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첫 경기도 보수 교육감
3선 의원·노동부 장관·대통령실장·대학총장 관록
교부금 개편 논쟁, 절충안 있다.
혁신학교에서 몽실학교까지 평가 후 재정비
9시 등교 폐지가 아니라 자율화
4500원짜리 급식인데 왜 배가 고픈가
정시 확대는 대학 망치는 길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홍태식 객원기자]
이후 그의 정치 인생은 내리막길이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 번 떨어졌고, 그 과정에서 공천 갈등으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국립 한경대 총장으로 임명돼 정치와는 거리를 두는 듯했으나,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 뒤 새 정부에서 요직을 맡을 거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가 돌연 경기도교육감 출마를 선언했을 때 사람들은 “도지사도 아니고 왜?”라는 의문을 지우지 못했다. 정치적 재기를 위해 교육을 이용한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막판에 진보 진영이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팽팽한 접전이 예상됐으나 뚜껑을 열고 보니 9.59%포인트 차의 넉넉한 승리였다. 교육감 직선제 이후 경기도에서 13년 만에 보수 교육감이 탄생했다. ‘교육 전문가 대 정치 전문가’의 대결로 몰고 가려던 상대 진영의 선거 전략은 실패했다. 경기도민들은 “교육감까지 교체해야 진정한 정권교체”라는 임태희의 손을 들어주었다.
7월 12일 수원시에 있는 경기도교육청 남부청사에서 임 교육감을 만났다. 청사 3층에 마련된 집무실은 장식 하나 없이 개인 책상과 회의용 테이블이 전부여서 마치 선거운동본부에 온 느낌이다. 노타이 차림의 임 교육감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2022년 4월 1일 현재 기타학교를 포함해 경기도 유·초·중·고 학교 수는 4693개교이며, 학생 수는 166만7629명, 전국 학생 수의 4분의 1이 경기도에 있다. 올해 경기도교육청 예산은 19조1959억 원으로 경기도청 예산 33조 원의 절반을 넘고, 문화체육관광부 예산(7조3962억 원)보다 많다. 경기도교육감은 12만 명의 공무원을 거느리고 예산·결산 편성, 교육규칙 제정, 학교 설치와 폐지, 교육과정 운영 등 열일곱 가지에 달하는 권한을 행사한다. “경기도 교육이 바뀌면 다 바뀐다”는 임태희 교육감의 말이 과장이 아니다.
유권자들이 13년 만에 보수 교육감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경기도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된 것 같다. 특히 학교가 정치 편향적, 엄밀히 얘기하면 편향적 역사관이나 가치관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분이 많다. ‘미래, 자율, 균형’을 경기도 교육의 3대 원칙으로 제시했다. 획일적이고 편향적인 교육을 자율적이고 균형적인 교육으로 바꾸겠다는 의미다. 교육은 단기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전체를 봐야 한다. 눈에 보이는 불균형이 있으면 당장 그것부터 바로잡으려 하지만 어떨 때에는 단기적으로 그 불균형을 감수하고 가야 장기적으로 균형에 이른다. 단기적, 전체적, 균형적으로 가면 결과는 하향평준화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농담처럼 가장 자유로운 집단은 거지고 가장 평등한 것은 감옥이라고 한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그것이 아니지 않나.”
경기도교육감 취임 후 1호 정책이 ‘등교시간 자율화’다. 이재정 전 교육감 때부터 8년간 시행해 온 ‘9시 등교제’를 폐지하는 것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비롯해 학부모 단체 등이 ‘0교시 부활’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9시 등교제는 나쁘니까 폐지하자는 게 아니다. 9시 전에는 교문도 열지 말고, 9시 전에는 학교 안에 들어오지도 말라는 식으로 획일적으로 등교시간이 운영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동안 각급 학교 교장선생님을 많이 만났다. 등교시간에 대해 물으니 학부모의 요청으로 이미 아침 8시에 등교시키고 있다는 학교도 있더라. 특히 신도시의 젊은 맞벌이 가족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발을 구른다. 학교가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지 않겠나. 다만 교육청에서 지침을 내려 일률적으로 등교시간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31개 시·군이 저마다 다른 지역 특성과 학교, 학년에 따라 천천히 조금씩 바꾸면 된다. 여름에는 이른 시간에 등교하고 이른 시간에 하교하기를 원하는 학교나 맞벌이 가정이 많은 지역에서 먼저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 자율의 힘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등교시간 자율화는 교육 현장에 긍정의 힘을 불러오고 그 안에서 학생들은 역량을 키우고 스스로 미래를 열어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7월 11일 충남 부여에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시도교육감 간담회가 열렸다. 무슨 건의를 했나.
