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장류의 일종인 보노보 ‘칸지’가 여러 기호가 나열된 패드를 눌러 문장을 만들고 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인 줄 알고 그랬을까. 그랬다면 그들이 자신을 인식한다는, 즉 자의식을 지녔다는 의미가 된다. 사람들은 자의식을 인간만이 지닌 특성이라고 생각해왔다. 사람은 외출하기 전에 거울을 보고 머리에 붙은 보푸라기를 떼어내겠지만, 강아지가 거울 앞에서 몸단장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은 생후 2년쯤 되면 이른바 ‘거울상’ 단계를 지난다. 거울에 비친 영상이 자기 자신임을 인식하는 단계이다. 그 무렵부터 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남을 도울 줄도 알게 된다.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갤럽은 자의식이 남을 독립적인 존재로 보고 남의 의도와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의 토대가 된다고 믿었다. 그는 다윈의 실험이 있은 지 약 100년 뒤인 1960년대 말부터 침팬지를 대상으로 거울 실험을 했다. 침팬지는 오랑우탄과 같은 유인원이며, 오랑우탄에 비해 진화적으로 우리와 더 가깝다.
갤럽은 침팬지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침팬지들을 마취시킨 뒤 한쪽 눈썹과 반대쪽 귀에 붉은 물감을 칠했다. 깨어난 침팬지들에게 거울을 보여주자 그들은 자기 얼굴에 생긴 붉은 점을 만져보고, 자세히 살펴보고 손가락을 대어 냄새를 맡기도 했다.
그 뒤 많은 과학자가 여러 동물을 대상으로 비슷한 실험을 했다. 반복된 시험을 다 통과한 동물은 대형 유인원인 침팬지, 오랑우탄, 인간뿐이었다. 원숭이를 비롯한 여타 종들은 거울상이 자신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했다. 따라서 적어도 유인원은 자아 개념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동물도 남을 의식할까. 동료가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보고 듣는지 알까. 감정이입이 가능할까. 감정이입은 지극히 인간적인 속성이라고 여겨왔다. 남의 감정을 이해하고 동감하는 능력은 인간관계의 바탕이 되며, 인간만이 남의 처지를 이해하고 돕는다고 간주했다.
하버드대 인지심리학자인 마크 하우저의 붉은털원숭이 실험은 상당히 재미있다. 실험은 이렇게 진행됐다. 레버를 당기면 먹이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끔 붉은털원숭이를 학습시킨 뒤, 그 옆에 다른 붉은털원숭이를 넣었다. 이제 레버를 조작하여 원숭이가 레버를 당기면 옆 원숭이에게는 전기충격이 가해지도록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모습을 본 첫 번째 원숭이는 5∼12일 동안 레버를 당기지 않았다. 배가 고파도 레버를 당기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원숭이는 자신이 굶으면서까지 상대를 배려한 것일까. 원숭이들은 낯선 원숭이나 토끼 같은 다른 동물이 있을 때보다, 알고 지내던 원숭이가 있을 때 레버를 덜 당겼다. 또 전기충격을 경험한 원숭이들은 그렇지 않은 원숭이들보다 더 오랫동안 레버를 당기지 않았다.
600만년 전의 이별, 그 후
사회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램은 마크 하우저가 한 것과 비슷한 실험을 인간을 대상으로 했다. 권위적인 인물이 나서서 실험 대상자에게 레버를 당겨 다른 사람에게 충격을 가하라고 명령하자, 그 대상자는 다른 사람이 그 ‘충격’에 격렬한 반응을 보여도(사실은 배우가 연기한 것이었다) 계속해서 레버를 당겼다. 만약 우주인이 지구에 왔을 때, 붉은털원숭이와 인간 중 누구와 더 대화하고 싶을까. 내가 우주인이라면 동료를 위해 레버를 당기지 않은 원숭이쪽에 걸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