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박해윤 기자
기자가 박영사 안종만 (63)대표를 인터뷰하기 전, 모씨는 이렇게 귀띔했다. 이런 건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 성격이 ‘나쁜’ 것도 아니고 ‘괴짜’라니, 이보다 더 불편한 예비지식도 없다.
결론을 말하면 그는 박영사라는 학술서적 출판사의 무채색 이미지보다 훨씬 ‘컬러풀’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심지어 가족도 손을 들게 한 낭만적인 열정이 없다면 꾸기 어려운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20년 전 북한산 등산길에서 밑그림이 나왔다는 파주출판단지의 출판 3인방 중 한 사람이 바로 그다(열화당 이기웅 대표, 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다른 2인).
출판사로서 박영사는 1952년 문을 연 이래 대학생이나 고시생들의 책꽂이에서 여전히 단일 브랜드로 가장 많은 권수를 차지하는 브랜드가 아닐까 싶다. 또한 당장 인터넷 지식 검색에서 경제와 관련한 정보를 검색하면 출처를 박영사의 최대 히트작 ‘경제학대사전’(1964년 초판 발행)으로 단 것이 많다. 그것은 믿을 수 있는 레이블이란 뜻이기도 하다. 박영사는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지식과 학문의 세계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들 옆에 서서 질문을 기다리는 스승처럼 묵묵히 존재해온 이름이다.
지난해 말 파주출판단지의 갈대밭 사이에 자리 잡은 출판사 사옥들 사이에 ‘갤러리박영’을 열지 않았다면, 박영사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무미한 학술전문 출판사로만 기억됐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이미 약속된 전시 기획조차 줄줄이 취소되는 ‘엄동설한’에 박영사는 큰일을 냈다. 3개의 전시실과 미디어 카페를 갖춘 1000평(3300㎡) 규모의 갤러리를 연 것이다. 그리고 낸시랭, 김태중, 최진아, 이지현, 한지석, 이진준 같은 젊고 문제적인 작가들에게 작업을 위한 스튜디오를 제공해 미술계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박영사와 갤러리박영은 심학산과 샛강 갈대들로 둘러싸인 파주출판단지 한 모서리에 나란히 있다. 파주출판단지는 출판사 대표들이 서명한 이른바 ‘위대한 계약서’에 의해 건물 높이를 15m로 제한하고, 페인트도 금지해 홀로 눈에 띄는 건물을 찾기가 어려운 곳이다. 갈대숲 사이로 난 길을 이리저리 걷다가 오늘 아침에 읽은 책을 펴낸 출판사를 만나게 되는 곳이다.
박영사와 갤러리박영의 단정한 먹색 간판도 그렇게 만나게 된다. 간판만큼이나 단순한 외관에 비해 달팽이관처럼 복잡한 구조를 가진 갤러리박영 2층에 안종만 대표의 사무실이 있다. 모든 사무실과 여섯 작가의 스튜디오 모양이 제각각 다르게 생겼다. 내부를 베이징의 예술구 798에서 따왔다는 말을 듣고 ‘괴짜’란 말이 맞는가 싶어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의 방은 다시 작은 정육면체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과 재기발랄한 프랑스 작가 콩바(Robert Com-bas)가 갤러리박영 개관을 축하하며 보낸 메시지가 마주하고 있다. 1971년 박영사에 입사한 이래 거의 매일 아침 5시30분에 집을 나선다는 그는 인터뷰 직전 무슨 일인가에 골몰했던 듯, 선문답처럼 “숲을 봐야지, 사람들이 나무만 본다”고 말했다.
“최근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다 보니 학자가 아니라 전문직들, 소위 ‘사’자 붙은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 일에만 최선을 다하며 살다 보면 나이 들어 인생 전체를 보지 못했다는 후회를 하게 된다. 뭐든 이젠 사람 사는 일 전체를 놓고 보게 된다. 자, 그럼 우리는 무슨 얘기를 할까?”
▼ 구상부터 1차 완성까지 20년 넘게 걸린 파주출판단지 조성이 이제 2단계 사업에 들어간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 있었다. 박영사가 1단계 사업을 주도했으니 남다른 기대가 있겠다.
“2단계는 영화, 영상 쪽에서 주도한다. 더 많은 사람이 출판단지를 찾을 테고, 이곳의 변화 속도도 더 빨라질 것이다.”
▼ 파주출판단지에 출판사와 갤러리만 지은 것이 아니라 ‘쇼핑몰’까지 지어 분양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다. 출판사와 쇼핑몰 분양은 같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