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500m, 20만㎡ 숲이 선물하는 진정한 휴식
도시 소음, 불빛에서 자유로운 청정 쉼터
한겨울 별 보기 명소… 명상·목공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 제공
[+영상] 가을 모습 feat. 하이힐링원
칠흑 같은 어둠 사이로 무수한 별이 쏟아지는 하이힐링원의 밤 풍경. 11~2월은 한반도에서 별을 관측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하이힐링원]
늦가을이 깊어질 무렵이면 자연스레 윤동주 시 ‘별 헤는 밤’이 떠오른다. 11월부터 2월까지, 밤이 길고 하늘이 맑은 이 계절은 한반도에서 별을 보기 가장 좋은 때여서다. 가수 적재도 노래하지 않았나. “찬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면 밤하늘이 반짝이더라”고. 오직 이때만 누릴 수 있는 청정한 바람과 찬란한 별 구경의 기쁨을 놓치기 아쉽다면, 겨울이 가기 전 강원도 영월로 떠나보자. 영월군 상동읍 단풍산 자락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함께 온전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하이힐링원’이 있다.
‘높은’ 곳에서 맛보는 ‘치유’의 기쁨
단풍이 붉게 물든 하이힐링원 전경. 하이힐링원은 해발 500m, 20만㎡ 숲속에 조성된 치유 시설이다. [홍태식 기자]
“경치도 멋지고 시설도 깨끗해요. 프로그램도 좋아서 아이들이 휴대폰 없이 하루 종일 잘 놀았어요~”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하이힐링원을 입력하면 이런 방문 후기가 줄줄이 떠오른다. ‘마음의 안정’ ‘멋진 경치’ ‘휴대폰 없는 휴식’…. 리뷰에 등장하는 키워드가 하나같이 마음을 움직인다.
하이힐링원은 이름 그대로 ‘높은(high)’ 곳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healing)’하는 공간이다. 강원랜드가 출연해 2019년 11월 문을 열었으니 운영한 지 이제 꼭 4년이 됐다. 그 기간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건 개관과 동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상을 덮쳐서다. 여기에 또 한 가지, 결정적 이유가 더 있다. 하이힐링원이 지극히 ‘가성비 낮게’ 운영된다는 점이다.
하이힐링원은 해발 500m, 20만㎡ 규모 숲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위로 말하자면 넓이가 약 6만 평이다. 그런데 동시 숙박 가능 인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하다. 날마다 ‘위아래 양옆’을 울리는 생활소음에 지친 도시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상상하기 힘든 인구밀도다.
심지어 이 공간 전부를 ‘소비자’에게 내주지도 않는다. 하이힐링원을 운영하는 비영리 재단법인 산림힐링재단의 제1 목적은 ‘사회 공헌’이다. 해마다 전국 각지 아동·청소년 시설과 관공서 등에서 ‘힐링’이 필요한 이를 추천받아 하이힐링원에서의 휴식을 선물한다. 최근 4년간 이곳에 무료로 묵은 취약계층 가족이 1만 명이 넘는다. 이와 별개로 교사 등을 대상으로 한 연수 프로그램도 수시로 운영한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대중에게 하이힐링원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면이 있다.
다행스러운 건 이용이 어려울 뿐,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사실. 전화와 e메일(booking@foresthealing.or.kr)로 문의하면 공간이 허락하는 한 일반인 예약을 받는다. 2024년부터는 일반인 전용 예약 사이트도 오픈할 예정이다.
도시 소음, 불빛 공해에서 자유로운 청정 쉼터
넓은 통창 너머로 영월의 청정 자연이 한눈에 들어오는 하이힐링원 산수원. 이곳에서 명상, 요가 등의 치유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홍태식 기자]
소나무에 걸어놓은 해먹 위에서 ‘하늘멍’을 할 수 있는 명상숲(왼쪽). 나무판에 인두로 그림을 그리는 우드버닝 체험 모습. [하이힐링원]
마침내 하이힐링원에 들어섰을 때 처음 느껴진 건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어우러지며 잔잔히 귓전을 울리는 음악 소리였다. 스피커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저 울창한 숲 너머에서 아득한 선율이 퍼져 나오는 게 들렸을 뿐이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피어났다.
하이힐링원은 ‘힐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오감을 이용한 치유에 집중한다. 충북 제천에서부터 시선을 붙든 울창한 나무들은 장시간 인공조명에 시달려온 ‘시각’의 긴장을 풀어준다. 하이힐링원 음악치료사가 계절, 날씨, 시간에 맞춰 섬세하게 골라 트는 음악은 공간 전체를 은은하게 채우며 ‘청각’에 휴식을 제공한다.
