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가 바뀌면 전문가들의 부동산시장 전망이 경제뉴스 머리기사를 장식한다. 그런데 최근 4~5년 동안은 이들의 예상이 빗나간 적이 많았다. 지난해만 해도 2005년 8·31 대책의 영향으로 다수가 집값 5~10% 하락을 점쳤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만큼 실수요자의 ‘현장감’과 괴리가 있었던 셈. 그렇다면 진정한 전문가일지도 모를 ‘동네 아줌마’들의 생각은 어떨까.
요즘은 혼자 있으면 인터넷의 각종 부동산 관련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재테크 공부에 열을 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고, 몇 사람이든 모이기만 하면 대화의 주제가 부동산으로 치닫는다.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다’는 말에 딴죽을 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부동산 광풍 때문에 헌법 제1조 1항이 바뀌어야 할 판이다.
지난해 추석 직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전역의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자 정부가 공급확대와 분양가 인하를 골자로 한 11·15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잠시 부동산 가격이 주춤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집값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요즘은 집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일 것이다. 어느 때보다 부동산의 가격 향방에 많은 관심이 쏠려 있다.
2007년 부동산시장은 어떻게 될까. 공인된 부동산 전문가는 아니지만 부동산 투자에 관한 한 오랫동안 ‘현장’에서 몸소 뛴 주부들에게 새해 부동산시장 전망에 대해 물었다. 한영숙(가명·41·결혼 17년차), 김진희(가명·40·결혼 15년차), 최미화(가명·40·결혼 15년차)씨. 전업주부인 이들은 좌담회를 시작할 때만 해도 기사에 실명이 실리는 것을 허락했고 사진촬영까지 마쳤으나 “행여 우리에게 손가락질할 사람이 있을까봐 두렵다”며 가명으로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부동산 공화국’에 사는 주부들
세 사람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주부이지만 부동산에 관한 한 남다른 관심을 갖고 살아왔다. ‘다른 사람이 바람을 피우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우스갯소리처럼 부동산 투자 또한 ‘내가 하면 투자요, 남이 하면 투기’라 할 만큼 투자와 투기의 경계선이 불분명한 것도 사실이다.
방 한 칸짜리 전셋집(보증금 500만원)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던 최미화씨는 결혼 후 인천에서만 살다가 지난 9월 시쳇말로 ‘인(in) 서울’에 성공했다. 인천시 부평구에 아파트 두 채(49, 38평형)를 갖고 있던 최씨는 지난해 8월 이 집들을 팔고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H아파트 39평형을 7억5000만원에 매입했다. 그의 총 자산은 아파트와 오피스텔, 땅 등 부동산(9억5000여만원)과 연금, 보험 등을 포함해 총 10억여 원(부동산 매입으로 인한 대출금 2억원을 제한 순 자산은 8억여 원). 최씨는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전셋집을 전전했을 것”이라며 “현 정부는 부동산을 통해 자산을 불린 나 같은 사람을 투기꾼 또는 복부인으로 취급하지만 부동산은 훌륭한 재테크 수단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올 3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 54평형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있는 한영숙씨는 요즘 주변사람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느라 바쁘다. 2000년 3억5000만원을 주고 산 오래된 아파트가 재건축을 통해 새 아파트로 거듭나면서 6년여 만에 호가 18억원으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대출로 일군 부동산 자산
반면 김진희씨는 “2006년에는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정부의 확신에 찬 말을 믿고 서울 서초구 잠원동 35평형 아파트(‘로열동’의 ‘로열층’)를 2005년 10월 6억7000만원에 팔았다가 된통 발등을 찍혔다. 지난해 12월8일 현재 김씨가 판 아파트의 국민은행 시세 상한가는 8억5000만원. 아파트를 처분한 지 1년2개월여 만에 1억7000만원이 뛴 것이다.
좌담회에 참석한 주부들은 그동안 ‘제값’을 못 받았던 단독·연립주택들도 재개발 호재 때문에 가격상승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한영숙 : 이 정부가 서울과 수도권에 집 있는 사람에게 돈을 ‘확실히’ 벌게 해 줬어요. 물론 깔고 앉아 있는 돈이긴 하지만요. 노무현 대통령이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 하지 않았거나 정부가 각종 부동산 대책을 내놓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지는 않았을 겁니다.
