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호

파사삭 부서지는 반죽으로 감싼 풍미작렬 고기 요리

[김민경 ‘맛’ 이야기] 미트파이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2-07-3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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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음식은 머릿속에 들었을 때, 그러니까 관념으로 존재할 때 더 맛있다. 내가 어릴 때 꿈꾸듯 보았던 만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보면 할아버지와 하이디의 식탁에는 짙은 갈색의 빵 조각과 우유가 놓여 있곤 했다. 두 사람은 빵을 툭툭 뜯어 우유와 곁들여 식사를 했다. 가끔 두툼한 치즈를 길쭉한 포크에 꽂아 화로에 슬쩍 녹여 빵에 올려 먹는 일도 있었다. 어린 내 눈에는 그 모든 게 완벽한 식사로 보였다. 가본 적 없는 아름다운 곳, 먹어본 적 없는 상상의 맛이 그 한 장면에 모두 있었다. 그러나 하이디의 식탁에 놓인 ‘짙은 갈색의 빵’은 ‘가난’을 상징하고 있다. 만화 속 부자들이 먹는 빵은 노르스름하게 뽀얀 색을 띤다. 밀기울이나 잡곡은 걸러내고 하얀 밀가루만 넣어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뭇거뭇한 갈색이 도는, 잡곡이 든 빵이 건강한 메뉴로 꼽히지만 1880년 알프스를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는 지금과 정반대였다.

    ‘풍미’를 입다

    미트파이 종류가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Gettyimage]

    미트파이 종류가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Gettyimage]

    미트파이도 내게 관념 속 음식이었다. 언제나 온기 어린, 단란한 가정에서, 할머니가 구워줄 것 같은 맛좋은 간식. 미트파이라는 음식을 처음 먹은 건 2000년대 초반 잡지 촬영을 하러 가서였다. 다양한 나라의 주말 브런치를 재현하는 요리 화보를 진행하는 중에 미트파이를 맛봤다. 달고 눅눅한 파이 껍질 안에 퍽퍽한 고기가 꽉 들어 있었다. 파이껍질과 고기는 따로 놀아 입에서 대강 섞어 먹었다. 이렇게 묵묵한 불협화음을 가진 개성 없는 음식이 또 있나 싶어 머릿속에서 미트파이라는 단어를 깨끗이 지우고 살았다. 마침 미트파이를 만들어 파는 곳을 만날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 미트파이가 ‘풍미’라는 옷을 단단히 입고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전국 곳곳에서 말이다. 미트파이는 앞서 말한 대로 파이지 안에 고기요리를 넣고 오븐에 구워 만드는 음식이다. 파이지 안에는 버터가 듬뿍 들어가기에 기본적으로 풍미가 좋으며, 경쾌하게 파사삭 부서지지만 입에서는 쫄깃한 식감을 선사한다. 그렇다면 20년 전 미트파이의 문제는 고기였나보다. 최근 맛본 미트파이는 양손을 써서 쉴 틈 없이 집어먹고 싶을 만큼 맛이 좋았다. 파이 속을 채운 고기의 맛도 다채롭다. 닭고기와 카레를 섞어 에스닉 무드를 물씬 풍기는 것, 맛깔스러운 양념이 밴 돼지고기를 가늘고 잘게 찢어 파이 속을 가득 채운 것, 소고기와 치즈를 섞어 우직하고 묵직한 풍미를 내는 것, 양고기를 매콤한 토마토소스에 푹 익혀 부드럽게 채운 것, 갖은 향신료와 시금치, 잘게 다진 고기를 섞어 이국의 풍미를 잔뜩 내는 것 등 만드는 이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한국의 색을 입혀 파이지에 떡갈비를 채워 넣은 미트파이도 있다. 형태나 크기는 만드는 이와 어떤 속이 들어가는 지에 따라 다르다. 에그타르트 모양으로 만들어 도톰한 파이지로 뚜껑을 만들어 덮은 것, 만두처럼 반달모양으로 반죽을 접어 만드는 것, 속을 채워 공처럼 둥글게 부풀린 것, 머핀처럼 만들어 가운데에 고기 반죽을 넣은 것.

    속은 따뜻하게, 겉은 바삭하게

    에어프라이어에 미트파이를 데우면 속은 따뜻하고 겉은 바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Gettyimage]

    에어프라이어에 미트파이를 데우면 속은 따뜻하고 겉은 바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Gettyimage]

    미트파이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온도가 중요하다. 속에 고기가 들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따뜻해야 풍미나 식감이 제자리를 찾는다.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 데워 속은 따뜻하게, 겉은 바삭하게 만든 다음 맛보면 제일 좋다. 둘 다 없다면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자. 가능하다면 전자레인지에 데운 미트파이를 프라이팬에 옮겨 살짝 구우면 좋겠다. 바닥면은 바삭해지고, 반죽 윗부분의 수분이 조금이라도 날아가므로 만든 이가 내고자 한 본래의 맛에 한발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미트파이를 즐겨 먹는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는 식사보다는 간식으로 즐기는 편이다. 소비량이나 대국민 애정도를 생각하면 미트파이의 나라는 호주나 뉴질랜드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방증하는 단어도 있다. 한때 미국 할리우드에서 만든 ‘서부개척시대’ 영화를 전 세계가 오마주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만든 것은 ‘스파게티 웨스턴’, 중국 만주를 배경으로 하면 ‘만주 웨스턴’, 일본 북해도 개척기를 담은 ‘스키야키 웨스턴’ 그리고 호주에서 만든 것을 ‘미트파이 웨스턴’이라고 부른다. 스파게티 웨스턴을 보면 아쉽게도 서부 개척자가 스파게티를 먹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미트파이 웨스턴에는 한 장면 정도 미트파이가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한번 찾아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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