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보다 음악성·팬서비스 중시
무명의 모진 설움만큼 값진 사랑
존재가치 증명한 손재주와 가창력
트로트 재능은 아빠, 선행은 엄마 유전자
팬덤 ‘어게인’의 환호성이 최고의 보약
내숭 없는 따뜻한 인간미와 소통의 힘
인생 목표는 ‘노래 잘하는 국민가수’
[홍태식]
가수 송창식은 2019년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미스트롯’에서 송가인(35·본명 조은심)의 무대를 보고 이렇게 내다봤다. 그의 예견대로 송가인은 현재 차세대를 이끄는 트로트여왕으로 자리매김했다. 발표하는 노래마다 인기를 끌고 있으며 공식 팬클럽 ‘AGAIN’(이하 어게인)의 회원 수는 약 6만 명에 달한다. 국내 솔로 여성 트로트 가수의 팬덤 중 최대 규모다.
송가인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판소리를 배우고 중앙대학교에서 음악극을 전공한 국악인 출신. 2012년 ‘산바람아 강바람아’라는 싱글 앨범을 들고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지만 7년 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 ‘미스트롯’으로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과 탁월한 가창력으로 매회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한 많은 대동강’ ‘용두산 엘레지’ ‘단장의 미아리고개’ 같은 정통 트로트곡으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방송 초부터 블랙홀 같은 흡인력을 발휘하며 시청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그는 결승 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의 폭발적 인기 덕에 비주류 음악으로 치부되던 트로트는 가요계의 대세로 거듭났다. 송가인이 트로트의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미스트롯’ 이후 송가인은 ‘가인(佳人)’(2019)과 ‘몽(夢)’(2020) 두 정규 앨범과 여러 싱글 음반을 냈다. 또 ‘악인전’ ‘트롯 전국체전’ ‘트롯 매직유랑단’ 등 예능 프로그램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본연의 소탈하고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요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자주 만나기 힘든 팬들과 음악으로 소통하기 위해 새 앨범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런 그가 11월 9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을 찾았다. ‘신동아’ 창간 90주년 송년호를 빛낼 단독 인터뷰와 화보 촬영에 나서기 위해서였다.
인기보다 음악성·팬서비스 중시
[홍태식]
“계속 곡을 받으면서 앨범에 담을 노래를 신중하게 고르고 있다. 앨범 콘셉트나 타이틀곡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앨범은 12월 중 낼 계획이다.”
-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으로 스타덤에 오른 후 달라진 점은 뭔가.
“일상의 모든 게 달라졌다. 먹고 자는 패턴이나 만나는 사람뿐 아니라 공기마저 달라진 느낌이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며 반가워하고 서비스도 잘해 주고 할인도 많이 해준다. 가끔 조용히 식사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사진 촬영이나 사인 요청을 받으면 기꺼이 응한다. 나이 들면 인기가 없어질 텐데 이런 관심을 받을 수 있겠나.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이다. 내가 소화해야 하는 일정이 많아진 것도 큰 변화다. 전에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쉴 시간이 별로 없다.”
- 잠은 잘 자는 편인가.
“한창 바쁠 때는 2시간밖에 못 잔 날도 있다. 한창 살을 빼는 중이었는데도 잠을 못 자서 얼굴이 잘 부었다. 그 때문에 ‘보톡스 주사를 맞았느냐’는 얘기도 들었다. 요즘은 하루 7시간은 자는 것 같다. 예전에는 너무 바빠서 피부를 관리할 시간도 없었는데 요즘은 혈액순환이 잘되는 마사지를 받아 전보다 덜 붓는다. 그 덕에 살 만하다.”
