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호

大虎 윤석열과 스라소니 홍준표의 ‘검사내전’

野 대선 경쟁의 白眉… 이번엔 범이 내려온다!

  • 김대현 시사평론가·대현TV 운영자 kimdaehyun15@gmail.com

    입력2021-07-28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범의 기상 품은 둘 간의 맞대결

    • 文정권이 키운 대선판의 범 尹

    • 노련함과 강공의 감각 갖춘 洪

    • 적극적 스킨십으로 인재 영입 尹

    • ‘인뎁스 보고서’ 정책 행보 洪

    검사 출신으로 범야권 대선 정국에서 맞대결이 유력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과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오른쪽). [동아DB]

    검사 출신으로 범야권 대선 정국에서 맞대결이 유력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과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오른쪽). [동아DB]

    “범의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지난 2013년 4월 초의 일이다. 국립 생물자원관으로 걸려온 다급한 전화 한 통. 당시 원주 섬강변 습지에서 대형 포유동물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30여 개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한상훈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장이 즉시 범의 자취를 쫓는 특별팀을 꾸렸다. 당시 필자는 사라진 한국 표범의 흔적을 쫓는 척추동물 전문가들과 함께 경상남도 합천군, 거창군 일대 산을 헤집고 다닌 적이 있다. 취재 목적의 동행이었지만 개인적 호기심이 더 컸다. 대한민국에 야생 범은 생존해 있을까.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반도에는 500마리 이상의 표범이 서식했다. 산세가 험한 강원도와 경상도 일부 지역 그리고 전남의 도서 지역인 진도에서도 범을 잡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때까지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와 표범을 구분해 부르지 않았다. 체구가 작은 스라소니는 범의 새끼 정도로 여기던 때다.

    스라소니의 경우 ‘시라소니’라는 평안도 방언으로 더 친숙하다. 조선 제일의 주먹으로 불린 평북 신의주 출신 이성순은 주먹 세계에서 시라소니로 불렸다. 놀라운 점프력, 스피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소유자. 김두한과 함께 ‘장군의 아들’이라는 드라마에 등장한 후 ‘독고다이’ 싸움꾼의 대명사가 됐다.

    여의도 소환된 호랑이와 스라소니

    대한민국에서 사라진 ‘호랑이와 스라소니’가 최근 여의도 정치판에 소환됐다. 내년 3월 9일 실시되는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범야권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의 맞대결에 주목한다. 두 사람은 인상과 기질로 볼 때 각각 ‘대호(大虎)’와 ‘스라소니’에 비유되며 범야권 대선 경쟁의 백미(白眉)를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범야권 대선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1위와 2위를 달리는 윤 전 총장과 홍 의원은 모두 검사 출신이다. 소문난 ‘칼잡이’, 특수통 검사의 계보를 잇는 인물들이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당내 1위 주자인 홍 의원과 국민의힘에 올라타려는 윤 전 총장 간 예선전이 내년 대선의 본선에 준하는 빅 매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호’는 윤 전 총장의 별칭이다. 이는 국민의힘 등 야권뿐 아니라, 여권 정치인의 입에도 오르내린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지난 3월 11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윤석열의 절친으로 알려진 석동현 변호사가 대호법무법인 대표다. 대호는 윤(석열)씨의 별칭이고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로 알려진 대호 프로젝트를 연상케 한다.”

    추 전 장관이 언급한 석동현 변호사는 윤 전 총장과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로, 서울 동부지검장을 지냈다. 그는 지난해 4·15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소속으로 부산 해운대갑에 출마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하태경 의원에게 고배를 마셨다.

    석 변호사가 윤 전 총장과 가까운 인사인 것은 맞다. 그가 정권교체를 위해 윤 전 총장을 대선주자로 만들고자 하는 생각을 품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을 위해 ‘대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걸 실행에 옮겼는지(혹은 실행 중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대호 프로젝트는 윤 전 총장에 관한 의혹이 담긴 여러 건의 X파일 중 하나에도 등장한다. 필자는 지난 3월 말 석 변호사를 사석에서 만났다. 당시 그는 “대호법무법인을 그만두고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어떤 식으로든 윤 전 총장을 돕겠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대호로 불리는 건 비단 석 변호사의 존재 때문만은 아니다. 검사 윤석열이 걸어온 길, 그가 정치인으로 가야 할 길은 ‘기호지세(騎虎之勢)’의 형국이다. 그는 지난 2013년 4월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에 임명된 뒤 상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압수수색과 직원 체포 등을 밀어붙였다.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 증인으로 국회에 출석한 그는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면서 정권과 국회의 기세에 눌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정권의 위세가 등등하던 시절인데도 말이다. 지난 2017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할 때도 그랬다.

    검증대 오른 윤석열의 권력의지

    3월 4일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왼쪽). 2017년 5월 8일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대구 유세에서 지지자들의 손을 잡는 모습. [동아DB]

    3월 4일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왼쪽). 2017년 5월 8일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대구 유세에서 지지자들의 손을 잡는 모습. [동아DB]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승승장구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 5기수 선배를 제치고 그를 검찰총장에 임명하는 파격을 단행했다. 정작 윤 전 총장은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지 않았다.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고,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에 대해서도 원칙대로 수사했다. 올 2월 신현수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이 탈원전 수사 대상 중 한 명인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구속수사를 말렸지만 윤 전 총장은 이를 뿌리쳤다.

