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호

강력범의 범주

  • 입력2005-09-30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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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력범의 범주
    세상이 하도 빨리 돌아가니까 벌써 지나간 이야기로 치는 분들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자꾸 곱씹게 되는 일이 있다. 바로 지난번 MBC 방송국의 생방송 프로그램에 홍대 앞에서 활동하던 펑크 뮤지션들이 나와 아랫도리를 내려버린 ‘카우치 사건’이다.

    조금 넓게 본다면 그들과 나는 ‘동업자’일 수도 있다. 그들이나 나나 비록 음악의 장르는 조금 다르지만 그리 넓지도 않은 한국의 ‘인디 음악판’에서 사람들이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음악을 하고 있는 인디 뮤지션이다.

    그 친구들은 ‘스컹크헬’ 레이블에서 펑크 록을 하고 있고 나는 ‘3호선 버터플라이’라는 인디 밴드에서 기타를 치고 있다(가끔 백 보컬도 한다). 그 친구들이 서울의 홍대 앞 어디에서 잘 모이는지도 대충 알고, 아마도 지나가다가 서로 몇 번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젊은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TV에서 이상한 짓을 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더구나 무슨 흉악범이나 강력범처럼 다뤄지는 것을 목격했을 때의 충격, 꽤 컸다.

    여론의 강풍은 대개 강하고도 짧다. 그 바람 속에 카우치는 흉악범 내지는 강력범 취급을 받으며 조사받고 구속됐다. 바람은 지나갔고 나는 되묻는다. 그들은 과연 흉악범 내지는 강력범이었을까. 만일 흉악범이나 강력범이라면, 그들은 어떤 종류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속할까.

    아마도 맨 처음에 경찰은 그들을 ‘마약 사범’의 범주에 넣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카우치 멤버들은 약물 조사를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그들이 마약 검사를 받았다는 소식에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도 그걸 가지고 여론의 도마 에 올리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기분이 너무 나빴다. 마약을 소지하지도 않았고 무슨 끄나풀의 제보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무조건 오줌을 누이고 마약검사부터 받게 할 수 있는 일인가. 경찰이 국과수인지 뭔지에다가 약물조사를 의뢰한 동기는 단 하나, ‘약을 먹지 않고서야 TV에 나와서 그 따위 짓을 할 수는 없으리라’는 밑도 끝도 없는 추측뿐이었다. 하긴 아이들 노는 꼴 보기 싫어하는 어른들은 자주 그런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마약을 먹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을 대상으로 2차 마약검사를 한다는 보도였다. 현장에서 마약을 손에 쥐고 있거나 거래하다가 경찰이 급습하여 증거물과 함께 검거된 현행범도 아닌데 머리카락을 강제로 뽑아 2차 마약검사까지 하는 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어린 딴따라 놈들이 TV에서 해괴한 짓을 했다고 해서 그걸 ‘마약’과 연결하다니, 한사코 그 말도 안 되는 비논리적 연결이 맞아떨어지는 걸 보겠다고 감기약만 먹어도 다 나온다는 악명 높은 검사를 머리카락 한올 한올 뽑아가며 하다니, 이건 완전히 인권 유린이다. 여론은 이때도 가만있었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2차 검사에서도 이들은 마약을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소식을 전하는 아나운서의 톤은 약간 침울했다. 어쨌든 두 차례의 검사로 이들은 일단 악질 ‘마약 사범’의 범주에서는 벗어났다. 만일 이들에게서 약물 양성반응이 나왔다면 보나마나 여론은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거 봐라. 저 약돌이 놈들. 다 싹 잡아다가….”

    아닌게아니라 요새 TV에서 방영하는 ‘제5공화국’을 보니 그런 추정에 의해 사람들을 싹 잡아들이던 시대가 있긴 있었다. 삼청교육대라는 이름을 지닌 밴드가 홍대 앞에서 활약한 적도 있고.

    강력범의 범주
    자, 그럼 이들은 어떤 종류의 강력범죄자일까. TV에서 한 짓이 우발적이었는지, 아니면 사전 모의한 것이었는지를 가리기 위해 10시간 넘게 이들을 격리해놓고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결론은 이미 처음부터 나 있었던 대로 ‘사전 모의’한 것으로 났다.

    물론 조사 과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격리, 10시간, 강도 높은, 뭐 이런 단어들은 그 ‘별생각 없는’ 장난기 많은 20대 아이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어떤 과정이 있었음을 암시할 수도 있다. 하여튼 그들은 자기들이 한 짓이 ‘사전 모의한 것’임을 시인했고, 결국 구속됐다. 그들의 죄목은 ‘공연음란, 업무방해죄’였다. 그 정도면 강력범죄인가? 여전히 잘 알 수 없다.