김진희 : 부모 도움 없이 16평 아파트 전셋집에서 시작해 그동안 나름대로 부동산 투자를 잘해왔다고 자부했는데, 정부를 믿었다가 ‘단칼’에 무너졌잖아요.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 잡겠다 하니까 집을 팔았어요. 2006년에 집값이 떨어진다고 하도 장담하기에 집 판 돈을 잠시 손에 쥔 채 전세로 옮겼죠. 떨어지면 40평형대 아파트로 옮겨보려고요. 그런데 떨어지기는커녕 수직상승을 했잖아요.
최 : 정부가 지난해 부동산 대책(11·15)을 발표하면서 ‘지금 집값이 꼭짓점’이라며 떨어질 것이라고 바람을 잡는데, 절대 안 믿어요. 저는 결혼할 때 적자로 시작했어요. 전세금 500만원조차 대출을 받았으니까요.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면서 결혼 3년여 만에 인천에 24평형 아파트를 6000여만원에 분양받았어요. 이걸 8000만원에 팔고 1997년에 분양가 1억3400만원짜리 38평형 아파트를 프리미엄 500만원을 얹어 주고 샀지요.
최씨의 부동산 투자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2년 49평형 아파트를 3억3000만원에 매수할 당시 그의 수중에는 돈이 없었다. 최씨의 투자방법은 간단했다. 38평형 아파트의 전세보증금으로 받은 1억5000만원에 49평형 아파트를 사면서 대출받은 2억원을 보탰다. 그는 취득세와 등록세 등 등기할 때 납부하는 세금까지 대출을 받아 해결했다.
최씨는 집값이 오르면 또다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더 받았고, 그 돈으로 충남 서산에 땅(농지 840평)과 인천시 계양구의 오피스텔(16평형) 구입비로 활용했다. 최씨는 대출금의 이자만 낼 자신이 있으면 ‘일’을 저질렀다. 최씨가 자신의 부동산 투자 노하우에 대해 설명하자 한씨와 김씨가 ‘우~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정부와 남편을 믿지 말라
한 : 대단하네요, 종자돈도 없이 시작했는데. 저는 결혼할 때 경기도 안양에서 사업을 하던 남편 소유의 32평형 아파트가 있었던 터라 투자하기가 다른 사람보다는 쉬웠죠. 그 집을 팔아서 서울 서초구에 아파트(32평형)를 샀고 서초보다는 아무래도 강남 쪽이 낫겠다는 판단이 서자 대출을 받아서 강남구 도곡동에 재건축을 앞둔 허름한 아파트를 샀어요. 한때 1가구 2주택으로 있다가 도곡동 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가 추가분담금을 내야 돼서 집 한 채를 팔았어요. 지금은 전세를 살고 있고요. 저는 부동산 전문 ‘꾼’이라기보다는 적절하게 투자한 편에 속하죠.
김 : 강남행은 탁월한 선택이었네요.
한 : 집값이 교육여건을 중심으로 오를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대치동과 가까운 도곡동을 고른 거죠. 집값은요, 역세권에다 학군과 학원가 형성이 잘 되어 있고 주변 환경이 뛰어나면 다른 지역 집값이 하락한다 해도 잘 안 떨어져요. 남편이 사업해서 번 돈보다 부동산 투자로 남긴 돈이 훨씬 많죠. 사업을 해서 몇억원씩 남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김 : 저는 최미화씨처럼 공격적인 투자자는 아니었어요. 처음 집을 살 때 남편의 사업이 잘되어서 빚 없이 마련할 수 있었어요. 정부를 믿었다가 큰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최씨와 같은 생각으로 부동산 투자를 했던 사람입니다. 남편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수십억원의 자산가가 돼 있을 겁니다. 제 눈에는 어느 부동산을 사야 돈이 될지 뻔히 보이는데, 남편이 반대해서 투자하지 못한 물건이 몇 개 있거든요.
