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와 외부 온도 차가 큰 여름철에는 냉방병에 걸리기 쉽다. [Gettyimage]
덥다고 ‘아아’ 벌컥벌컥 마시면 탈수 심해져
여름철에는 일사병과 열사병이 흔히 나타난다. 무더위에 오래 노출돼 체내 심부온도가 계속 올라가면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땀을 배출하는데 수분이 보충되지 않아 발생하는, 저혈압으로 인한 급성질환이다. 보통 체온이 37~40도 사이이며, 어지럼증이나 약간의 정신 혼란 등이 있을 때를 일사병이라 하고, 그보다 심해져 체온이 40도가 넘어가며 중추신경계의 이상이 생겨 경련이나 발작이 일어날 때를 열사병이라 한다.국내 한 연구에서는 여름철 평균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병원에 방문하는 저혈압 환자가 11%가 증가한다고 한다. 고온으로 인해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땀을 많이 배출하게 되며 체내 수분이 부족해지며 혈압이 떨어지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고혈압이 문제지 저혈압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혈압이 떨어지면 우리 몸 곳곳에 충분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게 되면서 다양한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머리는 신체 중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심장이 혈액을 보내기 위해 중력을 거슬러야 하기에 혈압이 떨어지면 뇌로 전달되는 혈액이 감소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증상은 기립성 저혈압으로 오래 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 갑자기 일어날 때 눈앞이 캄캄해지며 어지럼증이 생기며 주저앉는 증상이다. 이외에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듯한 오심 증상, 혈압 저하로 인한 두통 및 경항통이 생길 수 있으며 심할 경우 걷는 도중에도 실신할 듯한 느낌이 올 수 있다. 주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의 기저질환을 가진 노령의 인구에서 이런 증상이 나타나기 쉽다.
이러한 일사병을 치료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대처법은 휴식과 수분 보충이다. 다만 여름철 우리가 흘린 땀은 단순한 수분이 아니다. 우리 몸에 필요한 염분 등의 전해질을 머금은 체액이다. 그렇기에 흘린 땀을 보충하기 위해 당분이 많이 함유된 이온음료나 차가운 아이스아메리카노, 혹은 생맥주 등을 벌컥벌컥 들이켜게 되면 이뇨작용을 촉진해 수분이 더 빠져나간다. 이뿐만 아니라 차가운 음료가 위장관의 온도를 떨어뜨리면 이를 덥히기 위해 혈류량이 배로 몰리면서 더욱 어지러울 수 있다.
여름철 자한증(自汗症)으로 인체의 음액(陰液)이 손실됐을 때 가장 일반적으로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것은 생맥산(生脈散)이다. 인삼, 오미자, 맥문동을 각각 1:1:2의 비율로 넣어 달인 이 처방은 음액을 손실해 더는 뛰지 않는 맥을 다시 뛰게 할 만큼 효과적인 처방이다. 땀을 많이 흘려 허해진 기(氣)를 보충하고 갈증을 멎게 해주는 인삼(人蔘)과 겨울 동안 응축한 점액을 통해 말라버린 폐와 기관지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맥문동, 신맛으로 점액 분비를 촉진하는 오미자를 함께 달여 만든 생맥산은 심근에 대한 보호작용과 심기능 및 뇌혈류 개선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됐다. 이러한 효과를 바탕으로 여름철 손실된 수분을 아이스아메리카노나 생맥주가 아니라 생맥산을 통해 보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와 같이 일사병은 과거부터 서병(暑病)이라고 해 오랫동안 사람들을 괴롭혔지만 현대에 와서 에어컨의 보급과 함께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에어컨으로 인해 여름철 실내외 온도차가 커지며 몸이 적응하지 못해 냉방병이라는 질환이 생겼다.
