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는 논픽션에 가까운 픽션
드라마보다 실제 사건이 더 극적
좋은 변호는 정확한 관점 갖는 것
편견? 편견 생길만한 정보조차 없어
극중 우영우(가운데)는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같은 로펌의 비장애인 변호사들은 우영우와 함께 사건을 조사하거나 변론을 담당한다. [ENA]
6월 29일 첫 방송된 ‘우영우’는 164의 높은 IQ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의 분투기를 그린다. 우영우는 로스쿨을 수석 졸업한 뒤 대형로펌 입성에 성공하지만 자폐 특성상 불안이 크고 감각이 예민해 회전문 하나를 통과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우영우가 비장애인 변호사와 견줘도 손색없는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할 때 시청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우영우’ 속 사건은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 3, 6, 10화 에피소드는 신민영(44) 변호사가 2016년 출간한 저서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한겨레출판)’에서 가져왔다. 드라마 방영 이후 사건 자체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책 판매량도 덩달아 증가했다. 올해 6월까지만 해도 1쇄로 찍은 1000부를 다 팔지 못했는데, 드라마의 신드롬급 인기에 힘입어 7월 초 2쇄를 찍었다. 이젠 포털사이트에 신 변호사의 책을 검색하면 당당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7월 20일 서울 여의도 ‘법무법인 호암’ 사무실에서 만난 신민영 변호사. [지호영 기자]
“‘우영우’가 사장(死藏)될 뻔한 책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줬죠. 서점에서 재고 없느냐고 문의도 들어와요. 약간 ‘차트 역주행’ 느낌인데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해보게 될 줄이야…(웃음).”
이날 인터뷰에서 신 변호사는 법조계에 ‘장애인 변호사’가 더 늘어나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전체 인구에서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4~5%인데 장애인 변호사가 그 정도가 안 된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라면서 “‘우영우’를 계기로 현실에 유의미한 변화가 생기리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원작자가 본 ‘우영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NA]
드라마와 책 내용이 얼마나 차이가 나나요.
“전반적으로 책은 암울해요. 너무 어두워 제작진이 내용을 순화한 것 같더라고요. 1화는 할아버지가 치매인 건 맞는데 범행 도구가 다리미가 아니라 철제 변압기였어요. 또 극중에선 할아버지가 의심이 심한 정도로 묘사되는데 실제론 할머니를 향한 가정폭력이 있었고요. 이밖에 3화는 형제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 6화는 탈북자 친구가 아니라 탈북자 부부, 피해자도 탈북자인 사건입니다.”
아직 방영 안 된 10화 내용도 귀띔 좀 해주세요.
“정말 웃지 못 할 얘긴데요. 잘 몰라요(웃음). 2020년 9월쯤 (제작진이) 에피소드를 구입해 갔는데 그 뒤로 제가 계약서를 잃어버렸거든요. 한참 동안 제작이 안 되기에 드라마가 무산된 줄 알았어요. 첫 방송을 보고 나서야 ‘아, 이 내용이었구나’ 했죠. 6화도 예고편 보고 ‘이거였구나’ 했어요.”
7월 28일 방영된 10화는 성폭력 사건을 다뤘다. 극중 우영우는 지적장애인 여성을 준강간한 혐의로 구속된 한 남성의 변호를 맡는다.
그럼 1, 3, 6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뭔가요.
“3화요. 직관적으로 동생이 죽인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형의 자살이라는 걸 밝혀냈으니까요. 대역전극이죠. 또 피고인(동생)이 미성년자면서 장애인이라 자신을 미처 방어하지 못 할 수도 있었는데 어쨌든 피고인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니까….”
신 변호사는 ‘우영우’의 법률 자문도 맡았다. 촬영 현장에 직접 나가 제작진이 놓치기 쉬운 디테일을 잡아냈다. 법정 소란 장면에서 경위들이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 것, 재판장에서 판사가 반말로 얘기하는 것, 벽에 걸린 법원 마크가 실제와 다르게 생긴 것 등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드라마 법률 자문도 맡았다고 들었어요.
“법률 자문이라기보다 현장 자문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아요. 문지원 작가님이 이미 충분히 훌륭한 상태로 대본을 주셔서…. 현장에서 감독님 옆자리에 앉아 가지고 이거 어색하다, 저거 어색하다 이런 식으로 했죠. 화면 속에서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박은빈 배우 연기는 어떻게 봤나요.
“연기에 대해 평가하고 말고 할 건 없는 것 같은데, 다 떠나서 박은빈 배우가 너무 잘하더라고요. 특히 좋았던 게 발성이랑 발음. 사실 변호사랑은 상관없을 수 있지만 ‘정말 잘 들린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변호사가 법정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가요.
