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男 ‘섹시 운동女’ 열광 女 ‘자본주의 몸매’ 올인

‘근육 미녀’가 뜨는 이유

  • 정해윤 |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5-06-25 16: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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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록한 허리, 가는 다리, 50㎏이 안 되는 체중. 여성이면 누구나 꿈꾸던 몸매다. 그러나 기준이 좀 변했다. 요즘은 이른바 ‘근육 미녀’가 각광받는다. 근육녀 선호 현상에 깃든 사회학적 코드를 짚어봤다.
    男 ‘섹시 운동女’ 열광 女 ‘자본주의 몸매’ 올인

    \'더 바디 쇼\' 진행자 유승옥(왼쪽). 미스코리아 출신 정아름이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한다.

    인터넷 시대엔 사진 한 장으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10여 년 전 ‘얼짱’ 열풍을 타고 연예계에 데뷔한 스타가 여럿 있었다. 최근엔 ‘몸짱’ 스타들이 등장했다. 몸짱 자체는 새로울 게 없지만, 이들은 근육질로 무장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대비된다.

    유승옥은 이런 트렌드를 대표한다. 올봄 국제 피트니스 대회 출전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며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강호동이 진행하는 SBS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타덤에 올랐다. 요즘은 최여진, 레이디제인과 케이블 채널의 ‘더 바디 쇼’ 진행자로 활동 중이다.

    유승옥이 큰 반향을 불러온 것은 한국 여성들에겐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몸매를 선보인 덕분이다. 그가 직접 공개한 신체 사이즈는 172.6cm, 58㎏, 35-23.5-38이다. 서구의 글래머 여성으로 짐작될 정도의 탈(脫)아시아급이다. 그런데 실제로 드러난 그의 몸매는 슈퍼모델이나 미스코리아와의 그것과는 달리 탄탄한 근육질이었다.

    낸시랭도 근육 미녀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지난 5월 머슬매니아 대회 클래식 부문에서 우승했다. 이전까지 그는 노출로 주목받는 가십 걸 취급을 받았지만 이제 당당히 피트니스 모델로 인정받는다. 미스코리아 출신 트레이너 정아름, 미식축구 국가대표 스트렝스 코치 예정화 등 일반인에겐 이름이 낯설지만 인터넷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예비 몸짱 스타도 여럿이다.

    ‘볼록 엉덩이’ 인증샷



    요즘 몸짱 기준은 과거와 뚜렷이 구분된다. 고대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양 상태가 좋은 여성이 미인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비너스상과 중국의 양귀비 그림은 풍만한 육체를 보여준다. 한국도 수십 년 전까진 이런 미인상이 대세였다. 복스러운 얼굴선에 큰 눈망울을 가진 영화배우 최은희는 고전적 미인상과 현대적 미인상의 과도기적 인물이다.

    보릿고개를 넘기고 서구 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여성의 미에 대한 기준도 바뀌기 시작했다. 1957년 처음 열린 미스코리아 대회는 무엇보다 수영복 심사가 큰 화제였다. 국제 미인대회에 파견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미스코리아 대회는 서구적 미의 기준을 정착시킨 계기가 됐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시대엔 일반인도 자신의 몸매를 대중에게 자랑할 수 있게 됐다. 이때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 ‘봄날 아줌마’ 정다연이다. 그는 중년여성도 운동을 통해 아름다운 몸매를 가질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는 최근 일본과 중화권에서 다이어트 관련 서적과 비디오를 출간하며 ‘뷰티 한류’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초반엔 연예인들 사이에 다이어트 비디오를 내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때까진 유산소운동이나 요가처럼 여성적인 곡선을 드러내는 운동이 주류를 이뤘다. 그런데 최근엔 이런 유행이 근육운동으로도 옮겨가고 있다. 여성의 육체에 관한 미의 기준에 뚜렷한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근육 미녀의 등장은 스포츠과학의 성과가 뒷받침했다. 보디빌딩은 우람한 근육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 남성 중심적 스포츠였다. 여성도 보디빌딩에 뛰어들었지만 여성은 그런 근육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그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일었다.

    1990년대에 이에 대한 반성으로 실제 운동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춘 크로스핏이 개발됐다. 여러 운동의 장점을 혼합해 근육을 다소 우락부락한 보디빌더의 그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발달시킨다. 또한 근력, 지구력, 유연성을 고루 향상시킨다. 여성들은 이를 통해 여성적 보디라인을 유지하면서도 탄탄한 근육을 드러내는 몸매를 가꿀 수 있다.