“다른 교육감들은 사람 부족하다, 예산 부족하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할 테니 나는 다른 얘기를 좀 하겠다고 했다. 며칠 전 평택에서 굴착기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 두 명을 치어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치사상의 가중처벌’ 일명 ‘민식이법’의 맹점을 지적하고 법 개정을 요청했다. 스쿨존에서 운전자 부주의로 13세 미만 어린이가 사망할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되는데, 법 적용 대상이 도로교통법상 자동차이다 보니 굴착기 같은 건설 장비는 빠져 있다. 또 도로교통법상 자동차는 내연기관에 의해 움직이고 4개의 바퀴로 운영되는 기계라고 돼 있는데, 이에 따르면 내연기관이 없는 전기차도 해당되지 않는다. 이것은 입법적 하자다. 우리가 마련한 개정안에는 건설기계관리법 시행령에 의한 건설기계 종류를 다 포함했다. 박 부총리도 정부 입법이 어려우면 당정 협의를 통해서 조속히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식이법’ 입법적 하자부터 고치자
비공개 간담회였지만 7월 7일 정부가 공개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 개편안을 놓고 신경전이 있었다. 그동안 교육교부금은 유·초·중·고교 교육에 쓰이는 재원인데 최근 정부가 이를 대학도 활용할 수 있도록 개편을 추진하자 17개 시·도교육감이 한목소리로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나도 반대했다. 당(국민의힘)에서도 의견을 물어보기에 내국세의 20.79%를 떼서 조성하는 교육교부금법은 애초에 의무교육 실시를 위해 제정된 것인데 이것을 건드려 대학을 지원하는 것은 원칙에 맞지 않다고 했다. 대학은 가는 사람도 있고 안 가는 사람도 있는데, 어쩌면 못 가는 것도 억울한데 세금으로 대학에 가는 사람만 지원해 주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 세수의 20.79%를 떼서 조성하는 것과 지방교육세 세수 일부의 합계로 정해진다. 세수가 늘면 교부금도 자동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문제는 학령인구(만 6~17세)는 급격히 감소하는데 고정 비율로 배당되는 교육교부금은 급증한 것. 각급 학교가 남아도는 예산의 사용처를 찾느라 고심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10년 전인 2013년 학생 수 657만 명에 교부금 총액은 41조6000억 원으로 1인당 620만 원이었다. 2022년 학생 수는 532만 명인데 교부금 총액은 81조 원 이상으로 1인당 1500만 원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2021년 교부금 총액이 60조3000억 원이던 것과 비교해도 1년 만에 무려 20조 원 이상 늘어났다. 한국개발연구원은 2060년이 되면 교부금은 164조5000억 원까지 늘어나고 학생 수는 301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14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대학들은 재정난을 호소하며 고등·평생교육에서도 교부금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하고 있고, 교원 단체들은 “우리 것을 가져다 쓸 생각하지 말고 필요하면 고등 재정은 따로 마련하라”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제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교부금 지원 대상을 지방 대학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국정과제로 발표하면서 갈등이 표면화됐다. 최근 정부는 3조6000억 원가량의 지방교육세를 대학에 지원하는 ‘고등·평생교육특별회계법’을 제정해 국가재정법과 교육교부금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빗나간 교육 수요공급 예측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홍태식 객원기자]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실장으로 있을 때 대학 ‘반값 등록금’을 위해 교육교부금에서 충당하자는 안이 나왔지만 반대했다. 교부금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내국세의 20.79%로 조성하는 것과 교육세다. 여기에 해법이 있다. 지방교육세는 지방자치단체의 교육 여건 개선에 쓰도록 돼 있을 뿐, 반드시 초·중·고교에 보내라고 사용처가 특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누리과정(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3~5세 어린이를 위한 표준 교육)을 운영할 때 이 예산을 가져다 썼다. 지방교육세의 일부분을 대학 지원에 쓰면 된다. 그렇게 되면 내국세의 20.79%는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양측이 절충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과거에 비해 학생 수가 준 것은 맞지만 교육의 질 개선을 위해서는 여전히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그 논리가 먹혔다. 하지만 그 논리에도 한계가 있다. 지역마다 교육의 수요공급이 차이가 커서 획일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경기도의 교육 현상은 다른 지역과 차이가 크다. 매년 서울에서 30만 명씩 경기도로 넘어온다. 인구가 늘어나면 당장 과밀학급·과대학교 문제가 생긴다. 반면 인구가 주는 서울은 교사 1인당 학생 20명의 조건이 저절로 된다. 더욱이 신도시는 다둥이 가족 특별공급 같은 것을 많이 하다 보니 주민 수에 비해 학생 비율이 대단히 높다. 교육청이 예측을 잘못했다고 하는데, 중앙정부가 그런 현상들을 정확히 짚어줘야 한다. 단순히 가구수 대 평균 자녀 수로 하면 학교는 100% 모자란다. 신도시는 국토교통부가 만들어놓고 교육은 교육청 책임이니 알아서 하라, 교육부는 모르겠다 이런 식은 곤란하다. 강원도는 학생 수가 줄어 폐교가 속출하는데 경기도는 과밀학급·과대학교에 교사 수도 모자란다. 경기도만 부족하지 다른 지역은 오히려 경기도 기준으로 보면 남는다. 이렇게 천차만별인데 교육감들끼리 모여서 해결한다고 해봤자 공감대가 형성되겠나.”
혁신학교처럼 진보 교육감들이 추진해 온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생각인가.
