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性학자 박혜성의 ‘행복한 性’

젊고 건강하게 사랑하고 싶다면 호르몬의 장난을 마음껏 즐겨라!

  • 性학자 박혜성

    입력2019-04-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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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아=性학자 박혜성] 호르몬은 우리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물질이다. 연애, 식욕, 수면, 노화 등 일상생활의 전반을 호르몬이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나 천재적인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에도 호르몬의 역할이 매우 크다. 남녀가 사랑을 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해나가는 데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중요하다. 

    연애 감정에 빠지면 도파민이 분비된다.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접근하고, 나아가 그 사람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 때 도파민이 다량 분비돼 쾌감을 느낀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남녀 주인공이 처음 서로에게 반했을 때 결혼했더라면, 두 사람의 운명은 또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극중 남자 주인공은 여자를 남겨두고 지방으로 순회공연을 떠났다. 도파민이 왕성하게 분출되는 시기에 뜻하지 않게 멀어진 두 사람은 아마 서로에 대한 금단현상으로 매우 괴로운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도파민이 왕성하게 분비되는 시기에는 파트너가 어떤 요구를 해도 다 들어준다. 물방울 다이아몬드 반지도, 외제차도 다 사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할 수만 있다면 하늘의 별을 따줄 기세다. 목숨을 걸고 적진에 들어가라고 하면 그 또한 기꺼이 할 사람도 있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빠져 도파민이 마구 분출되는 시기에는 제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남들 얘기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랑을 하면 장님이 된다”는 말 또한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도파민에 의해 두뇌의 ‘쾌락회로’는 마구 활성화되는 반면, 이성적 판단을 하는 회로는 잠시 활동을 멈춘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며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더러 있다. 사랑에 장애물 따위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 경우 사랑은 더욱 굳건해지고 아름다워진다. 멜로영화나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장면들이다. 

    사랑을 하면 도파민과 함께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 등이 같이 분비된다. 특히 라이벌로 느껴지는 누군가가 있다면 공격성 물질인 노르아드레날린이 다량 분비된다. 암컷을 쟁취하기 위한 수컷의 본능이 매우 강렬해, 질투심 앞에서는 노르아드레날린을 비롯한 바소프레신, 테스토스테론 등 남성호르몬이 동시에 분출된다. 한 명의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피 튀기게 경쟁하는 경우도 호르몬이 그렇게 시키기 때문이다. 싸움에서 이긴 남성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스스로에게 도파민을 선물받는다. 한편 세로토닌이 결핍되면 일종의 병이라 할 수 있는 ‘스토킹’과 같은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반드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페닐에틸아민도 대표적인 사랑의 호르몬이다. 페닐에틸아민이 증가하면 이성이 마비되고 열정이 샘솟으며 행복감에 도취한다.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한 줄 모른다. 여자친구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서면 이내 보고 싶어지는 이유도 다 이 호르몬 때문이다. 반대로 페닐에틸아민이 부족하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생화학적으로 보면 ‘사랑은 호르몬 중독 상태’다. 하지만 신은 인간에게 이러한 시간을 오래 허락하지 않았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보통 6개월에서 3년 정도 된다. 그렇지 않고 만약 남녀가 평생을 불같이 사랑한다면, 얼마 못 가 두 사람은 ‘번 아웃(burn out)’돼 아무것도 못 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똑같은 이성에게는 도파민이 두 번 이상 분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혼 후 서로 상대방의 사랑이 식었다고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상황을 참지 못하고 바람을 피우려는 이들도 있다. 뇌를 자극해줄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헤매는 건 남자나 여자나 다를 바 없다.

    옥시토신 호르몬, 인간관계 형성에도 중요

    사랑을 장기화하기 위해서는 성호르몬 이외에 다른 호르몬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성장호르몬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성장호르몬은 나이가 들수록 점차 감소하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면 지방이 감소하고 근육량이 증가하며, 심혈관계 질환도 예방할 수 있다. 또 세포가 재생돼 기억력이 좋아지고 진피의 콜라겐 합성이 늘어 피부가 탱탱해진다. 머리카락이 두꺼워지고 머리숱이 늘어 일명 ‘회춘 호르몬’이라 불리기도 한다. 골밀도를 높여 관절염 증상도 완화해준다. 따라서 성장호르몬은 강력한 항노화 호르몬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한 달에 한두 번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는 걸 대표적인 항노화 치료법으로 꼽는다. 

    분만 때나 수유 시에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모성애를 자극하는 애착 호르몬이다. 키스나 애무 시 분비되는 건 당연하다. 최근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서도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남녀 불문하고 섹스를 갈망하게끔 만든다. 특히 여성의 오르가슴 정도나 남성의 사정 분비량을 최고조로 만든다. 따라서 옥시토신은 남녀의 사랑을 깊게 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한 명의 파트너와 오랫동안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데는 옥시토신의 역할이 크다. 

    좋은 인간관계의 바탕이 돼주는 신뢰감 또한 옥시토신에 의해 형성된다. 누군가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믿음이 확고할 때 옥시토신이 분비되고 이는 곧 애착 형성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마 품에 안겨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일수록 애착 형성이 잘돼 훗날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한편 옥시토신은 단순히 누군가와 단란한 시간을 보낼 때도 분출된다. 가볍게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할 때, 누군가를 위해 봉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만들어진 옥시토신은 고혈압, 동맥경화,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을 주고,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힘도 안겨준다. 장수를 하고 싶다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옥시토신 분비량을 늘릴 필요가 있다. 호르몬은 심신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이고 좋은 인간관계와 활기찬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다.

    박혜성
    ● 전남대 의대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 경기도 동두천 해성산부인과 원장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행복한 성 이사장
    ● 저서 : ‘우리가 잘 몰랐던 사랑의 기술’ ‘굿바이 섹스리스’
    ● 팟캐스트 ‘고수들의 성 아카데미’ ‘박혜성의 행복한 성’ ‘이색기저섹끼’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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