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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에 생각해보는 훈민정음 미스터리

한글날에 생각해보는 훈민정음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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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을 둘러싼 거대한 음모

최근엔 한글과 관련한 새로운 학설이나 연구결과가 나오는 대신, 훈민정음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소설들이 잇따라 출간돼 한글날을 기념하고 있다. 지난 여름 추리소설로 큰 인기를 모은 ‘뿌리 깊은 나무’(이정명, 밀리언하우스)와 ‘훈민정음 암살사건’(김재희, 랜덤하우스중앙)이 대표적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시대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7일 전 궁 안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 경복궁 후원 우물 안에서 칼에 찔린 채 죽은 집현전 학사 장성수의 시신이 발견되고 어린 겸사복 강채윤이 조사에 투입된다. 강채윤은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성삼문, 박연, 이순지, 정인지, 최만리 등을 차례로 만나며 궁중 내 개혁파와 사대파의 갈등, 그로 인한 거대한 음모를 알게 된다.

이 책은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훈민정음’의 창제과정을 소개하며, 세종의 인간적인 면모와 국가경영 전략까지 드러낸다는 점에서 스케일이 만만치 않다. 당대에 화려하게 꽃피운 수학, 천문, 건축, 음악, 미술 등을 접할 수 있는 것도 이 소설의 묘미. 다만 어린 겸사복이 단 며칠 만에 오행의 이치나 하도(河圖), 마방진(魔方陣), 천문 등을 섭렵하고, 그것을 이용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세종과 훈민정음에 대한 탐구열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훈민정음 암살사건’은 ‘한글이 진정 세종대왕이 만든 문자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앞서 소개했듯이 한글의 수많은 기원설 가운데 가림토 문자설을 토대로 한 소설이다.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일본인의 지갑에서 한문이 가득 적힌 낡은 종이 한 장이 나온다. 이 종이를 들고 사학과의 서민영 교수를 찾아간 강현석 형사. 서민영 교수는 이 종이가 세종대왕 친필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서 교수의 아버지는 한글의 역사를 고조선 시대로 끌어올리는 데 평생을 바쳤고, 한글 창제의 비밀이 기록된 ‘훈민정음 원류본’을 찾는 데 성공하지만,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뒤 ‘원류본’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이를 찾아 나선 서민영과 강현석, 그리고 원류본을 빼앗기 위해 이들을 추적하는 일본의 극우단체. 왜 일본은 원류본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훈민정음, 고대사를 다시 쓰다?

‘훈민정음 암살사건’은 보이지 않는 적과 서로 쫓고 쫓기는 스릴러와 암호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추리를 섞어 놓은 형식이다. 그 속에서 작가는 주로 서민영의 입을 통해 자신의 역사관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훈민정음 원류본’의 가치를 묻는 형사에게 서민영은 이렇게 대답한다.

“훈민정음 원류본이 진짜 있었고, 그 진품이 발견된다면 우리나라의 문자 역사는 다시 씌어져야 해요. 고작 1443년에 만들어져 갓 560여 년을 넘긴 글자가 아니라, 단군시대에 만들어져 4000여 년을 넘긴 문자라는 게 밝혀지면 우리 한글의 유구한 역사성은 세계에서 다시 한번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요. 문자의 역사는 바로 그 문자의 값어치를 나타냅니다. 훈민정음 창제 시기보다 먼저 쓰인 일본의 히라가나 문자를 들먹이며 일본인들은 한글을 대놓고 무시해요.”

고조선에 대해 서민영은 이런 말도 한다.

“고조선은 참으로 슬픈 나라예요. 자국민에게조차 국가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나라죠. 하지만 고조선은 반드시 있었습니다. 많은 역사서가 그걸 증명하고 있고요. …아쉽게도 고조선 문자가 적힌 유물은 한 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조선 시대에 문자가 씌었다는, 더욱이 가림토 문자가 그것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유물이 나온다면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는 다시 씌어져야 합니다.”

‘훈민정음 살인사건’은 독자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 하지만 정작 가림토 문자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허점을 보인다. 목숨을 걸고 원류본을 지키려는 주인공들에게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점도 그 때문이다.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훈민정음’ 논쟁이 소설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것을 어쩌랴.’

신동아 200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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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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