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들어 적은 분량과 연이은 원고 펑크로 인해 많은 분이 분개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도저히 지금의 한국 만화판에서 연재를 한다는 게 힘이 나질 않는 상태입니다. …그때(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는 노력과 운과 신의 가호가 있다면 권당 10만부를 팔 수 있는 시장이었기에 힘이 나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3만5000부가 최고네요. …다른 만화는 1만부도 안 팔리는 시장입니다.”
양씨의 글이 눈길을 끈 건 ‘열혈강호’가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만화 중 하나이기 때문. 1994년 만화잡지 ‘영챔프’에서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은 2009년 ‘영챔프’가 온라인 매체로 바뀐 뒤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되고 있다. 한국 만화사(史)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장기 연재물로, 정통 무협 만화의 코드에 코믹과 멜로 요소까지 가미해 폭넓은 독자층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52권의 단행본이 출간돼 400만부가량 판매됐을 정도다. 이런 작품의 작가가 ‘한국 만화판에서 연재를 계속하는 건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았으니 화제가 되지 않을 리 없다.
베스트셀러 만화가의 눈물
양씨는 한 걸음 나아가 자신의 수입까지 상세히 공개했다. 한 달 연재 원고료로 216만원을 버는데 스토리작가 고료, 어시스턴트와 문하생 급여, 화실 운영비 등을 제하면 ‘남는 게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1년에 세 권 정도 단행본을 펴내 받는 인세가 넉 달에 80만원꼴”이라고 덧붙였다. “생활의 곤란함과 함께 건강상의 문제도 있다. …‘열혈강호’를 원작으로 제작된 온라인 게임 로열티가 없었다면 벌써 만화가 생활을 접고 다른 직업을 택했을지도 모른다”는 게 양씨의 변이다.
인기 만화가의 이 같은 고백은 ‘열혈강호’ 팬뿐 아니라 일반 네티즌들에게도 큰 충격을 줬다. 팬 카페의 일부 회원은 ‘연재 펑크에 대한 변명’이라고 일축했지만, 상당수 네티즌은 국내 출판 만화 산업의 위축에 공감하며 이 글을 블로그에 퍼 날랐고, 자연스레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정말 한국 만화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것일까. 객관적 지표를 통해 살펴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의 만화 산업은 크게 4개 영역으로 분류된다. 만화출판업, 온라인만화제작·유통업, 만화책임대업, 만화도소매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시장조사를 통해 2008년 현재 4개 분야의 매출 합계가 7232억원이라고 밝혔다. 이는 2001년의 7598억원에 비해 5% 가량 감소한 수치다. 그러나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면 만화 산업 전반의 매출이 감소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화책임대업의 매출이 그 사이 5140억원에서 732억원으로 급격히 감소한 반면, 다른 업종의 매출은 모두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