최 : 부동산 투자에서 최대의 적은 남편이죠(웃음). 그런데 평범한 회사원인 제 남편은 제가 부동산 사고파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더라고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공급확대? 6~7년 뒤 일인데…
한 : 지금 부동산이 거품이다, 꼭짓점이다 하면서 말이 많은데요. 우선 집값이 안정되려면 공급이 충분해야 돼요. 강남 집값이 달리 올랐나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니까 생기는 현상이잖아요. 누구나 아는 상식이죠. 몇 년 전부터 강남 집값은 꼭지라고들 했어요. 그런데 떨어지기는커녕 하늘과 ‘친구’라도 할 태세로 오르고 있잖아요. 정부가 부동산시장에 개입하지 말아야 했어요.
최 : 정부가 뒤늦게 난리법석이죠. 이제야 공급을 늘리고 신도시 분양가를 낮추겠다고 국민에게 주입식 교육을 시키고 있잖아요. 그 분양가가 적용되는 시점이 4~5년 후예요. 신도시 입주 때까지는 6~7년이 남았고요. 그것도 중대형이 아닌 국민주택 규모 이하의 아파트에만 적용한다잖아요. 그런데 정작 정권이 바뀐 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발뺌이라도 하면 그 말 믿고 있던 국민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겠지요.
김 : 강남 집값은 재건축이 허용되면 또다시 태풍이 몰아칠 겁니다. 강남이 오르면 분당, 일산 등 신도시와 수도권에 영향을 미칠테고요. 언제까지나 정부가 강남의 재건축을 틀어막을 수는 없잖아요.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가 낡고 허름해서 한때는 ‘똥마아파트’로 불렸어요. 재건축 가능성 때문에 지금은 ‘금(金)마아파트’가 됐지만. 개포동 주공아파트와 대치동의 은마, 청실아파트가 재건축되면 강남 집값이 요동을 치겠지요. 잠실주공아파트 단지에 재건축 바람이 불 때 강남과 수도권의 집값이 급등한 것처럼요.
한 : 정부나 언론은 서울과 수도권의 6억원대 30평형 아파트를 사려면 연봉 3000만원의 직장인이 20년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사례를 드는데, 실제 자기 돈 100% 갖고 집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나요. 과거에 집을 투자의 개념으로 본 사람들은 ‘복부인’말고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어요. 일반인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좁은 집에서 좀더 넓은 집으로, 좀더 좋은 교육 환경을 따라서 집을 옮기는 정도였죠.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집값이 뛰면서 집을 투자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복부인 흉내를 내며 재미를 본 사람이 늘어나면서 1가구 다주택자가 대거 양산된 거고요.
이 좌담회를 준비하면서, 결혼할 때 집 한 채로 출발해 45년여 만에 1000억원대의 부동산을 소유한 강남의 소문난 큰손 K씨(65)와 남편의 사업실패 후 전세금 3000만원으로 시작해서 10여 년 만에 100억원대의 자산을 일군 송파의 P씨(59)에게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이들은 부동산 투자자들 사이에서 ‘고수 중의 고수’로 소문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나는 ‘투자’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투자한 방법을 들려주면 영락없이 ‘복부인’이라고 하거나 사회악으로 지목될 게 뻔하다”며 참석을 거부했다.
‘세금 내고도 남는 물건’
최미화씨의 부동산 투자기법은 K씨가 부동산 투자에 입문했을 무렵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부동산 투자로 ‘돈맛’을 본 K씨는 세금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로 급매물로 나온 아파트를 사들였고, 이를 되파는 과정을 통해 목돈을 손에 쥐었다. 몇 년 전 K씨는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았다. 강남과 서초, 용산 등에 소유한 아파트 11채를 사고파는 과정을 국세청이 예의 주시한 것. 그러나 K씨는 국세청의 깐깐한 세무조사에 당당하게 맞섰다. 양도소득세 등을 정당하게 납부했기 때문이다.