    TV에 등장하는 다른 범죄자들을 한번 보자.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TV 화면에 등장하는 것을 가끔 본다. 우리나라 범죄사상 유례가 없는 끔찍한 연쇄살인을 저지른 유영철은 야구모자를 쓰고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TV에 등장했다. 마스크가 하늘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깊이 눌러 쓴 모자, 그리고 마스크 때문에 유영철의 맨얼굴을 TV 화면을 통해 본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짐작한다. 유영철 자신도 제 얼굴을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보는 사람들 처지에서도 유영철 같은 끔찍한 살인마의 맨얼굴을 보는 일이 그리 즐겁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같은 피차간의 사정으로 야구모자에 하늘색 마스크라는 유영철의 ‘패션’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반면, 엄청난 액수의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다고 소개되면서 검찰 청사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정치인들은 속으로는 똥줄이 탈 게 뻔하지만 마치 자기와 이 뇌물수수 사건은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듯이 허허거린다. 조명 때문에 더욱 번들거리는 얼굴은 꼴보기도 싫지만 마치 그런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언론의 사명인 양, 기자들은 기를 쓰고 그 앞에 카메라를 들이민다.

    그에 비해 어쩌다 등장하는 연예인의 간통 사건이라든가, 마약 복용 사건의 구속 현장에서 연예인들은 한사코 얼굴을 가린다. 장금이가 유행하기 이전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에 출연해서 유명해진 황수정이 그만 히로뽕을 복용하여 경찰서로 갈 때 역시 온 얼굴을 가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미지가 밑천인 연예인에게는 이미지에 타격을 받는 일만큼 치명적인 것이 없으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런데 카우치 또한 그렇게 얼굴을 가리고 경찰서를 드나드는 장면이 TV에 방영됐다. 과연 그들은 맨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누가 시킨 일은 아닌 듯했다. TV에 아랫도리가 노출됐으니 더는 창피할 일도 없을 텐데, 그들은 한사코 얼굴을 가렸다. 연예인 흉내를 낸 걸까. 아니면 그런 일 때문에 TV에 나오는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얼굴을 가려야 한다는 모럴 같은 게 본능적으로 발동한 걸까.

    처음에는 멋모르고 그런 짓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 같은 것에 눈이 부셔 얼굴을 가리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였다. 나중에는 그것도 지쳤는지 자포자기한 듯 얼굴을 푹 숙이고 경찰서 입구로 들어가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거꾸로 여론이 카우치에게 어떤 죄목을 강요하려 했는지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강간범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싶다. 카우치를 아무리 미워하더라도 그들을 강간범과 혼동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인권 유린이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다수의 10대 소녀 앞에서 해선 안 될 끔찍한 일이었다 해도 ‘예술 행위’였음을 강조하고 싶다. 만일 그들이 조금 더 똑똑해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고 치자.

    “그렇다! 우리는 허구한 날 외설적인 댄스가 난무하는(지난 여름인가 렉시의 어떤 춤은 정말 가관이었다. 후반부에 렉시가 자기 톱을 찢어버리자 거의 젖가슴이 다 드러날 정도로 출렁거리는 것을 보고 30대 아저씨인 나도 약간은 흥분했다.),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가요 프로그램이 얼마나 상업적인 눈속임이고 비교육적인지를 고발하기 위해 펑크 뮤지션답게 결단을 내려 이와 같은 ‘알몸 시위’를 했다.”

    그랬으면 여론이 어떻게 반응했을지 궁금하다. 아마도 카우치 멤버들을 ‘죽어봐라’고 더 족쳤을 수도 있고, 한국 인디씬은 주류 방송판에서 그날로 장례식을 치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반대일 수도 있다. ‘어, 이놈들, 함부로 다루기는 힘들겠군’ 하고, 약간은 경계하며 포위망을 좁혀갔을 수도 있다.

    하긴 카우치는 조금 멍청하게 반응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별 반추나 의식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행위가 예술행위가 아닌 것은 아니다. 아무리 멍청해도 그들은 예술가다. 그들이 한 일은 결과적으로 범죄행위가 되어버렸지만 기본적으로는 예술적인 행위였다. 공연 중이었고 무대에 초대받은 뮤지션이었으며 관객을 향한 일종의 자기 드러냄의 행위였다.

    우리 여론은 이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그렇게 받아들이려 하지도, 화를 참지도 않았으며 그냥 그들을 강간범 취급하여 철창에 잡아 넣는 일에만 급급했다. 공연 중에 바지를 자주 내려 엉덩이를 보여줌으로써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호주 출신의 세계적 록 밴드 AC/DC의 기타리스트 앵거스 영 같았으면 우리나라에서 별을 몇 개나 달았을까.



    민주주의란 뭐냐. 어떤 면에서는 반대편에서 한 일이 꼴 보기 싫어도 일단은 참는 행위의 총합이 민주주의다. 예술은 사회가 설정해놓은 모럴의 반대편에 설 때가 많다. 예술은 늘 모럴의 경계를 위협하고 문제삼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스스로 의식하고 어떤 일을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 행위가 자신의 의식을 넘어서기도 한다. 그것을 이해해주지 않으면 예술가들은 설 땅이 없다. 문화상품 팔아서 돈 벌어보겠다는 생각을 관가에서도 하는 모양인데 이 나라의 여론은 그런 정책과 앞뒤가 안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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