“혁신학교, 꿈의 학교, 꿈의 대학, 몽실학교, 혁신공감학교, 자유학기제, 고교학점제. 그 취지를 나쁘다고 할 사람은 없다. 경기도에서 시행되고 있는 사업 중 성공적인 사례도 많다. 그래서 혁신학교의 성공 사례를 조사해 좋은 모델이 있다면 전 학교로 확산시키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지금까지 혁신학교는 사업 형태로 진행됐다. 사업으로 선정되면 돈을 주고 보고서를 쓰게 한다. 사업이기 때문에 정산을 해야 해서 보고서가 많다. 정작 변화를 확인하는 과정은 부족하다. 돈 쓰는 과정에서 하자만 없으면 된다. 하지만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그 제도를 도입하기 전과 후에 어떤 변화가 있느냐다. 평가 후 성공한 사례라면 제도화해서 모든 학교가 누릴 수 있게 하면 된다. 제도화되면 더는 보고서를 쓸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사업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사업을 당장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운영 방식을 바꾸려 한다.”
성공 사례는 제도화, 평가 없는 사업은 재검토
최근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만나 도내 교육 현안을 협의했다. 협치의 가능성을 보았나.“합리와 상식에 입각해 하면 맞을 것이고, 정파적 시각으로 보면 안 맞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장으로 있을 때 김동연 지사가 대통령실 국정과제비서관으로 근무한 인연도 있다. 김 지사는 오랫동안 관료 생활을 해서 정치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고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일처리 하는 게 몸에 밴 분이다. 그런 점에서 협치를 기대하고 있다. 정례 협의체를 구성해 월 1회 소통할 뿐만 아니라 수시로 만나기로 했다.”
도내 교육 현안은 무엇인가.
“과밀학급·과대학교, 돌봄, 방과후학교, 학교급식 4가지다. 취임 전 6800명을 대상으로 급식에 대해 조사했더니 ‘배가 고프다’ ‘질이 좋지 않다’ ‘맵고 짜서 못 먹겠다’ 같은 답이 많았다. 학교급식 경비는 교육청, 도청, 시·군이 분담해 지원하고 있다. 처음에는 급식 단가가 너무 낮아서 생기는 문제인 줄 알았다. 현재 학생 1인당 급식 단가는 고등학생 4060원, 중학생 3760원, 초등학생 3100원(300명 기준)이다. 총장을 했던 한경대의 한 끼 비용이 3500~3800원인데도 최상품 쌀을 사용했고 맛도 좋았다. 그런데 한 끼당 4000원이 넘는 학교 급식에 대해 배고프다 맛없어서 못 먹겠다라는 말이 나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학교 급식비는 인건비가 별도여서 순수하게 재료비라고 치면 일반 식당에서는 1만 원짜리 이상을 먹는 셈이다. 어느 절차에서 문제가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볼 생각이다. 급식비를 분담하는 만큼 품질관리도 지자체와 교육청이 함께 하자고 했다.”
교사가 학생을 못 따라가는 디지털 역량
대학 총장 출신 교육감으로서 기대 반 우려 반이다.“우려라면 초·중·고교 교실 경험이 없다는 것인데, 교실 경험이라면 현장 교사를 따라갈 수 없고 교장들조차 이미 현장과 많이 떨어져 있다. 더 심하게 얘기하면 교사가 학생들을 따라가지 못한다. 특히 디지털 사용 역량이나 디지털 응용 역량에서 그렇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4.0시대라면 교육은 그 너머를 향하는 사회와 발맞춰야 한다. 학교교육이 아날로그 2.0시대에 머물러 있으면 학생들의 흥미와 동기를 유발하기 어렵고, 교육 현장과 사회 기대는 점점 멀어진다. 학교가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 것인가. 지금은 방치에 가깝다. DQ(Digital Quotient·디지털지능) 역량 강화 교육에 집중할 것이다. DQ를 강조한 것은 아이들이 디지털 사용 역량은 있지만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은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래에 잘 적응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 살아갈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대학에서 바라본 한국 고교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대학 평가를 받아보니 알겠더라. 평가에서 중요한 요소가 교과과정과 교양과정이다. 교양과정으로 개설된 강의가 많고 충실할수록 점수가 올라간다. 말하기, 읽기, 쓰기, 기초체육. 도대체 초·중·고교 12년 동안 해온 것을 대학에서 또다시 해야 할 이유가 있나. 이런 교육 하라고 대학에 예산을 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학은 전문성으로 경쟁시켜야 한다. 안 되면 빨리 직업학교로 바꾸게 해야 한다. 교육감에 도전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런 과정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학의 학생 선발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 같은 입시 교육으로는 창의적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안철수 의원도 완전 블라인드로 직원을 선발하면 고졸자가 절반이고 소위 명문대 출신은 거의 없다고 하더라. 가르쳐주는 것 잘 이해해서 모범 답안을 쓰는 훈련만 한 사람들에게 무슨 창의성을 기대하겠나. 그런 사람들이 대학입시에서 정시를 늘리자고 한다. 대학을 망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