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통령’에서 전천후 멘토로

• “수정란부터 100세까지 보는 정신과 전문의”

• 소아 정신 건강 위해 몸 바친 30대

• 마흔넷에 대장암 수술 뒤 인생 2막

• “다시 주신 건강, 더 좋은 일 하라는 뜻”

• “관용적 사회 위해 한 방울 힘 보태고 싶어”

굳이 답을 듣지 않아도 얼마나 바쁠지 짐작이 갔다. 진행하는 방송만 4건, 내년 연말까지 잡혀 있는 상담 일정, 신간 출판 준비, 유튜브 방송까지. 인터뷰를 요청하면서도 승낙이 어려우리란 예감이 강하게 스쳤다. 몇 번의 통화가 오간 끝에 인터뷰 날짜가 잡히자 시혜처럼 느껴진 것도 과장이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이하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57) 박사는 대한민국의 가장 바쁜 사람 리스트에서도 상위권에 이름 올라 있을 법한 인물이다. 최근 2년 사이 그의 위상은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2000년대 초반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로 EBS ‘60분 부모’, SBS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등에 출연해 10여 년간 솔루션을 제시하고, 일간지에 칼럼을 쓸 당시엔 ‘육아 멘토’의 이미지가 강했다.

2016년부터 방송을 접고 본인의 클리닉에서 상담에 집중하며 출간에만 몰두하던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건 2020년 초였다. 채널A 제작진의 제안을 받아 일반인 부모와 자녀의 관계 상담 및 해결책을 제시하는 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출연을 결정했다. 5월 첫 방송 이후 2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인기는 신드롬에 가깝다.

방송가에서 그를 찾는 프로그램의 대상 연령대도 점차 확대됐다. 최근 1년 사이 후속으로 생긴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KBS ‘오케이? 오케이!’ 등 3건의 프로그램은 모두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 개인, 부부,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고민에 귀 기울이는 오 박사를 대중은 이제 ‘국민 소통 전문가’라 부른다.

50번째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일정과 일정 사이 잠깐의 인터뷰 시간이 주어졌다. 7월 12일 오후 6시께 서울 강남에 자리한 그의 상담실에 약속 시각보다 10여 분 일찍 도착했다. 다섯 평 남짓한 대기 공간 밖으로 원장실 안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상담 중인가 했으나 직원은 “전화로 업무를 보시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을 1분도 허투루 쓸 수 없을 만큼 바쁜 듯했다.



오은영 박사는 방송에서 보던 미소 그대로 취재진을 맞았다. 원장실은 한쪽 벽면에 장난감과 인형으로 가득 찬 책장, 테이블을 중심으로 마주 놓인 커다란 소파 두 개를 제외하곤 특별할 것 없이 정갈한 공간이었다. 다만 2003년부터 운영된 곳이라기엔 어제 꾸민 듯 최신식인 점이 의아했다. 오 박사는 “찾아오는 환자도 방문객도 늘어 원래 운영하던 사무실 이외에 아래층에 공간을 하나 더 마련했다.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머물러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반달 눈웃음을 지었다.

