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호

‘5공 남산의 부장들’은 최초의 전두환 평전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2022-07-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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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예훼손 지뢰밭 걷다

    • 권력, 민주주의, 인간학 교재

    • 스스로 작두 위에 올라선 언론인, 김충식



    “기자로서, 취재원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직접 만나는 인터뷰가 기사 작성의 원칙이었다. 제5대 중앙정보부장, 김계원 씨가 나를 피했다. 그를 연재할 차례가 다가오는데 몇 달 동안 숨바꼭질만 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저녁 눈이 펑펑 오는데 이 시간이면 집에 있어야 마땅하다 싶어 밤 10시에 그의 아파트로 갔다. 문을 열어주지 않아 계단에서 3시간 동안 기다렸다. 결국은 문을 열어줬고 아침 6시까지 인터뷰했다.”

    1990년대 초 동아일보에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기사를 연재해 요즘 말로 대박을 터뜨렸던 기자 김충식의 말이다. 연재 후 1992년 11월 두 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남산의 부장들’은 즉시 52만 부가 나가서 8톤 트럭으로, 그것도 두 대씩 하룻밤에 실어 날랐던 판매국 팀들이 굉장히 감격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2020년엔 이병헌·이성민 주연 영화로도 제작돼 5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

    박정희 정권 시절 온갖 공작 정치를 주도한 중앙정보부가 서울 남산 기슭에 있었기에 중앙정보부장은 ‘남산의 부장’으로 불렸다. 세월이 좀 흘렀다곤 하지만 국민에겐 공포의 대상이던 ‘남산의 부장’ 10명을 역사적 기획물의 주인공으로 삼는다는 건 당시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박정희 정권 18년이 끝났는데도 아무도 그 18년의 중앙정보부 역할에 대해 쓰지 않는 것에 강한 문제의식을 가진 김충식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건 역사에 대한 직무유기”라며 편집국에 “이건 누군가는 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예 그런 문제의식이 없거나 약했기에 결국 ‘누군가’는 김충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의식과 열정은 충만했고, 발로 뛰고 이른바 ‘뻗치기’를 밥 먹듯이 하는 기자 근성은 당대 최고였고, 빠른 속도감으로 재미있게 읽히게끔 하는 필력 또한 최고 수준이었으니, 대박을 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게다.

    ‘남산의 부장들’ 저자 김충식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전두환, 유학성, 노신영, 장세동, 안무혁으로 이어지는 정보기관 수장과 전두환 철권통치 8년 역사를 다룬 ‘5공 남산의 부장들’ (블루엘리펀트)을 내놨다. [지호영 기자]

    ‘남산의 부장들’ 저자 김충식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전두환, 유학성, 노신영, 장세동, 안무혁으로 이어지는 정보기관 수장과 전두환 철권통치 8년 역사를 다룬 ‘5공 남산의 부장들’ (블루엘리펀트)을 내놨다. [지호영 기자]

    언론인으로서의 내공과 실력

    이후 세월이 꽤 흘렀건만 전두환 8년의 기록은 쓰이지 않았다. ‘남산의 부장들’만으로 이미 한국 현대사와 저널리즘사에 큰 족적을 남긴 김충식은 가천대 언론학 교수가 되어 후진을 양성하고 있었다. 그는 ‘왜 아무도 나서지 않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다시 그가 나서서 ‘5공 남산의 부장들’(전 2권)을 5월 하순에 출간했다.

    중앙정보부장(전두환)과 국가안전기획부장(유학성·노신영·장세동·안무혁) 5명을 중심으로 다룬 이 책은 최초의 전두환 평전이기도 하다. 1980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되자 신군부 세력이 “이제 김대중을 죽여도 된다”고 환호했다는 등 새 비화도 여럿 등장하는 5공화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역사 저널리즘’과 ‘탐사 저널리즘’의 전범을 보여주는 저널리즘 교재이기도 하다.

