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훈 할아버지는 1·4 후퇴 때 조부모와 작별하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생존한 이는 6만7653명(4월 기준). 절반 이상이 나이가 여든을 넘었다. 사나흘, 일주일, 한달만 전쟁을 피하려 고향을 떠났다 60여 년간 이산의 아픔을 품고 살았다.
김성범(42), 강희진(34) PD는 지난해 7월부터 동료 6명과 함께 이산가족 120명의 증언을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한 사람당 120분씩 1만4400분 분량. 글로 풀면 A4용지 5000장이 넘는다. 백령도부터 부산까지 전국을 누볐다.
“공감(共感)이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운 적이 많아요. 어르신들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떠오릅니다. 젊은 세대가 이산의 아픔을 공감하는 데, 이 작품이 일조하면 좋겠습니다.”(강희진 PD)
이산가족 120명의 사연은 6월 22일부터 tvN을 통해 방송된다. 4부작. 제목은 ‘다녀오겠습니다’.
“이호영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느낀 게 특히 많았습니다. 부친이 이웃 공산당원 밀고로 납북됐다고 해요. 휴전협정 체결 후에도 밀고자와 같은 마을에 살았는데, 용서하셨다더군요. ‘전쟁에 휩쓸려 이렇게 됐지, 그이나 나나 사상이 투철한 것도 아니고, 원수를 갚으면 그것도 비극 아니냐’고 하시더군요. 할아버지처럼 평화, 화해를 말씀하는 분이 많았어요.”(김성범 PD)
손재익 할아버지는 “총이 아닌 방법으로 통일을 이뤄내 지금껏 아프게 산 이들의 눈물을 씻어달라”고 했다. 이영록 할머니는 “임진각 ‘평화의 종’에 가봤느냐”고 물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놈의 종이 언제 울어줄까. 지금은 멍청하게 가만히 있지만 저놈이 울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해요. 전쟁이 부글부글할 때마다 평화의 종이 울리면 얼마나 멋있겠어요. 기막힌 일 겪었지만 앞으로는 ‘평화의 종’만 울리면 좋겠어요.”
1부는 ‘1950년, 그날들’을 다룬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고향의 부모형제와 이별하던 그날의 기억을 모았다. 2부는 고향 음식에 담긴 사연이다.
“부산 밀면이 북한 음식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어요. 흥남 철수작전 때 탈출한 분이 부산에 많습니다. 미국이 구호물자로 내놓은 밀가루로 이북에서 먹던 냉면 흉내를 낸 게 밀면이더군요. 어릴 적 월남한 어르신들도 고향 손맛을 잊지 않고 계셨어요.”(강희진 PD)
혀끝의 기억은 돌아가셨을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녹두전, 비지찌개, 명태순대, 냉면이 이름난 북한 음식. 3부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제3국에서의 교류를 다룬다. 4부는 독일, 대만 사례와 비교하면서 한반도 현실을 들여다본다.
“민족의 비극인 이산가족 문제를 젊은 감각이 담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이산가족 문제와 관련해 젊은 세대의 관심을 환기하는 게 ‘다녀오겠습니다’의 제작 의도예요. 여론을 환기시켜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들으면 좋겠습니다.”(김성범 PD)
6월 10일 방송과 별도로 온라인·모바일을 통해 120명분을 각각 3~5분 분량으로 편집한 아카이브를 내놓았다.
“더 많은 젊은이가 인터넷, SNS를 통해 이산의 아픔을 겪은 어르신들과 공감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따로 편집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면서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 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거든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가 하루빨리 이뤄지면 좋겠습니다.”(강희진 PD)
소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을 쓴 김성범 PD는 국회에서 10년간 외교안보 정책을 다뤘다. 강희진 PD는 7년 경력의 CJ E·M 마케터 출신이다. 두 PD가 속한 tvN 교양기획제작팀은 이렇듯 다종다양한 경험을 지닌 이들이 모여 공익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모험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