- 가수로 살면서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인기보다 음악성을 중시한다. 나도 아이돌처럼 꾸미고 퍼포먼스를 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러다 보면 음악이 가벼워질 수 있다. 그래서 내 장점을 돋보이게 하는, 나만의 무기가 될 수 있는 노래를 선택해 나이 들어 보이게 치장한다. 내게 노래를 맞추기보다 노래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송가인은 1986년 국악의 고장으로 유명한 전남 진도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국가무형문화재 진도 씻김굿 전수교육조교이자 무속인인 송순단 씨다. 어릴 때부터 우리 소리를 들으며 자란 송가인은 판소리를 전문적으로 배워 여러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2008년 전국판소리대회, 2009년 광양 박해성 판소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데 이어 2010년과 2011년에는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연거푸 수상했다. 송가인이라는 예명을 사용한 건 2017년부터다. 어머니의 성씨 ‘송(宋)’에 노래 ‘가(歌)’와 사람 ‘인(人)’을 붙인 이름으로 ‘노래하는 사람이자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중의가 담겨 있다.
[홍태식]
무명의 모진 설움만큼 값진 사랑
- 언제부터 트로트를 좋아했나.“어릴 때부터 국악을 들으며 자라다 보니 판소리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중학교 때는 특별활동 시간에 문화재 선생님들로부터 ‘강강술래’ ‘진도 북놀이’ ‘남도 들노래’ 같은 걸 배웠다. 그러다 한 선생님이 내게 소질이 있으니 시켜보라고 엄마에게 권해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시작했다. 아빠는 평범한 농사꾼인데 젊은 시절 기타를 배워 잘 치신다. 어릴 때 아빠가 ‘전국노래자랑’를 보면서 ‘목표의 눈물’ 같은 노래를 기타로 치면 나는 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장단이나 발성이 판소리와 가깝다 보니 트로트가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 화보 촬영할 때 개구쟁이 같은 면이 보였다. 어릴 때는 어땠나.
“오빠들이랑 주로 놀았기 때문에 선머슴 같았다. 친오빠가 2명 있고 동네에 오빠들이 많아서 격하게 놀았다. 나무 들고 칼싸움하고, 돌 던지기도 하고, 정말 천방지축이었다.”
- 국악인의 길을 가다 가수로 전향한 이유가 궁금하다.
“2010년 엄마의 권유로 ‘전국노래자랑’에 우연히 나갔다가 최우수상을 타고 연말 결선에서 2등을 했다. 그 방송을 본 작곡가 선생님의 제의로 2012년 트로트 앨범을 냈다. 트로트 가수가 되고 싶다기보다 기회가 왔으니 도전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엄마 아빠도 부담 갖지 말고 건강하게만 지내라고 했다.”
- 트로트의 인기가 지금 같지 않아서 힘든 일이 많았을 것 같다.
“처음 앨범을 냈을 땐 다 잘될 줄 알았는데 해가 바뀌어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설 무대가 없어 막막했다. 소속사가 신생 기획사였고 나도 경험이 없어 힘든 일이 많았다. 어딜 가나 대우를 못 받고, 누가 늦게 오면 대타로 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쪽 세계에서는 돈도 있고 백도 있고 연줄도 있어야겠구나. 큰 기획사에 들어가야 일할 만하겠구나. 노래 실력은 기본이고 비주얼과 몸매가 좋아야겠구나. 춤도 잘 춰야 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 가장 힘든 기억은?
“소속사에서 행사장이나 무대에 저를 혼자 보낼 때가 많았다. 매니저도 없이 혼자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갔다. 의상도 직접 챙겼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화장하고 김밥 먹고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고단한 나날이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이것도 못 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앞으로 닥칠 힘든 일에 비하면 이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 지금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견뎠다. 그런 생각이 나를 버티게 해줬다.”
- 험한 말 때문에 상처받은 적도 있나.
