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객을 위해 상상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평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너무 작아서 미처 못 본 것들을 발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디테일을 다 챙길 순 없다. 그러나 내가 집중해야 할 고객이 누구인지, 그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라!
아우디 자동차 루퍼트 슈타들러 회장.
회를 거듭할수록 열혈 시청자가 늘었고, 이들은 스토리를 복기하거나 드라마 속 ‘깨알 디테일’들을 찾아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장면마다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배경이나 소품들을 눈여겨보며 숨은그림찾기 하듯 드라마에 몰입했고, 방송이 끝나면 대화의 단골 소재로 삼았다. 이런 소소한 디테일은 드라마를 안 보던 이들에게도 입소문을 통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미생’ 성공의 원동력은 직장인들의 애환을 실감나게 그린 스토리에도 있지만, 일상의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은 디테일로 극대화한 재미와 몰입감도 그에 못지않았다.
성숙 단계 다음은 ‘디테일’
기업 환경에서도 디테일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 카테고리가 새롭게 등장할 때 기업은 주로 제품이나 서비스의 상징이 되는 기능, 또는 심미적으로 돋보이는 디자인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이나 스펙들은 시간이 지나면 벤치마킹이나 약점 보완을 통해 상향 평준화한다. 또한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제품이나 서비스의 진화는 소비자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형태로 수렴하기에 고객들은 웬만한 기능, 품질 개선에도 곧 시큰둥해진다.
이렇게 제품이나 서비스가 성숙 단계에 도달하면 기업의 경쟁력은 위기에 봉착한다. 이 시점에서 기업은 ‘내가 할 수 있는’ 관점이 아니라 오직 ‘고객’ 관점에서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들이 인정할 만한 디테일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디테일은 천차만별이다. 똑같은 아이폰을 두고도 누군가에게는 시계 아이콘 속에 움직이는 시곗바늘이 디테일이 될 수 있고, 빠르고 정확한 터치 인터페이스가 디테일이 될 수 있다. ‘애플빠’로 불리는 마니아들은 애플 제품의 포장지 재질 및 접히는 각도, 구성물 위치에 열광하기도 한다.
고객을 위해서 평범하기를 거부하고 고객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을 추구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성숙기 시장에서 판을 바꾸려는 시도는 혁신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럴 때 평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너무 작아서 미처 보지 못한 것 등으로 시선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고객이 실제로 반응한 디테일이 무엇인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온라인 쇼핑몰의 최대 약점은 고객이 직접 체험하지 못하고 구매해야 하는 불편함이다. 특히 의류의 경우 고객이 옷을 입어볼 수 없는데도 브랜드마다 사이즈나 색을 표기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S, M, L이나 90, 95, 100 등 사이즈 표기 방법만도 천차만별이다. 색은 더욱 구분 짓기 힘들다. 같은 빨간색이라도 PC 환경이나 모니터 사양에 따라 어떤 것은 좀 짙은가 하면, 어떤 것은 좀 옅은 색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온라인 쇼핑몰은 스크롤의 압박을 느낄 정도로 긴 상품 정보와 ‘구매 전 사이즈 및 색상, 디테일을 꼼꼼히 확인하라’는 유의사항을 남기는 정도의 조치를 취한다.
한발 더 나아간 디테일
하지만 온라인 아웃도어 쇼핑몰 오케이몰은 다르다. 입점한 제품을 아웃도어 전문가들이 한국인의 평균 신체 사이즈를 기준으로 직접 입어보고, 사이즈를 1cm 단위로 분화해 다양한 각도에서 측정, 모든 제품에 ‘실제 사이즈’를 별도로 표시한다. 더불어 해당 브랜드의 고유한 특성과 제품의 신축성, 무게까지 자세하게 적어놓는다. 색깔도 일부러 보정을 전혀 하지 않고 실물에 가까운 사진을 찍으려고 애쓰며, 비교를 위해 옆에 색상표를 마련해둔다.
일반적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로 나누는 계절 표시도 오케이몰은 ‘사용권장월’로 표시, 어느 달은 ‘적극 권장’ 혹은 그 밑의 단계인 ‘사용 가능’으로 정보를 세분화해 제공한다. 아웃도어 용품인 만큼 계절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정보를 줘서 선택의 오류를 줄이려고 챙긴 디테일이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오케이몰은 관련 분야 온라인몰 중 독보적 1위에 올라섰다.
