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호

타협하지 않는 하이엔드 자존심 Rolex

[럭셔리 스토리]

  •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입력2024-05-1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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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위스 럭셔리 시계 브랜드 중 전 세계 시계 시장 점유율 1위는 롤렉스(Rolex)로 나타났다.

    • 미국 글로벌 투자사 모건스탠리가 스위스 컨설팅 회사 럭스 컨설트(LuxeConsult)와 함께 진행한 ‘2023 스위스 럭셔리 시계산업 리포트’에 따르면 롤렉스는 지난해 93억 스위스 프랑(한화 약 13조5711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2위부터 5위까지의 매출을 합한 것보다도 큰 액수다. 수치가 증명하듯 롤렉스의 인기는 다른 브랜드가 넘보기 힘든 수준이다.

    1963년 출시된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는 레이싱에 특화돼 있다. 
 [롤렉스]

    1963년 출시된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는 레이싱에 특화돼 있다. [롤렉스]

    1947년 3월 중순, 대한민국 인천항에 마카오 상품을 실은 영국 국적의 4500t급 페리오드 무역선이 입항했다. 이 배가 입항한 후부터 ‘마카오 무역’ ‘마카오 신사’란 말이 유행했다. 1950년 이후 마카오나 홍콩 등지에서 밀수입한 양복감으로 양복을 지어 입은 사람을 흔히 ‘마카오 신사’라 불렀다. 당시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양복 입은 신사’가 되고 싶어 했다.

    1950년대 정통 마카오 신사는 8가지 수입 명품으로 치장했다. 먼저 영국산 양복감으로 맞춘 양복에, 영국산 와이셔츠를 입고, 손목에는 스위스제 롤렉스 시계, 허리에는 이탈리아제 악어가죽 벨트, 손에는 프랑스제 크리스티앙 디오르나 루이비통 가방, 발에는 이탈리아제 발리 구두, 머리에는 파나마 해트(Panama Hat·에콰도르에서 기원한 파나마를 소재로 해 손으로 짜서 만든 모자)을 걸친 다음, 마지막으로 샘소나이트 여행용 가방을 끌어야 정통 마카오 신사였다.

    회중시계보다 정확한 손목시계

    1919년 스위스 제네바에 설립된 롤렉스 본사. [롤렉스]

    1919년 스위스 제네바에 설립된 롤렉스 본사. [롤렉스]

    롤렉스는 스위스의 명품 시계를 대표하는 브랜드다. ‘롤렉스’란 이름은 창업자 한스 빌스도르프(Hans Wilsdorf)가 손목시계 다이얼 위에 새길 짧고 발음하기 쉬운 단어를 창안한 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한스 빌스도르프는 독일 바이에른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던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2세에 부모를 여의고 이모 밑에서 자랐다. 19세가 된 1900년, 당시 시계 산업의 중심지였던 스위스 라쇼드퐁의 한 무역회사에 취업해 시계 제조와 유통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1905년 24세가 된 한스 빌스도르프는 사업 파트너인 알프레드 데이비스와 함께 영국 런던에 손목시계 유통업체인 ‘빌스도르프&데이비스’를 설립하고, 1908년부터 롤렉스 브랜드로 제품을 출시했다. 1914년 롤렉스는 천문대 항해용 시계에만 크로노미터 인증을 수여하던 영국 큐(Kew) 천문대로부터 ‘A등급’ 크로노미터 인증서를 손목시계로는 최초로 받음으로써 회중시계보다 정확한 손목시계의 시대를 열었다.

    1919년 한스 빌스도르프는 영국 런던의 빌스도르프&데이비스에서 나와 시계 제조로 오랜 역사를 가진 스위스 제네바로 간다. 1920년에는 ‘몬트레스 롤렉스 S.A.(Montres Rolex S.A.)’라는 이름의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다. 롤렉스는 1931년 자사 시계 장인의 손과 왕관을 형상화한 크라운 로고를 정식 등록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굴 껍데기에서 착안한 오이스터 시계

    1926년 출시된 최초의 방수 시계 오이스터. [롤렉스]

    1926년 출시된 최초의 방수 시계 오이스터. [롤렉스]

    1926년 굴 껍데기(한번 입을 다물면 물이 들어가지 않는 굴)에서 착안해 개발한 오이스터(Oyster) 방수 기술로 세계 최초의 방수·방진 시계인 ‘오이스터 케이스’를 개발했다. 이 케이스는 롤렉스의 시계 기술자들이 별도의 공구를 사용해야만 열 수 있다고 한다. 1927년 런던의 속기사였던 여성 메르세데스 글라이츠가 롤렉스 오이스터 시계를 착용하고 수영으로 도버해협을 건너면서 오이스터 시계의 완벽한 방수 성능을 증명했다. 이후 롤렉스는 다양한 오이스터 시리즈를 지금까지 출시하고 있다.

