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신안군 우이도에서 해안의 모래톱에 배가 얹히는 사고가 발생해 좌초한 집단가출호.
인천 옹진군 승봉도 부근 항로를 지날 무렵, 초여름 산들바람에 느릿느릿 거북이걸음을 하는 배를 발견한 해경이 무슨 일인가 싶어 호출했다. 항해 중 초단파(VHF) 교신은 진지해야 한다. 더구나 상대가 해상의 치안을 책임지는 해경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호출을 받은 배가 응답을 위해 무전기 마이크에 대고 배 이름을 말하는 순간, 다음과 같이 반응이 왔다. “집단… 뭐라고요?” 건너편에서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흘리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상대편이 들은 배 이름은 ‘집단가출호’였다.
선체 옆에 커다랗게 새겨진 배 이름은 항해 내내 배꼽 잡는 웃음거리가 됐고, 의사소통을 교란시켰다. 배 이름을 댈 때마다 처음엔 상대방이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사람들 반응에 민망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집단가출 7개월째로 접어든 8차 항해 때는 진해 해양레포츠스쿨에 커다랗게 내걸린 ‘허영만 화백의 집단가출호 환영’이라는 현수막을 보고도 무덤덤했다.
‘집단가출호’의 탄생
생뚱맞은 이름의 요트를 타고 1년 동안 12차례에 걸쳐 매회 2박3일의 파란만장한 모험에 나섰던 집단가출자들은 평균연령이 44세인 중년남자 14명이었다. 사춘기 10대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가출모의는 뒤에 집단가출호 선주이자 선장이 된 만화가 허영만(63) 화백과 산치과 송영복(47) 원장, 기자 출신의 목수 송철웅(47)씨가 술잔을 기울이던 인사동 술집에서 이뤄졌다. 그때가 2008년 12월이었다.
“산엔 백두대간, 섬엔 올레길, 드넓은 바다엔 무슨 길이 없을까? 이번엔 바람으로 가는 돛단배를 타고 바다의 백두대간을 가는 거 어때? 서해에서 남해를 돌아 국토의 막내 독도까지.”
어린 시절 꿈 얘기를 나누며 한창 술자리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 허 화백이 불쑥 말을 꺼냈다. 이 무렵 그는 세일링 요트에 입문한 지 3년째로 그동안 한강에서 훈련하다 2008년 여름 처음으로 경기도 화성 전곡항에서 바다 세일링을 시작했다. 고향이 전남 여수 바닷가인 그는 유년시절부터 ‘언젠가 돛단배로 우리 바다를 돌아보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형님 나이에 우물쭈물할 시간 없어요.”(송철웅)
“나는 요트 사법고시가 있다면 패스하고 남을 만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믿으세요.” (송영복)
그동안 요트를 배우며 한강을 벗어나지 못한 송 원장은 바다로 나가고 싶은 간절한 열망으로 열심히 맞장구쳤다. 곧바로 배 이름이 결정됐다. 가출하는 각오가 아니면 독도까지 머나먼 바닷길을 갈 수 없다는 뜻에서 허 화백이 ‘집단가출호’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날 술자리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은 산악인 박영석(47) 대장도 “파도와 싸우며 바람을 타고 독도까지, 그거 좋은데요” 하며 거들었다. 오기와 도전욕구에 불타는 초짜들이 의기투합하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곧바로 집단가출호에 승선시킬 가출선원의 ‘징집’이 시작됐다. 가출 모의 주동자 세 사람과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혀 있는 멤버들이 속속 합류했다.
요트 제작·수리 전문 회사를 경영하는 홍선표(30)씨는 요트선수 출신이라 전문가로 영입됐다. 홍씨는 “선수 시절 레이스 출전 때 2박3일 정도 항해를 나간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1년에 걸쳐 항해에 나선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원래는 요트를 타는 그의 누나가 송철웅씨의 징집 표적이었지만, 사정이 있어 합류하지 못한 누나 대신 얼떨결에 홍씨가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는 “처음엔 멤버 중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드넓은 바다 위에서 좁은 배 안에 여러 명이 타고 북적대며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다보니 금방 친해지더라”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