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호

페니키아에서 두바이까지, 문명사로 본 시장과 국부(國富)

“열어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입력2008-03-06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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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과 외환거래가 자유로운 두바이의 선조는 고대 자유무역의 상징 페니키아다. 오늘날 중동의 세계도시로 부상한 두바이는 종교, 인종, 여성 차별을 없앴다. 외국 업체의 투자에 대해 어떠한 규제도 하지 않고 세금도 매기지 않아 투자의욕을 부추긴다. 바다 위에 초고층 호텔을 건설하는 두바이는 바다를 개척한 네덜란드, 바위땅을 일궈 세계 최고의 무역도시가 된 맨해튼과 닮았다.
    페니키아에서 두바이까지, 문명사로 본 시장과 국부(國富)
    물은 한 곳에 가둬두면 썩지만, 흐르게 하면 신선함을 유지해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소한다. 돈은 물과 같다. 돈이 몰려드는 곳을 우리는 시장이라 부른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라 사회구성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마련인데, 이기적인 행동을 못하게 막는다면 돈은 그것을 피해 달아난다. 그러나 정부는 공동선(共同善)을 이룩한다는 명분으로 그런 이기적 행동에 제동을 걸려고 한다. 정부의 이런 손을 흔히 ‘규제’라 부른다. 사회주의는 체제 자체가 이걸 주(主) 임무로 삼는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이것도 모순임을 알 수 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에게 도움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게 바로 세상의 이치이고 시장의 원리인데, 그걸 막겠다고 정부가 나서니 잘살 수가 없는 것이다. 북한과 쿠바가 못사는 이유를 보면 이는 확연해진다.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규제완화가 급선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자가 제 이익을 찾아 행동하도록 내버려두면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를 가장 싼값으로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을 테니 이것이 선(善)이 아니고 무엇인가. 공생의 원리도 결국 이런 것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시장경제가 양극화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경제발전이 빈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공통된 견해다.

    공생의 원리 구현하는 시장



    공생의 원리가 시장의 영역에서만 통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의 세계,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유권자에게 선택받으려면 그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자 하는 예술가는 대중이 아직 본 적이 없거나 경험한 적이 없는 참신한 미(美)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그들의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

    세상엔 두 가지의 공생이 존재한다. 하나는 동양인이 전통적으로 인식하고 지켜온,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소극적인 공생이다. 다른 하나는 나도 잘살고 남도 잘살게 하려는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공생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이 시대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유효하고 이 시대 사람들이 원하는 공생 방법일까. 오늘날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한 삶’이란 적극적인 공생 노력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던가. 그렇다면 시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또한 달라져야 할 것이다.

    시장은 개인의 삶에 토대를 제공할 뿐 아니라 공생의 터전도 마련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국력 또한 시장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시장은 끊임없이 변한다. 거래되는 물자와 서비스가 변하고 가격도 변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장은 역동적이다. 그래서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근대경제학은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정부의 시장 개입에 반대했다. 그에 따르면, 모든 경제 주체가 건전한 사회제도하에서 사전 조정 없이 각자의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면 가격기구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국민경제는 질서가 잡히고 부(富)와 번영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견해는 자유방임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의 사상적 토대가 됐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돈과 물자, 인력이 물 흐르듯 흐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페니키아에서 두바이까지, 문명사로 본 시장과 국부(國富)

    2007년 4월 두바이를 방문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예비 후보.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를 뿐 아니라 돌고 돈다. 생명의 기반이 되는 물의 순환은 바로 이 같은 물의 성질에 따른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순환은 타인과의 교류를 의미한다. 돈 또한 돌고 돌면서 부를 증진하고 가난을 퇴치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방은 자유와 다를 바 없다. 굳이 그 차이를 따진다면 자유는 내적인 자기표현, 개방은 외적 자기 표출쯤으로 바꿀 수 있으리라.

    시장은 품질과 가격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작동되는데,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화폐로 표현한 것이 가격이다. 누구나 품질과 가격에 자신이 있다면 시장에 참가할 수 있다. 그게 시장 참가자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장은 한껏 열려 있다.

