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WHO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 선정
연간 60만L 바이오 의약품 생산 역량 인정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 등 협력
7월 외국 교육생 120여 명, 서울대에서 교육
한국이 주체가 돼 글로벌 인력 키우는 과정
비영리 국제기구 국제백신연구소(IVI)는 2000년부터 글로벌 백신 인력 교육을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WHO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 교육과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대에서 IVI 주최로 세미나를 진행하는 모습. [보건복지부]
정부도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7월 1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 모두 발언에서 “14주간 감소세를 이어오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이번 주 들어 다시 증가하고 있다. 최근 면역을 회피하는 변이의 검출률이 높아지고 재감염도 늘고 있다”며 유관 부서에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하반기 코로나19 재유행 가능성이 높아지자 전 국민 코로나19 백신 4차 접종 논의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방역 당국은 2월부터 60세 이상 고령층과 면역 저하자, 요양병원 등 감염 취약 시설에 입원한 환자 및 종사자를 대상으로 4차 접종을 실시한 데 이어 50대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국가 간 백신 불평등 해소 일환
전 세계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백신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창기에 어느 나라가 먼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느냐 하는 문제는 국가 간 자존심을 건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2021년에 이르러 아스트라제네카(영국), 화이자(독일·미국), 모더나(미국)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속속 코로나19 백신에 성공했다.이후 세계 각국은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국력에 따라 자국민 수만큼 백신을 확보한 나라와 아닌 나라가 갈렸고, 국가 간 백신 불평등 문제가 불거졌다. 미국과 유럽, 동아시아 국가들은 발 빠르게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성공해 1차 접종을 실시했다. 추가 접종 이후 일부 국가는 야외 마스크 해제를 허용했다.
반면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 저소득국은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빈곤, 질병 등 세계 불평등 문제를 조명하는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6월 말 기준 코로나19 백신접종 완료율은 UAE 100%, 포르투갈 96%, 싱가포르 92% 등을 기록했으나 나이지리아 13%, 에티오피아 25%에 불과하다. 현재 60% 이상으로 접종률이 올라간 필리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 국가들도 불과 1년 전에는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애를 먹었다.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세계보건기구(WHO)는 중·저소득국 백신 자급화를 위한 노력에 나섰다. 지난해 6월 21일 WHO는 mRNA 기술이전 허브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컨소시엄을 지정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위치한 바이오 제약기업 바이오백(Biovac)과 바이오 벤처기업 아프리겐(Afrigen)을 비롯해 대학연합과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 등이 참여했다.
참여 주체는 백신 생산시설 인프라를 구축하고, mRNA 백신 생산기술을 중·저소득국에 전수하는 역할을 한다. 수혜국은 아프리카 6개국(이집트, 케냐, 나이지리아, 세네갈, 남아공, 튀니지), 남미 2개국(브라질, 아르헨티나), 아시아·유럽 5개국(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베트남, 세르비아) 등이다.
mRNA 기술이전만큼 중요시되는 분야는 인력양성이다. 기술이전을 하더라도 생산인력 없이는 백신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WHO는 지난 2월 23일 여러 후보 국가 가운데 대한민국을 ‘WHO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이하 WHO 인력양성 허브)로 선정했다. 이는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된 ‘글로벌 백신 허브화’ 정책 아래 국회와 정부가 긴밀하게 협력해 얻어낸 성과였다.
2월 23일 권덕철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화상으로 열린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 지정 발표에 앞서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과 대화하고 있다. WHO는 이날 온라인 브리핑에서 한국을 ‘WHO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국내 기업 백신·바이오 생산능력 인정받아
한국은 지난해 11월 WHO 인력양성 허브 공고가 난 이후 12월에 참여의향서를 제출했으며 정부는 강력한 지원 의지를 밝히는 서한을 WHO 사무총장에게 송부했다. 여러 후보 국가 가운데 WHO가 한국을 인력양성 허브로 선정한 데는 국내 기업의 백신·바이오 생산능력, 우수한 교육시설 인프라, 한국 정부의 적극적 의지 등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한국 기업의 백신·바이오 생산능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무역협회에서 발표한 ‘the 4th trade Focus: Analysis on Global Supply Chain of key Item’에 따르면 한국의 바이오 기업들은 연간 60만L 이상의 바이오의약품 생산 역량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 세계 2위 규모로 평가 받는다.
풍부한 코로나19 백신 위탁 생산 경험도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 선정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은 최근 2년 사이 아스트라제네카, 노바백스, 스푸트니크v, 모더나, 자이코브-디 등 5종의 코로나19 백신을 위탁 생산한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은 한국 기업의 독자 코로나19 백신 개발에도 영향을 미쳤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국내 기업 가운데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6월 29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멀티주(GBP510)’의 품목 허가를 승인받았다.
이는 한국 기업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식약처가 개발 단계부터 임상시험, 생산관리, 최종 허가까지 전 과정에 걸쳐 국제 심사 기준에 따라 평가한 결정이어서 의미가 크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WHO의 긴급사용 목록 등재를 추진하고, 코백스 퍼실리티(국제 백신 공급 프로젝트)를 통해 백신 공급 준비에 들어갔다.
