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호

‘말잔치’ 남북경협

[단독취재] 역대 최대 北·中 밀수 현장

“의류·수산물 중국産 둔갑 한국 들어와”

  • | 김승재 YTN 기자·前 베이징 특파원

    입력2018-08-22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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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 폭주 개성공단 힘차게 가동 중

    • 압록강 하구 온갖 종류 밀수 선박 북새통

    • 北노동자들 中에서 南 브랜드 의류 생산

    단둥-신의주를 잇는 중조우의교.

    단둥-신의주를 잇는 중조우의교.

    최근 북한 제조업 공장들에 주문이 폭주해 봉제를 비롯한 제조업 분야 공장이 쉴 틈 없이 가동되고 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중국으로 밀수돼 중국 내수용으로 사용되거나 중국산 라벨을 달고 각 나라로 수출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 내 생산량과 밀수량은 ‘역대 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여서 대북제재가 유명무실해진 게 아니냐는 평가마저 나온다.

    “개성공단, 지금 빵빵하게 돌아간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의 성패 여부는 중국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되고 있다. 지난해까지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적극적으로 준수하며 북한에 커다란 고통을 줬던 중국이 지금은 정반대 행보를 보이며 북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중국의 대북소식통은 최근 북한의 제조업 공장들이 분주하게 가동된다고 전해왔다. 소식통이 전한 소식은 이렇다. 각국 기업으로부터 생산 요청 주문이 쇄도해 북한 노동자들이 더위에도 바쁘게 일한다. 평양과 신의주는 물론 개성공단도 공장 기계가 힘차고 쉼 없이 가동되고 있다. 개성공단에서는 주로 중국 남방 지역 기업의 주문을 받아 의류 생산이 진행 중이다. 남방 지역에는 중국 전역으로 공급되는 의류 기업이 밀집해 있다. 올해 6월 남측 관계자들이 개성공단을 방문했는데 당시에 개성공단이 가동 중이라는 말은 없었다고 하자 소식통은 “개성공단, 지금 빵빵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런 흔적 안 보인다고? 누가 온다고 하면 깨끗하게 정리해 흔적이 없는 곳만 보여주니까 그렇게 속는 거지”라고 말했다. 

    중국 랴오닝(遼寧)성의 한 대북사업가는 7월 자신이 거래하는 북한 봉제공장 사장과 전화 통화를 했다. 급한 주문이 들어왔다며 제품 생산이 가능한지 문의하는 내용이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북측 사장이 주문 좀 달라고 하소연하던 터였기에 당연히 작업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느긋하게 전화했다. 그런데 “지금 엄청나게 바쁘다. 도무지 짬이 나지 않는다. 요청하는 주문은 9월 넘어서나 생산이 가능할 거 같다”는 예상하지 못한 답이 돌아왔다. “유엔 제재가 있는데도 그렇게 바쁘냐?”고 물었더니 크게 웃으면서 “제재? 그것 때문에 운반비가 많이 들긴 하지”라고 답했다.

    “제일 쉽게 돈 버는 이들은 북·중 접경 단속 공무원들”

    운반비가 많이 든다는 건 무슨 뜻일까. 제재로 인해 비정상적 루트로 운반하다 보니 뒤로 찔러주는 ‘웃돈’이 많이 나간다는 뜻이다. 북한에서 만들어진 제품은 대부분 중국으로 쏟아져 나와 중국 내수용으로 사용되거나 ‘메이드 인 차이나’로 ‘라벨갈이’ 한 뒤 각 나라로 수출된다. 물건은 세관을 통한 정상 루트보다는 주로 밀수 루트로 들어오는데 이 과정 곳곳에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 전후로 중국 당국은 북한 접경지역을 관할하는 국경경비대에 “경비를 너무 세게는 하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현지 소식통은 국경경비대의 지인으로부터 들은 말을 전해왔다. 중국 당국자가 “유엔 제재도 있고 한데 조선이 얼마나 힘들겠나. 그렇게 심각한 것이 아니면 좀 봐줘라. 조선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나. 우리의 혈맹인데 굶어죽는 꼴을 두고 볼 수만은 없잖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자의 이러한 발언은 바로 다음 날부터 효력을 확실하게 발휘했다. 북·중 밀수에 동원되는 선박과 트럭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 이 같은 사실이 입소문으로 삽시간에 확산됐는데, 그것은 단속 공무원들에게 ‘업자에게 돈 뜯어먹으라는 신호’가 된다. 그래서 국경경비대와 공안 당국도 신바람이 난다. 밀수 눈감아줄 테니 그 대가를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다롄(大連)의 대북소식통은 “현재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이들이 누군지 아는가? 바로 북·중 접경 지역의 중국 세관원들이다. 어차피 대북제재는 형식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이들은 검사를 철저히 하지 않는다. 적당히 하면서 통과시킨다. 그런데 그냥 통과시키는 게 아니다. 뒷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 문제가 될 것 같다 싶으면 “이런 물건은 안 된다. 이런 루트 말고 다른 길로 다니라”고 하면서 밀수를 추천하기도 한다.

    “밤이면 밤마다 모여드는 밀수 선박”

    지난해 북한산 석탄을 국내에 반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진룽호가 8월 7일 경북 포항신항에 입항해 러시아에서 싣고 온 석탄 하역 작업을 하고 있다.(왼쪽) 7월 16일 민간 위성업체 ‘플래닛’이 찍은 북한 원산항에 정박한 석탄운반선.

