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논의하기에 좋은 시기는 따로 없다
헌법 개정 논의 과정이 곧 미래 한국 준비 과정
권력체계 변경에는 심도 있는 논의 필요
개헌안 합의 과정에 대화와 타협 정치 복원 가능
하나의 정치세력이 개헌을 의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헌이 불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개헌처럼 중대한 정치적 사안을 한 진영에서 의석수를 내세워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진영 간 논의와 협상을 통해 합의된 개헌안을 도출하는 것이 헌법 개정의 정상적 과정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어느 정치세력도 200석을 차지하지 못한 의석 분포는 곧 여야 합의로 개헌안을 도출할 기회를 마련해 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계 이른 5년 단임 대통령제
2023년 1월 11일 김진표 국회의장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여야 합의를 거쳐 ‘국회 헌법개정 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개헌 논의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입법 주체인 국회에서 국회의장이 주도한 개헌자문위원회나 개헌특위가 설치된 사례가 상당히 많다. 20대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 이후로 21대 김진표 의장까지 대부분 국회의장이 개헌 논의에 적극적이었고 개헌특위까지 설치했다. 여야의 극심한 갈등 상황 속에서 개헌특위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해체됐다. 개헌을 논의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따로 없다. 헌법이 정치 상황에 조응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개정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개헌 필요성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내용은 권력체제 변동과 대통령 임기와 관련된 것이다. 4년 중임 대통령제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현행 5년 단임제하에서는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성 결여와 조급한 성과주의가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집권 시기 국정 운영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또한 현직 대통령은 5년 안에 성과를 이뤄야 한다는 조바심에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는 것. 중임을 허용하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임기와 관련해서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달라 선거가 과도하게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 중 총선 결과에 따라 다수당이 바뀌는 급격한 정치 변동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를 4년으로 같게 하고 두 선거를 동시에 치르면 선거 부담이 적고 대통령 임기 중간에 국회 지배 정당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게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대통령 4년 중임제를 택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중임제가 도입되면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 즉 대통령이 차기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커 직책을 이용한 포퓰리즘 정책과 공약이 지금보다 훨씬 심해질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한 대통령 가운데 임기 종료가 아쉬워 재임했으면 좋겠다는 대통령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자. 8년 동안 한 명의 대통령에게 국정 운영을 맡기는 중임제가 최선인가 하는 신중론을 펴게 된다. 인기 없는 대통령의 재선을 막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선거에서 현직의 이점은 생각보다 크다.
다른 한편으로는 선거비용과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동시 선거를 도입하면 국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 역사를 보면 대선 직후 치른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집권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집권 초 대통령의 높은 지지 덕분이다.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르면 유권자들은 대선에 훨씬 관심이 높기 때문에 대선 후보 선택이 총선 후보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즉 대선이 총선을 결정하는 셈이 된다. 유권자들이 같은 정당의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 후보를 선택할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 그 결과 한 정당이 대통령과 국회를 모두 지배하는 여대야소가 당연해지고 삼권분립 원칙이 지켜지기 어려워질 수 있다.
지지자 크기만큼 권력 나눠야
국회 본회의장. [뉴시스]
대통령선거가 승자독식(winner-take-all) 방식이라는 점도 문제다. 승자가 모든 권력을 가지며 패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경쟁 방식에서 정치세력들은 선거 승리를 위해 어떠한 대가도 치르겠다는 사생결단의 마음을 갖게 된다. 아울러 패자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그들을 대변할 정치권력이 없다는 점에서 정치적 상실감을 크게 느끼게 된다. 선거 이후 국민통합은커녕 내재된 갈등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미국 선거에서 나타난 양극화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원칙적으로 정치권력을 공정하게 부여하는 방식은 지지자의 크기만큼 권력을 나눠 갖는 것이다. 내각제가 바로 이러한 권력 분할 방식에 비교적 가깝다.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만일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없으면 다른 정당과 연합해 연립정부를 구성한다. 연립정부에 참여한 정당들은 자신의 주요 공약을 집행할 기회를 갖게 된다. 최다득표자의 권력 독점이 아니라 다양한 정치세력이 연립정부에서 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내각제에서도 정당들은 더 많은 득표와 의석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지만 1등을 하지 않더라도 연립정부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 따라서 정당들은 정체성을 유지하고 이념적으로 일관성 있는 선거공약을 제시하게 된다. 대통령제 선거에서처럼 득표 지상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물론 내각제에서는 연립정부가 붕괴되면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 불안 요인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정권교체에 관계없이 심화되는 정치 갈등을 해결하고 국민에 대한 정치 반응성을 높이는 방안 중 하나로 국정책임자 선출 방식을 변경하는 것을 논의해볼 만하다. 제도만으로 일거에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제도가 바뀌면 행위자인 정치인의 행태 변화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분화된 현재의 한국 사회에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방식보다는 다양한 의견이 수용될 여지가 높은 다원적 민주주의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22대 국회는 개원 초부터 개헌 논의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총선이 더는 없다. 2026년에 지방선거가 있지만 개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정당들이 단기적 선거 이득의 셈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 국회라는 슬로건에 맞게 22대 국회에서 미래 한국 사회를 준비하는 헌법 개정의 큰 성과를 이루어내기 바란다. 민주주의 심화를 위한 헌법 개정 협의 과정이 성공하면 정당 간 신뢰 구축의 기회가 생길 수 있고, 다른 영역에서도 양보와 합의의 정치 관행이 축적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