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구적이고 차갑고 잘 쏘아붙이는 自己愛者”
- “‘야당과의 합의정치’ 자기신념에 몰입”
- “‘사회적 경제’라는 새로운 길 제시”
- “우아하게, 우회적으로, 간접적으로 朴 돕는 것”
박 대통령과 유 대표는 동향(대구)이다. 유 대표에게 박 대통령은 ‘은인(恩人)’이라고 한다. 2005년 1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배지를 단 지 반 년밖에 안 된 유승민 의원을 요직인 대표 비서실장에 앉혔다. 9개월 뒤 대구 동을에서 재선거가 실시됐다. 비례대표이던 유 의원이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비례대표는 대구처럼 깃대만 꽂으면 되는 곳의 지역구 의원이 되기를 오매불망 고대한다. 그러나 이런 곳엔 난다 긴다 하는 정치인이 여럿 달려든다. 여당 사람들은 “당 대표가 전폭적으로 밀어줬기에 2년차인 그가 지역구를 꿰찰 수 있었다”고 말한다.
대통령 ‘디스’, 野와 ‘합의정치’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유 의원은 박근혜 후보 캠프의 정책메시지단장을 맡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좋았던 시절은 여기까지다. 2011년 12월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로 위기를 맞았다. 다음해 총선·대선까지 내리 질 거라는 불안이 팽배했다. ‘구원투수 박근혜’가 투입돼 비대위가 꾸려졌다. 유 의원은 “박 비대위원장은 통화도 어렵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는 데도 완강하게 반대했다.
지난해 10월, 그는 박 대통령 방미 연설문 수정 논란과 관련해 “이거 누가 하는 거냐. ‘청와대 얼라들’이 하는 거냐”라고 각을 세웠다. 그러나 올 2월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곤 ‘부드러운 남자’가 됐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리라고 다짐했다. 여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에게 친박 표가 꽤 몰린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그는 원내대표에 당선된 뒤 원래의 ‘박근혜 때리기’ 모드로 돌아온다.
4월 그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초이노믹스’(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단기 경기부양책)에 대해 “다시는 끄집어내지 말아야”라고, ‘창조경제’에 대해 “성장의 해법이라고 자부할 수 없어”라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대해 “달성하기 어려워”라고, ‘134조 공약가계부’에 대해 “더 이상 지킬 수 없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의 4대 경제기조를 싸잡아 ‘디스(비하·조롱)’ 한 것이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양극화 해소의 비조(鼻祖) 격으로 극찬하면서 ‘야당과의 합의정치’를 선언했다. 야당과 진보진영은 “명연설”이라고 화답했다.
나아가 유 대표는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를 “허구”라고 했고 박 대통령의 이병기 비서실장 임명에 “유감”이라고 했으며 성완종 리스트 파문 땐 박 대통령을 향해 “진솔한 말씀을 직접 해 달라”고 요구했다.
청와대는 유 대표에 대해 공무원연금 개혁 건으로 일차 폭발했다. 이어 국회법 건으로 또 폭발했다. ‘더 내고 덜 받는 공무원연금 개혁’은 박 대통령의 최대 국정현안인데, 5월 2일 유승민 팀이 야당과 합의한 안은 박 대통령의 눈높이에 못 미쳤다. 이 합의안엔 국민연금액을 생애 평균소득의 50%로 끌어올린다는 내용도 있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구상과 반대로 간 뜬금없는 합의라고 봤다. ‘조선일보’ 사설은 “국민연금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가 500조 원 이상 늘 것”이라고 비판했다.
5월 29일 유승민 팀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국회 처리를 위해 국회법 개정안에 야당과 합의했다. “대통령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하고 행정기관은 이를 지체 없이 처리한다”는 내용. 이에 대해 김성우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행정부의 행정입법권 침해”라고 반발했다. 유 대표는 “어떤 부분이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다시 반박했다. 청와대가 당·정·청 협의를 거부한 데 대해선 “어른스럽지 못한 이야기”라며 불쾌해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정부를 식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황당한 법”이라고 비판했다.
친박계는 유승민 대표에게 공세를 폈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순진한 협상이었고, 밀려도 너무 밀렸다”고 했다. 김태흠 의원은 “졸속으로 합의해준 유 대표가 사퇴하는 등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장우 의원도 “현 사태를 수습한 뒤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유 대표는 책임론에 대해 “그런 일이 오면 언제든지…”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은 6월 1일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실제로 거부권이 행사되면 국회는 △개정안 재의 △수정안을 만들어 처리 △개정안 재의 포기라는 경우의 수를 갖는다. 어느 경우라도 박 대통령이나 유 대표는 큰 어려움에 봉착하거나 치명적 내상을 입을지 모른다.