    1945년에 출시된 ‘오이스터 퍼페츄얼 데이트저스트(Datejust)’는 오이스터 케이스가 적용돼 수심 50m까지 방수가 가능했으며, 현재는 100m까지 방수가 가능하다. 오이스터 퍼페츄얼 데이트저스트는 퍼페츄얼 로터가 적용된 자동 태엽식 시계를 말한다. 세계 최초로 다이얼에 날짜를 표시하는 데이트저스트가 적용됐다. 이 시계는 다이얼의 3시 위치에 날짜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가독성을 높였다. 1956년부터 다이얼 표시창에 볼록렌즈를 추가해 날짜를 2.5배 확대했고, 이 기술로 롤렉스는 특허를 받았다. 이후 롤렉스는 요일의 전체 글자와 날짜를 표시한 ‘데이-데이트(Day-Date)’모델을 출시한다. 롤렉스의 날짜 및 요일 표시 방식은 시계 제조 기술의 표준이 됐다.

    1945년 출시된 데이트저스트. [롤렉스]

    1945년 출시된 데이트저스트. [롤렉스]

    이후 1953년에 출시한 ‘오이스터 퍼페츄얼 서브마리너(Submariner)’는 잠수 시간을 알려주는 회전 베젤과 퍼페츄얼 로터가 적용된 자동 태엽식 기능을 탑재했다. 세계 최초로 수심 100m에서 방수가 가능하도록 만든 시계로 현재는 수심 300m까지 방수된다. 오이스터 퍼페츄얼 서브마리너는 수많은 유명 인사가 애용한 시계로 알려져 있다. 영화 ‘007’ 시리즈의 3대 제임스 본드 로저 무어가 착용한 오이스터 퍼페츄얼 서브마리너는 2011년 말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2억70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혁명가 체 게바라도 이 제품을 착용한 것으로 전한다. 서브마리너 시리즈는 그동안 발전을 거듭하면서 다이버 워치의 상징이 됐다. 1967년엔 수심 610m까지 방수 기능이 작동하는 ‘오이스터 퍼페츄얼 씨-드웰러(Sea-Dweller·바다의 거주자라는 뜻)’가 세상에 나왔다. 1978년 방수 성능은 수심 1220m.

    1967년 출시된 오이스터 퍼페츄얼 씨-드웰러. [롤렉스]

    1967년 출시된 오이스터 퍼페츄얼 씨-드웰러. [롤렉스]

    2012년에 출시된 ‘오이스터 퍼페츄얼 스카이-드웰러(Sky-Dwellers)’는 롤렉스의 14개 특허 기술이 적용된 기술력의 결정체로 전 세계를 누비는 여행자들을 위한 시계다. 이 시계는 2개의 시간대를 표시하는 듀얼 타임 기능이 있는데, 일반 시침과 분침으로 표시하는 현지 시각과 다이얼 아래쪽 별도의 다이얼로 표시하는 다른 지역 시각을 24시간 단위로 표시하고 있다. 이 시계는 사로스라는 독창적인 연간 달력을 사용한다. 2월을 제외한 30일과 31일로 끝나는 모든 달을 자동으로 구별해 날짜를 변경해 준다.

    2012년 출시된 오이스터 퍼페츄얼 스카이-드웰러. [롤렉스]

    2012년 출시된 오이스터 퍼페츄얼 스카이-드웰러. [롤렉스]

    롤렉스는 1931년 영구회전자가 장착돼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태엽이 감기는 최초의 자동 태엽 ‘퍼페츄얼 로터(Perpetual Rotor·영구 회전자)’ 방식을 선보임으로써 시계 역사를 한 단계 도약시켰다. 퍼페츄얼 로터는 태엽이 적정 수준으로 감겨 시계가 항상 정확한 시각을 표시하도록 ‘밸런스 휠(Balance Wheel·시계의 평형 바퀴)’과 함께 사용된다. 롤렉스의 밸런스 휠은 정확도, 신뢰성, 저항력 등을 인정해 주는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았다.

