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호

로봇 심판도 인간 심판도 100% 믿을 순 없어

[베이스볼 비키니] 초구 판정에 타자 운명 절반은 결정된다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ag.com

    입력2022-08-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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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확실히 넓어진 스트라이크존 판단

    • 키, 팔 길이 달라 로봇도 판단 어려워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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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공은 67.4% 확률로 ‘볼’인 공이었습니다. ‘겸병필승’(謙兵必勝·겸손해야 반드시 이긴다)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상황이었던 건 맞지만 한화 이글스 주장 하주석(28)이 억울한 면이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주석은 6월 16일 안방 경기에서 0-2로 끌려가던 8회말 1사 1루에 타석에 들어서 롯데 자이언츠 구승민(32)이 던진 초구를 가만히 지켜봤습니다. 왼손 타자 바깥쪽 낮은 코스로 들어온 이 공을 볼이라고 판단했던 것. 반면 경기 진행을 맡은 송수근(42) 주심 판정은 스트라이크였습니다. 하주석은 곧바로 타석을 벗어나 심판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한화 이글스 주장 하주석은 6월 16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홈 경기에서 심판의 스트라이크 볼 판정에 과격하게 항의해 퇴장당했다. [동아DB]

    한화 이글스 주장 하주석은 6월 16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홈 경기에서 심판의 스트라이크 볼 판정에 과격하게 항의해 퇴장당했다. [동아DB]

    이 경기를 중계한 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도 “왼손타자가 볼 때는 굉장히 먼 코스였다”면서 “본인의 의사를 어필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위원도 2분 30초 뒤에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은 몰랐을 겁니다. 하주석은 구승민의 포크볼에 헛스윙 삼진을 당한 뒤 방망이를 그라운드에 내리쳤습니다. 송 주심이 퇴장 명령을 내린 뒤에도 분을 참지 못하고 헬멧까지 벗어던졌습니다.

    하주석 본인이 헛스윙을 해서 삼진을 당한 거니까 초구 판정이 이 타석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날 전까지 올해 프로야구에서 초구가 볼인 타석은 OPS(출루율+장타력) 0.793으로 끝난 반면 스트라이크였을 때는 0.588로 기록이 내려갔습니다. 아주 거칠게 설명하면 초구가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에 따라 80점짜리 타자가 59점짜리 타자로 바뀐 셈입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통계 업체 ‘스포츠투아이㈜’에서 운영 중인 투구추적시스템(PTS·Pitch Tracking System)에 따르면 구승민의 손을 떠나 시속 146km로 날아온 이 공은 홈플레이트 중앙에서 3루 쪽으로 26.1cm 떨어진 위치에 들어왔습니다. 홈플레이트 폭은 약 43.2cm(17인치)입니다. 따라서 중앙에서 그 절반인 21.6cm 이상 떨어져 들어오면 그 공은 높이에 상관없이 ‘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 공은 지면에서 약 41cm 높이로 홈플레이트 옆을 지나갔는데 이 정도면 홈플레이트 한가운데로 들어와도 보통 볼 판정을 받습니다.



    ‘보통’이라는 건 어느 정도 비율일까요? PTS로 측정한 투구 데이터에 실제 심판 판정을 결합해 머신러닝 모형을 만들면 투구 위치별로 스트라이크 판정 확률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일반화 가법 모형(GAM·Generalized Additive Models)’이라 부릅니다. 모형을 통해 분석해보면 6월 28일까지 투구 위치별 스트라이크 확률을 따져보면 하주석이 불만을 표했던 그 위치로 들어온 공에 왼손타자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확률은 32.6%였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67.4%는 볼 판정을 받았던 겁니다. 6월 28일이 기준인 건 이번 시즌 전체 일정 가운데 50.4%를 소화하면서 반환점을 돈 날이기 때문입니다.