이 밖에도 한국은 교육시설 인프라까지 갖춰 WHO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정부가 국내 인력을 대상으로 바이오 제조공정 분야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공공자금을 투입해 세운 송도 한국형 NIBRT 교육장, 오송 K-Bio 교육장 등이 바로 그곳이다. 정부는 2023년까지 안동 동물세포 실증센터 교육장, 화순 의약품 품질관리 교육장 등을 추가로 설립하고, 향후 글로벌 인력양성 전담 훈련시설도 마련해 함께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WHO 인력양성 허브 선정을 위해 정부는 국내외 기업, 대학, 국제기구, 해외기관 등과 포괄적인 민관 파트너십을 구성했다. 참여 기관은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SK바이오사이언스·GC녹십자·한미약품·싸이티바·싸토리우스 등 글로벌 바이오 기업, 국제백신연구소·라이트펀드 등 국제기구,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대학, 국립중앙의료원 등 의료기관, 한국보건산업진흥원·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코트라·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등 공공기관,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산업통상자원부·특허청 등 정부기관, 미주개발은행·아프리카백신생산연합·남아공 바이오백 등 해외 기관이다.
WHO 인력양성 허브는 한국이 바이오산업 선도국으로 진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중·저소득국 인력뿐 아니라 한국의 청년들(전체 인원의 약 20%)도 교육과정에 참여해 세계 수준의 바이오 교육을 접할 수 있고,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기회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또 한국이 인력양성의 중심지가 되면서 세계적 기업들의 생산설비와 연구개발 시설을 국내에 투자하도록 하는 유인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외에 여러 부수적 이익도 기대된다. 무엇보다 국내 바이오 기업의 우수 인재를 강사로 초빙해 생산 현장 견학 과정에서 우리 기업의 인지도를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백신은 국가 단위로 구매와 접종에 관한 정책 결정이 이뤄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WHO 인력양성 허브는 우리 기업의 신뢰도를 높여 해외 진출에 도움을 줄 것으로도 전망된다.
한국 정부 주축으로 운영체계 확립
정부는 올해 2월 WHO 인력양성 허브 지정 이후 곧바로 운영체계 마련에 돌입했다. 보건복지부는 세계보건기구와 총 4차례 준비회의를 거쳐 5월 12일 제1차 WHO 인력양성 허브 운영위원회(Executive Committe)를 영상으로 개최했다. 운영위원회는 교육 운영, 재원 조달, 협력 체계 마련 등 WHO 인력양성 허브 관련 주요 사항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다.이날 회의에는 전 세계 의료 종사자, 정책 입안자, 공중보건 종사자 평생교육을 목표로 세계보건기구가 설립한 교육기관 ‘WHO 아카데미’를 비롯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국제백신연구소 등에 소속된 인사들이 참여했다. 첫 번째 안건으로 WHO 인력양성 허브 운영체계를 공식화했다. 보건복지부 글로벌 백신허브화추진단 이강호 단장과 세계보건기구 수석과학자 수미야 스와미나탄(Soumya Swaminathan) 박사가 공동 위원장을 맡았다.
WHO 인력양성 허브의 운영을 위한 자문그룹도 설치됐다. 정책자문그룹은 교육 수혜국과 글로벌 NGO 등의 고위급 인사로 구성하고 허브의 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등 정책 자문을 제공한다. 기술자문 그룹은 백신·바이오 생산공정 및 교육공학, 규제과학 등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됐다. 전문가 그룹은 6월 21일 한국을 방문해 교육시설을 시찰하고, 세부 교육과정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두 번째 안건으로 올해 교육계획을 확정했다. 한국은 1년 동안 WHO 인력양성 허브로서 중·저소득국 백신·바이오 생산인력 370명과 국내인력 140명, 총 510명에 대해 총 3차례 교육을 진행한다.
6월 21일부터 8주간 인천 연수구 송도동 연세대 K-NIBRT에서 아·태지역 대상 바이오 생산공정 실습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7월에는 백신·바이오의약품 생산공정 기본교육(이론 2주, 중·저소득국 110명, 국내 40명), 마지막으로 10월에는 백신·바이오의약품 품질관리 기본교육(이론 3주, 중·저소득국 200명, 국내 100명)이 개최된다. 교육 대상은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 33개국을 대상으로 세계보건기구와 보건복지부가 함께 선발한다.
7월에 개최되는 교육은 한국 정부가 주체적으로 교육 전반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7월 18일부터 9일간 개최되는 WHO 인력양성 교육은 보건복지부가 운영을 총괄하고, 국제백신연구소(IVI)가 보조사업자로 참여한다. IVI는 유엔개발계획(UNCP) 주도로 설립된 비영리 국제기구로 서울대 연구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다.
7월 국내 현장 견학으로 이해도 높일 예정
7월 교육을 위해 입국하는 교육생은 아르헨티나, 보츠와나, 나이지리아, 이집트 등 25개국 117명이다. 국내에서는 LG화학, 녹십자, 종근당 등 백신·의약품 관련 기업체 재직자와 관련 학과 졸업 예정자 등 33명이 뽑혀 총 150명이 교육을 앞두고 있다.교육 목표는 교육생들의 백신·바이오의약품 생산공정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생산역량을 향상하는 데 있다. 서울대 호암 교수회관에서 열리는 총 2주간의 교육과정에는 백신·의약품 생산을 위한 전 임상 및 임상시험을 위한 기본교육, 백신·의약품 생산공정, 품질관리, 규제과학 교육 등이 포함된다. 숙소는 서울대 시흥캠퍼스 컨벤션센터로 지정됐다.
교육생들은 이론 교육 이외에 국내 백신·바이오의약품 관련 인프라 견학에도 나선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병원 내 임상센터를 둘러보고,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 등 백신·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도 찾아가 생산과정을 눈으로 보고 배우게 된다.
보건복지부 글로벌백신허브화추진단 관계자는 이번 교육에 대해 “7월 교육은 우리나라가 주체가 돼 글로벌 백신 인력을 키우는 첫 번째 교육과정이기에 뜻깊다”며 “향후 교육을 어떻게 구성할지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기 때문에 첫 과정을 순조롭게 이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혜연 차장
grape06@donga.com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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