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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에게는 가이드가 필요 없는 이상적인 관광버스였지만, 나에게는 오페라 거리에 자리잡은 어학원으로 데려다주는 통학버스일 뿐이었다.
파리의 버스는 유난히도 많은 할아버지들, 할머니들, 아이들을 실어 날랐다.
그날은 사랑스러운 햇살과 달콤한 정적이 사분의 삼박자로 고요한 리듬을 타고 있었다. 갑자기 파란 눈에 살구색 볼을 가진 젖먹이가 울기 시작했다. 버스는 한동안 록 버전의 아이 울음소리만 가득 태웠다. 그런데도 아이의 아빠는 울음소리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 오히려 침착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묻는 것이었다.
“우리 아가, 왜 화가 난 거야? 아빠한테 말해봐.”
아이 아빠의 이성적이고 차분한 질문에 젖먹이가 울음을 그친다는 것은 센 강에서 고래를 만나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안타깝다는 듯 아이와 아이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나 신경을 자극하는 거친 울음소리 속에서도 아빠는 여전히 같은 질문뿐이었다. 결국, 아빠는 아이가 우는 이유를 찾아냈다.
“그래서 울었구나, 미셸. 담요를 달라고? 아빠가 몰라서 미안해.”
잠잘 때면 습관적으로 덮고 자는 자신의 초록색 줄무늬 담요를 잡아쥔 아이. 버스는 이내 조용해졌다.
파리의 퇴근길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신생아를 혼자 재우고, 잘못을 저지르면 아이의 뺨에 손을 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부모들이 사는 곳, 혹시 다칠까 노심초사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함께 놀아주기는커녕 놀이터 모래밭에 장난감과 아이들만 덩그러니 남겨두고는 벤치에서 엄마들끼리 수다를 떠는 곳, 가정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열다섯 살 무렵부터는 이성 친구를 부모 집에 데려와 한방에서 잘 수 있는 곳, 나쁜 것들은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배운다며 아이가 원한다면 중학교까지만 국립학교로 보내고 나머지는 집에서 개인교육을 하겠다는 아빠가 있는 곳, 미혼모가 얼굴 들고 당당히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곳,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가 없는 곳, 결혼 전 동거가 너무나도 당연시되는 곳, 임신부와 아이들을 동반한 엄마는 슈퍼마켓 앞에 길게 늘어선 줄에서도 열외인 곳, 프랑스. 나는 그 곳에 서 있었다.
사람들의 삶은 제각기 너무나도 다르고 동시에 너무나도 똑같았다.
저녁 7시 무렵, 서울의 퇴근 시간처럼 파리의 귀가 길도 만만치 않았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붐비는 버스 안, 운이 좋게도 빈자리 하나가 내 몫이 되었다. 피곤에 지쳐 앉으려는 순간, 바로 옆에 서 있던 금발머리 여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리를 양보하려는데 그 여자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기절한 여자를 보고 놀란 사람들은 버스 기사에게 환자가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주위에 있던 두 사람이 그녀를 부축해 버스에서 내렸다. 나도 그 여자의 짐을 들고 총총히 따라 내렸다.
마침 버스 정류장 앞이었다. 정류장의 긴 의자에 몸을 누인 그녀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병이라며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버스로 다시 돌아가라고 권유했지만, 버스 기사는 이미 응급차를 불렀고, 모든 승객에게 하차를 요구했다. 이유인즉, 응급차가 올 때까지 그녀를 위해 버스를 세우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닭장 같은 버스 안에 갇혀 있던 수많은 사람이 한마디 불평도 없이 버스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어느새 하늘은 짙은 코발트빛으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