K씨는 “진짜 투자할 줄 아는 사람은 세금을 다 내고도 남는 물건을 찾는다”고 주장했다. 아파트에서 번 돈으로 강남과 구로 등지의 대형 상가건물과 수도권의 땅을 사들인 K씨는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요란을 떨어도 눈도 깜짝 안 한다. K씨는 “단기 급등한데다 효율성과 환금성이 떨어지는 땅은 지역에 따라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크지만, 서울과 수도권의 요지에 있는 아파트는 값이 오를 여지가 많다”며 “수도권 인구가 2000만이 넘는데 삶의 질이 높고 교육여건이 좋은데다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춘 곳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수 배우고 싶다’며 따라다니는 사람이 줄잡아 스무 명은 된다”는 P씨는 올해의 경우 강남보다는 그동안 소외됐던 강북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오름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P씨는 “경기가 어려워진다고 해도 이미 한 차례 ‘IMF’를 겪은 사람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위기대처 능력을 감안해 대출을 받아 집을 샀기 때문에 대출 금리가 폭등하지 않는 한 집값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동안 ‘똥값’ 신세였던 낡은 연립주택이나 단독주택 등 재개발 호재가 있는 노후주택이 좋은 투자처”라면서 “교통 인프라가 갖춰진데다 주변에 신도시가 들어서는 곳이 투자할 만한 곳”이라고 지목했다.
최씨 등에게 K씨와 P씨의 투자 사례를 들려주자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제는 그런 정보와 투자기법을 아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다는 게 문제”라며 혀를 찼다.
김 : 주변에 판·검사와 변호사, 의사 남편을 둔 아줌마들도 두 눈 벌겋게 뜨고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어요. 제가 한남뉴타운에 물건을 샀다고 했더니 그날로 그 동네에 답사를 가자고 하더라고요. 투자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는지 몇몇 아줌마가 부동산에 물건이 나오면 연락해달라며 전화번호를 남겨놓더라고요. 먹고살 만한 그들이 부동산 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간단해요. 부동산으로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많아요.
무주택자 불안감도 상승 자극제
최 : 저는 올해 집값은 연초까지 강보합세를 보이다가 차차 상승하리라고 봐요. 지금은 지난해 추석 때 집값이 급등한 데다 정부가 각종 부동산 규제정책을 내세운 뒤끝이라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거죠. 저는 시장을 잠시 지켜보다가 금리가 8%를 넘지 않으면 호가보다 10% 정도 싼 급매물이 나올 경우 집 한 채를 또 살 생각입니다.
한 : 저도 상반기까지는 지켜보려 해요. 정부가 자꾸 금리를 올리면 대출이자에 부담을 느낀 물건이 시장에 나올 수 있거든요. 그런 물건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 하락폭이 커지겠죠.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겠지만. 그래서 조금 더 시장을 지켜보는 게 낫다고 봅니다.
김 : 집값은 하방 경직성(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현상)이 큰 상품이에요. 한번 형성된 집값은 잘 떨어지지 않으려는 성질이 강하거든요. 예를 들어 나중에 판교가 별 영양가가 없는 곳이 돼버렸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분양가 이하로는 집을 팔지 않는다는 거죠.
최 : 매도하려는 물건이 많아야 집값이 떨어질 텐데, 현재 시장이 불안하기 때문에 매도자도 매수자도 눈치를 보는 실정이잖아요. 이 불안한 시장 정서가 매도자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집값이 급등으로 이어지겠지요. 그 반대로 움직인다면 하락할 거고요.
김 : 지금 집값이 겉으로는 안정돼 보이지만 진정한 안정세는 아니라고 봐요. 올 초 이사철에 맞춰 전세가격이 오를 전망인데다 수요자들의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지면 집값 상승은 불을 보듯뻔하거든요. 정부가 각종 부동산 규제장치를 마련했지만, 특히 집 없는 서민들의 구매욕구가 가라앉지 않을 경우 재상승으로 이어지겠지요.
최 : 무주택자들의 심리적 불안, 그거 엄청난 스트레스더라고요. 제가 집 두 채를 다 팔고 새 집을 계약하기까지 딱 보름이 걸렸는데 그 사이에 집값이 오르면 어쩌나, 생각했던 집을 구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불안해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집 없는 사람들은 지금도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일 겁니다. 신도시 분양가가 낮아진다 해도 100% 당첨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전세값이 오르지 않는다면야 분양을 기다려보겠지만 그것도 장담할 수 없잖아요. 정부가 각종 부동산 세금을 올려놔서 집주인들은 전세와 월세 보증금을 올리는 추세이고요.