    “세계도시가 아니라 세계 그 자체”

    자유와 개방이야말로 경제발전과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필수적이란 사실을 두바이만큼 잘 보여주는 예도 없을 것이다. 20여 년 전, 동양과 서양을 잇는 걸프 만에 위치한 교통요지, 더 정확히 말하면 런던과 싱가포르의 꼭 중간지점에 있는 이 도시를 항로 관계로 우연히 지나친 적이 있다. 당시엔 너무나 한산해 이름마저 생소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몇 년 전, 파키스탄을 거쳐 이집트로 가는 길에 잠깐 들른 두바이는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그들 스스로 “이제 두바이는 세계도시가 아니라 세계 그 자체”라고 할 정도다.

    공항부터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세계 각국의 명품이 화려한 진열장에서 빼어난 자태를 드러내고, 아랍 국가답지 않게 히잡을 쓴 아랍 여성이 남자와 함께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등을 훤히 드러낸 외국 여성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아랍 국가는 고유 종교인 이슬람을 지키기 위해 폐쇄적이라는 선입관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알고 보니 두바이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했던 것이다. 국적이나 종교, 언어에 대한 차별도 없앴다고 했다. 심지어 외국인에게 이슬람에선 금기하는 술과 돼지고기까지 팔고 있었으며, 신앙의 자유가 허용돼 각자의 예배 공간을 둘 수 있다고 했다.

    물 흐르듯 돈이 흐르게 하겠다는 두바이의 개혁 전도사 셰이크 모하메드 국왕의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듯, 두바이는 전세계의 돈과 상품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두바이를 북아프리카, 중동, 인도, 중앙아시아 일대의 금융, 무역, 비즈니스, 쇼핑, 관광, 컨벤션, 문화의 중심지로 키울 계획이다.

    제한이 없기는 투자 및 외화 송금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게 빠지면 금융허브의 꿈이 어찌 이뤄지겠는가. 금융·외환 부문의 개방은 중동에 처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동(東)지중해의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레바논에서도 외화 소지가 자유롭고 어디서나 환전이 가능하다.

    레바논의 이런 전통은 기원전 1200년경 한때 해상무역으로 번성했던 페니키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에서 만난 레바논 사람들은 대부분 쾌활하며 자신감에 넘쳤고 무엇보다도 개방적이었다. 그들은 국적이나 인종에 괘념치 않는 듯했다. 누군가는 필자에게 “우리는 무역에 능했던 페니키아인의 후예로서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다”라고 했다.

    고대 문명이 모두 큰 강 유역에서 발생한 것은 비옥한 충적토가 있는 강 하류 지역이 정착과 농경의 적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변 지역은 원거리 교역에는 불리했다. 시장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확대되지 못해 그들이 필요한 것을 모두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도 점점 활기를 잃어갔다. 그래서 문명의 중심지가 모든 게 모이고 흩어지는 바다로 옮겨갔다. 그 첫 무대는 동지중해. 지금의 시리아 서부와 레바논 일대로 그 주인공이 바로 페니키아인이었다.

    세금 면제, 학비 전액 무료

    페니키아에서 두바이까지, 문명사로 본 시장과 국부(國富)

    세계 금융의 메카인 맨해튼은 바위땅에 설립된 도시다.

    약 300년간 존속한 페니키아 문명은 인류 최초의 해상상업 문명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이집트, 북아프리카 등지를 상대로 활발한 교역활동을 벌였다. 비록 중개무역이었지만 원거리 민족과의 효율적인 거래를 위해서는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소통 수단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종래의 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나 이집트 신성문자와는 질적으로 다른 표음문자를 창안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알파벳의 원형이라 불리는 ‘페니키아 알파벳’이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페니키아인은 한동안 지중해 무역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두바이에는 또 세금이 없다. 터키와 그리스가 남북으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는 키프로스도 외국 자본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한다. 세금이 없으니 돈이 모여드는 게 당연하다. ‘조세 천국(tax heaven)’이라 불리는 라이베리아나 케이만 제도, 버진 아일랜드, 버뮤다 등은 그 좋은 예다.

    두바이가 있는 아랍에미리트는 정말 작은 나라이고, 1971년에야 독립했으니 신생국가나 다름없다. 국력은 영토의 크고 작음과 무관하다. 시장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물자와 사람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문화 교류의 장이 되기도 하는데, 큰 시장을 가진 나라는 자연스레 강국이 된다. 그러므로 강국이라고 해서 반드시 영토가 넓은 나라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영토가 작고 인구가 적어도 강국이 될 수 있다. 이를 흔히 ‘강소국’이라 부른다.