“그렇게 언짢아하신대요”
심지어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이 유 대표에게 “공무원연금법 처리를 포기하더라도 국회법 개정은 안 된다”고 요구했는데도 유 대표가 이를 묵살하고 야당과 합의했다는 설까지 전해졌다. 유 대표는 “그런 보도는 잘못된 것이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사정에 밝은 여권 인사 A씨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사실이 아니라면 유 대표는 대화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조윤선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나간 데 이어 청와대 내에선 정무수석실 관계자들 교체도 검토된다고 들었다. 청와대는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지는 A씨와의 대화 내용이다.
▼ 박 대통령은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는 것으로 봐선….
“그렇게 언짢아하신대요. ‘전 요즘 원내대표 쪽과는 연락 안 해요’ 이렇게 손사래 쳐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청와대 내에 형성된다는….”
“‘쟤’라고 하더라고요”
▼ 유 대표가 집권여당 원내대표인데도 대통령의 행정권을 제한할 수 있는 사안에 합의해준 이유는 뭘까요. 많은 사람이 이 점을 궁금해합니다.
“유 대표는 자기 신념이 무척 강한 분입니다. 그는 4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상당히 공을 들였어요. 문구 하나하나를 직접 다듬고. ‘전국 정치인’ ‘미래 권력’으로 데뷔하는 무대니까요. 그 연설에서 ‘야당과의 합의정치’를 선언했죠. 야당과 일부 언론이 ‘명연설’이라고 하니 고무됐겠죠. 이게 유 대표의 최근 행동을 설명해줄 수 있는 키워드입니다. ‘야당과의 합의정치’라는 자기 신념에 몰입해 공무원연금 개혁도 야당이 요구하니 합의처리해준 거고, 국회법도 야당이 요구하니 처리해준 거죠. 줄 건 줘야 합의가 되는 거니까. 그러다보니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다소 후순위로 밀린 거고요.
또한 유 대표는 ‘사회적 경제’ ‘재벌대기업’ ‘가진 자’ ‘기득권’ 같은, 새누리당에선 좀처럼 듣기 어려운 용어들을 써가며 자신의 노선을 왼쪽으로 클릭하고 있어요. 진보에 구애하는 셈인데, 이번 국회법 합의처리도 이런 그의 소신과 관련된 것 같아요. ‘합의정치 약속을 그대로 실천하는, 그래서 진보 진영에서도 지지를 받는 스타 원내대표’ 뭐, 이런 이미지를 얻으려 하지 않았나 생각돼요.”
▼ 역대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이나 청와대와 이렇게 첨예하게 맞선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요.
“긍정적으로 보는 쪽은 국회법 처리를 ‘소신’으로 평가해요. 비판적으로 보는 쪽은 ‘자존심이나 자부심이 강한 유 대표의 엘리트 의식이 반영된 오렌지 콘셉트’로 보죠. 유 대표는 유수호 전 의원의 아들로 명문 정치인 집안 출신에 서울대,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박사, KDI(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을 역임한 분이죠. 2000년대에 한번은 유승민 의원, 최경환 의원(현 경제부총리), 그리고 저와 다른 분 몇몇이 자리를 함께했어요. 그때 유 의원이 제게 최 의원을 호칭하면서 자연스럽게 ‘쟤’라고 하더라고요. 유 의원이 최 의원보다 정치에 먼저 입문했지만 나이는 최 의원보다 세 살 아래거든요. 두 분이 위스콘신대 동문으로 격의 없는 사이라 그런지 몰라도 저는 조금 의외였어요.”
▼ 유 대표는 “‘국회법 개정은 안 된다’는 청와대 요구를 묵살했다”는 내용을 부인합니다.
“그 말대로 ‘미스커뮤니케이션’이 있다 쳐도, 그렇게 속전속결로 시행령을 바꿔주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안 그래도 야당이 국회선진화법을 무기 삼아 국정 발목을 잡는다고 하는데 거기에다 대통령령까지 간섭할 수 있게 열어주면…. 야당은 강제성이 있다고 하잖아요. 이미 야당이 문제 소지가 될 만한 대통령령을 모으고 있다는 말도 나와요. 앞으로 여러 상임위에서 ‘대통령령 고쳐라, 마라’ ‘강제성 있네, 없네’ ‘소송 하네, 마네’ 하는 새로운 논란이 나올 수 있는 거죠. 일부 친박계 인사들 사이에선 ‘이래서 국정이 되겠나’ ‘온 식구가 먹는 우물에 흙 뿌린 격’이라는 말이 나와요. 2월 원내대표 경선 때 청와대 안에서 ‘유승민이 원내대표 돼도 문제없다’고 발제한 사람은 지금 미칠 지경인 거지.”