    이 시계의 작동 원리는 현재 이용되는 기계식 손목시계의 근원이 됐다. 1955년 롤렉스는 대륙 간 여행이 잦은 파일럿을 위해 3개 시간대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GMT-마스터(GMT-Master·GMT는 ‘Greenwich Mean Time’의 약자로 전 세계의 평균시를 말함)’를 출시했다. 쿠바의 정치가이자 혁명가인 체 게바라가 게릴라전에서 신뢰도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GMT-마스터를 착용했다는 유명한 얘기도 있다.

    1953년 말 제네바 본사 사무실에서 호주의 최초 롤렉스 대리점주와 함께 시계를 검토하는 창업자 한스 빌스도르프(오른쪽). [롤렉스]

    1953년 말 제네바 본사 사무실에서 호주의 최초 롤렉스 대리점주와 함께 시계를 검토하는 창업자 한스 빌스도르프(오른쪽). [롤렉스]

    1960년 설립자 한스 빌스도르프가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1963년 앙드레 하이니거(Andre´ Heiniger)가 42세의 나이에 롤렉스의 2대 CEO로 취임했다. 앙드레 하이니거는 시계 산업의 본고장인 스위스의 라쇼드퐁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변호사로 일하다 1948년 27세에 롤렉스에 입사했다.

    롤렉스는 1963년 미국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비치에서 열리는 세계적 자동차 경주에서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Cosmograph Daytona)’를 발표했다. 모터사이클 선수나 카레이서 사이에선 성지로 알려진 데이토나는 20세기 초·중반 전설적 경주가 많이 개최된 곳으로 세계 유일의 백사장 트랙으로도 유명하다. 롤렉스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는 레이싱 드라이버들과 스피드광을 위해 제작된 시계다.

    2017년 10월 뉴욕 필립스 경매에서 미국 영화배우 폴 뉴먼(1925~2008)이 생전에 착용한 롤렉스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가 1775만 달러(한화 약 200억 원)에 낙찰됐다. 당시 이 낙찰가는 손목시계 경매 역사상 최고가로 기록됐다. 이 시계의 가치가 더 특별한 이유는 폴 뉴먼 부부의 애정을 간직한 데 있다. 아내 조앤 우드워드는 이 시계를 폴 뉴먼에게 선물하며 스피드광인 남편의 안전을 걱정해 시계 뒷면에 ‘Drive Carefully Me’라고 새겼고, 폴은 아내가 준 이 시계를 무척 아꼈다고 한다.

    타협하지 않는 기계식 시계

    최초의 자동 태엽 퍼페츄얼 로터(왼쪽). 특수 소재 904L 스틸. [롤렉스]

    최초의 자동 태엽 퍼페츄얼 로터(왼쪽). 특수 소재 904L 스틸. [롤렉스]

    1960~70년대 값싸고 정확한 일본의 쿼츠 시계(Quartz Watch·전지로 작동하는 시계)가 세계시장을 휩쓸며 스위스 시계업계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롤렉스는 기계식 시계를 고집해 ‘타협하지 않는 최고급 시계’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1985년 롤렉스는 첨단기술, 항공, 화학 분야에서 사용되던 특수 소재인 904L 스틸을 손목시계에 사용했다. 내구성이 뛰어나고 부식에 강한 904L 스틸 손목시계는 레이서, 파일럿, 요트 선수 등 거친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1992년 앙드레 하이니거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패트릭 하이니거(Patrick Heiniger)가 롤렉스의 경영을 맡았다. 그는 롤렉스의 제조 시스템을 통합하기 위해 스위스 각지에 흩어져 있던 제조시설을 스위스 제네바에 모아 회사 이름을 ‘롤렉스 S. A.’로 변경했다. 이후 롤렉스는 자사 시계의 모든 주요 부품을 연합된 환경에서 자체 생산하면서 2000년부터는 시계 신소재 및 부품의 품질을 높이려 노력했다. 그 결과, 무브먼트에서 크로노그래프(Chronograph·시계 내부에 들어가는 시각 기록 장치)의 부품 수를 크게 줄여 내구성을 강화한 ‘칼리버 4130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Calibre 4130 Chronograph Movement)’를 개발해 냈다.