    불과 수십 년 전 사건을 다루면서 새로운 사실까지 발굴해내는 작업은 명예훼손의 지뢰밭을 걷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이게 무섭거나 어려워서 이런 작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드물다. ‘남산의 부장들’에 대해 “작두 위를 걸어가며 썼기 때문에 형용사와 부사를 쓸 겨를이 없었다”고 한 김충식은 이번에 낸 ‘5공 남산의 부장들’에 대해서도 “작두 위에 섰다는 기분은 비슷하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누가 어떤 치명적 문제를 제기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시시비비에 맞설 각오도 돼 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데서 언론인으로서의 내공과 실력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겠다.

    독재정권 시절엔 당시 한국 최고의 언론인 동아일보도 정권의 만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1985년 8월 ‘중국 폭격기’의 국내 불시착 관련 특종 보도가 빌미가 돼 김충식과 동아일보 정치부장, 편집국장까지 남산 지하실로 끌려가 3박4일 동안 고문을 당했다. 편집국 기자들이 들고일어나 정권에 항의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는데, 성명서 대표 집필자가 당시 기자였던 이낙연이었다고 한다.
    읽는 동안 분노를 치밀게 하는 이런 사건들이 수시로 등장하기에 이 책은 민주주의가 왜 필요한지 온몸으로 절감하게 만드는 ‘민주주의 교재’이기도 하다. 권력의 몹쓸 악행은 반드시 밝혀지고 기록되게 돼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깨닫게 해주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확연히 다른 전두환의 두 얼굴

    이 책은 ‘권력학 교재’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사례가 수두룩하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인간과 권좌와 권력의 생리를 성찰해 본다”며 이렇게 말한다. “권력은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영리한 지식인도, 힘센 장사도 한낱 부나방으로 만든다. 권력의 광기(狂氣)에 휘말려 인격과 생애의 자산을 날린다. 경제도 거품은 모르고, 주식도 상투는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그것이 인간 존재의 한계인 것인가?”

    나는 개인적으론 이 책이 ‘인간학 교재’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권력의 속성·작용과 관련해, 인간을 이해하거나 탐구할 수 있는 좋은 사례 연구집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전두환과 박준병, 그리고 전두환과 강창성의 관계에서 나타난, 확연히 다른 전두환의 두 얼굴을 감상해 보자.

    신군부가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당시 20사단장이던 소장 박준병은 전두환의 군사 출동 지시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훗날 박준병은 12·12 재판에서 무죄를 받을 수 있었지만, 희한한 건 전두환의 반응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박준병에 대해 전두환은 이후 그 문제로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통령이 된 후에 보안사령관, 민정당 사무총장까지 시켜줬다. 이와 관련, 김충식은 전두환을 “매우 특이한 리더십의 사람”으로 분석했다.

    반면 전두환과 강창성의 관계는 어떤가. 1980년 3월 전두환은 보안사령관 선배인 강창성을 만나 자신의 집권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꼿꼿한 군인이었던 강창성은 고개를 저으면서 유신이 끝장난 마당에 군이 다시 나서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전두환이 당시 대통령이던 최규하를 비난하면서 재차 도움을 요청했지만, 강창성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러자 전두환은 짜증난 듯 비서실장 허화평을 불러 “다음 기다리는 사람 없어?”라며 내쫓듯 일어섰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전두환은 강창성에게 잔인한 보복을 가했다.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할 무렵, 해운항만청장 때의 비리를 끄집어내 영등포교도소에 가뒀다. 그곳에서 강창성은 잡범들에 섞여 무자비한 삼청교육을 4번이나 끌려가 악명 높은 봉체조로 죽을 고생을 해야 했다. 박준병에 대한 대접과는 상반되는, 야비하고 치졸하고 잔인한 대응이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사례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산의 부장들’의 애독자였던 나는 알찬 내용에 주목했기에 ‘한국현대사산책’이란 책을 쓸 때에 이 책을 옆에 끼고 살다시피 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1960년대 편(전 3권)과 1970년대 편(전 3권)에 인용한 각주(脚註)의 수를 세보았더니 무려 151개나 됐다. 그렇게 원 없이 써먹었으면서도 저자에게 감사 인사 한번 드리지 않았으니 나도 어지간히 뻔뻔한 사람인 셈이다. 뒤늦게나마 감사를 드리며, 내가 즐긴 것처럼 이 탁월한 작품을 즐길 기회를 누리는 독자가 많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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