“유승민 발제한 사람 미칠 지경”
▼ 당시 청와대는 이주영 후보를 원내대표로 원하지 않았나요.
“언론이 그렇게 써서 그렇지, 사람 개개인별로 들어가면 유 대표에게 호감을 가진 숫자가 더 많았어요. 그땐 유 대표가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하지 못한 거죠. 신문도 사설이나 기사로 얼마든지 대통령을 비난하지만 적어도 사진으로는 대통령의 격을 존중해 주잖아요.”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회법 개정안 내용을 다소 완화하는 방향으로 절충안을 냈고 야당은 이를 수용했다. 청와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다르게 전개될 것이다.
여권 관계자 B씨는 “찬장이 쓰러져 접시들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일이 진행될지, 아니면 조용히 일이 진행될지 모르지만 이번 국회법 개정으로 박 대통령과 유 대표의 관계엔 현저하게 금이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같으면 비서실장에게 ‘유 대표 좀 불러봐’ 그러겠죠. 그래서 유 대표에게 ‘당신 요즘 왜 그래?’ 하면서 성도 내고 달래기도 하면서 풀려고 할지 모르죠. 박 대통령은 여성이기도 하지만 그런 스타일이 아니죠. 어떤 측근이 박 대통령을 위한답시고 언론에다 돌출 발언을 하면 박 대통령은 ‘왜 불필요한 말을 할까’ 하며 안 좋게 봐요. 박 대통령은 이정현(새누리당 의원)처럼, 황교안(총리후보자)처럼 말하는 걸 좋아하죠. 유 대표가 해온 말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사실상 실패로 규정하는 등 박 대통령 처지에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고요. 그런 말들이 박 대통령의 마음속에 누적돼 오다 역린(逆鱗)을 건드린 국회법 개정에 이르러 인내의 수위를 넘은 거죠.”
여권 관계자 C씨는 “박 대통령의 불통이 논란이 된다고 하지만, 유 대표의 화법(話法)도 듣기에 따라 당사자가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한다. C씨와 대화를 이어갔다.
“아버지 잘못 만나 ‘얼라’ 되고…”
▼ 어떤 점이 당사자를 자극한다고 봅니까.
“‘증세 없는 복지’를 비판하면서 ‘허구’라는 용어를 써요. 제3자에겐 선명하게 들려서 좋지만, 그걸 추구해온 당사자인 대통령은 ‘수위가 지나치게 높다’고 보겠죠. 자기를 헛소리나 거짓말해온 사람으로 만드는 말이니까. 당연히 조언이나 충고, 고언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죠. 대체로 유 대표의 발언엔 단정적 표현, 상대를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표현이 많은 것 같아요. ‘청와대 얼라들’ 발언도 마찬가지고.”
▼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비난이죠.
“국회법 개정 파문 이후에도 유 대표는 청와대를 향해 ‘어른스럽지 못한…’이라고 말하더군요. ‘얼라’나 ‘어른스럽지 못한’이나 같은 맥락으로, 그는 습관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유교의 장유유서(長幼有序)처럼 위에서 상대방을 낮춰보는 듯한 태도…. 청와대에 근무해온 몇몇 40대~50대 초반 인사들은 유 대표의 이런 말투를 언짢아합니다. 어느 인사는 ‘유 대표는 아버지 잘 만나 40대에 국회의원 되고 우리는 아버지 잘못 만나 40대에 얼라 되고…’라며 불쾌해하더군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이후 유 대표가 박 대통령 측과 소원해진 것도 유 대표의 직언과 관련 있다’는 증언들이 나온다. 유 대표와 1년에 한두 번 자리를 같이한다는 언론사 기자 E씨는 “유 대표는 자기애(自己愛)가 강한 편이다. 학구적이고, 차갑게 느껴지고, 사석에서 무엇에 대해 툭툭 쏘아붙이며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박 대통령의 측근일 때 이런 스타일이 박 대통령 측과 잘 안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경제 과외를 해준다고 쳐요. 과외받는 사람이 이해를 잘 못하면 어떤 사람은 ‘제가 잘 못 가르쳐서 그렇다’며 굉장히 자책하고 미안해해요. 또 어떤 사람은 ‘그것도 모르시냐’는 투로 말해요. 과외받는 사람은 차이를 느낄 수밖에요.”
