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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그물코에 꿰인 삶 그 희망의 노래

경북 울진

  • 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그물코에 꿰인 삶 그 희망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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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조용하다, 헛소문처럼

장마비 양철지붕을 후둘기다 지나가면

낮잠도 무성한 잔물결에 부서져 연변 가까이

떼지어 날아오르는 새떼들

보인다, 어느새 비 걷고



그을음 같은 안개 비껴 산그늘에는

채 씻기다만 버드나무 한 그루

이따금씩 원동기소리 늘어진 가지에 와 걸리고 있다

바람은 성채(城砦)만한 구름들 하늘 가운데로 옮겨놓는다

세월 속으로, 세월 속으로, 끌고 갈 무엇이 남아서

적막도 저 홀로 힘겨운 노동으로

문득 병든 무인도를 파랗게 질리게 하느냐

누리엔 놀다가는 파도가 쌓아놓은

덕지덕지 그리움, 한 꺼풀씩 벗어야 할 허물의

쓸쓸한 시절이 네 마음속 캄캄한 석탄에 구워진다

뼈가 휘도록, 이 바닥에서, 너는,

그물코에 꿰여 삶들은, 모른다 하지 못하리

흉어(凶漁)에 엎어져도 우리 함께 견뎠던 여름이므로

키 큰 장다리 제 철 내내 마당가에 꽃을 피워 더 먼

바다를 내다보고 섰는데

스스로 받아 챙기던 욕망은 다 그런 것일까

멈칫멈칫 나아가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자다깨다 자다깨다 눅눅한 꿈들만 어지럽게

헤매며 길을 잃는다

그래도, 눈을 들어 보리라, 저 산들과

산들이 끊어놓은 자리

다시 이어져 달려 나가는 눈물겨운 수평선을

- 김명인 시 ‘후포’ 전문

내 모래알의 시간

천형(天刑) 같은 가난에 의해 그물코에 꿰인 삶을 살면서도 눈물겨운 수평선에서 희망을 엿보던 후포의 시간들이 그의 시가 되고 그의 생존이 됨을 알 수 있다. “…무섭게 다가왔던 가난에는 언제나 속수무책으로 방기(放棄)되었던 사람들의 마을. 한낱 생존의 싸움에서조차 무기력하게 마침내 체념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던 소박한 이웃들의 터전이 나의 고향”이었다고 토로하는 시인은 “멀리 뻗어나가는 수평선은 이곳에 내가 갇혀 있음을 역설로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어디론가 끝없는 동경으로” 자신을 이끌었다고 고백한다.

최학

1950년 경북 경산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대학원 졸업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창작집 ‘잠시 머무는 땅’ ‘식구들의 세월’ 등

장편소설 ‘서북풍’ ‘안개울음’ ‘미륵을 기다리며’ ‘화담명월’ 등


횟집들이 줄지어 서 있고 바다를 찾아온 관광의 차들이 포구 주차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오늘의 후포에는 시인이 거느렸던 그 과거의 시간들마저 지워지고 없다. “이 우주적인 바다의 어디에 내 모래알의 시간이 흔적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하고 오늘의 후포에서 시인이 탄식조로 자문하지만 이는 곧 살아 있는 모든 이가 저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 되기도 한다.

신동아 201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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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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