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잘나서 뽑힌 거 아니다
그대로 재현되는 지난해 악몽
‘김건희 리스크’ 두고두고 짐 될 수도
대통령이 국민 마음 다독여야
7월 8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 배우자 김건희 여사는 이러한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베일에 싸여 흉흉한 소문마저 나돌던 김 여사가 국민 앞에 처음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다.
당시 선거 상황은 양대 대권 주자인 윤석열·이재명 후보 간 지지율이 역전되던 시점이었다. 한때 윤 후보가 이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격차로 크게 앞섰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윤 후보 지지율은 계속 내리막길을 탔다. 12월 말쯤 되자 이 후보가 오히려 윤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민주당 처지에서는 골든크로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데드크로스라고 할 만한 상황이었다.
어찌 그리 ‘나이브’할 수 있는가
필자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당적(黨籍)을 보유한 적도 없다.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선거를 맞이하는 심정을 돌아봤을 때 ‘오만하고 무능한 민주당의 재집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토록 국민의 삶을 힘들게 만들고, 자기들끼리 권력을 사유화하고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자기 진영의 잘못을 감싸고 덮어주는 일에만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세력에게 다시 정권을 맡기는 것은 쉬이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많은 국민의 생각이 필자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강조할 필요마저 없지만, 대선에서 윤 후보와 국민의힘, 그리고 이른바 보수 세력이 ‘10년 주기 정권교체설’을 뒤집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간절한 염원 때문이었지, 후보가 탁월하거나 국민의힘이 충분히 믿음직스러워 그런 것이 아니다.그래도 당시엔 정권교체의 유일한 대안인 윤 후보의 지지율이 처참히 무너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당시 지지자들의 심정이 대체로 그랬을 것이다. 일말의 희망마저 참담히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필자 역시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든 역할을 하고 싶었고, 내가 대통령 후보의 배우자라면 이러저러한 내용과 방식으로 국민 앞에 해명하겠다는 구체적인 구상을 해본 적 있다. 그것을 김종인 당시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전달한 적도 있다. 김 위원장과 필자는 오랜 교유 관계가 있다.
당시 윤 후보의 가장 큰 문제는 ‘배우자 리스크’였다. 일부 언론이 이른바 ‘본부장 리스크’라며 본인-부인-장모의 여러 문제를 꼽았지만 자타 공인 가장 큰 문제는 배우자였다. 배우자를 둘러싼 온갖 소문과 억측이 들판에 불을 놓은 것처럼 번졌다. 거기에 윤 후보가 ‘1일 1실언’을 하면서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 매일같이 반복됐다. 하루가 다르게 지지율이 뚝뚝 떨어졌다. 왜 배우자가 자신의 문제를 직접 해명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빗발쳤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김건희 여사가 직접 의혹 해명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62.7%에 달했다. 그럼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김 여사는 차일피일 해명을 미뤘다. 악재가 쌓여만 갔다.
열성적 정치참여자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도 김종인 전 위원장을 만날 때마다 “왜 김건희 여사는 숨어 있느냐”고 거의 항의하듯 따지곤 했다. 문자메시지도 수차례 보냈다. “이대로 있으면 선거 진다고, 매듭지을 것은 빨리 매듭짓고 넘어가야 한다”고 재촉했다. 오죽 답답하면 그랬겠는가. 그래서 아예 ‘이런 식으로 기자회견을 하면 좋겠다’며 구체적인 내용까지 제안했던 것이고, 그것이 지난해 성탄절 다음 날 김건희 여사의 기자회견문 내용에도 적잖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 무렵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회고하자면 책을 한 권 따로 써야 할 것이다. 현실 정치의 복잡한 이면을 다양하게 겪고 들여다본 소중한 계기였다. 당시 김 위원장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윤 후보가 끝까지 배우자를 내세우지 않으려는 것 같다.”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그렇게 나이브한 사고를 할 수 있는지. ‘대통령은 대통령, 배우자는 배우자’라는 것은 관념적 원칙일 뿐이다. 국민 대다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 대통령후보가 된 순간 배우자 또한 준(準)공인 신분이 되는 건 상식에 가까운 사고다. 그런데 그런 배우자를, 더구나 국민이 대단히 궁금하게 여기는 배우자를, 모르쇠 하듯 덮어놓고 대통령선거를 치른단 말인가. 국민에게 ‘알 필요 없다’고 윽박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혹은 “알아서 뭐해?”라고 가르치려는 생각이거나.
