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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

“내 음악의 정서적 기반은 哀而不悲”

90년대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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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을 무엇이라 말하면 좋을까.
  • ‘신세대 논쟁’과 함께 거센 랩 댄스 열풍이 몰아친 이 시기 가요계는 장년층 이상이 철저히 배제된 ‘10대만의 리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10년 동안 비주류 장르가 되어버린 발라드를 한결같이 지키며 ‘국민가수’라는 칭호를 선사받은 신승훈이 없었다면 이 시기 대중음악사는 참으로 단조로웠을 것이다.
90년대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
1990년대의 문을 연 대중가요 스타는 애절한 발라드를 부르는 신승훈이었다. 1990년 11월 포크 감성이 깃든 발라드 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와 동시에 정상에 오른 그는 1980년대 말을 수놓은 발라드 스타 이문세, 변진섭, 김민우 등을 물리치며 단숨에 새 황태자로 등극했다. 이어 1992년 신년벽두에 발표한 노래 ‘보이지 않는 사랑’이 전국에 울려퍼지면서 그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음악천하를 호령했다.

하지만 그가 화염의 절정을 만끽하자마자 곧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 댄스 폭풍이 밀어닥쳤다. 절대위기 상황이었다. 그는 그러나 전혀 움츠러들지 않고 ‘널 사랑하니까’ ‘로미오와 줄리엣’ ‘처음 그 느낌처럼’ ‘오랜 이별 뒤에’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등을 히트시키며 강한 대항력을 발휘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조금 뒤에 출현한 김건모와 함께 이른바 ‘빅3’ 시대가 열린 것. 과거 1970년대 청소년들이 딥 퍼플, 레드 제플린, 퀸을 놓고 삼각 대립구도를 형성한 것처럼 당시 중·고교 교실은 서태지 김건모 신승훈 팬으로 삼분(三分)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댄스 열풍에 밀리기는커녕 도리어 발라드의 황태자에서 황제로 승격했을 뿐 아니라 한 연예주간지로부터 처음으로 ‘국민가수’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부여받을 정도로 위풍당당 진군을 거듭했다. 1995년 한 일간지는 ‘신승훈표 발라드’의 가공할 위력을 두고 “서태지나 김건모만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것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음반시장의 환호는 더 크게 누렸다”고 평가했다.

한번 판 전체의 분위기에 쏠리면 걷잡을 수 없는 것이 대중가요의 속성. 그러나 그는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은 유약한 발라드를 가지고 1990년대를 삼켜버린 댄스음악의 독점상황을 이겨낸 것이다. 어쩌면 랩과 흑인음악 댄스의 소란스런 공세가 계속되면 될수록, 조용한 음악을 선호하는 일각의 팬들은 더욱더 신승훈을 ‘방패’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 그는 ‘센세이션을 능가하는 조용한 지속’이라는 발라드의 유서 깊은 가치를 입증했다. 그의 파워는 음반으로 한정되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든 그의 콘서트가 열리기만 하면 수천 명 이상의 인파가 몰려들었을 만큼 공연무대 또한 그의 영토였다. 신승훈은 1990년대 내내 발라드의 왕자인 동시에 라이브의 왕자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 듯, 10년이 넘는 영광의 전성기를 보낸 지금 신승훈의 위치는 결코 예전 같지 않다. 음반시장이 위축된 탓도 있겠지만 예전에는 마치 제 집 드나들 듯했던 방송사 히트순위나 앨범판매차트 상위권과도 조금은 멀어진 상태. 신승훈 스스로도 “이제는 나도 주류가 아닌 비주류”라고 말한다.

새 음반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그는 처음에는 “스튜디오에 파묻혀 작곡과 녹음을 하면서 이것저것 먹었더니 살이 많이 쪘다”며 나서기를 주저했지만 곧 “나를 말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며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서울 강남에 있는 그의 개인 사무실 근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더니 전화와는 달리 전혀 살찐 모습이 아니었다. “전보다 더 보기 좋다”고 했더니 “며칠간 열심히 운동했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매사 준비에 철저한 그다웠다.

그는 열성적인 대화로 인터뷰를 주도해갔다. 질문에 충실하게 답변했으며 때로는 예상한 듯 나중에 물어볼 것도 미리 말해버려 준비해간 질문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예상외로 다변이었고 달변이었다. 시종일관 귀공자풍의 자세와 웃음을 잃지 않은 그는, 창작의 고민과 음악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비롯해 데뷔 시점의 역경, 서태지 김건모와의 관계, 1998년 탈세사건이 몰고 온 위기 등 자신의 음악과 음악 외적인 모두를 상세히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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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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