    기업이든 나라든 자기가 잘하지 못하거나 아예 불가능한 일에 대해서는 외부 전문업체에 맡기곤 하는데, 이를 아웃소싱이라 한다. 자금과 인력도 아웃소싱이 가능하다. 두바이는 부족한 자금을 아웃소싱하기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뿐 아니라 금융거래에서 세금과 규제를 모두 없앤 것이다(해외자본 유치 정책을 ‘open sky policy’라 부른다).

    창의적 아이디어와 최신 관리 노하우는 선진국의 것을 빌려 쓴다. 명품 메이커, 세계적인 도시계획자, 금융전문가, 미술관 설계자 등을 초빙하거나 그들에게 운영 권한 일체를 넘기는 것이다. 이제 이 도시에는 80개나 되는 외국인 학교가 운영되고 있으며 어디서나 유럽인과 미국인, 인도인, 러시아인, 아랍인, 한국인, 중국인, 이란인, 베트남인, 필리핀인 등 세계 각국 사람을 두루 만나볼 수 있다.

    두바이 경제는 석유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석유 매장량도 그리 많지 않아 조만간 동이 날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이 나라를 건국한 라시드 국왕은 이미 1966년(유전도 1966년에 발견됨)에 ‘비전 2010년’을 세워 “2011년에는 오일달러에 대한 경제의존도를 제로로 만들겠다”며 학교, 병원, 도로망 등 인프라 구축에 많은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인재 육성만이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며 학비를 전액 무료로 하는 조치도 취했다.

    ‘없으면 있게 하라’

    이러한 인재 육성 프로젝트는 요르단에서 먼저 시작됐다. 중동국가 중 몇 안 되는 비산유국인 요르단은 일찍이 교육에 투자해 쿠웨이트 등 걸프 산유국에 인력을 공급해 1970~80년대에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인 바 있다. 당시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는 주택 건설 사업이 붐을 이뤘는데, 우리 건설사들이 큰 구실을 했다. 지금 코트라(KOTRA)가 입주해 있는 암만의 ‘피라미드’ 빌딩은 쌍용건설이 지은 것이다.

    모하메드 국왕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는 일이다. ‘비전 2020년’을 통해 그는 철저히 아버지 라시드 왕의 뜻을 따르고 있다. 천연자원이 아니라 사람이 가장 큰 자산이라 믿기 때문이지만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또 사람을 가려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면담 약속을 받지 못한 사람이 그의 집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불쑥 나타나 면담을 청해도 만나준다고 할 정도다.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여러 사람에게 전하고 두바이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카리스마가 아니라 설득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평양의 리더십과 대조를 이룬다. 한쪽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세계를 상대로 경쟁함과 동시에 교류협력을 강화해 국력을 키우고, 내부적으로는 국민에게 자기가 제시한 길로 함께 가자며 국가를 번영시키려 한다. 다른 한쪽은 문을 걸어 잠그고 내부를 보여주는 것은 치부와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외국과의 교류를 삼가고 모든 문제를 자력으로 풀어가자며 국민을 힘들게 한다. 그리고 국가마저 빈궁으로 끌고 가고 있다. 다시 말해 ‘궁핍의 정치’를 통해 국민이 딴생각을 하지 못하고 입에 풀칠하는 일에만 신경 쓰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고도 과연 ‘인민민주공화국’이라 할 수 있을까.

    두바이가 대외개방을 추진하면서 교류협력까지 강화하는 것은 필요한 자금과 물자,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만은 결코 아니다. 외국과의 교류는 세계 속에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또 그들이 세계에 대해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지 판단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가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서비스함으로써 자신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으니 말이다.

    아랍 지역은 지금은 석유가 생산되어 사정이 많이 나아졌지만 원래는 척박한 땅이라 살기 위해서 일찍이 장사를 하거나 무역업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중세기에 탄생한 유명한 이야기모음집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하는 일등항해사 신밧드가 아랍에미리트 남쪽의 오만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 점을 잘 말해준다. 또 이웃 사우디의 왕족 등 최고의 엘리트들은 언제든지 사막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중동지역을 여행하면서 확인했다.