    추미애 전 장관은 윤 전 총장을 상대로 잇따라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 한편 윤 전 총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법원이 제동을 걸면서 징계가 불발됐지만 문재인 정권은 ‘윤석열 총장 체제’를 계속 흔들었다. 그럴수록 윤 전 총장에게 환호하는 국민이 늘어났다. 즉 윤석열을 대선주자로 키운 건 ‘대호 프로젝트’의 석 변호사가 아니라 조국·추미애 전 장관을 임명했던 현 정권이다. 그러면서 윤 전 총장은 부당한 권력의 지시에 맞서는 이미지를 확보해 대선판의 범으로 성장했다.

    최근 윤 전 총장은 잇단 악재에 직면해 있다. 검증 과정에서 불거진 X파일의 상당 부분은 부인과 장모를 향했다. 7월 2일 윤 전 총장의 장모 최모 씨는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장모와 부인 김건희 씨는 이 밖에도 여러 사건에 연루돼 수사를 받고 있다. 윤 전 총장이 영입한 이동훈 전 대변인은 임명된 지 열흘 만에 ‘일신상의 이유’로 물러났다. 이 전 대변인은 조선일보 논설위원 시절 수산업자 김모 씨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위기에 직면한 윤 전 총장은 “법 적용에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정면 돌파 의지를 드러냈다. 또 범여권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견제구를 던지며 시선을 분산시켰다. 이 지사가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 한반도에 주둔한 미군을 ‘점령군’으로 규정한 데 대해 윤 전 총장은 “셀프 역사왜곡,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서 “이 지사의 언행은 미래를 갉아먹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캠프’의 좌장 역할을 맡고 있는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은 인재를 구하는 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윤석열 캠프’에 합류한 국민의힘 소속 인사는 “얼마 전 이석준 전 실장이 직접 만나자고 제안했을 때 솔직히 망설였다. 그런데 직접 만나본 결과 윤 전 총장의 적극적 스킨십을 거부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범처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돌파력을 보여주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윤 전 총장이 넘어야 할 가장 큰 난관은 범야권 내부에 있다. 특히 2017년 대선에 출마한 홍준표 의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대권주자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경쟁 상대로 손꼽힌다.

    홍 의원은 당 안팎에서 “독불장군 같다”는 혹평을 듣는다. 하지만 과거 대여 저격수로서의 활약상은 우파 진영에 깊이 각인돼 있다. 홍 의원의 노련함과 탁월한 감각은 자타가 인정하는 장점이다. 여론조사상 5~7%의 고정 지지층이 유지되는 것도 이런 배경 덕이다.

    24.03%가 증명한 저력

    검사의 기개가 남아서일까. 그는 옳다고 판단하면 큰 세력과 맞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홍 의원이 지난 6월 27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보면 스라소니를 연상케 하고도 남는다.

    “나는 피아를 막론하고 잘못된 것을 보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없었다. 한순간 비난을 받더라도 그 비난이 두려워 움츠리지 않는다. 바른 길이라 판단되면 그냥 직진하는 그것이 오늘의 홍준표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홍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막말 프레임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나서 24.03%를 득표해 2위에 올랐다. 지금도 범야권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윤 전 총장에 이어 2위다. 윤 전 총장을 향해 비판적 발언을 하는 당내 유일한 인사이기도 하다. 홍 의원은 지난 6월 10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윤석열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실장, 수석 등 모든 사람에게 무자비하게 적용했던 게 직권남용죄다. 직권남용죄로 일어선 윤 전 총장이 직권남용죄로 조사를 받는다니 혐의 유무를 떠나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와 관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지난 6월 초 윤 전 총장에 대해 옵티머스 사태와 한명숙 수사팀의 모해위증 교사 의혹을 무마했다는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홍 의원은 6월 30일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을 놓고 “흠집이 난 사람이 대선 본선에 들어가는 순간 한 달 내로 폭락한다”고 했다. 윤 전 총장 장모의 구속을 두고는 “최순실 조사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 경제공동체 얘기한 윤 전 총장이 장모 사건도 해명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물론 현재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는 쾌 크다. 7월 5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교통방송(TBS) 의뢰로 실시한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 결과 범야권에서 윤 전 총장은 30.2%로 1위, 홍 의원은 13.8%로 2위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홈페이지 참조).

    막 오른 ‘지지율 게임’

    관건은 향후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가 언제, 얼마나 좁혀질지에 달려 있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문제를 두고 고심을 거듭할수록 홍 의원과의 지지율 격차는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정치권 전략가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지난 4·7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의 경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율에서 앞섰으나 단일화(3월 23일)에서 오 후보에게 역전을 허용한 바 있다.

    홍 의원은 윤 전 총장이 대권 도전을 선언한 6월 29일, 국민보고대회를 강행하며 ‘맞불’을 놓기도 했다. 국민의힘에 복당한 지 5일 만에 자신이 6개월간 공들인 시민 8200여 명과의 대화록, 이른바 ‘인뎁스 보고서’를 공개한 것이다. 언론의 주목도는 윤 전 총장이 압도했으나 홍 의원의 정책 행보를 놓고도 호평이 이어졌다. 경쟁자에 대한 정확한 타격법과 더불어 정책이라는 신무기를 장착한 셈이다.

    여권에서도 홍 의원의 대권 행보를 예의 주시하는 모양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7월 4일 페이스북에 “윤석열은 홍준표를 당할 수 없다. 입당하는 순간 속절없이 당할 것”이라고 썼다.

    ‘대호’라는 별칭을 가진 윤 전 총장과 여의도의 스라소니로 불리는 홍 의원. 인상과 이미지 면에서 형성된 비유라곤 하지만 범의 기상을 품은 ‘난세의 영웅’을 기대하는 우파 진영의 바람도 담겨 있을 듯하다.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 여부를 떠나 두 사람의 경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누가 승자가 되건, 어쨌든 이번에는 범이 내려온다.

    #홍준표 #윤석열 #대선 #국민의힘 #신동아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