기존의 명함 관리 앱들은 광학문자인식(OCR) 기술 기반이다. 하지만 정확도가 높지 않아 사용자들이 일일이 인식 내용을 확인하고 수정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앱 사용률이 떨어졌다. 스타트업 업체 드라마앤컴퍼니는 이와 관련해 시장조사를 하던 중 비서가 있는 사람들은 명함 관리의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에 착안, 사용자를 위해 직접 비서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수기(手記) 입력 기반의 명함 관리 앱 리멤버를 탄생시켰다. 사용자가 명함 사진을 찍어 올리면 1000여 명의 타이피스트가 명함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기 입력해 기존 명함 앱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1~2%의 오타율까지 잡았다.
리멤버에 가입한 뒤 다른 사람의 명함을 찍어 등록하면, 해당 명함의 주인도 리멤버의 회원이고 자신의 명함을 등록했을 경우 서로 연결될 뿐 아니라 훗날 명함 정보가 바뀌어도 자동 업데이트가 가능하다. 이러한 디테일에 힘입어 리멤버는 서비스 개시 두 달여 만에 사용자 5만 명을 기록했고, 지금은 40만 명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명함입력 신청 건은 약 9만 건에 달한다.
익숙한 불편을 해소하다
도요타 프리우스 S모델의 선루프에는 솔라패널이 있다. 여름철 야외 주차로 실내가 뜨거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주차 중 솔라패널에서 생산된 전기로 공조장치를 작동해서 실내를 환기한다.
여름철 차내 온도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그늘에 주차하거나 차창에 신문지나 종이 박스를 가려두는 게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당연히 운전자의 몫으로 여겨졌다. 이미 익숙해진 불편함, 심지어 그 해결 방법도 알고 있을 고객들을 위해 솔라패널과 간단한 송풍 모터로 실내 온도의 상승을 막은 것이다. 여름철 외부에 세워둔 자동차의 실내 온도는 80℃까지 올라가는데 솔라패널로 이를 45℃까지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에어컨을 덜 켜게 되니 에너지 소비도 줄일 수 있다.
계량컵의 숫자를 확인할 때 사용자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거나 자세를 낮춰야 한다. 컵의 옆면에 숫자가 쓰여 있기에 손으로 들어올리지 말고 편평한 곳에 컵을 놓은 뒤 눈금과 같은 높이에서 측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고 잠깐의 수고인데도 미국 주방용품 브랜드 옥소는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컵의 앞면을 비스듬히 만들고 여기에 숫자를 써서 고개를 기울이지 않고도 쉽게 계량할 수 있는 컵을 만들었다.
사용자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문제점을 발견해내는 게 제품 개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 옥소는 시중의 제품들을 테스트할 때도 그냥 테스트가 아니라, 사무 공간에 주방을 만들고 직원들로 하여금 취미생활을 즐기듯 직접 요리를 할 수 있게 해놓고는 개발 아이디어를 발굴한다. 옥소는 1990년 창업 이후 매출이 연평균 27%씩 증가하고 있으며, 미국 내 시장점유율 1위, 전 세계 55개국으로 판매되고 있다.
미쓰비시 연필에서 출시한 구루토가 샤프는 ‘빙글빙글(구루쿠루, くるくる) 돌아서 뾰족해진다(도가루, 尖る)’는 뜻을 지녔다. 일반 샤프와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가장 큰 특징은 회전하는 하단부다. 글씨를 쓰느라 힘을 주면 톱니바퀴에 의해 하단부가 회전하면서 샤프심도 같이 회전해, 심이 한쪽만 닳는 현상이 없어져 굵기가 일정해진다. 샤프를 쓰면서 가끔씩 돌려줘야 하는 불편함이 사라지는 것이다.