어쨌든 윤 후보의 방침이 그러하고 김 전 위원장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보의 배우자가 나와서 움직여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답변하는 것을 보고 ‘정치란 그런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됐다. 긍정적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당시 김 위원장은 “대통령을 뽑는 것이지 배우자를 뽑는 것이 아니지 않으냐”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윤 후보를 지원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공식적으로 외부에 나온 적이 없다”며 과거 사례까지 동원했다. 관록의 김 위원장이 하는 말이니까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지, 똑같은 발언이라도 다른 사람이 했으면 그리 통하지 않았을 말이다. 발화자(發話者)의 권위는 이래서 중요하다.
지난해 떠올리게 하는 기시감
지난해 12월 26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아내 김건희 여사가 서울 여의도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하고 있다. [뉴스1]
“앞으로 남은 선거 기간 동안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주십시오. 잘못한 저 김건희를 욕하시더라도 남편에 대한 마음만큼은 거두지 말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필자가 제안한 내용은 이러지 않았다. 일단은 감성적으로 접근하되 간곡한 사죄와 반성의 내용을 담고, 여성으로서 당당함을 강조하자는 것이 필자가 생각한 세가지 원칙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사실은 세 번째다. 그것이 누락되고 반대로 뒤집힌 것이다. 김 여사의 목소리로 채택되지 않은 초안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김건희에 대한 비판과 의혹은 얼마든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으로서 자존에 대한 모욕은 부디 거두어주십시오. 그것은 한 사람의 여성에 대한 모독을 넘어 세상 모든 딸에 대한 모욕입니다.”
필자가 어떤 방향으로 발표문 결론을 이끌어가고 싶었는지, 독자들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부터는 ‘정무적 판단’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김건희 여사가 직접 나서 사과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정치권 대다수 사람들이 동의하는 바였다(오히려 윤 후보만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김 여사가 선거운동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고, 사회 봉사활동 등으로 측면 지원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으며, 완연한 자숙 모드로 끝까지 조용히 있는 편이 낫다는 사람도 있었다. 첫째가 정면 돌파라면, 둘째는 우회, 셋째는 은둔이라 정리할 수 있겠다. 김건희 여사는 셋째를 선택한 것이다. 과연 옳았을까.
결과론적으로 해석하는 태도는 옳지 않지만 그래도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선거 초반 ‘배우자 대 배우자’ 대결에서 봤을 때 윤 후보가 이 후보에 크게 밀리는 듯했다. 하지만 중반으로 갈수록 이런저런 가족 이슈가 터지면서 이 후보가 윤 후보에 밀렸고, 선거 막판에는 이 후보가 오히려 ‘배우자 리스크’로 곤욕을 치렀다. 세상에 이런 역전도 가능하구나, 대한민국은 참 다이내믹한(?) 나라라고 혀를 끌끌 찰 정도였다. 배우자 문제가 아니었으면 이 후보가 적잖은 차이로 승리했으리라고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역사적 결과를 바탕으로 ‘김건희 여사가 정면 돌파를 선택해도 문제없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점쟁이가 아니다. 지난해 연말 상황에서는 누구든 우회 또는 은둔의 선택에 기울어 있었고 필자 또한 그랬다. 그것이 합리적 판단이었다. 김건희 여사의 개인적 성품이나 사고력, 발언력 등 능력이 검증은커녕 확인조차 되지 않던 때였다. 지난해 겨울에서 올해 봄에 이르는 상황을 이처럼 복기하는 이유는 기시감을 느낄 정도로 그때 상황이 지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배우자 리스크’가 회자되고, 이제 대통령이 되신 분은 ‘1일 1실언’의 악몽을 재현하는 중이다.
