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미각을 인간이 가진 최하위 감각이라고 규정했다. 철학적 사유는 시각과 청각이 도맡고 미각은 그저 쾌락을 위해 존재하며, 심지어 우리의 위장은 육욕을 위해 필요한 여물통에 지나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현재의 우리를 둘러싼 어마어마한 미각 콘텐츠를 두 철학자 앞에 펼쳐 보여주고 싶어진다. 더불어 미각이 빠져나간 자리에 우울을 채워 넣은 내 친구들은 어찌하면 좋으냐고도 묻고 싶다.
석류를 묘하게 닮은 과일
패션프루트는 브라질이 고향인 열대과일이다. [Gettyimage]
브라질이 고향인 패션프루트는 열대과일에 속하지만, 현재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등지의 하우스 안에서 부지런히 자라며 우리 땅에 적응하는 중이다. 꽃의 생김새가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떠올린다고 해 패션프루트(Passion fruit)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진을 찾아보면 꽃의 모양이 정말 독특하다. 5장의 꽃받침은 5명의 사도, 가운데 부화관은 가시면류관, 5개의 수술은 십자가에 못 박히며 생긴 예수의 상흔, 3개의 암술은 십자가에 박힌 못의 개수라는 이야기가 있다. 꽃의 다른 이름은 ‘시계꽃’이다. 앞서 말한 여러 요소가 시·분·초침의 모양과도 닮았다. 이 꽃의 열매가 패션프루트다.
겉으로 보기에는 홈이 파이지 않은 자두처럼 생겼다. 잘 익은 패션프루트는 검붉거나 노란색을 띠는데,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붉은 편이다. 완숙하면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열매로, 집에 가져다 놓고 후숙해 먹는 게 맛있다. 속이 달콤해질수록 껍질이 마르며 주름이 잡히고 말랑해진다. 이때 쪼개어 먹는다. 반으로 무턱대고 가르면 무른 속이 주르륵 쏟아질 수 있으니 에그 스탠드에 세워 놓은 반숙 달걀을 먹듯이 윗부분을 뚜껑처럼 잘라 낸다.
향만으로도 군침 돌아
평범한 겉모습과 달리 패션프루트의 속은 복잡·미묘하다. 석류와 무화과와 토마토를 이리저리 섞어 놓은 것 같다고 할까. 젤리처럼 무르고 진득한 샛노란 과육이 작은 타원형의 씨앗을 잔뜩 품고 있다. 우리의 경험에 비춰보면 올챙이 알 같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생경한 모습보다 더 놀라운 건 작은 열매에서 뿜어져 나는 향이다. ‘백향과’ 즉, 100가지 향이 난다는 이름이 있을 정도이니까. 향 역시 복합적이다. 열대과일 특유의 진한 단내와 감귤처럼 산뜻한 향이 뒤섞여 난다. 향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미각으로 가는 통로인 후각을 자극하는 데는 성공이다. 맛은 새콤함과 달콤함을 동시에 갖고 있다. 후숙할수록 단맛이 아주 진해지는데 그렇다고 신맛이 쪼그라드는 건 아니다.덜 익으면 신맛이 아주 강한데 망고, 파인애플, 복숭아처럼 달콤한 과일과 함께 먹거나 주스를 만든다면 기분 좋게 즐길 만하다.
패션프루트로 만든 빙수. [Gettyimage]
패션프루트는 색과 모양, 맛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우리 몸에 들어가면 좋은 일을 많이 한다. 강력한 항산화 및 항균 작용을 한다. 풍부한 식이섬유와 각종 무기질, 비타민을 갖고 있으며 숙면과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미각만 깨우는 게 아니라 몸의 열정(passion)도 살며시 눈 뜰 것 같다.
패션프루트로 만든 요거트. [Getty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