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데이터 값’ 할인된 건 아니다
- 4~5GB 요금제 없는 건 통신사 꼼수?
- 선물하고, 당겨 쓰고, 일정 시간대 맘껏 쓰고…
- 헤비유저는 골칫거리…‘속도제한’만으론 안 된다
국내 이동통신의 역사는 198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이 자동차에 설치한 ‘카폰’에서 출발한다. 이때부터 이동통신 요금은 음성통화 사용량에 따라 정해졌다. 나중에 문자 서비스, 데이터 서비스 등이 추가됐지만, 여전히 음성 사용량이 요금 부과 기준이었다.
하지만 KT가 이 요금제를 내놓으면서 이동통신 요금의 기준이 음성에서 데이터 사용량으로 바뀌게 됐다. 이젠 전화통화를 아무리 많이 해도, 아무리 많은 문자메시지를 보내도 요금이 추가되지 않는다. KT의 신호탄에 이어 일주일 뒤엔 LG유플러스, 다시 닷새 뒤엔 SK텔레콤도 잇달아 데이터중심요금제를 내놓았다.
요금제 자체는 3社 비슷
새로운 요금체계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은 폭발적이다. 6월 5일 기준으로 데이터중심요금제 가입자는 SK텔레콤 116만 명, KT 61만2000명, LG유플러스 40만 명이다. 3사 합쳐 210만 명이 넘는다. SK텔레콤은 가입자 100만 명을 돌파하는 데 14일이 걸렸다. SK텔레콤이 지금까지 가장 소비자 친화적이라고 자랑해온 ‘T끼리 요금제’보다 이틀가량 빠른 기록. KT와 LG유플러스도 사상 최고 속도로 데이터중심요금제 가입자가 늘고 있다.
소비자의 관심이 커지면서 이동통신 3사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KT가 데이터중심요금제를 출시한 시점부터 한 달 동안 3사는 경쟁사의 새 요금제에 맞서 10차례나 신규 요금제 및 부가서비스 출시, 요금 인하 등을 발표했다. 사흘에 한 번꼴인 셈인데, 새 요금제를 출시하려면 통상 3~5개월 걸리는 점을 감안한다면, 새 요금제를 둘러싼 통신사 간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짐작할 수 있다.
경쟁의 불씨는 KT가 댕겼다. KT는 최저가 요금제로 월 2만9900원(부가세 제외)을 제시하며 이 요금제에서 데이터는 300MB(메가바이트)를 제공키로 했다. 또 5만9900원, 6만9900원, 9만9900원 요금제에서는 데이터를 사실상 무제한 제공한다. 처음에 각각 데이터 10GB(기가바이트), 15GB, 30GB를 제공한 뒤 이를 다 소진하면 하루에 2GB씩 추가 지급한다. 이마저 다 쓰면 속도가 느린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KT 요금제와 거의 비슷하지만 일부 구간에서는 KT보다 1000원 싼 요금제를 내놨다. SK텔레콤은 가격과 제공되는 데이터 양의 수치를 달리해 KT와 차별화를 꾀했다. 예를 들어 KT가 3만9900원에 2GB를 제공하는데, SK텔레콤은 4만2000원에 2.2GB를 제공하는 식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요금에 따른 데이터양은 3사간 큰 차이가 없다.
모든 요금제에서 유무선 음성통화 무제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3사가 똑같다. 휴대전화끼리의 전화통화는 물론, 휴대전화에서 유선전화로 걸어도 무료다. 이 서비스는 SK텔레콤이 먼저 내놨다. 당초 KT는 모든 요금제에서 무선통화 무제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5만4900원 요금제 이상부터는 유무선 무제한 서비스를 제공키로 했다. 그러나 SK텔레콤을 따라 KT도 전 요금제에서 유무선 음성통화 무제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LG유플러스도 마찬가지다.
한편 SK텔레콤은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요금을 1100원 낮췄다. 당초 6만1000원 요금제부터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던 것을, 5만9900원부터 데이터를 무제한 제공하기로 했다. KT와 LG유플러스가 각각 5만9900원 요금제에서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것과 맞추기 위한 조치다.
