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 국익이라면 상식, 논리도 포기”
- “중화사상은 가장 극심한 국수주의”
- “소수의견 냈다간 사회적 매장”
독일과 프랑스는 지금 서로 협력하면서 유럽연합을 주도하지만 마음속엔 상대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다. 언어만 봐도 그렇다. ‘프란췌지쉐 피쉬’라는 독일어는 ‘바퀴벌레’라는 의미로 프랑스인을 비하한다. 프랑스 사람들도 독일인을 ‘돼지’라 한다.
‘중화민족’ 입에 달고 산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유교문화의 전통을 어느 정도 공유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은 역사적 경험을 함께한다. 짧은 기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라이프스타일도 닮아가고 있으며, 상대 국가를 자주 찾는다. 서양인이 보기엔 생김새도 비슷하다.
그러나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엔 다른 점도 많다. 한국인은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린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다양한 찬반 의견을 웬만큼 용인한다. 특히 대통령과 정부를 마음껏 비판한다. 이념적으로 진보와 보수로 심하게 분열돼 있다. 국가와 민족을 중시하지만, 그렇다고 국수주의로 흐르는 것에 마냥 동조하진 않는다. 보편주의, 합리주의, 법치, 인권, 평등, 반제국주의(1국 1주권), 관용의 정신을 어느 정도 지향한다. ‘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평화주의를 받아들인다.
반면 중국에선 관변 언론매체와 사회주의 1당 독재가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대체한다. 다양한 여론이 용인되지 않는다. 시진핑 주석과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난은 실세계에서든 온라인에서든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 대신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를 분열시키지 않을 행정적 통제력을 중시한다. 중화사상은 세계에서 가장 심한 국수주의로 꼽힌다. 중국인은 집단적으로 단일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1국 1주권과는 거리가 있는 신흥대국론을 곧잘 주창하며 사드나 남중국해 문제에선 호전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한국인과 중국인은 정체성에서 이른바 ‘케미(화학적 궁합)’가 잘 맞다고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지금 중국에선 내셔널리즘이 과도하게 분출되는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교과서와 역사서가 ‘중화민족’ 운운한다. 한국도 단군이나 한(韓)민족을 언급하지만, 빈도에서 중국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몇몇 한국인이 남북통일을 이야기하지만, 중국인들은 아예 (타이완과의) 통일을 입에 달고 산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질리도록 ‘하나의 중국’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사드 참견 말자’ 했다간…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지난 7월 중국과 필리핀이 벌이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판결에서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중국 전역에선 문자 그대로 ‘극단적’ 내셔널리즘이 들끓고 있다.필리핀을 지원하는 미국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치킨 체인 KFC의 중국 매장은 횡액을 당했다. 분노한 중국인들이 전국 각지의 KFC 매장 앞에서 “KFC 패스트푸드를 먹으면 조상 볼 면목이 없을 것”이라는 요지의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일부는 매장 안으로 진입해 손님들을 둘러싸고 야유를 퍼부었다.
사이버 세계에서는 더 심하다. 미국 제품 불매, 필리핀 등 동남아 여행 보이콧 같은 국수주의 주장이 판치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을 부수는 동영상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이런 장면은 전혀 낯설지 않다. 2013년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열도) 분쟁이 격화됐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전국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성난 군중이 도요타 자동차를 부수기도 했다.
중국인의 이런 극단적 애국주의는 한국인의 정서에는 맞지 않다. 적지 않은 한국인은 “중국인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상식과 논리도 포기하는 것 같다. 막무가내로 나온다”고 말한다.
사드 논란에 대한 시각에도 한중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사드 배치 찬반을 비롯한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다. 한국의 일부 전문가는 사드 배치 반대를 주장하는 글을 중국 언론에 기고했다.
중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국 매체들은 사드 배치를 철회하지 않으면 한국을 가만두지 않을 것처럼 협박성 보도를 일삼았다. 오직 ‘사드 반대’ 논조밖에 없다. 중국인이 중국 언론에 ‘사드에 참견하지 말자’는 글을 썼다가는 당장 반역자로 매도될 분위기다. 사드에 관한 한 언론뿐만 아니라 지식인도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한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교포 김모(47) 씨는 “속된 말로 ‘꼴통’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혀를 찼다.
‘만고의 역적’
물론 중국에서도 현안에 대해 다수 의견과 상반된 의견을 내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곧장 내셔널리즘의 거센 파도에 파묻힌다. 욕 먹고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것은 기본이다. 재수 없으면 감옥행이다. 심지어 간첩이라는 끔찍한 주홍글씨를 안은 채 비극적 최후를 맞기도 한다.사례는 무수히 많다. 주(駐)한국 대사를 지낸 L씨,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수행했다는 주북한대사관의 전직 참사관 Z씨, 신화통신 고위 간부였던 Y씨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중국 주류의 일원이었으나 내셔널리즘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가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다. Z씨는 고위 간부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듣던 인재였으나 간첩 협의를 쓴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에 대해 중국인 변호사 반모 씨는 이렇게 말한다.