대통령은 처음이라서
윤석열 대통령으로 초점을 옮겨보자. 배우자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도 느꼈지만 윤 대통령은 사고와 행동이 굉장히 나이브하다. 대통령에 당선된 지 4개월, 취임식을 하고 두 달이 지났지만 국민이 기억하는 풍경은 청와대 이전,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회견), 배우자뿐이다.청와대 이전에 대해선 “대통령의 결단”이라며 칭찬하는 사람도 있지만 필자는 이것 또한 나이브하다고 생각한다. 좋든 싫든 정부 수립 이래 70년 넘게 그 자리에 있던 대통령실이다. 그것을 단 며칠 만에 바꿀 수 있는가. 역대 정권에서도 이전을 추진한 바 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도 있던 내용이라고 끝끝내 두둔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무도 ‘용산’을 생각하진 않았다.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길을 지나가다 한 집터를 보고 ‘저기가 좋겠네’ 하면서 덜컥 이전한 꼴이다. 국가의 중대사를 이렇게 결정해도 되는 일인가. 윤 대통령 개인의 집무실을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앞으로 자자손손 탄생할 대통령이 머물 곳,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국정을 지휘할 곳 아닌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윤 대통령(당시 당선인)의 표현에서 ‘물질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1980년대 운동권의 왜곡된 유물론이 떠올라 슬픈 웃음마저 나왔다.
도어스테핑 또한 그렇다. 혹자는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칭송하지만 대통령의 말은 ‘개인’의 발언이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조직화된 ‘헌법기관’의 발언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경찰청 인사 발표 문제에 대해 윤 대통령은 “국기 문란”이라 표현했다. 당시 인사 발표 과정의 혼선과 난맥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이제 시간이 흘렀으니 결과를 보자. 정말 국기 문란이라면 지금쯤 누군가는 반역죄나 지시명령위반으로 체포됐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문란’은 있었으되 ‘처벌’은 없다. 경찰청장이 물러나긴 했지만 국기문란이라면 사퇴로 적당히 끝낼 일인가. ‘국기’를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주동자와 배후를 추적해 엄벌할 일 아닌가. 이건 윤 대통령이 후덕하고 관대한 탓인가. 더 나아가 생각하자면, 대통령이 ‘국기 문란’이라고 성격을 규정한 그 사건에 대해 유야무야 덮어버리는 것 또한 국기 문란 아닌가.
이어지는 일들을 보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주 52시간제 개편안에 대해 윤 대통령은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 개편안은 바로 전날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국민 앞에 발표한 사항이다. 그렇다면 이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국기 문란’인가. 보고를 받기는 했으나 아직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라는 뜻이라고 최대한 관대하게 해석한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국정 전반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이 돼야 윤 대통령에게는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되는 것인지 그것 또한 궁금하다. 본인이 최종 결재하지 않은 모든 것은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말일까.
당장 야당은 “고용노동부의 국기 문란”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비판이 아니라 조롱에 가깝다. 앞으로 야당은 이번 정부에서 벌어지는 일마다 ‘국기 문란’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이다. “대통령에게는 물었소?”라고 매사에 비꼬듯 되물을지 모른다. 윤 대통령 임기 내내 ‘국기 문란’은 유행어가 될 것이다. 꼬투리를 잡으려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가진 천금 같은 의미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뜻이다.
혹자는 “초보 대통령이니까 이해해 주자”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해해 주려고’ 대통령을 뽑은 것인가. “윤석열이 초보인 줄 알면서도 뽑지 않았느냐. 두고 보면 나아질 것이다” 혹은 “대통령의 사고나 행적에 깜깜했던 시절보다 좌충우돌이라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으니 다행 아닌가”라며 두둔하는 사람마저 있다. 대통령이 나이브하니 지지자들까지 나이브해지는 것 같다. 그런 말에 일일이 반박하고 대응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한 지 오래됐다. 이젠 국민이 대통령까지 ‘이해하고 기다려줘야’ 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굳이 덧붙이는 일이 안타깝고 부끄러울 정도지만 대통령의 실언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지자들의 옹호에 고무됐는지 “대통령은 처음이라서”라는 농담 같지도 않은 말을 던지고, 자신이 지난 정부에서 장관급이었다는 사실조차 잊었는지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들 가운데 훌륭한 사람 봤어요?”라는 발언으로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자유가 지나치면 방종이 된다는데, 지금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방종 수준이 되고 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비판받는 것을 넘어 무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순간 민심은 되돌릴 수 없는 거리까지 떠나간 셈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하자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윤 대통령은 ‘바보짓’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난했다. 