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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이보그 2.0’ 시대, “텔레파시로 말해봐∼”

지금은 ‘사이보그 2.0’ 시대, “텔레파시로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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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사이보그 1.0’

지금은 ‘사이보그 2.0’ 시대, “텔레파시로 말해봐∼”

자신을 직접 사이보그 실험 대상으로 삼은 영국 리딩대 케빈 워릭 인공두뇌학 교수.

주변의 사이보그를 후인간으로 보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런 인공 보철물을 단순히 신체 기능을 보조하거나 대체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의수는 그저 손의 대체물이고, 인공심장은 그저 심장의 대체물일 뿐이다. 첨단 컴퓨터 장치가 달려서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몹시 흥분할 때 몸의 상태에 맞추어 심장 수축을 조절하는 심장 박동기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그저 보조장치로밖에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장치에 무선통신 기능이 있어서 인터넷을 통해 박동 조절 프로그램이 갱신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래도 그냥 보조장치로 여길 것 같다. 구형 장치를 신형 장치로 바꾸는 것과 다르지 않을 듯하다. 좀더 기능이 향상되어 인터넷으로 심장 상태를 상시 점검하면서 위급할 때 전기충격도 가하고 약물도 주입하며, 병원과 소방서에 자동으로 신호도 보낼 수 있다면? 그래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기능이 더욱 향상되어 심장 상태를 스스로 점검, 뇌에 신호를 보내 흥분을 가라앉히거나 활동을 자제하도록 호르몬을 조절할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에게 그의 심장 상태를 실시간으로 전달함으로써 그와 언쟁을 벌이던 것을 그치게 할 수 있다면? 혹은 원한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그것을 악용해 그를 자극하거나 심장마비를 유도한다면? 이 정도 상황이 되면 어디까지를 보조장치로 봐야 할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심장 박동기라는 특정한 용도로 쓰이는 하나의 장치를 기준으로 말하고 있으므로, 그런 기능 향상의 의미와 영향을 파악하는 시각도 거기에 맞추어져 협소해진다.

그렇다면 관점을 바꿔보자. 어떻게 달라질까. 인공 보철물이나 보조장치를 장착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사이보그를 만든다는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본다면? 노골적으로 그 관점을 취한 사람이 바로 영국 리딩대 인공두뇌학 교수인 케빈 워릭이다. ‘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나’라는 책을 쓴 그는 자신이 직접 사이보그가 되겠다는 실험 계획을 세웠다.



‘사이보그 1.0’이라는 첫 계획은 1998년 8월24일에 이뤄졌다. 그는 자신의 팔에 실리콘 칩 중계기를 이식했다. 칩은 그가 어디에 있음을 알리는 신호를 내보냈다. 신호는 그의 학과에 설치된 컴퓨터로 전송됐고, 컴퓨터는 그가 문 앞으로 가면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면 전등과 난방기를 켰다. 즉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컴퓨터를 통해 여러 장치를 작동할 수 있었다. 그것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사이보그 실험이었다.

실험이 성공하자 그는 ‘사이보그 2.0’이라는 두 번째 계획에 착수했다. 2002년 3월14일, 그는 왼팔의 안쪽을 따라 쭉 뻗어 올라가는 큰 신경인 정중신경에 100개의 미세 전극이 꽂힌 장치를 이식했다. 이번 실험의 목적은 자신의 신경계와 컴퓨터 사이에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 실험도 성공적이었다. 그는 손을 움직여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인공 팔을 조종하고 휠체어를 움직일 수 있었다. 신경의 전기신호가 전극으로 전달되면 그 신호가 무선으로 컴퓨터로 전달되고, 컴퓨터가 그 신호에 따라 인공 팔을 움직인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아내인 이레나에게도 칩을 이식했다. 이레나가 손가락을 폈다가 오므리자 신경의 전기신호가 그녀에게 이식된 칩으로 전달됐고, 신호는 인터넷을 통해 그에게 이식된 칩으로 전달됐다. 그 칩은 수신한 신호에 따라 그의 신경계를 자극했다. 그는 아내의 손 움직임을 느꼈다. 인터넷을 통해 두 사람의 신경계가 접속된 것이다.

사이보그가 돼야 생존한다?

이 실험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칩을 이식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령 신용카드번호, 주민등록번호, 혈액형, 진료 기록, 출입증 등 갖가지 신상 기록을 담은 아주 작은 칩을 팔목 같은 곳에 이식할 수 있다. 무선으로 정보를 갱신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런 칩은 지갑에 넣고 다니거나 휴대전화에 부착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신체기능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워릭의 칩은 신경계와 융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것은 미약한 전기신호만 지나다니는 신경계에 외부로부터 온 이질적인 신호를 주입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이 실험은 장애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인위적으로 감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척추 신경이 끊어져 마비가 온 사람의 다리를 움직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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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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