여권 관계자 F씨는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유 의원에게 선대위에서 일해달라고 몇 차례 요청했으나 본인이 고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F씨는 “유 의원실을 보면 좀 이상한 점이 있다. 나라에서 급여가 나오는 보좌관 자리 같은 것을 공석으로 둘 때가 잦다. 최근까지도 보좌관 자리가 비었다가 기자 출신으로 채워졌다. 다른 의원들은 사람 부족하다고 난리인데. 유 의원이 사람 보는 눈이 하도 깐깐해서 그런 것 아니겠냐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사드가 길다” “사드가 두껍다”
여권에 몸담았다가 지금은 민간기업으로 옮긴 G씨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2009년 한 달에 한두 번 박근혜 의원실을 들락거렸어요. 박 의원이 ‘아, 그건 제 보좌진과 이야기하세요’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유 의원이 비판적이었다는 이야기를 여러 명으로부터 들었어요. 유 의원의 ‘청와대 얼라’ 발언도 이런 박근혜 의원실 보좌진에 대한 자신의 안 좋은 경험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어요. 유 의원은 차츰 박근혜 대표(후보)의 눈 밖에 났고 이후 유 의원도 언론 인터뷰 같은 것을 통해 박 대표에 대한 공개 비판을 시작한 것으로 압니다.”
여권 일각에선 ‘유 대표가 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불필요하게 자극하기도 했다’는 평가도 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사례가 ‘사드 의원총회’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유 대표는 안보상 필요하므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시급히 배치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내왔다. 반면 청와대는 조용히 다루는 게 국익에 더 부합한다는 방침이었다. 이런 가운데 유 대표는 청와대의 반대에도 사드 의총을 밀어붙였다. 의원들에게 사드에 관한 주의를 환기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소속 한 광역단체장은 최근 사석에서 이 문제가 화제가 되자 쓴소리를 했다. 다음은 참석자가 전하는 이 광역단체장의 발언 취지다.
“유승민 대표는 경제학 박사 출신이라 그런지 너무 학구적이다. 사드, 그걸 누가 안다고 의원총회를 여나?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거지. 한 의원은 ‘사드가 두껍다’고 할 거고 다른 의원은 ‘사드가 길다’고 할 거고. 육군중장 출신 의원도 포탄과 보온병을 구분 못하던데…. 국회 국방위원장 했다고 국방전문가는 아니지 않나. 청와대가 만류하는데도 굳이 의총을 열어 얻은 실익이 뭔지 모르겠다.”
여권 관계자 F씨는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2048년 재정파탄을 막기 위해 국민연금 지급액을 40% 정도 깎아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을 거론했다. 대선 투표일을 며칠 앞둔 2002년 12월 3차 TV토론에서 이 후보는 이렇게 국민연금 지급액 삭감을 선거 막판 이슈로 띄웠다. 당시 이 후보의 TV토론 내용은 유승민 당시 여의도연구소장이, 토론 방식은 양휘부 공보특보가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이나 2015년이나 국민연금 재정파탄 위험은 그대로인데 유 대표가 일관성을 잃은 것 아니냐’는 비판인 셈이다.
F씨는 “국민연금건은 2002년에도, 2015년에도 우리 당에 큰 부담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F씨의 설명.
“2002년 12월 이 후보가 투표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TV토론에서 연금 지급액 삭감을 불쑥 말하는 바람에 당으로 연금생활자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취지엔 공감하나 선거 전략으론 대실패였다. 이 후보는 결국 다음 유세장에서 이를 사과하고 철회해야 했다. 이 때문에 표가 많이 떨어졌다. 2015년 5월 유 원내대표팀이 국민연금액을 생애 평균소득의 50%로 끌어올린다는 것에 합의해준 것도 박근혜 정부의 연금 개혁 취지를 훼손하는 내용이었다. 결국 이 여파가 얼마 뒤 국회법 개정에 따른 당청 간 극렬한 갈등으로 이어졌다.”
유승민 측근 의원의 성토
그러나 적지않은 여권 인사는 국회법 개정에 특별한 절차적 문제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 본다. 표현이 완화된 정의화 의장의 안이 야당에서도 추인을 받으면서 이러한 목소리는 좀 더 커지고 있다.
‘시사저널’ 등 일부 언론은 “삼권분립 위배에 대한 의견이 양분되는 상황에서 청와대의 반응은 다소 과하다”고 평했다.
여권 관계자 H씨는 “청와대에 ‘솔직해지자’고 말하고 싶다. 대통령령 수정 요구로 분란이 발생해 국정이 마비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국회법 개정 뒤 조용히 넘어갔으면 야당이 한두 번 하다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H씨는 “박 대통령도 의원 시절 비슷한 개정안을 공동발의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개정안은 어느 정도 공적인 명분이 있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 I씨는 이렇게 말했다.