체온, 혈압, 혈당, 호흡 등은 인체가 항상 평형을 유지해야 하는 요소들로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로 이뤄진 자율신경계를 통해 항상성을 유지한다. 특히 체온조절중추는 문제가 생겨 체온이 일정 범위 이상으로 올라가면 신경계 이상과 단백질 변성을 야기한다. 체온이 올라가면 뇌의 시상하부에서 교감신경을 통해 피부 혈관을 확장시켜 열 손실을 유도하고, 열 생산을 증가시키는 에피네프린과 갑상샘호르몬의 생산 및 분비를 억제한다. 이에 더해 땀샘에 있는 교감신경이 아세틸콜린을 자극해 땀을 분비하고, 이 땀이 증발하며 체온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여름철 에어컨이 켜진 차가운 실내와 무더운 실외를 오가면서 생활하게 되면 급격한 온도 변화로 체온조절중추가 고장이 나며 여름 감기와 비염 등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밀폐 건물 증후군이라고 해 여름철 시원해진 실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환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실내 공기가 탁해져 두통을 유발하고, 눈·코·목 등이 건조해져 따갑거나 경미한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코와 목덜미로 파고드는 에어컨 바람은 무더운 여름 잠깐의 피서가 되겠지만 오랫동안 노출되는 일이 반복되면 오히려 겨울철 칼바람보다 더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코 질환을 많이 접하는 필자는 이러한 여름감기에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이라는 처방을 가장 많이 쓴다. 주 약재는 곽향·소엽·백지·대복피 등 지극히 평범하지만, 인체 체액에 활동성을 부여해 외부의 한기로 인한 감기 증상과 내부의 위장관 장애를 동시에 치료해 주는 여름철 감기의 특효약이다.
배 속 늘 따뜻하게 해야
마지막으로 여름철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습관적으로 입에 달고 사는 차가운 음식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여름철이 몸을 조섭하기 가장 힘들다. 차가운 음식을 입에 대지 마라. 배 속이 늘 따뜻하면 모든 병이 생기지 않으며 혈기가 왕성해진다”고 했다. 성인이라면 ‘아이스아메리카노’ ‘생맥주’, 아이들이라면 ‘아이스크림’ ‘얼음물’을 달고 사는데 무엇이 문제일까.우리 몸의 소화관은 구강에서 항문까지 하나의 연결된 관으로 총 길이가 약 8m에 달한다. 성인의 체표면적인 2㎡라면 소화관이 미세한 주름으로 확보하는 접촉 면적은 400㎡에 달한다. 인체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차갑거나 뜨거운 물이 들어오더라도 짧은 시간 안에 체온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돼 있다. 이러한 이유로 차가운 얼음이나 물이 소화관에 들어와 열을 손실시키는 면적은 체표의 200배나 된다. 그만큼 체열 손실이 엄청나다. 이런 상황에서 차가운 음료수를 마시면 체내의 소화계는 연이은 충격을 받게 되어 인체 활동성이 떨어지는데, 이러한 충격은 성인도 버티기가 쉽지 않은데 몸이 작은 아이들은 더해 위장관 장애뿐만이 아니라 면역력도 감소해 쉽게 감기에 걸리게 된다.
여름철 차가운 음식으로 인한 위장관 장애는 냉동 기술의 발달로 현대에만 있었을 것 같지만, 과거의 조선의 왕들 또한 체면을 지키기 위해 두꺼운 곤룡포를 입고 국정을 돌보면서 수시로 내빙고에서 만든 얼음을 들이켰다. 그래서 이로 인한 설사와 어지럼증 등을 치료하기 위해 자음건비탕(滋陰建脾湯) 등을 사용해 위장관의 냉기와 습담을 치료했다.
사람은 주위 환경이나 본인의 활동에 관계없이 체온을 조절할 수 있는 항온동물이다.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지 못하는 파충류 같은 변온동물과 달리 다양한 환경을 극복하고 적응할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만든 주변 환경이 우리 몸의 면역력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려 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순간의 피서를 위해 건강을 잃는 우를 범하지 말자.
이근희
● 원광대 한의대 졸업
● 前 수서 갑산한의원 진료원장
● 現 경주 안강 갑산한의원 원장
● 경희대 한의대 대학원 안이비인후피부과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