샤프와 같은 필기구는 대개 기능과 품질 면에서 최상의 수준에 도달해 있으므로 외장이나 디자인 차별화로 명맥이 유지된다. 그런데 미쓰비시 연필은 ‘필기’라는 궁극적 기능으로 돌아갔고, 샤프로 글씨를 쓸 때 획이 점점 굵어지거나 중간에 심이 부서지면서 가루가 날리는 ‘편마모 현상’에 주목해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한 획을 쓸 때 9˚씩, 40획을 쓸 때 샤프심이 한 바퀴 회전하는 톱니바퀴, 일명 ‘구루토가 엔진’이 샤프심을 뾰족하게 유지시킨다. 샤프 하단에는 일부러 톱니바퀴가 보이도록 겉표면을 투명하게 처리해 심 회전 기능을 부각시켰고, 글씨를 쓰는 동안 실제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소소한 재미를 더했다. 구루토가 샤프는 2008년 3월 출시 이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으며, 다양한 후속작 역시 일본을 넘어 한국 학생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착한 고민’ 하도록 권한 부여
샤프심이 한쪽만 닳는 불편을 해소한 구루토가 샤프.
아마존에 인수된 의류 전문 인터넷 쇼핑몰 자포스(Zappos)는 고객 서비스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고객이 입원 중인 어머니를 위해 자포스에서 신발을 샀는데 어머니가 한번 신어보지도 못하고 사망했다는 사실을 ‘해피콜’을 통해 알게 됐다. 규정상 구매 후 15일이 지난 상품에 대해서는 반품 및 환불을 해줄 수 없지만, 자포스는 기꺼이 신발 값을 환불해줬을 뿐 아니라 장례식에 근조화환과 카드도 보냈다.
자포스에는 콜센터나 고객센터라는 명칭 대신 콘택트센터(Contact Center)라 부르는 부서가 있다. 이곳은 전화뿐 아니라 메일, 라이브 채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고객과 접촉한다. 그런데 자포스의 콘택트센터에는 매뉴얼이 없다. 고객의 이런 요청에는 이렇게 답하라는 지침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고객의 주문이나 문의에 어떻게 답하고, 어떻게 대응할지는 전화를 받는 직원이 각자의 판단에 따라 하면 된다.
고객에게 근조화환과 카드를 보낸 사례도 직원이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것인데, 이는 자포스의 ‘권한 위임 정책’ 덕분에 가능했다. 콜센터 처지에서 당연히 처리해줘야 할 일에만 그치지 않고 ‘만약 내가 고객이라면 어떤 응대를 받아야 행복하게 전화를 끊을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한다. 그 고민이 고객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챙기는 디테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과 상황에 따라 서비스의 내용이 달라지고 고객에게 잊기 어려운 감동을 제공하게 된다.
자를 들고 다니는 CEO가 있다. 직사각형 플라스틱 측정자 5개를 오각형으로 붙여놓아 마치 불가사리 같다. 각각의 측정자에는 1.0mm부터 3.0mm까지 0.5mm 단위로 측정자 두께가 표시되어 있다. 숫자와 단위에서부터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엿보인다. 이 도구의 주인은 아우디의 루퍼트 슈타들러 회장이다. 불가사리 모양의 측정자는 자동차의 조립 공차(오차)를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어 ‘퀄리티 스타(Quality Star)’라고 불린다.
자동차 외형은 보닛, 사이드패널, 도어, 트렁크 등을 보디(Body)와 연결해 만든다. 각각의 부품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을 둬야 여닫을 때 간섭이 생기지 않고, 여름과 겨울을 거치면서 기온 차이로 생기는 팽창·수축 때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 간격이 넓거나 일정하지 않으면 자동차 외관과 기능에 미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비서처럼 명함을 직접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성공을 거둔 ‘리멤버’ 앱.
아우디는 디테일에 강한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마르틴 빈테르코른 전 회장이 취임한 직후인 2002년에 설립한 인간감성센터는 디테일에 대한 아우디의 집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이곳에선 자동차와 사람이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시스템을 연구한다. 연구소는 촉각팀, 후각팀, 청각팀으로 나뉘어 엔진 사운드와 버튼 장치의 촉감, 차 내부의 향기 등에 관한 기술을 개발해 출시 차량에 적용한다.
진정성 담긴 스토리
기업들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할 때 마케팅, 엔지니어링, 전략기획, 제품개발 등 조직 내 모든 인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러한 노력에 그다지 큰 감동을 받지 않는다. 소비자의 처지에서는 기업이 더 좋은 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렇다보니 기업들은 틀을 깨는 아이디어, 독특한 콘셉트를 내세워 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한 ‘큰 혁신’을 찾아나선다. 이러한 노력이 때로는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지만 정작 공감을 얻어내기란 쉽지 않다.