통신사들의 경쟁은 독특한 데이터 활용 방식 개발로도 이어졌다. SK텔레콤은 소비자가 데이터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리필하기’ ‘선물하기’ ‘함께 쓰기’ 서비스를 제시했다. 리필하기는 리필 쿠폰을 통해 기본 제공 데이터와 동일한 양의 데이터를 무료로 받을 수 있는 혜택. 리필 쿠폰은 새 요금제 가입 시점부터 1년까지는 1장, 1~2년 가입자에게는 2장 제공한다. 선물하기는 자신의 데이터를 다른 SK텔레콤 가입자에게 선물하는 서비스로 월 2회까지 가능하다. 함께 쓰기는 휴대전화 외에도 태블릿PC 등 동일한 명의의 다른 기기에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로 최대 2회선까지 가능하다.
‘데이터 무제한’ 총력전
KT는 남는 데이터를 다음 달로 이월하거나 부족한 데이터를 미리 당겨쓰는 탄력적 데이터 이용 방식인 ‘밀당’ 서비스를 내세웠다. KT는 이 서비스를 경쟁사가 베끼지 못하도록 특허까지 출원했다. 가령 소비자가 기본 데이터 6GB를 제공하는 KT의 ‘데이터 선택 499’ 요금제(월 4만9900원)에 가입할 경우, 기본 데이터를 다 쓴 뒤에도 다음 달에서 미리 2GB를 당겨 최대 8GB까지 사용할 수 있다. 데이터 사용이 들쭉날쭉한 이용자에게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중심요금제 출시 한 달을 맞아 KT는 이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은 1인 평균 450MB 데이터를 당겨 쓰고 있다고 밝혔다. LTE 기본 데이터 요율로 계산하면 약 9200원이다. 소비자들이 ‘데이터 밀당’을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KT는 분석했다.
LG유플러스는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인터넷TV(IPTV)를 즐겨 보는 이용자를 노린 맞춤형 요금제를 강조한다. 4만9900원 이상 요금제를 선택하면 월 5000원 상당의 자사 모바일 IPTV 서비스 ‘U+HDTV’를 기본으로 제공한다. 또 3만7000·#12316;7만5000원대의 ‘LTE 데이터중심 비디오 요금제’도 내놨다. 각 요금 구간의 기본 데이터 제공량 외에도 모바일 IPTV 감상을 위한 1GB의 전용 데이터를 별도로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물론 무선 음성통화와 문자는 무제한이다.
이외에도 SK텔레콤은 하루 중 데이터 사용량이 가장 많은 6시간 동안 데이터를 무제한 제공하는 상품 ‘밴드 타임프리’를 출시했다. 월 5000원으로 출·퇴근과 점심시간(07~09시, 12~14시, 18~20시) 등 총 6시간 동안 쓸 수 있는 데이터를 매일 1GB(월 최대 31GB) 제공한다. 데이터 소진 후에도 400kbps 속도로 추가요금 없이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SK텔레콤은 밴드 타임프리가 출·퇴근과 점심시간에 스마트폰으로 각종 스포츠경기를 시청하거나 SNS, 게임 등을 하는 대학생, 직장인에게 유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KT는 월 7000원에 매일 원하는 3시간 동안 데이터 2GB를 제공하는 ‘마이 타임 플랜’ 서비스를 출시했다. 마이 타임 플랜은 SK텔레콤의 밴드 타임프리에 비해 하루 사용 시간은 짧지만 제공 데이터 양을 늘리고, 원하는 사용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는 차별점이 있다. 또 선택한 시간 동안에는 제공된 데이터를 소진하더라도 느린 속도로 데이터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KT 측은 “2GB 데이터 소진 후에 제공하는 3Mbps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가 동영상 시청에 무리가 없는 속도라 진정한 데이터 무제한”이라고 강조한다.
