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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명량’에 대한 몇 가지 시선

이순신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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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시각으로 본 이순신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순신은 대중문화계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순신을 다룬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2001)는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1960~70년대 영화들에서 이순신이 ‘성스러운 영웅’인 반면,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때때로 분해하고 억울해하고 냉소하는 피로에 지친 중년의 남자였다. 고된 사회생활에 지친 남성이 자기 처지를 쉽게 투영해 동일시할 수 있는 ‘서민적 인물’이었다. ‘칼의 노래’는 이순신의 일인칭 화법으로 전개돼 이순신의 내면의 고민이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됐다.

거기에다 이 책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애독서로 알려지면서 정치적 의미까지 입혀졌다. 1960~70년대의 이순신이 ‘박정희의 시각으로 본 이순신’이라면, 2000년대의 이순신은 ‘노무현의 시각으로 본 이순신’이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사태 이후 KBS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방영해 경이적 시청률을 올렸다. 김명민이 주연한 이 드라마에서 이순신은 주류에게 핍박을 받는 인물인 동시에 어려운 시기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로 그려졌다. 특히 드라마 속 이순신의 백의종군 고난은 노무현의 탄핵과 어렵지 않게 오버랩됐다. 박정희 시대의 이순신이 주류적 가치를 현실 속에서 구현한 주류의 영웅이었다면 노무현 시대의 이순신은 주류에 핍박받으면서도 대안적 가치를 실현한 비주류의 영웅이었다.

2014년 영화계의 큰손인 CJ가 배급한 영화 ‘명량’의 이순신은 박정희 식 이순신과 노무현 식 이순신을 절묘하게 버무려 양 진영 모두에 어필하려는 상업적 전략을 취한 것으로 비친다.



‘명량’은 이순신(최민식)이 아들이자 부관인 이회(권률)의 질문에 답하는 말 속에 자신의 고민과 결의를 드러내는 식으로 구성돼 있다. 이때 이회는 관객이 이순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내용을 대신 질문하는 것 같은 역할을 한다. 아버지이자 지휘관으로서 이순신은 이들 질문에 대답하는 식으로 자기 생각을 얘기한다. 즉 이 영화에서 관객은 이회를 통해 이순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또한 이회와의 관계를 통해 이순신은 자상하고 사려 깊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런 점은 2000년대의 이순신 해석을 반영한다.

칠천량 해전과 세월호 참사

동시에 ‘명량’은 성웅으로 신격화된 공적인 인물로서의 이순신의 면모를 장시간에 걸쳐 상세히 묘사한다. 이는 1960~70년대부터 내려온 전통적 이순신 해석을 반영한 것이다. 이때의 이순신은 실존 인물인 동시에 설화적 상상력과 염원이 더해진 인물이다.

‘명량’에서 조선은 칠천량 해전의 대패 이후 극심한 낭패감과 절망감에 휩싸인다. 이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국민이 국가적 리더십의 무능과 혼란에 크게 실망하고 있는 점과 유사하다.

이순신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노광우

1969년 서울 출생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연구원

논문: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


관객이 현실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일들은 ‘명량’의 전반부에 해당한다. ‘명량’의 후반부는 13척의 판옥선으로 적함 330척과 용맹하게 맞서 대반전의 승리를 거두는 역사다. 이순신은 적함들의 연이은 공격에 그때그때 적절한 전술로 대응한다. 마치 프로게이머의 온라인 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는 듯하다. 이순신은 산업화 세력의 유능함과 민주화 세력의 애민(愛民)정신을 함께 구현한다.

관객은 현실에서도 누군가가 이순신처럼 난제들을 통쾌하게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게 실현되기 어려운 일인 줄 알기에 더더욱 영화의 처절한 전투에 몰입한다.

신동아 201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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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 │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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