    크로스핏은 정면보다 후면 근육을 강조한다. 과거엔 알통이나 가슴 근육을 힘의 상징으로 여겼지만, 크로스핏은 척추와 골반 근처 인체 중심 근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엉덩이는 인체에서 가장 큰 근육이고 각종 운동능력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부위로 재조명됐다.

    요즘 몸짱 여성은 흑인 육상선수처럼 엉덩이가 볼록 솟구친 ‘엉짱’이다. 과거 미녀들은 정면에서 허리와 골반의 S라인을 자랑했다. 반면 지금의 근육 미녀들은 측후방에서 엉덩이를 중심으로 인증샷을 찍는다. 요즘 체육관에서 많은 여성은 엉덩이 근육 강화를 위해 역기를 어깨에 메고 앉았다, 섰다를 반복한다.

    미셸 오바마의 팔뚝

    근육 미녀가 등장한 배경으로는 여성운동(페미니즘)이 제공한 정신적인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20세기 여성운동의 역사는 남성의 근육을 여성의 근육이 대체하는 과정이다. 2차대전 때 미국에선 군수산업이 호황을 맞았다. 많은 남성이 전쟁터로 나가면서 비게 된 일자리를 여성이 메웠다. 이전까지 서구에서 남녀가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당시 여성상을 대표하는 것이 ‘리벳공 로시’라는 그림이다. 그림의 실제 모델인 메리 도일 키프는 172cm, 45㎏의 날씬한 아가씨였다. 그러나 이 그림에선 두툼한 이두박근을 자랑하는 여성으로 묘사됐다. 이 그림은 이후 여성운동의 상징으로 활용됐다. 남자의 일을 대신한다는 자신감은 1960년대 여성운동이 폭발한 도화선이 됐다.

    미국에서는 근육미를 자랑하는 여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대표적이다. 미셸은 우람한 팔 근육을 드러내는 독특한 패션감각으로 유명하다. TV 토크쇼에 출연해 진행자와 팔굽혀펴기 경쟁을 하고, 백악관 체육관에서 개인 트레이너로부터 근력운동을 배우는 광경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다. 미셸은 미국성형학회 여론조사에서 배우 제니퍼 애니스톤을 제치고 ‘미국 여성들이 가장 닮고 싶은 팔뚝’ 1위로 선정됐다. 미국 여성들 사이엔 미셸을 흉내 낸 팔뚝 성형수술이 유행이다.

    이렇게 강인한 여성을 보고 자라는 미국 소녀들은 육체적 활동에 아무런 선입견을 갖지 않는다. 여학생들이 남학생들과 어울려 축구경기를 하는 광경이 흔히 목격된다. 남녀평등지수가 높은 사회일수록 여성들이 체육활동에 적극적이다. ‘육체적으로 강한 여성에 관대한 태도’를 얘기할 때 한국은 미국에 훨씬 못 미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통적 미녀’에 대한 선호가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근육 미녀’에 대한 선호가 급부상하는 형국이다.

    ‘운동하는 여자가 아름답다’

    패션·뷰티업계는 “한국 여성에겐 두 가지 신화(神話)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하얀 피부’다. 외국인들은 한강변에서 운동하는 여성들이 ‘복면’ 수준으로 얼굴을 가린 것을 의아하게 여긴다. ‘백옥 피부’에 대한 집착은 한국 화장품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게 된 원동력이 기도 했다. 또 하나는 ‘천생여자’다. 학교와 일터, 파티장 할 것 없이 여성스러운 소품으로 치장하고 잔뜩 차려입은 모습은 한국 여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꼽힌다. 이 두 가지 집착은 여성을 신체적으로 허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올해 초 서울시 교육청은 여학생을 위한 체육 프로그램 ‘여신(여학생 신나는 체육활동) 50%’를 개발해 각 학교에 보급했다. 여학생들의 운동부족과 비만율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2006년 초중고 여학생의 비만율은 9.5%였으나 2013년엔 13.9%로 높아졌다. 주 1회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여학생은 20.6%로, 남학생(45.6%)의 절반도 안 된다. 입시 중압감이 큰 고학년 여학생일수록 운동을 더 안 한다.