“‘신인이면 무대에 세워주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열받고 화가 났다. 신인이든 아니든 먹고살려고 일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사랑받는 매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존재가치 증명한 손재주와 가창력
송가인은 ‘미스트롯’으로 스타덤에 오른 후 정규앨범 2장을 내 큰 사랑을 받았다. 송가인이 직접 만든 수공예 비녀. [박해윤 기자]
“설 무대가 없어 심각한 생활고를 겪었다. 어쩌다 한 번 행사비로 받는 10만 원, 20만 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는데 그 돈으로는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들었다. 내가 잘하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비녀 수공예에 도전했다. 동대문시장을 가서 신용카드로 40만 원어치 재료를 사다가 직접 비녀를 만들어 팔았다. 주위 사람이 다 국악인이다 보니 SNS에 비녀 사진을 올려놓으면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기대 이상으로 장사가 잘돼 그 돈으로 5개월을 생활했다. ‘미스트롯’에 출연하기 직전의 일이다.”
- 손재주가 좋은가 보다.
“새벽같이 재료를 사 오면 성격이 급해 그날 다 만들었다. 내 손으로 만들어 우체국에 가서 택배로 부치는 일이 재미있고 뿌듯했다. 여유가 되면 오프라인 매장에 진열해 놓고 비녀를 팔고 싶을 정도였다. 자영업자들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 취미도 손을 쓰는 낚시라고?
“낚시를 좋아한다. 팔뚝만 한 숭어도 잡아봤다. 길이가 약 50cm는 될 거다. 진도가 4면이 다 바다다 보니 명절이나 휴가 때 가족끼리 바다낚시를 갔다. 어릴 때부터 바다낚시를 즐긴 걸 알고 팬들이 낚싯대를 선물해 주셨다.”
- ‘미스트롯’엔 어떻게 출연했나.
“방송작가에게서 출연 제의를 받았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현역 가수가 일반인하고 붙어서 떨어지면 스크래치가 클 것 아닌가. 고민 끝에 엄마에게 물어보니 ‘그냥 나가라’고 하셨다. ‘나가면 대박 나겠다’고 하시더라.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출연했지만 잘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나는 옛날 노래인 정통 트로트가요를 부르는데, 요즘은 몸매가 좋고 얼굴도 예뻐야 관심을 받는데 나 같은 애가 되겠어?’ 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런데 경연 참가자 100명 중 내가 1등에 뽑혀서 ‘아, 여긴 비리가 없구나’ 하며 흡족해하던 기억이 난다.”
- 승부를 걸어볼 자신감이 없었나.
“요즘은 비주얼이 뛰어난 가수가 많으니까 얼굴도, 몸매도 안 되는 나는 경쟁력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너는 얼굴도, 몸매도 안 되니 노래로 승부를 내야 한다, 노래만 열심히 연습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노래만 죽어라 연습했다.”
- 그동안 발표한 앨범 수록곡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를 꼽는다면.
“모든 곡에 애착이 가지만 그중에서도 첫 정규 앨범에 수록된 ‘서울의 달’은 어릴 적 꿈꾸던 삶과 정말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라 더 마음에 와 닿는다.”
[홍태식]
트로트 재능은 아빠, 선행은 엄마 유전자
- ‘미스트롯’ 이후 20편이 넘는 광고를 찍었다. 수입이 많은 연예계 스타 가운데 집이나 건물에 투자한 사람이 많은데 본인은 어떤가.“사람들은 내가 큰돈을 번 줄 아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지금도 전세로 살고 있다. 전셋집에도 대출받아 들어갔고, 아직도 갚아야 할 대출금이 남아 있다.”
- 그동안 어려운 이웃을 돕고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꾸준히 기부해 왔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다.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엄마는 불우이웃을 돕는 방송을 즐겨 보셨다. 그럴 때마다 눈물을 보이며 후원금을 보내셨다. 동짓날이면 떡국을 한 솥 끓여 동네 어르신들에게 갖다드렸다. 그렇게 나눠 먹는 걸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다 보니 나도 베푸는 걸 좋아한다.”