소비자는 사소하게라도 자신과 관련 있는 것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경쟁 제품과 거의 차이가 없더라도 그 제품의 브랜드 이름이나 사용 경험 등이 소비자 자신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면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반응을 얻을 때 비로소 사소함이 디테일이 되는 것이다.
디테일 뒤에는 고객에 대한 남다른 관심, 그리고 거기에 얽힌 스토리가 있다. 디자인 컨설팅 그룹 아이디오(IDEO)가 산악자전거용 물병을 개발했을 때 디자이너들은 산악자전거를 직접 타보면서 수많은 산악자전거 선수들을 지켜봤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두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흔들리는 자전거에서 물을 마시기 때문에 물병을 집어넣을 때 어려움이 있다는 점, 그리고 자전거 뒷바퀴에서 튕겨오른 먼지와 진흙으로 물병 입구가 쉽게 더러워진다는 점이었다.
아이디오 디자이너들은 물통을 쉽게 넣을 수 있도록 밑바닥이 좁으면서도 미끄러워지지 않도록 고무 테두리를 씌웠다. 그리고 입구가 잘 더러워지지 않도록 병 입구를 X자로 잘린 고무막으로 처리했다. 인공 심장 판막의 고무막처럼 물병의 꼭지를 봉한 것인데, 이 고무막을 빨면 기존 병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이 나오고, 사용자가 빠는 것을 멈추면 고무막이 막힌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산악자전거 선수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레이서 엣지’ 물병이다.
스토리가 있는 곳에 디테일이 있다. 기업 스스로 철저히 고객 관점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하는 과정을 직접 겪었다면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 포인트는 한결 명확해지고, 고객이 체감하는 가치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디테일은 사소한 것이지만 때로는 많은 자원의 투입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집요하게 디테일을 챙기는 기업들이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고객이 해결해야 할 복잡한 문제들을 미리 해결해줌으로써 고객의 편의를 도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존과 야후에서 유저 인터페이스(UI)를 담당한 래리 테슬러는 ‘복잡성 보존의 법칙’을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가진 복잡함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 만약 기업이 복잡함을 더 책임지게 되면 그만큼 고객이 간편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역으로 기업이 복잡함을 짊어지지 않고 ‘이 정도면 되겠지’ 수준에 머무르면 고객이 필요 이상의 복잡함을 떠안아야 한다.
기업의 복잡함, 고객의 간편함
프리미엄 사무용 의자 메이커 허먼밀러의 ‘에어론 체어(Aeron Chair)’는 장시간 앉았을 때 발생하는 피로감뿐 아니라 축열현상까지 방지해 사용자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의자를 만들었다. 여느 사무용 가구업체처럼 구조적 편의성, 디자인까지만 생각했다면 제조업체엔 조금 수월할지 모르지만, 오래 앉아 일하는 사용자들로 하여금 의자 좌판에 쿨매트를 따로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전가했을 것이다.
만병통치약이란 없듯이, 디테일에 신경 쓴다는 의미는 모든 영역이 아닌 일부 영역에서 디테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은 한때 ‘데스 그립(Death Grip)’ 이슈로 통화 품질에 허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사용자 경험, 디자인 측면에서 다른 기업을 앞서 고객의 높은 충성도를 확보했다. 결국 기업이 처한 상황, 경쟁 환경, 고객에 대한 통찰 및 이해도에 따라 집요하게 추진해야 할 디테일이 다르다.
가장 창의적인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영화사 픽사(Pixar)의 브래드 버드 감독은 “완벽하게 찍어야 할 장면도 있지만, 훌륭한 수준에서 찍어야 되는 장면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환상을 깨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만 찍어도 되는 장면도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물이 출렁거리는 장면을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찍기도 하고, 비행접시는 파이(Pie) 담는 접시를 날려 찍었다고 한다. 사실적인 묘사에서 한참 떨어지는 방법이지만 대신 픽사는 예술성, 창의적 스토리 측면에서 디테일에 집중한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전략은 하지 않을 일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것을 잘하려 드는 게 아니라 기업이 바라보는 고객이 누구인지, 그리고 철저히 고객 관점에서 그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가치에 걸맞은 디테일 영역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디테일이 하나하나 축적된다면 그것이 혁신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고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