    지난해 북한산 석탄을 국내에 반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진룽호가 8월 7일 경북 포항신항에 입항해 러시아에서 싣고 온 석탄 하역 작업을 하고 있다.(왼쪽) 7월 16일 민간 위성업체 ‘플래닛’이 찍은 북한 원산항에 정박한 석탄운반선.

    북·중 간 가장 많이 이용되는 밀수 수단은 선박이다. 밀수 선박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밤에 주로 움직인다. 북·중 교역이 가장 활발한 단둥 일대에는 압록강을 따라 밀수 선박이 밀집해 있다. 압록강 상류는 수심이 얕아 작은 배로 다니나 하류는 수심이 30~40m로 꽤 깊기에 큰 배가 주로 다닌다. 압록강 하류와 압록강과 바다가 만나는 공해에 커다란 밀수 선박들이 밤이면 밤마다 모여든다. 

    중국 선박이 주로 밀수에 활용된다. 북한 선박은 숫자도 적고 배 상태도 엉망이기에 북한이나 중국 기업 모두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를 통해 트럭 100대가 운반하는 물량을 큰 선박 3척으로 처리할 수 있다. 밀수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존의 밀수 선박뿐 아니라 과거엔 볼 수 없던 온갖 종류 선박이 다 동원되고 있다. 

    당연히 밀수량도 크게 늘었다. 북·중 밀수에 종사하는 이들의 입에서는 “밀수가 역대 최대”라는 탄성이 나온다. 사정이 이러니 선주들이 배짱을 부리며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압록강과 달리 두만강 일대, 즉 지린(吉林)성 투먼(圖們)과 훈춘(琿春)에서는 강폭이 좁아 선박이 아니라 트럭이 밀수 수단으로 주로 사용된다. 

    소식통은 밀수로 중국에 들어온 북한산 물품 가운데 ‘중국산’으로 둔갑해 한국으로 들어가는 물건도 상당하다고 전했다. 의류의 경우 단둥 등 랴오닝성과 투먼, 훈춘 등 지린성의 북한 노동자들이 만든 제품, 평양과 신의주, 나선지구 등 북한 내부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남대문과 동대문시장, 홈쇼핑 등으로 대량 납품되고 있다. 브랜드도 이름 없는 것부터 유명한 것까지 다양하다. 

    “중국 랴오닝성 잉커우(口)시의 개발구, 바위취안(魚圈) 지역에서는 북한 노동자들이 주로 한국 브랜드 의류를 제조한다”고 소식통은 말했다. 한 공장에서는 북한 노동자 400명가량이 수년 전부터 한국 브랜드 의류만을 전담 생산한다. 최근엔 수산물도 한국으로 많이 들어오고 있다. 북한산 수산물은 주로 인천항으로 들어오는데 원산지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엔 수산물 밀수량이 너무 많다 보니 가격도 갈수록 떨어져 업자들이 “별로 재미를 못 보고 있다”고 투덜댄다.

    “한국 브랜드 의류만 전담 생산”

    이런 가운데 북한산 석탄과 철이 국내로 밀수된 사실을 정부가 공식 확인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8월 10일 관세청은 66억 원어치의 북한산 석탄과 선철(용광로에서 빼내 가공하지 않은 철)이 원산지증명서를 위조하는 수법으로 국내에 불법 반입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관세청 조사 결과 국내 3개 수입법인이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7차례에 걸쳐 북한산 석탄과 선철 총 3만5000여t을 국내로 반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의 항구에서 다른 배로 옮겨 실은 뒤 원산지를 러시아로 속이는 수법을 사용했다.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수입이 금지된 북한산 석탄이 국내로 반입된 사실을 정부가 확인함에 따라 앞으로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은행, 정부 등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의 테러·비확산·무역 소위원장인 테드 포 의원은 8월 8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인터뷰하면서 “석탄 밀반입에 연루된 기업이 한국 기업이라도 세컨더리 보이콧을 부과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래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금 단계에서 우리 기업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유엔 보고서 “선박 간 석유 환적 거래 엄청나”

    정부의 조사 결과 발표 이전에 “역대 최대 규모 북·중 밀수”라는 소식통의 전언을 뒷받침하는 유엔 보고서가 나왔다. 로이터통신 등은 유엔 안보리 산하 전문가 패널이 작성한 보고서를 입수해 8월 3일 보도했다. 

    보고서에는 “북한이 유엔 제재를 피하기 위해 선박 간 이뤄지는 석유제품 불법거래를 크게 늘렸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았고, 시리아 무기 브로커를 이용해 예멘과 리비아에 무기 수출을 시도했다. 수출이 금지된 자국산 석탄과 철강 등을 중국과 인도 등에 계속 수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특히 “대형 유조선을 이용한 석유 환적이 북한이 제재를 회피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북한은 올해 해상에서 석탄을 옮겨 실은 것뿐만 아니라 선박을 통한 불법 석유제품 환적을 엄청나게 늘림으로써 안보리 결의를 계속 무시했다”면서 “지난해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따른 원유와 연료, 석탄 거래 제한 조치가 무력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중국의 대북제재는 사실상 끝났다.” 

    3월 하순 중국의 소식통이 전한 이 관측은 이후 거의 맞아떨어지고 있다. 앞서 인용한 유엔 보고서의 핵심은 “지난해 4차례나 채택하며 북한을 조였던 안보리 대북제재가 지금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면서 ‘북한의 후견국’인 중국이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중량감 있는 인사 여러 명이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을 받아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고, 이 자리에서 북·중 경제협력과 관련해 중요한 논의를 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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