옆에서 이 얘기를 듣던 송가인의 매니저는 “가인 씨가 평소 같이 다니는 매니저나 스태프에게도 정말 잘한다. 정이 많아서 밥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뭐든 잘 사준다. 이런 데 돈 쓰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남에게 베풀면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맞다. 그래서 ‘미스트롯’ 끝나고 나서 백화점을 자주 찾았다. 그 때문에 기자들 사이에서는 ‘송가인이 돈을 벌더니 명품을 사러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는데, 왜곡된 얘기다. 명품을 산 건 맞는데 내 것이 아니다. 엄마 아빠, 오빠들, 친구들, 판소리 선생님 등 내가 힘들 때 잘해 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줄 선물이었다. 늘 고마운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판소리 선생님 생신 때 제자로서 변변한 선물 한번 못 해드려 늘 죄송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좋은 선물을 하고 싶었다. 내 것은 안 샀다. 나한테 돈 쓰는 게 아깝다.”
- 본인에게 선한 영향을 받아 팬들도 선행을 꾸준히 하고 있다. 팬덤 ‘어게인(AGAIN)’이 기부나 봉사활동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어떤 기분이 드나.
“너무나도 흐뭇하고 뿌듯하다. ‘팬들이 나를 위해 이런 일까지 하는구나’ 하며 새삼 감탄하곤 한다. 어르신들이 많지만 아이돌 팬덤 못지않게 나를 응원하고 지지하려는 열의가 대단하다. 감동 그 자체다.”
[홍태식]
내숭 없는 따뜻한 인간미와 소통의 힘
- 공식 팬클럽 ‘AGAIN’ 회원 수가 약 6만 명에 달한다.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가수가 노래를 잘해야 하는 건 기본이니 무대 뒤 대기실에서 보여주는 솔직하고 소탈한 모습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평소 사투리를 쓰고 내숭을 안 떨어서 팬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다. 식당에 가서도 일하는 분들을 ‘이모’라 부르고 누가 사진을 같이 찍자고 청하면 기꺼이 응하는데 그런 모습을 좋게 보시는 분이 많았다. 식당 이모가 한번은 ‘가인아, 너는 항상 이러고 다녀라. 이런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는 거야. 그리고 너는 실물이 TV보다 훨씬 예쁘니까 전국 팔도를 구석구석 돌아다녀라. 팔도를 다니며 실물이 얼마나 예쁜지 좀 보여줘야 한다’고 하더라. 하하하.”
팬카페의 총괄 관리자인 카페지기는 송가인의 절친한 친구 한송영 씨다. 송가인은 그를 “고등학교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라고 소개하며 “그 친구가 ‘미스트롯’ 방영 초기부터 팬카페를 관리했다. 팬카페를 만들어놨더니 하루에 수천, 수만 명이 들어왔다. 나 혼자선 감당하기 힘들어 그 친구한테 부탁해 관리를 맡겼는데 그 덕분에 팬카페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컴퓨터 문맹이던 어르신들도 각 지역 스터디 모임을 통해 음원이나 영상을 스트리밍(이하 스밍)하는 방법을 배워 아이돌 팬들 못지않게 열렬히 응원에 동참한다”고 전했다.
송가인은 팬들과 좀더 자주, 가까이에서 소통하기 위해 팬카페에 들어가 글을 올리고, 자신의 소장품을 선물로 주는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또 ‘송가인과 영상통화’나 ‘송가인과 식사’를 상품으로 내걸 때도 있다. 송가인은 “이벤트 당첨자들과 이번 주말에도 만난다”며 “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감동 그 자체”라고 고백했다.
- 콘서트나 행사가 끝나면 즉석 팬미팅을 한다고 들었다.
“콘서트가 됐든 행사가 됐든 끝나고 나면 팬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팬들이 나를 몇 분이라도 직접 보고 싶어 비행기 타고 배 타고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데 무대를 잠깐 보고 헤어지면 아쉬움이 클 것 같아 밤늦게라도 즉석 팬미팅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한동안 그런 팬미팅을 하지 못해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 크다. 만남의 자리를 가질 수 있는 이벤트를 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송가인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더 좋아해 달라고 말이다.”
