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 중에서도 실내악, 특히 현악 4중주를 즐겨 듣는 신 화백은 음반 7000여 장을 소장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즐기는 생활이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오래된 전축에 아끼는 음악가의 LP판을 올려놓고 크림을 타지 않은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인다.
대화 도중에도 아끼는 음악가의 연주를 잠깐씩 들려주고, 책들을 꺼내 보이며 음악가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는 그의 모습엔 고매한 교양인의 거드름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만화가이다 보니 음악가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알아요.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책을 썼는데, 전문가들도 가끔 내 책을 재밌게 읽었다고 해요. 하지만 난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죠. 내가 설사 연주자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 화백은 함북 회령이 고향이다. 그는 경성중학교 시절 스쿨밴드에서 여러 악기를 다뤄봤다. 바이올린, 트럼펫, 클라리넷…. 전문적으로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어수룩하게 익혔지만 대학 때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발판이 됐다. 서울대 예과에 진학한 그는 의대, 공대, 자연과학대 학생들이 모여 만든 서울대 사이언티스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제2 바이올린을 맡았다. 비로소 전공자의 지도를 받았고, 베토벤과 하이든 교향곡 중 비교적 쉬운 곡들을 연주했다.

신 화백의 스케치북은 공연장에서 그린 연주자들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벽에 걸린 그림들은 그가 공연장에서 한 스케치를 확대하고 채색해 완성한 작품들이다. ‘돌체’ 김종수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신 화백(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