한 : 전세값 폭등은 언제나 집값 상승으로 이어졌어요. 지금 같은 경우에는 전세값과 매매가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강북의 아파트들이 오름세를 유지하지 않을까 싶어요. 전세금에다 1억~1억5000만원 대출을 받아 구입 가능한 집의 매매가 활발해질 것 같아요. 실수요자들이 주택 구입에 따른 이자로 한달에 50만~75만원(연6%)을 부담할 수 있다면 집을 구입하려고 들지 않을까요?
김 : 강북이나 그동안 소외된 지역의 집값은 강남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상승할 여지가 높다고 봐요.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강남 서초 송파구 등 서울 강남권의 아파트 값은 11·15대책 이후 빠른 속도로 안정됐다. 속내를 살펴보면 강남은 ‘급속한 안정세’가 맞지만, 강북에선 아직 여진(餘震)이 진행 중이다. 부동산114는 “올봄 다시 전세난이 빚어질 것에 대비해 실수요자들이 미리 강북 지역에서 내 집 마련에 나서고 있는데다, 집주인들은 강남 등 버블세븐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오른 집값을 보상받기 위해 호가를 계속 높이고 있어 집값이 상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부동산보다 수익률 높은 상품 있나요?”
최 : 사실 집값을 올린 주범은 정부 아닌가요? 노무현 정부 들어서 토지보상금으로 풀린 천문학적인 돈이 다 어디로 갔겠어요? 그 돈은 십중팔구 부동산 구입자금으로 유입되게 돼 있어요. 인천 영종도와 경기도 고양시 삼송지구 국민임대주택단지 등에 풀릴 토지보상금이 10조원이나 된다고 들었어요. 정부가 우리나라 부자들을 얕보고 있는 것 같아요. 강남과 수도권, 그리고 지방의 요지에 상가건물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기업이 가진 것말고 개인이 가진 건물들 말이에요.
정부가 집값 안정화를 꾀하기 위해 내세운 이른바 ‘반값 아파트’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한 : 반값 아파트가 공급된다면 장기적으로 집값 안정에는 도움이 될 겁니다. 무주택 서민에게 좋은 제도임에는 분명해요. 하지만 기존의 아파트와 반값 아파트의 가격이 같아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반값 아파트와 임대아파트는 서민을 위한 주택정책으로는 합당할지 몰라도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국민의 정서를 무시하는 정책 같아요.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고 사회적 지위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그런 집에 들어가 살 리 없거든요. 앞으로 집 때문에 알게 모르게 사회적인 ‘계급’이 형성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 : 반값 아파트요? 무주택자들을 ‘유혹’할 수 있는 정책이긴 한데, 우리가 예로부터 집은 소유의 개념이지 빌려서 산다는 생각은 안 하는 민족이잖아요. 집으로 돈 벌 수 있는 사람이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진짜 주거의 개념이 자리잡게 된다면야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과연 그런 날이 올까요?
최 : 친구들 모임에 나가보면 강남 등 버블세븐 지역에 살 경우 목에 힘주는 게 은연중에 보여요. 마치 옛날에 사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저도 3년 후에는 강남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교육이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강남에 산다’고 사람들 앞에서 재고 싶은 욕구도 숨어 있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를 하고 이익을 남겨 부를 축적하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행위 아닌가요? 우리나라 집값이 이렇게 오른 것은 부동산 외에는 안전하게 투자할 만한 대상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주식으로 돈 번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어쨌든 주식은 부동산보다는 위험요소가 많다고 믿다보니 주식투자를 꺼리는 거죠.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부동산보다 수익률이 높은 금융상품이 개발돼야 할 겁니다.
저녁 6시에 만난 이들과 헤어진 시각은 밤 10시30분. 이들은 헤어지기 전 각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수첩에 적었다. “앞으로 부동산 투자와 관련된 정보를 서로 공유하자”는 말도 잊지 않았다.
글머리에 언급한 K교수의 집들이. 이날은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이어졌다. 노후에 이루고 싶은 꿈을 얘기하고 지난날의 추억을 곱씹기도 했으며, 자녀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다소 무거운 주제도 나왔다. 집값 얘기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그런지 초대받은 손님들은 집을 나서면서 다들 환한 표정이었다.
집이 투자용이 아닌 ‘주거용’으로 하루 빨리 자리잡기를. 그래서 국민의 ‘주요 관심사’에서 부동산이 쏙 빠져나가기를. 필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