“그렇진 않아요. 굉장히 풍부한 느낌으로 연기하는데 실제 변호사들 모습은 굉장히 뭐랄까 (허공에 가로로 일직선을 그으면서) 이런 느낌? 법정에서의 변호사들은 단조(短調) 곡 같은데 드라마 속 배우들은 장조(長調) 곡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근데 대부분 법정물에서 변호사가 그렇게 그려지니까 ‘시적 허용’이라고 봐야 될 것 같아요. 더 까놓고 얘기하면 드라마에서 대사로 처리하는 게 사실은 다 서면 작업으로 이뤄지거든요. 근데 그렇게 되면 이제 화면에서 문서만 주구장창 보여줘야 하죠.”
현실엔 장애인 변호사 극소수
일각에서는 자폐 변호사에 의문을 표합니다. 우영우라는 인물의 개연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자폐도 스펙트럼 내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정도가 굉장히 다르다고 알고 있어요. 변호사로 활동하는데 필요한 인지 능력만 갖췄다면 지금이라도 도전해 활동할 수 있는 분이 있다고 봐요.”
자폐를 가진 변호사가 실제로 있나요.
“국내엔 아직 없는 걸로 압니다.”
지난해 전체 로스쿨 입학생 중 장애 학생(신체장애 포함)은 6명에 불과합니다. 장애인 변호사가 배출되기 힘든 원인은 뭘까요.
“갑자기 떠오르는 얘긴데…. 자전거로 출퇴근하거든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도시랑 자동차로 지나가는 도시는 정말 딴판이에요. 똑같은 길로 오는데 하나하나가 다 위험한 거죠. 걸림돌이 한두 개가 아니거든요. 장애인으로 사는 삶도 아마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끊임없이 등장하는 방해물, 갑자기 사라지는 전용도로…. 이런 것들이 누적된다는 거죠. 비장애인은 교재를 골라서 보는데 장애인은 국가에서 만드는 한 가지만 봐야 한다거나. 이런 문제가 분명 있을 거라고 봐요. 전문가는 아니지만 살면서 저도 소수자가 될 때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경험에 비춰보면 그래요. 로스쿨에 입학하기도 힘들지만 들어가서 생활하는 과정에서도 모든 게 걸림돌이 된다는 거죠. 차로 가는 사람은 뭐가 문제냐고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도로에 난 홈 하나 때문에 위기에 처하기도 하니까요. 책 놓고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공부하고 나면 어디 밥 먹으러 갈 때도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로 복합적인 문제인데…. 이런 하나하나가 문턱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우영우가 변호사로서 갖는 강점은 뭘까요.
“정확한 관점이 가장 큰 강점이죠. 의뢰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확한 관점을 갖는 게 좋은 변호의 시작이라고 보거든요. 특히 검찰이 한번 결론을 내리면 그 외 단서는 간과하기 쉬워요. 그런데 반대 관점, 피고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상황이 굉장히 다르게 보일 수 있어요. 정확한 관점을 설정할 능력을 갖추면 그 사람이 어떤 장애를 가졌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약자, 소수자로서의 감수성이 변호에 도움이 될까요.
“당연하죠. 비유하자면 우리는 모두가 같이 어울리는 파티장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서 ‘인싸(인사이더)’와 ‘아싸(아웃사이더)’가 경험하는 파티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우영우라는 인물이 살면서 쌓아온 경험, 감수성 덕에 피고인이나 사건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거죠.”
신 변호사 말대로 현실엔 우영우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환상’이다. 드라마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런 주인공이 대형로펌에 들어가는, 더더욱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극적 장치까지 더한다.
장애인 변호사도 로펌에 들어갈 수 있나요.
“이건 실제를 말씀드릴 게요, 당위가 아니라. 로펌의 근무 강도는 살인적이에요. 저만 해도 주 6일 이상 일하고 밤낮이 따로 없어요. 많은 로펌 변호사가 자정에 퇴근하면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한다’ 이렇게 느끼고 있어서…. 체력 문제는 분명히 발생할 것 같아요.”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긴가요.
“비장애인도 어지간해서는 견디기 힘든 환경이라는 뜻이에요. 정말 극한의 환경입니다. 진입 장벽도 높지만 들어가도 체력 문제 때문에 쉽지 않다는 거죠.”
극중 우영우는 로펌 대표, 동료 비장애인 변호사에게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이러면 현실에선 ‘민폐’라는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야 할 것 같은데요.
“농구로 치면 ‘헬프디펜스(동료 수비수가 뚫렸을 때 자신이 맡고 있는 공격수를 놔두고 해당 수비수를 돕는 것)’를 가줘야 하는 상황인 거죠. 누군가 대신 해줘야 하는 플레이어라면 일하기 힘든 건 맞아요. 축구에서 수비력이 떨어지는 선수가 잘 선발되지 않는 이유랑 같은 거예요.”
사건을 맡기려는 의뢰인이 적을 것 같기도 해요.