대통령으로서 대단히 부적절한 표현이다. 어쨌든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가운데 25% 정도가 탈원전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 탈원전이 ‘바보짓’이라면(물론 윤 대통령은 국민이 아니라 ‘정책’을 비판한 것이겠지만), 국민 가운데 누군가는 ‘그렇다면 나도 바보인가?’라고 섭섭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 국민의 비율이 5%, 아니 단 1%라 하더라도 대통령이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특정한 진영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어느 국민의 마음 하나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이건 상식에 해당하는 일 아닐까. 지난 정부가 상식을 외면했으니 우리 진영도 그러겠다는 말인가. 그렇게 해서 나아지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하나 더 살펴보자. 만취 음주운전에 제자 논문 가로채기, 조교 갑질 의혹까지 휩싸인 사람을 윤 대통령은 기어이 교육 분야를 담당하는 사회부총리에 임명했다. 여기까진 이런저런 정치적 판단이었다고 너그럽게 이해하더라도, 그런 사람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언론과 야당의 공격을 받느라 고생 많았다”며 마치 영웅이라도 되는 양 격려했다. 그런 사람을 임명해서는 안 된다고 ‘지극히 상식선에서’ 반대했던 사람 모두를 ‘부당한’ 공격을 한 사람처럼 만들어버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내로남불’의 대명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마음의 빚”을 운운했던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문 전 대통령의 그 발언이 얼마나 많은 국민에게 실망과 상처를 줬는지 되돌아보시라.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이제 김건희 씨 이야기를 할 차례다. 윤석열 대통령이 배우자 문제를 설득력 있고 투명성 있게 국민 앞에 드러내놓지 않으면 이제 윤석열 ‘후보’도 아니고, 대통령 ‘개인’도 아니고, 윤석열 ‘정부’를 구성하는 모두에게 커다란 짐이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걱정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김건희 여사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발언했다. 도대체 ‘아내의 역할’이라는 것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모르겠고, 필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러한 관점과 태도에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든 많은 국민이 김 여사가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한다. 그때와 지금 생각이 달라진 것인지, 달라졌다면 왜 그런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대통령의 배우자’로서 분명한 견해를 밝혔으면 한다. 뭐든 적당히 ‘알아서 되겠지’라든지 어물쩍 넘어가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말고, 대통령 부인으로서 공식 역할을 할 땐 하더라도 명확히 선을 그어놓고 하라는 말이다. 사실은 김건희 여사가 아니라 윤 대통령의 스타일 자체가 그런 것 같아 큰 걱정이 든다.
제2부속실을 만드느냐, 안 만드느냐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지금 대통령실 안에 기존 제2부속실보다 더 큰 대통령 부인의 자리가 있다면 눈속임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김 여사와 친인척, 심지어 팬클럽까지 여기저기 돌출하는 ‘경거망동’을 어떻게 제어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을 감시할 특별감찰관조차 임명하지 않고 있다.
강조하자면 김 여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지나치게 과도한 면은 있다. 독립된 여성, 그것도 여성 기업인에게 쏠리는 관음적 태도에 대해 이른바 페미니스트일수록 분연히 일어나 “그 관심 끄라”고 단호히 꾸짖을 일이다. 하지만 그 관심이 꺼지란다고 꺼질까. 김 여사 스스로 여러 분란을 자초하는 경향마저 있다. 지난해 12월 상황이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세간의 의혹이 쌓이고 쌓여 폭발할 지경이 돼서야 떠밀리듯 수습하는 경향이 있다. 윤 대통령과 배우자는 이런 일처리 방식에 익숙할지 모르겠지만 다수 국민으로서는 답답한 일이다. 많은 국민이 “이런 시국에 대통령 배우자 문제로 여론이 다툴 일인가?”라며 한탄하고, 걱정하고, 때론 분노한다. 그런 ‘한가한 일’에 매달리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다.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윤 대통령의 말 또한 틀렸다. 개혁 방향이 확실하고 다수 국민이 거기에 암묵적 동의를 보낼 때나 그런 발언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어디로 나아가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은데 대통령이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오히려 무책임하게 들릴 뿐이다. 또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만 우습게 만드는 꼴이다. “여러 문제와 잘못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과드린다. 비판에 감사드린다. 앞으로 방향을 제대로 잡겠다.” 이런 태도가 정답 아닐까?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다독여주지 않고 국민이 ‘초보 대통령’을 매일 이해해 줘야 하는 오늘이 됐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작금 상황이 전혀 납득되지 않는다. 답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