    스트라이크존은 넓어졌다

    2021 vs 2022 프로야구 스트라이크존 변화. [황규인 기자]

    2021 vs 2022 프로야구 스트라이크존 변화. [황규인 기자]

    올해 3월호 ‘베이스볼 비키니’를 통해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스트라이크존 정상화’를 표방했습니다. 야구 규칙이 정의하고 있는 것보다 스트라이크존을 좁게 봤으니 이제 넓히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정말 넓어졌을까요? 이 5개월 전 기사에 KBO에서 “스트라이크존을 넓히자”고 외치면 실제로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진 과거 사례가 있다고 썼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에서는 흔히 스트라이크 판정 비율이 50% 이상인 곳을 해당 리그에서 사용하는 ‘스트라이크존’이라고 정의합니다. 스트라이크 판정 비율이 50%가 넘어가는 곳 넓이를 계산해 보면 지난해보다 오른손타자는 약 316㎠, 왼손타자는 295㎠가 넓어졌습니다. 네, 감이 잘 오지 않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야구공 지름이 7.23㎝라고 가정하면 야구공 하나가 차지하는 넓이는 약 41㎠ 입니다. 따라서 오른손타자는 야구공 7.7개, 왼손타자는 7.2개만큼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서리에 공을 걸치면 홈플레이트 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는 야구공이 7개 정도 들어갑니다. 실제로 지난해와 스트라이크 확률 차이를 보이는 부분을 살펴보면 예전보다 높은 쪽으로 공 한 개만큼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그래픽 참조). 허운 KBO 심판위원장은 시즌 개막 전 “그동안 심판들이 높은 공에서는 특히 스트라이크존을 좁게 가져갔다. 이 부분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실제로 이 이야기처럼 심판들이 예전이라면 ‘조금 높다’고 생각했을 공에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리기 시작한 겁니다.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지면 당연히 볼넷이 줄어듭니다. 지난해 6월까지는 전체 2만8105타석 가운데 11.1%인 3104타석이 볼넷으로 끝났습니다. 올해 6월 28일까지는 2만8105타석 중 8.8%(2471개)만 볼넷이었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볼넷이 21% 줄어든 겁니다. 삼진도 지난해 18%에서 올해 18.8%로 4.7%가 늘었습니다. 삼진이 볼넷만큼 늘지 않은 건 스트라이크존이라고 생각하는 곳으로 공이 들어오면 타자들이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휘두르기 때문입니다. 볼넷을 얻으려면 가만히 공을 지켜봐야 하지만 삼진은 5분의 4 정도가 방망이를 휘둘러서 생긴 일입니다.

    “경기마다 7~8개는 오심”

    6월 12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4회초 두산 김태형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와 주심에게 항의하고 있다. [뉴스1]

    6월 12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4회초 두산 김태형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와 주심에게 항의하고 있다. [뉴스1]

    ‘전체적으로 보면’ KBO 소속 심판은 사무국 의도대로 존을 조정할 수 있을 정도로 빼어난 스트라이크 판정 실력을 자랑합니다. 이에 대해 야구인들은 “한국에는 ‘프로선수’ 출신 심판이 많아 아예 심판으로 야구 경력을 심판으로 시작한 해외 심판보다 ‘선구안’이 뛰어나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주석에게 퇴장 명령을 내린 송 심판 역시 1군 무대 30경기 출전 경험이 있는 프로선수 출신입니다.

