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호

에세이

福 많이 받는 한 해 만들기

  • 차영남 작가 겸 배우

    입력2022-02-1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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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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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 설날에도 어김없이 덕담을 나누는 인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건강과 행복을 넘어 부나 명성까지 얻기를 기간(基幹)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새해 첫날 다짐한 계획은 한 달 만에 많이 무너졌고 설날을 빌미로 빌어준다. 매년 비슷한 내용의 덕담이지만 새해가 밝으면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많은 사람의 응원이 반갑다.

    1월 1일 신년인사를 주고받은 사람도 있지만, 설날이 되면 다시 한번 주고받기도 한다. 설을 신년 목표 재정비기, 지금부터가 진정한 새해의 시작이라며 재무장한다. 과연 새해의 목표는 어떻게 세우고 얼마나 이룰 수 있을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만 들어서는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일기와 스케줄 노트를 꾸준히 써온 덕에 실패한 목표들이 또렷이 기억난다. 몇 해에 걸쳐 계속 쓰고 지워나간 일이니 다시 쓸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제일 많이 실패한 것은 ‘꾸준히 운동하기’나 ‘영어 공부하기’ 같은 것들이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힘들고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하기 싫은 게 운동이다. 컨디션이 조금 안 좋으면 “이럴 때 운동하면 다친다”는 말을 믿는다. 무엇보다 꾸준히 운동을 해나가기가 너무 어렵다. 안 하던 운동을 갑자기 시작하면 온몸에 알이 배고, 술 약속이 생겨서 하루 빠지고 다음 날 숙취 때문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한 달이 지나 있다. 처음 등록하러 갈 때만 해도 어디가 저렴하고 시설이 좋은지 철저하게 가격을 비교하고 가까울수록 출석률이 높아진다는 생각에 집에서 걸어갈 거리에 있는 곳으로 등록했지만, 어느 순간이 되니 동네를 거닐다 마주하는 체육시설을 못 본 체 외면하기 바쁘다.



    외국어 공부도 작심삼일을 넘기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영어를 해야 살아남는다는 말. 하지만 나에게 영어는 여전히 먼 산과 같다. 영어권 사람을 만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는 영어 좀 한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영어로 일을 하고 자막 없이도 영미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사람이 주변에 늘어나면서 더욱 위축됐다. ‘하루에 단어 50개 외우기’ 정도로는 아마 평생 그들을 따라잡지 못하겠다는 짐작에 언제부턴가 공부도 몰래 했다.

    소박한 목표라도 세우는 까닭

    이런 목표들은 ‘연 매출 몇 퍼센트 올리기’나 ‘내 집 마련하기’ 같은 목표에 비하면 지극히 소박하다. 운동 좀 안 한다고 형편없다고 할 사람이 별로 없고 영어와 관련된 직장이 아니고서야 영어 좀 못한다고 무능력하다고 말할 사람도 없을 테니. 아마 돈 많이 벌고 성공한 사람이라면 둘 다 하지 않아도 딱히 욕을 먹진 않을 것이다. 세상이 필요하다고 했던 요건들을 배제하고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낸 사람들이 대개 그렇다.

    나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고 소박한 목표도 지켜내지 못했으니 둘 중 이루기 쉬운 것을 선택하자면 소박한 목표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적어도 스스로 선택하고 행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일 아닌가. 종목이나 방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매일 운동을 하거나 영어를 공부하는 일쯤은 하루에 한 시간 정도만 투자해도 분명 할 수 있는 일이다.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 직장 안에서 벌어지는 예측할 수 없는 변화나 주거정책에 따라 폭등하는 집값을 생각하면 지극히 혼자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자신과의 약속만큼 지키기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게 문제. 그래서 포기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도전한다. 러닝하는 기록을 매일 SNS에 올려 인증을 하면서, 시간에 맞춰 오는 전화로 매일 원어민과 영어로 통화하면서. 스스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타인과의 약속으로 확대해 책임감을 증폭시켜서라도 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세운 목표들을 모두 이뤄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방법은 왠지 스스로의 약속을 지켰다기보다 타인에게 실패의 이미지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 같아 찝찝하다.

    보는 눈이 사라지면 지키지 않을 약속이 된다. 그런 목표가 되는 것이 싫어 결국 스스로 의지 부족을 인정하고 목표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1년 안에 자막 없이 해외 영화 보기’는 ‘해외 영화 한 장면 자막 없이 보기’에서 ‘영화 속 명대사 한 구절씩 영어로 외우기’ 등으로 양이 줄었고, ‘매일 운동하기’는 ‘주 3일 이상 종목 상관없이 30분 이상 운동하기’에서 ‘아침에 눈뜨면 스트레칭이라도 꼭 하기’ 등으로 바뀌어 갔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5분만 투자해도 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나니 알람 앱에 메모만 해놓으면 잊지 않고 할 수 있었다. 남들은 ‘그게 뭐야’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그 작은 목표들을 해내는 게 익숙해지자 목표의 수를 늘리거나 수준을 높여갈 수 있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처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커피 한 잔을 만드는 데 몇 분이 걸렸다.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커피를 만들고 있는데 다른 손님이 주문하려고 줄을 서면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 둘 다 늦어졌다. 커피는 만들어야 하는데 쌓여 있는 주문지 순서가 바뀌지 않게 정렬해야 하고 계산도 해줘야 한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일단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손님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한 후 만들던 커피를 일련의 과정까지 만들어 놓는다. 그다음 주문을 받고 주문지를 순서에 맞게 배치한 뒤 만들던 커피를 완성하는 것으로 일의 순서를 정리했다.

    어색하던 일이 익숙해지면 시간도 단축되고 완성도도 높아진다. 잘하는 일일수록 더욱 그렇다. 기한이 있다면 기한을 지켜야 하는 일을 제일 먼저 했다. 서너 가지의 일이 비슷한 기한을 갖고 있다면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일 먼저 차례대로 해결했다. 적어도 절반의 성공은 해야 하니까. 미숙한 일이나 중요하지 않은 일은 기한을 조금씩 늘려가며 조금씩 익숙하게 만들었다. 처음 세운 목표에 맞춰 모든 것이 성공하진 않았지만 나 나름의 합리화를 통해 모든 목표를 수행했을 때의 기쁨이 필요했다. 좌절만 해서는 목표 따위 세우고 싶지 않아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렇게 익숙해진 일들은 점점 삶의 일부가 돼갔고 더는 목록에 기록하지 않아도 습관처럼 할 수 있게 됐다. 그즈음이 되면 미숙했던 일에 투자하는 시간을 늘리거나 새로운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 목표를 수행하는 능력이 발달하면 익숙한 일들을 마지막으로 미뤄놓고 필사적으로 미숙한 일을 끝내겠다는 허세도 한번 부려볼 수 있다. 결국은 실패하는 일이 많지만, 목표를 수행하는 방법이나 순서를 바꿔보는 것도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니 마냥 실패로 취급하진 않아도 되지 않을까.

    “복 많이 받는 한 해 만드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는 너무 수동적으로 느껴진다. 복이라는 게 행운처럼 와락 다가오면 좋겠다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복을 받으라는 수많은 덕담에도 해가 끝날 때 이루어진 건 딱히 없다. 그러니 복이 들어올 만큼 열심히 살아서 복 많이 받는 한 해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최선을 다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하고 열심히 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나.

    차영남
    ● 1988년 출생
    ● 2008년 영화 ‘강철중: 공공의적 1-1’로 배우 데뷔
    ● 2020년 10월 산문집 ‘그래도 계속해보자는 말밖엔’
    ● 2020년 12월 에세이집 ‘너의 시간이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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