인터뷰 요청 계기는 6월 중순 열린 현대자동차 강연이다. 800여 명의 직원이 오 박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강연장에 몰려들었고, 370여 사전 질문 가운데 5가지 주제를 두고 소통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2시간 남짓 이어진 강연을 처음부터 함께하며 마지막 질문까지 던졌다. 오은영 박사에게도 특별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마음 건강을 챙기는 기본 체계는 개인에서 출발한다. 개인이 개인을 챙기고, 부모가 자식을 챙기고, 자식이 부모를 챙기는 체계는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국가와 정부, 기관이 국민을 돌보는 체계도 이제는 형성이 됐다. 이번 강연을 통해 회사라는 조직이 직원을 나처럼, 가족처럼 대해야 회사도 발전한다는 걸 인지하는 수준까지 왔다는 걸 느꼈다. 직원을 생산성 높이는 도구로 대하지 않고, 무형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적 변화가 느껴져 뿌듯했다. 정의선 회장께서 자신도 금쪽이라고 하자 직원들이 웃으며 편하게 받아들이더라. 그런 변화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소아·청소년은 물론 나이와 성별을 떠나 사회 구성원 모두의 정신 건강을 다루는 전천후 정신과 전문의로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최근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대중적 이미지가 바뀌었다는 걸 체감한다. 그런데 난 원래부터 정신과 의사였다. 우리나라도 미국도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다음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과정을 더 밟을 수 있다. 일반 정신과 의사는 18세 이상 환자를 보지만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는 모든 연령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스개로 ‘저는 수정란부터 100세까지 봅니다’라고 말한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으로 알려졌으나 20년 전부터 개인 상담에서 아이 비중이 6이라면 어른이 4 정도로 적지 않았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는 말하자면 자격증이 2개인 셈이다.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얻고 나서 한 번 더 공부해야 하니까 선택하는 이가 적고, 수련을 하는 병원도 몇 군데 없다. 1년에 뽑는 숫자도 1명 남짓이라 선호도도 떨어진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전공의를 거쳐 서울삼성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전임의 과정을 마친 오은영 박사의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번호는 50번이다. 그는 “앞에 49명 가운데 연로하셔서 돌아가시거나 은퇴한 분도 많고, 뒤로도 수가 많지 않다. 내가 잘나서라기보다는 전문의 수가 적고, 2000년대 육아 전문가로 방송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대중이 ‘아이들 보는 선생님’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 정신보건 사업에 청춘 바쳐

한때 오 박사는 아동 심리상담사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알고 보면 그는 어린이 정신 건강에 누구보다 진심인 의사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과정 수료 직후 오 박사는 서른두 살 때인 1996년 아주대 의대 정신과 교수로 채용됐다. 정신보건법이 제정된 지 1년, 정신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와 움직임이 가시화되던 때였다. 오 박사의 가슴 깊은 곳에서도 ‘어린이 정신보건 사업에 앞장서야겠다’는 불길이 치솟았다.

“비용에 구애하지 않고 아이들이 도움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체계를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컸다. 아주대가 경기도에 있으니까 ‘경기도 정신보건 사업’이라는 게 처음 시작됐다. 당시 이인제 경기도지사를 찾아가 ‘이런 거 하셔야 한다’고 설득했고, 어린이 정신보건 사업 추진을 맡게 됐다. 우리나라 최초였다.”

시스템을 만들려면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오 박사가 우선 시작한 일도 데이터 수집이다. 경기도 오산시 내 8개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정신 건강 및 행동 발달 사항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담임 및 학부모를 일일이 찾아가 설문지를 돌렸고, 미진한 부분은 개별적으로 가정을 방문해 직접 기록했다. 수거율 98%. 그는 “이 데이터로 미국 학회에 가서 발표했더니 많은 교수가 놀라워하며 캘리포니아에 와서 좀 해달라더라”며 웃었지만 상당히 고생스러운 작업이었을 듯했다.

“오산시장님이 보건소 안에 공간을 할애해 주셨다. 어떨 때는 집에도 못가고 거기서 밤을 새며 일했다. 어느 날 ‘애들이 부모도 없이 시장판을 돌아다닌다’는 신고를 받고 간호사와 출동했는데, 그 집에 가보니 아이 넷이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맞아주던 기억이 난다. 학대는 아니었으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모든 게 추억이다.”

오 박사가 교수로 일하면서 정부의 보건사업에 개인 시간을 할애해 자기 일처럼 뛰어든 건 그 일이 좋아서였다. 좋아서 한 일은 변화를 낳았다. 오산시에서 출발한 해당 사업은 경기도 전역으로 퍼졌다. 경기 지역사회 정신보건 사업에는 반드시 어린이 정신건강센터가 들어가게끔 규정이 마련됐고, 이후 전국으로 확대됐다.

30대 혈기를 불태운 오은영 박사는 2003년 교수를 그만두고 개원했다. 조직 안에서 역량을 발휘했으나 그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엇이 있었다. 그는 당시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나를 따르는 사람들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뤄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매일 환자를 진료하는 일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외향적인 오 박사의 성향상 약간의 아쉬움이 가슴 한 편에 자리했다.

그러던 차에 2005년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출연 제안이 왔다. 체벌과 강압적 훈육이 만연하던 시절, 오 박사는 올바른 훈육에 대한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 나섰다.