“유 대표와 가까운 J의원은 청와대와 친박계 일각이 강하게 나오는 것은 정치적 목적이 다분하다고 성토해요. 멀리 내년 총선과 공천까지 내다보고 유 대표를 원내대표직에서 끌어내리려는 권력싸움 성격이라는 거죠. 일부 언론도 여기에 편승해 청와대의 기조를 재깍 반영하고 있는 것이고. J의원에 따르면 유 대표가 청와대의 대응을 지켜보면서 밖으로 표출하진 않았지만 격노했다고 합니다. 유 대표는 감정적 대응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측근들의 조언을 받고 있으며 그렇게 대응하고 있다고 해요.”
새누리당 당직자인 K씨는 “유 대표 취임 이후 여야 간에 신뢰가 형성되고 있다. 그렇다고 유 대표가 새누리당의 핵심 가치를 포기한 일도, 박 대통령을 실제로 어려움에 빠뜨린 일도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유 대표는 오히려 중도와 일부 진보 진영으로 당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어요. 특히 유 대표의 자기반성, 관용의 연설은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진보성향 언론이 유 대표의 메시지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전례 없는 일이죠. 지금 세계 각국에선 ‘진보적 가치와 일자리 창출을 조화시켜 사회통합력이 더 커진 보수정당’이 높은 지지를 얻습니다. 유 대표의 ‘사회적 경제’ 메시지 같은 것은 이런 추세에 부합합니다. 보수 진영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어요.”
또 다른 당직자 L씨는 “과반 의석의 새누리당이 대통령령 수정 요구에 구속력이 없다고 하면 현실적으로 구속력이 없는 거다. 따라서 대통령의 행정권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앞서의 공무원연금 개혁 때와 메커니즘이 똑같아요. 아무 문제도 발생시키지 않습니다. 야당이 반대하면 어떤 법도 통과시킬 수 없는 국회선진화법 환경에서 야당과 협상하며 국회를 이끌어가려면 유 대표가 택한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요. 유 대표는 총리 인준 등 각 사안에서 야당과 큰 파열음을 내지 않으면서 박 대통령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더 우아하게, 우회적으로, 간접적으로 돕고 있죠. 국회법 개정도 당청 간 소통을 통해 원만하게 마무리될 겁니다. 청와대가 거부권 정국으로 강공 드라이브를 걸 경우 오히려 유 대표가 피해자로 비칠 수 있어요.”
“이 정부 잘되길 바라시죠”
‘신동아’는 여권 관계자들의 증언에 대한 유 대표의 설명이나 반박을 듣기 위해 그에게 질의서를 보냈으나 그는 답변을 해오지 않았다. 유 대표의 한 보좌관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묻고 있는 데다, 편향되거나 왜곡된 증언이 많아 대표님이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 증언 중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주시죠.
“질의서 내용이 대체로 주장과 평가이므로 어떤 입장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또한 증언 중 상당 부분이 왜곡된 내용입니다. 이런 내용에 코멘트 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이 상황에 공방을 벌이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요.”
▼ 원내대표께서 국회법 개정 건과 관련해 사퇴까지 염두에 두고 비장하게 임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원내대표의 측근이 그렇게 말했다더군요.
“너무 넘겨짚은 거고요….”
▼ 청와대 반응에 격노한 건 사실인가요.
“(대표님이) 말씀을 안 하시니 어떻게 알겠습니까.”
▼ 원내대표께서 박 대통령을 가까이 모실 때 박근혜 의원실 보좌진과 불편한 관계였나요.
“대표님은 그런 이야기를 가볍게 하지 않고 언제나 이 정부가 잘되기를 바라시죠. 저희가 무슨 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 국회법 개정 행위를 하셨는데.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 문제 제기하면 답변드릴 수 있는데요. (왜 국회법 개정이 됐는지) 원인을 따져보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절차적, 법률적 검토죠. 국회법 개정안은 의원총회, 최고위원회의 추인을 받은 뒤 본회의에서 통과된 사안으로 절차적, 법률적 정당성을 충분히 확보했습니다.”
▼ 정당한 절차를 거친 개정안을 왜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받아들이지 않는 걸까요.
“지금 상황에서 거기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것 자체가 국민에게 정쟁으로 비치는 거고…. 메르스 상황이 종료된 후 차분히 이야기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 청와대는 원내대표께 국회법 개정을 막아달라고 사전에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표님이 이미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고요. 추가로 이야기하면 싸움으로 정쟁으로 비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