    암스테르담 본뜬 뉴욕

    1년에 한 달씩 라마단(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단식)을 지키는 것이나 종종 사막 속에 텐트 가옥을 짓고 한동안 지내면서 양을 잡아 ‘캅사’라는 밥을 배불리 먹고 매 사냥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 좋은 예다. 매 사냥은 언뜻 보기에 사치의 극치를 달리는 것 같지만 인내와 신중함을 단련하는 훈련으로는 최고라고 한다. 그리하여 환경이 바뀌면 언제라도 거친 옷, 거친 음식으로 돌아갈 마음자세를 가다듬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사막에서 야성을 길러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두바이인들은 ‘없으면 있게 하라’를 모토로 삼았고, 두바이는 ‘무엇이든 가능한 땅’이 되었다. 덕분에 세계는 두바이가 이룩한 놀라운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 메마른 초원을 돌며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인들에게 ‘세계 최초, 세계 최대, 세계 최고’라는 목표를 향해 노력하게 한 결과 황량한 사막이 세계 금융의 허브, 이색관광지, 명품 쇼핑장 등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런 야성에 개방성과 융통성이 덧붙여진 결과라 해야 할까. 그들은 사막이란 지형을 훌륭한 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 라시드 국왕은 해안 수로인 크리크(Creek)를 건설했고, 지금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7성(星)급의 부르주 알 아랍 호텔이 막바지 공사 중이다. 돛배 형상으로도 보이지만 원래는 사막의 꽃을 이슬람 건축에 접목한 것이다. 그 자체로도 놀랍지만 최종 높이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국가기밀이라는 것이다. 바다를 메워 그토록 높은 초고층 건물을 건설하려는 것도 ‘두바이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악조건을 무릅쓰고 악착같이 최고의 높이로 건설하려는 이유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에펠탑 없는 파리를 누가 찾겠는가.” 부르주 알 아랍이 두바이의 랜드마크 구실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작은 나라지만 통은 무척 커 보인다.

    또 앞바다에선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 ‘팜 아일랜드’와 세계지도 모양의 ‘더 월드’ 공사가 2010년 완공을 목표로 분주하다. 지형은 고정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런 것들을 보면 그게 아닌 것 같다. 지형을 바라보는 시각과 활용하는 기술, 그리고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그 형태는 말할 것도 없고 용도마저 달라질 수 있는 모양이다.

    이런 예는 예전에도 더러 있었다. 바다보다 낮은 땅을 관개해 삶의 터전으로 바꾼 네덜란드인들이 우선 그러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겨난 암스테르담은 한때 세계를 상대로 한 무역항으로서 이름을 날렸다.

    이런 암스테르담의 예에 따라 건설한 도시가 뉴욕의 맨해튼이다. 뉴욕의 옛 이름이 바로 뉴암스테르담이었으니까. 이제는 세계 금융의 메카가 된 맨해튼의 월가(Wall Street)는 옛날 성벽이 세워졌던 곳을 일컫는다.

    통일비용 절감 방안

    그런데 맨해튼의 토대는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바위로 되어 있다.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이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살지 않는 쓸모없는 땅이었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이곳을 차지했을 때는 해상무역이 한창 빛을 발하던 시기라 오피스 공간이 절대 필요했다. 그런 오피스 빌딩을 건설하는 데 단단한 바위 지반이 안성맞춤이었으니 지금 그곳에 100층이 넘는 마천루가 서 있는 것이다. 초고층 빌딩이야말로 업무용으로는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하지 않는가.

    누군가 말했듯이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도 바뀌고 사회도 바뀌고 국가도 바뀔 수 있다. 성경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자유와 개방!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개념일 것 같지만 최근 10년간 말은 번지르르하게 했을지는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그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서도 자유와 개방, 그리고 시장의 기능을 제대로 살릴 임무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동포이면서 특수한 관계에 있는 북한에 대해서도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일방적으로 제공하거나 지원하기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그것들을 구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게 그들에게도 득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그럴 것이고. 다시 말해 대북정책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을 자유화하고 개방으로 이끌수록 북한 주민의 삶의 질도 나아질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통일비용 절감에도 이바지할 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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