    이렇게 운동과 담 쌓고 지낸 여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해서도 거의 운동을 하지 않는다. 대신 금식에 의존하는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운동량과 음식섭취량을 놓고 보면, 보리수 아래에서 아무것도 안 먹고 가만히 앉아 고행하는 인도 수도승에 가깝다.

    男 ‘섹시 운동女’ 열광 女 ‘자본주의 몸매’ 올인

    여자 프로골퍼 최혜용이 근력운동을 한다.

    하지만 스포츠의 세계에선 전혀 다른 한국 여성들이 발견된다. 월드스타 김연아, LPGA의 무적 프로골프 선수들, 남자보다 나은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 올림픽 금메달을 휩쓰는 양궁 선수들과 태권도 선수들은 한국 여성이 결코 육체적으로 연약하지 않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최근엔 일반인 여성 사이에서도 육체적 건강미를 추구하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다. 아파트단지의 피트니스 센터마다 러닝머신에서 뛰고 작은 역기를 들어 올리는 젊은 여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의 다리와 상체는 군살 없이 탄탄하며 근육은 적당하게 부풀어 있다. 서울 한강변이나 올림픽공원에서도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 조깅을 즐기는 여성이 많다. 실내암벽등반을 취미로 하는 여성도 꽤 있다.

    대중에게 ‘미(美)에 관한 규범’을 제공하는 텔레비전은 드라마에서 ‘건강한 신체의 여성이 땀 흘리며 운동하는 모습’을 자주 내보낸다. 미디어는 이렇게 대중에게 ‘근육 미녀가 더 섹시하다’라는 가치관을 주입한다.

    여성미에 대한 남성의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근육질 여성의 인기 진원지는 다름 아닌 남초(男超) 커뮤니티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이종격투기’ 카페에는 ‘운동하는 여성이 아름답다’는 제목의 사진이 매일처럼 올라온다. 이곳을 찾는 남성들은 “노출이 많은 운동복을 입은 여성이 운동하는 모습에 성적으로 매료된다”고 말한다. 몇몇 피트니스 모델, 트레이너들은 연예인 같은 유명세를 누린다.

    여성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남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있다. 여성미에 대한 남자의 기준이 달라지면 여성은 달라진 기준에 맞춰 자신을 가꾸려 할 것이다. 근육 미녀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자의 몸과 사회 양극화

    요즘은 여성 스스로 체력을 키우려 한다. 미적 취향을 떠나 여성에게도 신체적 강인함이 요구된다. 취업난을 겪는 여대생들은 ‘잦은 야근을 견뎌낼 체력’이 중요한 스펙이라는 걸 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여성에게 스스로를 보호할 최소한의 능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킥복싱이나 이스라엘 특공무술 크라브마가 같은 운동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다. 결혼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자립해 사는 여성이 느는 추세인데, 이들은 자기 몸을 가꾸고 튼튼하게 만드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을 기꺼이 지불한다.

    사회 양극화는 여성 신체에도 반영되는 듯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몸매는 한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중상류층의 30대 중반 이상 여성은 건강미 넘치는 몸매를, 그렇지 못한 계층의 30대 중반 이상 여성은 소위 ‘퍼진’ 아줌마 몸매를 가질 가능성이 더 높다. 얼굴과 마찬가지로 몸매도 관리 비용이 상당히 들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이 넘으면 ‘나잇살’이 붙기 시작하면서 관리의 차이가 확연히 나타난다.

    정다연, 조영선, 윤선희 등 몸짱으로 유명세를 탄 여성은 대개 30대 중반 이상이다. 하기 어려운 일이니 보상도 그만큼 크다. 연예인 중엔 김희애, 김성령이 건강미 넘치는 중년 여배우로 거론된다. 이들은 성적 매력이 한풀 꺾인 것으로 인식되는 연령대인데도 화장품 CF 모델로, 20대 연하남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여주인공으로 활동한다.

    몸짱 중년여성, 그중에서도 기혼녀에겐 대개 자신의 몸을 가꾸는 비용을 아낌없이 대줄 경제력 있는 남편이 있다. 특히 1960년대 중후반에 출생한 몸짱 아줌마들이 요즘 자주 미디어에 등장하는데, 이는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세대)가 우리 사회의 경제적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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