    2005년에는 견고한 세라믹 소재의 ‘세라크롬 베젤(Cerachrom Bezel·시계 유리판을 고정하는 주변 테두리)’과 자기장에 영향을 받지 않는 ‘블루 파라크롬 헤어스프링(Blue Parachrom Hairspring·시계의 정확도를 좌우하는, 시계태엽과 연결된 작은 와류형 스프링)’을 개발했다. 2008년 롤렉스는 심해의 높은 수압에서도 견딜 수 있는 ‘링록(Ringlock) 시스템’을 적용한 ‘롤렉스 딥씨(Deepsea)’를 출시했다. 방수 성능이 수심 3900m에 달하는 시계다. 2011년부터는 롤렉스 이탈리아지사장을 지낸 지안 리카르도 마리니(Gian Riccardo Marini)가 본사 경영을 이어받았다.

    한계 도전에 함께한 롤렉스

    1953년 5월 29일 세계적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오른쪽)가 ‘오이스터 퍼페츄얼’ 시계를 착용하고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한 후 흐믓해하고 있다. [롤렉스]

    1953년 5월 29일 세계적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오른쪽)가 ‘오이스터 퍼페츄얼’ 시계를 착용하고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한 후 흐믓해하고 있다. [롤렉스]

    1930년대 한스 빌스도르프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탐험가를 지원하며 극한의 환경에서 롤렉스 시계의 탁월한 성능을 확인했다. 1953년 존 헌트 경이 이끄는 원정대의 일원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가 ‘오이스터 퍼페츄얼’ 시계를 착용하고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했다. 같은 해 롤렉스는 탐험가용으로 내구성 강한 케이스와 극한의 조건에서도 읽기 쉽게 제작한 다이얼이 특징인 익스플로러(Explorer) 모델을 출시했다.

    1953년 출시된 익스플로러 모델. [롤렉스]

    1953년 출시된 익스플로러 모델. [롤렉스]

    롤렉스는 인간의 노력과 성취의 한계에 도전하고자 하는 탐험가를 응원한다. 이에 롤렉스는 심해 탐험가이자 영화감독인 제임스 캐머런, 해양 탐험의 선구자이자 해양생물학자인 실비아 얼, 탐험가 알랭 위베르 등 지구 곳곳을 누비는 많은 이들과 함께했다.

    또한 롤렉스는 용도와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모델을 제작하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탐험용 익스플로러, 잠수용 서브마리너와 씨드웰러, 레이싱용 데이토나, 요트용 요트-마스터, 파일럿 혹은 여행자를 위한 스카이-드웰러, 에어킹, GMT-마스터, 드레스엔 데이트저스트, 데이-데이트, 첼리니(2023년 단종이 확정돼 공식 홈페이지에서 삭제됐으나 퍼페츄얼 1908이 대신 출시됨), 과학자용 밀가우스 등이 있다.

    1955년 출시된 GMT-마스터. [롤렉스]

    1955년 출시된 GMT-마스터. [롤렉스]

    1956년 출시된 과학자용 밀가우스. [롤렉스]

    1956년 출시된 과학자용 밀가우스. [롤렉스]

    희소가치가 보증하는 품격

    2020년 8월 영국서 열린 펠로즈 경매에서 과거 영국 특수부대 군납 목적으로 소량 제작된 빈티지 롤렉스 시계가 16만5200파운드(한화 약 2억6000만 원)에 낙찰되며 최고가를 경신했다. 군용 시계로 대중에겐 판매되지 않아 희소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 시계는 1978년식 모델로 당시 제작된 1200개 중 200개 정도만 온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7월 열린 소더비 온라인 경매에서는 높은 희소성을 자랑하는 롤렉스 데이토나(Ref.6264)가 153만5723달러(한화 약 18억5000만 원)에 낙찰되며 시계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롤렉스는 다른 브랜드를 소유하지 않은 단일 브랜드 기업이다. 비상장기업이기에 정확한 기업 재무제표나 경영 실적을 알 수는 없지만, 창립자가 설립한 재단의 원칙에 따라 채무 없는 경영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롤렉스는 초기 핵심 라인의 가격과 물량을 조절하며 높은 가치를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 이것이 롤렉스가 신사의 품격을 보증하는 최고의 명품 시계로 추앙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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