[홍태식]
“또 다른 둥지이자 부모님 같은 존재다.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라고 할까. 그분들이 있어 엄청 든든하다. 언제나 큰 힘이 된다. 팬덤 색상인 핑크색 옷을 다 함께 입고 와 같은 색 풍선과 야광봉을 흔들며 신나게 응원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그 고마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 팬들의 응원 구호 ‘엘오브이이(LOVE) 사랑해요 송가인’을 아는가.
“물론이다. 공식 팬카페를 통해 팬들이 만든 응원 구호다. 손가락으로 엘오브이이(LOVE) 모양을 만들면서 ‘사랑해요 송가인’이라고 외치는 팬들의 함성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고 든든하다.”
- 예정된 콘서트 계획이 있나.
“지금은 콘서트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당장 시급한 것이 음반 준비다. 콘서트는 새 앨범이 나오고 나서 코로나19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계획할 수 있을 것 같다.”
새해에는 팬들과 자주, 많이 만나고파
[홍태식]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팬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 새해에는 팬들을 더 많이 자주 만나고 싶다. 팬미팅도 자주하고 싶다. 내 팬들은 연령대가 높다. 그분들에게는 시간이 없기에 나를 더 많이, 자주 보여드리고 싶다. 팬카페에서 돌아가신 분의 소식을 접하니 마음이 몹시 아프다. 행사나 팬미팅에 참석해 나와 같이 춤추고 즐기던 분들 가운데 거동이 불편해진 팬도 있다. 아프고 입원하시고 돌아가신 팬들의 소식을 ‘카페지기(팬카페 운영을 총괄하는 관리자)를 통해 접하곤 하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어떤 팬이 암에 걸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영상편지를 보내드리기도 했다. 내 편지가 그분의 삶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힘이 되길 바라서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닿아서인지 암 치료를 잘하고 온 분도 있다. 그분이 ’절반은 의사가 낫게 해주고, 남은 절반은 가인이가 낫게 해줬다’고 하시더라.”
- 팬들에게 힘이 되고자 스스로도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나.
“비대면 상황이 길어지니 영양제를 챙겨 먹어도 기운이 나지 않는다. 박수소리를 듣고 싶은데 공연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 사태가 좀 누그러져 오프라인 행사를 두 번 정도 했다.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왔더라. 박수 소리, 환호 소리를 들으니 막 신이 나고 기운이 솟았다. 팬들과 어우러져 노래하면서 ‘박수 한번 주세요’ 하니까 뜨거운 함성과 박수갈채가 나왔다. 30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했는데도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팬들을 만나면 그렇게 에너지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팬들과 좋은 기운을 주고받으면서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다.”
- 살다 보면 방황하거나 길을 잃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마음을 다잡는 노하우가 있을 법하다.
“‘긍정 마인드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착하게 살자, 지금 힘든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힘든 일이 많을 거야, 내가 좋은 사람이 돼야 해, 나에게 좋은 사람이 오도록.’ 이런 생각을 계속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 인기를 얻으면 초심을 잃기 쉽다. 송가인 씨의 경우는 어떤가.
“변한 게 없다.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넌 어쩜 그대로냐?’ ‘방송에서 뜨면 연예인병에 걸린다는데 예나 지금이나 어쩜 이리 똑같으냐?”며 놀라워할 정도다. 방송을 보고 내 이미지가 억세다고 하는 분도 있다. 그런데 어쩌겠나. 나는 나다.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내가 아닌 것처럼 내숭 떠는 건 못 하겠다.“
- 앞으로 어떤 가수가 되고 싶나.
“이미자·심수봉·주현미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 노래 실력은 물론 사적인 영역에서도 아무런 잡음 없이 한길을 걷는 한결같은 그분들이 존경스럽다. 이미자 선생님 같은 국민가수, 진짜 노래 잘하는 가수가 되는 게 인생 최대의 목표다. 그리고 10년 후쯤엔 이미자 선생님이나 심수봉 선생님처럼 후배들의 롤 모델이 될 만한 가수가 돼 있으면 좋겠다.”
#송가인 #트로트여신 #어게인 #국민가수 #신동아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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