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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만의 우정은 신화에 불과한가요?

남자들만의 우정은 신화에 불과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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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만의 우정은 신화에 불과한가요?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한 장면.

Q언제부턴가 ‘내게 진정한 친구가 몇이나 있을까‘ 자문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친구들을 간혹 만나기는 하지만 술자리에선 누가 잘나가느니 못나가느니 알게 모르게 자신의 처지와 다른 이들의 상황을 비교하는 게 눈에 보여 재미도 없고 마음만 상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다보니 모임은 더 뜸해지고, 친구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운 정도가 됐죠.

일로 만난 이들은 자주 보고 또 만날 땐 둘도 없는 사이인 것처럼 친하게 굴지만, 친구라는 느낌은 좀처럼 들지 않습니다. 속 깊은 고민을 나누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고, 일을 그만두면 다시 볼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아내에게도 털어놓기 어려운 고민이 있을 때 이를 나눌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원래 그런 걸까요. 남자들만의 우정이라는 건 신화에 불과한 걸까요. -30대 고민남으로부터

A‘우정’과 ‘친구’. 듣기만 해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말이다. 고통 속을 헤맬 때 달려와 짐을 나눠 지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그저 말없이 같이 앉아만 있어도 유수(流水)처럼 마음이 통할 녀석. 그런 친구들이 있다면 세상이 그렇게 외롭고 힘들게만 느껴지지 않을 텐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두들 제 살기에 바빠 평소에는 연락도 뜸하다가 그저 대소사 때 얼굴만 삐죽 내밀고는 가버리는 동창들을 보며 과연 친구란 무엇인지, 자신이 잘못 살아온 것인지 회의할 때가 많다.

좋은 친구를 둔다는 것, 그리고 진실한 친구가 된다는 것은 아마 우리가 인생에서 받을 수 있는 큰 축복 중 하나일 것이다. 사형수인 친구가 병든 노모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은 한 친구와 행여 그 친구가 자신 때문에 죽임을 당할까봐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온 사형수 친구, 그리고 그러한 친구만 있다면 이 나라를 내놔도 좋겠다고 부러워한 왕에 대한 이야기(관포지교·管鮑之交)에서처럼 진정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감동시킨다.

런던대학의 포드사비 박사팀은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우정과 행복한 인간관계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우정이 사랑보다도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은 의외다. 사실 사랑과 우정은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아주 친밀한 감정이다. 그러나 이 둘은 감정의 속성과 그 감정을 쏟아내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사랑은 한 사람에 대한 강렬한 감정이다. 이 때문에 연인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창조하고 그 안에서 서로의 성적, 공격적 욕망을 해결하며 성장해간다. 그러나 우정은 둘만의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을 만든다. 친구란 나를 소유하려 드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내 손을 잡아주고 내 뒤에서 버팀목이 돼주는 사람이다. 우정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갖고 외로움을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내 생각을 나눌 수 있고, 나를 믿고 감싸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확신은 자아를 확장시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즉 우정은 성장의 동력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우정조차 사는 데 바쁘다보면 경제논리와 생활논리에 퇴색되는 것 같아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그토록 친하던 친구들도 가끔 만나면 그저 과거 추억만 떠들고 서로의 성공을 질투와 은근한 견제의 눈으로 곁눈질하다 “담에 다시 보자”며 인사치레나 하고 헤어진다. 우정에 대한 회의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우정이란 것 역시 환상일 뿐인가?

우정이란 한 시기와 공간을 함께하는 관계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23세의 의대생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낡고 오래된 모터사이클 ‘포데로사’에 몸을 싣고 남미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결심한다. 8개월 동안의 여행에서 두 사람은 남미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고 나환자촌에서 머물기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함께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다투기도 하고 서로를 위험에서 구해주기도 하면서 점점 더 깊은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자 영원히 함께할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은 갈림길에서 헤어지고 각자의 길로 떠난다. 이 마지막 장면은 특히 긴 여운을 남긴다. 왜 저들은 헤어져야 했던가. 저토록 마음이 맞고 서로를 좋아하는데 계속 같이 일하고 함께하는 건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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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남│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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