령이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한 것 말고도 ‘모 언론 기사를 보면 대통령님께서 83학번이라고 하는데 맞느냐?’는 질문으로 고졸 대통령을 무시하고 조롱하던 오만한 검찰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다.
거기에 진보 언론과 구좌파가 노무현을 박해하고 ‘왕따’시켰다는 것, 검찰의 과잉 수사를 막아내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해 노무현이 자살했다는 것 등의 원한과 복수심, 다시는 우리 지도자를 기득권 카르텔의 공격에 무력하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다짐 등이 바로 ‘노무현 트라우마’다. 뿌리 깊은 노무현 트라우마가 검찰개혁의 방향과 목표를 정해 줬을 뿐 아니라 이 정권 파시즘적 프로파간다의 질료가 됐다.”
“짊어진 짐을 함부로 내려놓을 수 없다”는 위선
- 문재인 대통령이 좀 더 일찍 조국을 사퇴시키는 결단을 내렸다면 달라졌을까.“일가 전체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건 상식이다. 이로 인해 문재인 정부 지지율까지 급락하는 상황이라면 조국 스스로 책임지고 사퇴하는 것이 마땅했다. 문 대통령도 판단력이 있다면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그런데 조 장관은 ‘저와 제 가족이 고통스럽다고 하여, 제가 짊어진 짐을 함부로 내려놓을 수도 없다’고 했다. 처음에 나는 이 말을 ‘문 대통령이 사퇴를 허락하지 않아서’로 이해했다.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통령을 향해 ‘조국 후보자를 놓아주십시오. 가족들 곁에서 돌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광철과 대화 도중 조국이 한 번도 사퇴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이 사람은 왜 법무부 장관이 되려고 하나 궁금했다. 장관이 되는 순간 가족도 망가지고 지지자도 망가지고 정권도 망가지고 그토록 공들여 추진해 온 검찰개혁에도 장애가 될 뿐인데 왜? 추론이지만 민정수석 사퇴 즈음 조국은 대권에 대한 야망이 생긴 것 같다.
지금도 ‘조국의 시간’을 든 돌격대가 ‘역시 우리가 옳았고,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은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외친다. 하지만 강경 돌격대의 자기파괴적 성격을 알고 있는 송영길 민주당 대표 같은 이들은 친문 지지자의 역동적 열광이나 열기가 자기파괴적 단계로 가지 않도록 제어하려 한다. 그래서 ‘대깨문이라고 떠드는 사람들, 안일하게 생각하는 순간 문 대통령 못 지킨다’는 발언이 나온 것이다.”
- 문재인 정권을 ‘나치즘’에 비유하고 파시즘을 거론한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있다.
“예상한 바다. 책에서 문재인 정권과 그 지지자의 심리적 결속과 권력 열정을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일은 심한 반발과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썼다. 특히 눌변의 문재인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게 가당키나 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나치 돌격대의 물리적 폭력이 오늘날 ‘대깨문’의 사이버 폭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2020년 이후 한국 사회의 파시즘화에 대해서는 다음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생각이다.”
- 대선 후보로서 윤석열을 지지하나.
“‘무법의 시간’은 윤석열을 지지하려고 쓴 책이 아니다.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의 진실을 공개한 박준영 변호사도 ‘자신이 공론화한 것으로 정치적 수혜를 보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나도 그런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윤석열이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하고 법치를 와해시키는 현 정권에 저항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 책이 어떤 형태로든 재현될 수 있는 현대 대중민주주의의 파시즘화에 대한 이해와 극복 능력을 키우기 위한 논의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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