착시효과 무시 못해
데이터중심요금제에 소비자 관심이 집중되는 것에 대해 이동통신 3사는 음성통화를 무제한으로 풀고 데이터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의 ‘소비자 유인책’이 먹혔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데이터중심요금제에 몇 가지 ‘착시효과’가 있기 때문에 소비자 스스로 꼼꼼하게 비교, 분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선 데이터 이용료가 과거보다 싸지도, 그렇다고 비싸지도 않다. 과거 요금제와 비슷한 수준이다. 요금제 명칭이 ‘데이터중심’이다보니 데이터 값이 쌀 것이라는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새 요금제 명칭은 과거 음성통화 중심이었던 과금체계를 데이터 중심으로 전환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 데이터 값을 과거보다 할인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의 기존 ‘전 국민 무한 85’ 요금제는 데이터 12GB를 제공한다. 원래 월 8만5000원을 내야 하지만 통상적으로 2년 약정 가입으로 매달 2만 원씩 할인받으면 실제 내는 금액은 월 6만5000원이다. 그런데 이통 3사는 이번에 새 요금제를 출시하면서 약정 할인을 모두 없애버렸다. SK텔레콤의 새로운 ‘61’ 요금제(데이터중심요금제 중 하나)는 소비자가 월 6만1000원을 내야 데이터 11GB를 제공한다. 결국 과거 6만5000원에 12GB이던 데이터가 지금은 6만1000원에 11GB로 바뀐 셈이다. 큰 차이가 없다.
이처럼 데이터 이용료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음성통화가 무제한으로 풀리다보니 새 요금제는 음성통화를 많이 하는 이용자에게 유리하게 됐다. 이동통신 3사와 함께 이번 요금제 개편을 주도한 미래창조과학부도 음성 무제한 요금이 5만1000원에서 2만9900원으로 인하된 점을 강조한다. 음성 사용량은 많지만 데이터는 거의 쓰지 않던 소비자가 예전에는 5만1000원의 월정액을 사용했다면 이제는 2만9900원만 내면 된다는 것이다. 미래부는 영업사원, 대리기사, 콜센터 개인 상담원, 주부 및 중장년층 등 300만 명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갈수록 데이터 사용량이 느는 20·#12316;40대 젊은 소비자들은 데이터중심요금제에서 별다른 혜택을 얻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착시효과는 음성 무제한 요금이 2만9900원이라는 점이다. 미래부는 5월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요금체계 개편 결과 2만 원대(2만9900원) 요금제로 음성통화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이 금액은 부가세 10%를 제외한 요금이다. 소비자는 실제로 3만2890원을 내야 한다.
일부에선 이동통신사들이 소비자를 고가 요금제로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미래부의 조사 결과 휴대전화 이용자 중 월 4~5GB를 사용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동통신 3사가 내놓은 새 요금제에는 해당 구간 요금제 자체가 없다. 4~5GB가량 사용하는 사람은 실제 사용 데이터 양보다 많은 6GB 이상 요금제를 사용하거나, 사용량보다 낮은 2~3GB 사이의 요금제를 사용하며 초과 데이터 사용량에 대해 별도 요금을 내야 한다.
모바일 생태계 진화 이끌까
이동통신 3사가 모두 데이터중심요금제를 내놓으면서 업계 전체가 단말기 보조금 경쟁에서 요금제 경쟁으로 옮겨갔다는 평가다. 이동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조금을 안 받으면 20%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제도까지 등장했다”며 “이제 보조금 경쟁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차별화된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이동통신 3사가 데이터 활용과 관련한 부가 서비스 위주로 경쟁을 펼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한편 데이터중심요금제 전환은 장기적으로 이동통신 시장을 넘어 전체 모바일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의 모바일 데이터 사용 패턴이 변화할 것이므로 이는 데이터 사용량 증대로 연결될 전망. 특히 무제한 데이터 가입자가 증가하면 이에 맞춰 게임, 동영상, 콘텐츠 등의 서비스가 진화하고, 관련 벤처 생태계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치 과거 유선 인터넷 시장에 정액제가 등장한 이후 게임 등 각종 콘텐츠와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되리라는 기대다.
일각에선 무제한 요금제 도입 이후 데이터 사용량이 엄청나게 많은 소위 ‘헤비유저’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래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1%의 헤비유저가 평균 가입자의 5000배가 넘는 데이터를 사용한다. 같은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라도 일반적인 양의 데이터를 사용하는 사람과 헤비유저 간 역차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헤비유저에 대한 속도제한 이외의 대책이 마련돼야 안정적인 모바일 인터넷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