“칸트는 ‘인간은 교육받지 않으면 인간답지 않다’고 했다. 교육은 ‘배움’을 뜻하는 것이고, 인간은 배워야 한다.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다. 그 시절 부모들은 중요한 주제일수록 ‘따끔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소리를 지르고, 다그치며, 체벌했다. 대다수 부모가 아이를 버릇없게 키우지 않기 위한 최선책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고방식은 내가 꼭 바꾸고 싶었다.”

선한 의도로 행한 체벌일지라도 누군가에겐 평생의 상처로 남는다. 오 박사는 그 상처가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수십 년 간 상담 현장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그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인간관계의 출발점이며, 아이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며 부모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인간관계는 협동, 협조하는 관계다. 굴복, 복종을 요구하는 관계여서는 안 된다. 부모와 자녀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도 마찬가지다. 무서워서 꼬리를 내리면 마음 안에 ‘억울함’이 생긴다. 대한민국 국민 안에는 억울함이 너무 많다. 이것을 풀려면 변해야 한다. 간혹 ‘사람은 안 바뀐다’는 반론도 제기하신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은 나의 가장 중요한 철학이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일한다.”

합리적 부모, 독립적 아들

지금 오은영 박사는 풍채가 좋고 건강해 보이지만 어린 시절 32주 만에 1.9㎏의 미숙아로 태어나 부모 걱정을 깨나 끼쳤다. 기질도 까다로워 잘 울었고, 편식이 심해 다섯 가지 음식 외엔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체구도 작았고, 잦은 병치레로 소아과 단골손님이었다. 그런 아이를 부모는 넉넉한 마음으로 키웠다. 딸의 명석함을 알아본 아버지는 그 시절 부잣집 아이들만 다니던 유치원에 딸을 입학시켜 배움에 눈뜨게 했고, 어머니는 생선 한 종류라도 먹기만 한다면 대여섯 가지로 요리해 식탁에 올렸다.

“부모는 부모의 위치에서 아이에게 해줘야 하는 역할과 사랑이 있다고 늘 말씀드리는데, 그게 우리 부모님께 받은 영향이다. 아버지는 합리적인 분이셨고, 어머니는 사랑이 넘치셨다. 그러니 어릴 때 억울한 일이 많지 않았다. 늘 당당했고, 청파동에서 남영동까지 30분 거리를 유치원 때부터 씩씩하게 걸어 다녔다. 지금 92세이신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데 매일같이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눈다.”

합리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이니 자기 자식도 그렇게 키웠으리라.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오은영 박사와 자녀의 관계’가 어떤지 물었다. 그는 “집에서는 허당 엄마”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진 못했다. 그러나 일을 싸들고 퇴근하진 않았다. 집에서는 오로지 ‘엄마’의 역할에 충실했는데, 또 그리 완벽한 엄마는 아니었다. 집에서 입는 옷에 구멍이 난 걸 보고는 아들이 ‘오 박사님이 집에서 이러고 사는 거 아무도 모를 거야’라고 하더라. 곁에서 아버지가 ‘너는 돈도 버는 애가 좀 사 입지 그러냐’라고 하셔서 같이 웃었다.”

오 박사는 자식을 키울 때 두 가지 원칙은 꼭 지켰다. 때리지 않을 것, 노여워하지 말 것. 그렇다고 오냐오냐하며 키우지는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풀었다. 20대가 된 아들이 가장 좋아하면서도 어려워하는 사람은 엄마 오은영이다. 그는 “TV에서 내가 말한 철칙과 기준을 지키며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마음이 편하고, 주변 사람과 두루 잘 지내는 어른으로 컸다”고 말했다.

인생에 굴곡이라고는 없었을 것 같은 오 박사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08년 마흔넷에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료하면서도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않던 시절, 어느 날 변의 굵기가 가늘어져 이상함을 느꼈다.

“그 무렵 강남 세브란스에서 동문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 프로모션을 했다. 맨 마지막에 복부 초음파를 보는데 후배가 ‘악성 종양 가능성이 93%’라더라. 사이즈가 크고 대장암 전이 가능성도 높아서 나흘 뒤 바로 수술이 잡혔다. ‘전이됐을 경우 길어야 3개월’이라는 말에 오히려 차분해지더라.”