“중국 사회는 언로가 막혀 있다.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지 못한다. 중국 관련 국제 현안이 많이 터지는 요즘 들어서는 더 그렇다. 정부의 기본 입장이나 대중의 정서에 반하는 발언을 하면 ‘만고의 역적’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인들 사이에선 극단적 개인주의가 횡행한다. 배금주의, 물질주의, 출세지향주의가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다.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도 별로 없다. 돈을 벌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 보니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인도 개인주의가 강하지만, 그래도 언론이 사회지도층의 윤리적 타락상을 적극 파헤친다. 대중이 이를 용서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중국보다 오히려 더 사회주의 이념에 충실한 편인지 모른다. 오늘의 중국을 있게 만든 주역인 마오쩌둥도 “중국인들은 ‘나’만 알지 ‘우리’를 모른다. 모래알이 그럴까 싶다”고 토로한 바 있다.
중앙 정부는 가끔 국민 계도용 ‘젠이융웨이(見義勇爲)’라는 말을 거론한다. ‘논어’에 나오는 ‘견위수명(見危授命)’과 비슷한 의미로 ‘의로운 행동을 필요로 하는 위기상황을 보면 용감하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한국엔 이렇게 행동하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다. 하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남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흉기에 찔려도 잘 도와주지 않는다.
“원수 안 갚으면 사내 아니다”
중국인은 특히 인권에 대한 인식에서 한국인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각종 사고로 비명횡사하는 중국인의 ‘목숨값’은 저세상으로 가기 억울할 만큼 형편없다. 중국의 사정기관에서 구타는 기본이고 고문은 옵션이다. 중국인은 경찰서나 검찰청에 가면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겁을 잔뜩 집어먹고 눈물부터 흘린다는 말이 있다. 다소 과장됐지만 현실과 괴리된 얘기가 아니다.재판은 2심뿐이며 사형수의 장기(臟器)는 당국의 묵인 아래 적출돼 유통된다. ‘인권’은 중국에서 입에 올리기 민망한 단어다. 베이징 사회과학원 정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한오종 씨는 “중국은 왕조에서 국공내전을 거쳐 사회주의로 넘어왔다. 인권 보호를 부각할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또한 중국엔 잔혹한 형벌 전통이 있다. 명나라 환관 위충현은 무려 1만 번 가까이 칼에 베이는 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민주주의의 과잉을 걱정해야 할 처지인데, 중국은 정당이라곤 공산당과 위성 정당 8개가 있을 뿐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라는 이름의 의회가 존재하지만 3000명 가까운 대표들은 사실상 간접선거로 선출되며 대부분이 공산당원이다. 시진핑 주석 1인으로의 권력집중이 더 강화됐으며, 요즘은 과거엔 관행적으로 결정돼온 주석 임기를 10년에서 그 배로 늘릴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거의 100%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언론의 수준 역시 이 상황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신문, 잡지, 방송, 인터넷 매체는 공산당의 입장에 반하는 논조를 펴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백해무익한 자해행위다. 사드 배치 논란이 현안으로 떠오른 요즘 ‘런민일보’나 자매지인 ‘환추시보’가 조폭 같은 논조를 펴는 것도 다 이런 사정 때문이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으면 서로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양측은 동북공정이나 세계문화유산 신청을 놓고 부딪쳤다. 이번 사드 논란은 훨씬 심각한 사안이다.
한국에도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이 있지만, 중국인은 복수심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한 번 척을 지면 복수의 화신처럼 두고두고 괴롭힌다. ‘30년이 지나도 원수를 갚지 않으면 사나이 대장부가 아니다’라는 속담이 중국의 이런 문화를 말해준다.
감정적 자극 피해야
예상대로 중국은 군사적 행동까지 언급하고 있다.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해선 안 된다. 중국은 최고지도자가 결심하면 의사결정이 빠르다. 사드의 X-밴드레이더가 자국의 군사행동을 손금 들여다보듯 한다는 확신이 서면 언제든 결정을 내릴지 모른다. 군사행동에 나서지 않더라도 한국을 압박할 여러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다행스러운 것은 중국의 젊은 세대는 한국 문화와 잘 교감한다는 점이다. 몇몇 중국인은 “한족 정권이 한반도 정권을 별로 괴롭히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고구려를 침입한 당나라는 돌궐족이, 고려를 침략한 원나라는 몽골족이,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나라였고, 한반도와 우호관계를 맺어온 송나라나 명나라는 한족이 세운 나라였다는 것이다.
사드 문제가 원활하게 풀리려면 한중 양측이 서로를 감정적으로 자극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사이버 세계에서 중국인이 한국인을 ‘가오리방쯔(高麗棒子, 몽둥이로 때려야 할 고려인)’로, 한국인이 중국인을 ‘짱깨’로 비하해선 안 된다. 이런 인종차별적 호칭부터 쓰지 말아야 한다. 한셴둥 중국정법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양측이 강(强) 대 강으로 충돌하면 곤란하다. 상대의 자존심을 긁는 일도 피해야 한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케미가 맞지 않다’는 점이 이번 사드 논란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케미가 맞지 않는 이웃과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 사드 논란 전까지 양측은 실제로 잘 지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