    그러나 공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이 기간 TV 중계 화면에서 볼 수 있는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한 공은 총 1만6992개였습니다. 이 중 심판이 스트라이크라고 판정한 공은 1만4764개로 86.9%였습니다. 관점에 따라서 13.1%는 ‘오심’이라고 할 수도 있던 셈입니다. 반대로 존 바깥으로 들어온 공 4만1329개 가운데 약 10%인 4162개는 하주석 케이스처럼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선수들 불만도 여전합니다. 이날까지 스트라이크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당한 선수는 하주석을 포함해 총 6명으로 이미 지난해(4명)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그렇다고 심판도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닙니다. 한 심판은 “하루에 많으면 공 300개를 보는데 경기마다 7, 8개는 실수할 수밖에 없다”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내린 판정이 마음에 걸리면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내가 그 공을 잘못 봐서 이런 결과가 나왔나’ 자책하곤 한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지난해 10월 1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5회말 2사 1,3루 상황 삼성 2번타자 구자욱이 송수근 주심의 볼판정에 헬멧을 벗어던지며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0월 1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5회말 2사 1,3루 상황 삼성 2번타자 구자욱이 송수근 주심의 볼판정에 헬멧을 벗어던지며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뉴스1]

    “로봇 심판이 그렇다더라”

    게다가 TV 중계 기술이 발전하고 마음만 먹으면 PTS 데이터도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되면서 팬들 비난도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올해로 프로 무대 10년차인 김선수(38) 심판은 “중압과 압박이 심하다. 상처도 많이 받는다. 경기장에서는 물론 TV로 경기를 볼 때도 동료 심판이 욕 먹는 걸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김 심판은 지난해부터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스트레스를 이겨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간 심판’이 ‘로봇 심판’의 권위에 기대는 일도 펼쳐지고 있습니다. 11년차 유덕형(39) 심판은 “투구자동판정시스템(ABS)을 시범 운영 중인 구장에서 퓨처스리그(2군) 경기를 진행하면 마음이 편하다”면서 “과거에 곧잘 스트라이크 판정에 항의하던 선수도 이 시스템이 있는 구장에서는 뭐라고 말을 못 한다. 여전히 어필하는 선수도 있지만 ‘로봇 심판이 판정한 것’이라고 답변하면 그대로 수긍하더라”라고 말했습니다.

    KBO는 2군 구장 가운데 마산(NC 다이노스), 이천(두산 베어스), 함평(KIA 타이거즈)에서 ABS를 운영 중이며, 이르면 2024년 1군 무대에도 로봇 심판을 도입한다는 계획입니다. 메이저리그도 같은 해에 로봇 심판 도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저처럼) 인간 심판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리는 게 맞다는 팬도 없지는 않지만 이제 로봇 심판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셈입니다.

    ‘어떤 위치로 들어오면 스트라이크라고 판정할 것이냐’는 문제는 당연히 로롯 심판이 인간 심판보다 더 정확한 답을 알고 있습니다. 단, 질문을 ‘어떤 공이 스트라이크냐’라고 바꾸면 생각보다 복잡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트라이크는 기본적으로 ‘타자가 칠 수 있는 공’입니다. 그리고 ‘칠 수 있다’는 기준에 맞추려면 야구 규칙에 나온 스트라이크존 규정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로봇 심판이 있는 2군 경기에서도 ‘존이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스트라이크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지금까지는 키가 큰 선수는 스트라이크를 판정할 때 높낮이뿐 아니라 폭도 더 넓게 잡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키가 크면 팔이 길다는 점을 고려해서 스트라이크존을 설정했던 겁니다. 이렇게 타자에 따라서 스트라이크존 폭을 달리하는 게 옳을까요? 아니면 높낮이만 바꾸는 게 맞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규칙에 나와 있는 대로 모든 타자에게 똑같은 스트라이크존을 적용하는 게 옳을까요?

    또 확률은 드물겠지만 여러 이유로 로봇 심판이 엉뚱한 공을 스트라이크라고 판정했을 때 인간 심판은 이를 바로잡는 게 옳을까요? 아니면 로봇 심판 판정을 그대로 따르는 게 옳을까요? 애매한 공에 인간 심판이 로봇 판단과 정반대 선택을 내리면 어떻게 될까요? 애매하고 엉뚱한 건 어떤 위치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요? 로봇 심판을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하려면 인간들이 부지런히 머리를 맞대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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