슬퍼할 겨를도 없이 진료를 봤다. 1~2년 전부터 예약을 잡고 생업을 뒤로한 채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러면서 생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중요한 계좌와 각종 증서를 남편에게 넘기고, 맡았던 일들의 뒤처리를 부탁했다. 남편에게 “내가 죽으면 혼자 너무 아파하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라”고도 말했다. 연로한 부모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작별인사를 고했다. 마지막까지 그가 걱정한 사람은 아들이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복도가 50m도 되지 않았는데 그 마지막 순간에 아들 얼굴이 둥근 해처럼 떠오르더라. 아들 이름을 목 놓아 부르짖으며 울었다. 일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던 것에 후회가 밀려와 ‘한 달 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담낭암처럼 보였던 그것은 콜레스테롤 폴립(용종)이었고, 대장암은 초기라 수술이 잘 마무리됐다. 수년간 추적검사를 했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아직도 그때의 충격이 커서 대장 내시경 검사 전에 마시는 물약 통만 봐도 구토 증세를 일으킨다고. 차라리 3일 굶는 편을 택할 정도로 그에게는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내일 눈뜨면 또 하루를 더 살자

오 박사는 자신이 다시 건강을 찾은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남은 삶은 더 좋은 일을 하라는 신의 뜻이 아닐까 싶었다. 원래 해오던 상담도 일 이상의 사명감을 갖게 됐고, 사람들의 마음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치료받아야 하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전보다 더 이해됐다. 어떤 모습이든 인간의 삶은 모두 소중하다. 말기암 환자인 부모가 ‘아이한테 뭘 남겨야 될까요?’라고 물을 때면 ‘당장 오늘 하루를 더 삽시다’라고 말해 드린다. 우리는 모두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 이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일 눈뜨면 또 하루를 더 살자’는 마음으로 매순간을 살아가면 된다.”

모두가 ‘위기’라고 말하는 시대다. 2년여 코로나19 팬데믹이 휩쓸고 간 자리마다 상처가 남았다. 생계와 가족, 건강과 관계를 잃은 사람이 넘친다. 고통을 딛고 일어나려는 때 글로벌 경제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코로나19 재유행까지 번졌다. 오 박사는 삶의 현장으로 찾아가 작은 영웅들의 삶과 마음 건강을 챙기는 방송 프로그램 KBS ‘오케이? 오케이!’를 7월부터 시작했다.

“촬영차 광장시장과 세브란스 암병동을 찾아갔다. 각자의 자리에서 에너지를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상인, 아픔을 겪는 입원 환자, 보호자들과 생활인으로서의 고민을 같이 얘기했다. 그런데 하나같이 나를 격려하고 건강을 염려해 주시더라. 그날 새벽 3시에 일어나 이튿날 새벽 2시까지 23시간을 일하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내가 받은 사랑을 갚는 거라 생각한다.”

현장에서 오 박사는 자신을 향한 대중의 따뜻한 시선에 고마움을 느꼈다. 광장시장에서 30대 여성은 2시간 반을 기다려 산 꽈배기를 촬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에게 전했고, ‘똥 냄새 날까 봐’ 그의 곁에 쉽사리 가지 못하던 암병동 청소 아주머니는 흔쾌히 사진을 찍어준 그에게 뜨끈한 떡을 건넸다. 오 박사는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엄청 울었다”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로 일한 지도 벌써 30여 년이 흘렀다. 오 박사가 정신과 의사로서 살아생전 이루고 싶은 직업적 소명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인간도, 사회도 아프고 힘든 시기가 있지만 그걸 잘 겪어나가면 성장한다. 다만 그 방향이 좋은 쪽으로, 사람을 좀 더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우리나라가 좀 더 수용적이고 관용적인 개인과 사회를 형성해 나가는 데 한 방울의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마지막 대답을 듣고 나니 2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이분의 시간당 상담료가 얼마였더라. 그야말로 금쪽같은 시간을 운 좋게 내어 받았다.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말을 이어가던 그와의 시간으로 삶의 에너지가 다시금 충전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