식사 시간이 되면 근처 마을에서 키운 신선한 재료가 상에 오른다. 하이힐링원에서 직접 담근 장맛도 일품이다. ‘동이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하이힐링원 내 장독정원에 가면 내가 먹은 된장이 따뜻한 볕 아래서 푸근히 익어가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시각과 미각, 후각이 동시에 힐링되는 순간이다.
유도현 하이힐링원 프로그램 운영팀장은 “이곳에 오는 사람은 누구나 평화로움과 따뜻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하이힐링원은 복잡한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자 정성껏 마련한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인터넷, 스마트폰 등 과도한 미디어 노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생활 습관 개선에 최적화돼 있다고 한다.
하이힐링원이 이용객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새 사이를 거닐다 보면 어디선가 “굳이 스마트폰을 켜고 복잡다단한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 필요가 있나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도시의 자극에 익숙한 사람들이 무료함을 느끼지 않도록 다양한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하이힐링원 곳곳에 있는 약도 한 장만 손에 들면 어디든 찾아가기 어렵지 않다. 날씨가 좋은 날 한낮이라면 입구에서 이어지는 자작나무 산책로와 가시나무 산책로를 차례로 지나 소나무가 우거진 ‘명상숲’까지 걸어가 보자. 소나무에 해먹을 걸고 하늘을 바라보며 피톤치드의 청량함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매봉산과 단풍산 산세를 형상화해 지은 ‘자작원’에서는 미술치유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특히 인기 있는 건 ‘우드 버닝’. 두툼한 나무판자 위에 가느다란 인두로 그림 또는 글귀를 새기는 체험이다. 나무가 타들어갈 때 나는 그윽한 향기가 복잡한 마음을 절로 가라앉힌다. 나무를 만지고 인두를 움직이는 단순한 행동에 집중하다 보면 잡념도 자연스레 사라진다.
‘자작원’에서 북쪽 섬지연못 물레방아를 지나면 만나는 ‘산수원’에서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영월의 대자연을 바라보며 명상과 요가, 공예 등을 즐길 수 있다.
어린이·청소년에 특화된 프로그램도 있다. 하이힐링원 내 강의실에서 인터넷·스마트폰 중독의 문제점과 예방법 등에 대해 배운 뒤 관련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된 태블릿PC를 들고 하이힐링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미션을 수행하는 ‘도전! 중독타파’다. 이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선물도 준다.
별 하나에 평화, 별 하나에 안정
평화로운 숲속 쉼터에서 쉬며 즐기다 이윽고 어스름과 마주한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 영월의 매력을 즐길 시간이다. 도시의 소음과 불빛 공해에서 자유로운 곳, 하이힐링원의 별 보기 명소는 ‘별빛마루’다. ‘본관’과 ‘단풍원’ 사이에 있는 나무 덱에 앉아 끝없이 펼쳐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자.북반구의 겨울을 대표하는 별자리는 오리온자리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특히 선명하게 빛나는 붉은 별 ‘베텔게우스’와 푸른 별 ‘리겔’을 찾는다면 성공이다. 대각선으로 놓인 두 별 사이에 작은 별 세 개가 나란히 있는 게 보일 것이다.
오리온자리 남동쪽에도 유난히 밝은 별이 하나 있다. 큰개자리 시리우스다. 시리우스, 베텔게우스와 삼각형을 이루는 위치에는 작은개자리 프로키온이 있는데, 이 세 별을 묶어 ‘겨울의 대삼각형’이라고 한다. 이 별들을 하나하나 짚어내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 깊은 밤, 스마트폰 켜는 것조차 잊은 채 오로지 별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본 현대인은 거의 없을 테니 말이다.
하이힐링원은 공식 별 관측 프로그램을 할 때 관내 조명을 모두 끈다. 그 순간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 할 거대한 어둠이 산자락에 내려앉는다. 바로 옆 사람도 보이지 않는 절대 암흑 속에서 오직 하늘의 무수한 별만 마주하는 체험, 그때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대자연의 품에 오롯이 안긴 듯한 평화로움과 안정감이다. 한 이용객은 하이힐링원 체류 경험을 ‘감동’ 두 글자로 표현했다.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 별을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별빛마루에 도착한 순간 갑자기 구름이 열리며 별이 쏟아졌다. 감동.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올 한 해 쏟아지는 스트레스에 지쳤다면, 스스로에게 실망했다면, 하루하루 일상이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하늘과 숲과 별이 있는 하이힐링원으로 떠나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