“일단 현장에 장애인 변호사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유의미한 숫자나 경향성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수 자체가 너무 적어서…. 그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네요. 다만 로펌 환경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현실적으로 쉽진 않다는 거죠. 극한까지 몰아넣으니까요.”
신민영 변호사는 “장애인 변호사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호영 기자]
“물론입니다. 장애인 인구 비율이 20~25명 중 1명이라고 해요. 100명이 있으면 4~5명은 있고 20인용 버스를 타면 1명은 장애인이라는 얘기예요. 그런데 장애인 변호사 수는 전체의 4~5%가 안 되거든요.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법조계는 엘리트주의적이고 다양성이 부족한 집단이라는 지적을 받습니다. 변호사 사회에서 ‘우영우’가 갖는 의미는 뭔가요.
“법학은 관점의 학문이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이 공급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키 170㎝의 상식과 100㎝의 그것은 다르거든요. 170㎝인 사람은 화장실에서 (벽 위쪽을 가리키며) 이렇게 높은 데 변기가 달려 있어도 되지만 100㎝에게는 그러면 변기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이런 게 관점의 차이인 거예요. 집단 내부에 100㎝도 있고 50㎝도 있으면 ‘이건 아니야’라는 다른 관점이 나올 수 있어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장애인 변호사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거나 기존에 가진 생각이 바뀐 게 있나요.
“아뇨. 전혀 없어요. 그동안 편견을 가질 만한 정보조차 없었으니까요. 국선 전담 변호사로 일할 때 지적 장애인인 피해자가 따라와 말을 건 적이 있어요.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데요. 너무 멀쩡한 거예요. ‘지적장애인 아닌 거 아닌가’ ‘검사가 잘못 기소한 거 아닌가’ 생각이 드는 거죠. 가만 생각해 보니까 살면서 지적 장애인이랑 대화해본 적이 한 번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접점이 너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드라마를 보면서 편견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저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새롭게 알아간 달까. 저뿐만 아니라 이 드라마를 보고 ‘자폐라는 게 저런 거구나’ 하고 처음 아신 분도 상당히 많을 것 같아요.”
‘우영우’ vs 실제 변호사의 삶
변호사들도 이 드라마를 많이 보나요. 실제와 비슷한 점은 뭐고 반대로 과장돼 있는 점은 뭔가요.“많이 봐요. 변호사 커뮤니티에서도 얘기가 많이 나와요. 현실감 있다는 게 가장 비슷해요. 법정물 볼 때마다 몰입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선남선녀들이 어디 갈라 파티 같은 데서 입을 것 같은 미끈한 옷을 입고 변호하는 그런 모습이거든요.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저만 해도 이렇게 벨트도 못 매고 와서 빠진 와이셔츠 집어넣고 있잖아요. 이 드라마는 적나라한 변호사 생활을 잘 묘사해 좋은 것 같아요. 우리 다 지하철 타고 다니고 김밥 먹고 그렇거든요. 과장된 부분은 개인적으론 출생의 비밀? 작가님도 생각이 있겠지만 저는 좀 불만입니다(웃음).”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부분도 혹시 있나요.
“6화에서 우영우가 판사실에 가는 장면이요. 원래 변호사가 판사 찾아가 법정 외 변론하고 그러면 안 되거든요. 다만 그 장면을 왜 넣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만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그랬을 것 같아요. 하면 안 되는 짓까지 하면서 어떻게든 해보려는 모습을 보여주려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극중 우영우는 열정 넘치는 변호사로 그려집니다. 신 변호사에게도 비슷한 모습이 있나요.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끌려갔다’고 진술하기에 그분이 말한 동선 대로 걸어본 적이 있어요. 막상 가보니까 지도에도 안 나오고, 어디에도 안 나오는 정보지만 그 길이 공사 중인 거예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알아보니 수개월 전부터 막혀서 갈 수 없는 길이더라고요. 직접 현장에 가 거짓 진술이라는 걸 밝혀낸 거죠.”
신 변호사와 인터뷰 내내 ‘장애’ ‘비장애’를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했다. 피해자 처지에 충분히 공감하고, 그를 바탕으로 정확한 관점을 가진다면 누구나 ‘좋은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우영우’가 회를 거듭하며 공통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우영우’가 법조계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요.
“드라마든 영화든 작품이 현실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기도 해요. 일례로 영화 ‘도가니’ 이후로 시설 내 성폭력은 확실히 개선됐거든요. 그와 비슷하게 ‘우영우’를 계기로 법조계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한 번 더 전향적으로 생각할 공간을 만들어 놓았으니까요. 실제로 요즘 로펌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해요. 원하는 시간에 편안한 환경에서 일하는 거죠. 이렇게 시스템이 변화하면 장애인 변호사도 얼마든지 우영우처럼 대형로펌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드라마가 어떤 기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