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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동남아 카지노 전쟁, ‘도덕국가’의 빗장을 열다

말레이시아 · 싱가포르

불붙은 동남아 카지노 전쟁, ‘도덕국가’의 빗장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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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과 도덕률과 카지노. 이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은 21세기의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적확한 실례를 찾을 수 있다. 이슬람 국가 말레이시아 고산지대의 독점 카지노에서 자본을 축적한 중국계 기업은 새로운 활로를 찾아 싱가포르의 문을 두드렸고, 카지노의 천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성장한 다국적 자본도 지구를 반 바퀴 돌아 같은 길을 걸었다. 날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는 동남아 카지노 리조트 전쟁, 그 복판을 들여다본다.
불붙은 동남아 카지노 전쟁, ‘도덕국가’의 빗장을 열다

말레이시아 겐팅하일랜드 리조트 전경.(왼쪽)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리조트 외부 모습.(오른쪽)

#장면1

해발 1760m. 겐팅하일랜드의 밤은 적도 부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선선하다. 하루에도 수차 흐렸다 갰다를 반복하는 이 고산의 휴양지는 ‘구름의 꼭대기(雲頂)’라는 한자 이름에 어울리게 산을 타넘는 안개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사막의 뜨거운 바람과 열대의 습한 기후를 피해 날아온 터번 쓴 관광객들이 삼원색으로 치장된 테마파크 곳곳에서 기념사진 포즈를 취하는 이곳은 말레이시아 유일의 카지노 리조트다.

수도 콸라룸푸르에서 자동차로 불과 30분 남짓. 외국인과 내국인을 구별하지 않고 출입시키는 카지노는 창립 45주년을 기념하는 현수막 문구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곳곳이 빛바랜 모습이지만, 유흥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말레이시아의 사람들은 주말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서서 놀이공원 입장을 기다린다. 페인트칠이 좀 벗겨졌다 한들, 매캐한 담배연기가 카지노 안에 가득하다 한들 어떤가. 선선한 기후와 대도시 근접성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만으로도 이 리조트는 매년 1900만명의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장면2

컨테이너선으로 가득한 싱가포르 앞바다와 하역설비가 즐비한 항구 사이라는 어색한 자리에, 방금 꿈에서 튀어나온 동화의 왕국처럼 리조트월드센토사(Resort World Sentosa·이하 RWS)가 자리 잡고 있다. 도시국가 싱가포르 남쪽 센토사 섬에 있는 이 왕년의 군사기지는 오밀조밀한 외양을 자랑하는 그림 같은 호텔과 할리우드에서 직수입했다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18홀 골프장과 백사장이 눈부신 해변을 갖춘 종합 리조트로 탈바꿈했다. 물론 1만5000㎡ 규모의 초대형 카지노도 빼놓을 수 없다. 말레이시아 겐팅하일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화교자본 겐팅버해드사(社)가 미화 50억달러를 투자해 올해 1월 문을 열었다는 바로 그 리조트다.



한번 들어온 돈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풍수 개념을 차용해지었다는 거대한 새장 모양 천장 밑으로, 빠르고 톤 높은 광둥어를 쓰는 관광객 무리가 쉴 새 없이 빨려들어간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산 슈렉 모양의 물통을 자랑스레 손에 쥔 아이들은, 가득 늘어선 명품점들을 끊임없이 곁눈질하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화려하게 치장된 호텔 회랑을 지나간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바카라 테이블에 뛰어들었다가 돌아서야 했던 아빠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가득할 테지. 이름 하여 휴일을 즐기는 가족 단위 관광객을 위한 복합휴양지다.

#장면3

센토사섬에서 자동차로 10분, 싱가포르 정부가 바다를 메워 조성한 신시가지 마리나베이의 끝자락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위용을 자랑하는 세 동의 건물이 남중국해를 내려다보고 있다. 평범한 건축감각으로는 아찔하기까지 한 사람 인(人)자 모양의 55층 호텔 꼭대기를 올려다보면, 이들 세 건물을 연결한 길이 340m의 스카이파크 옥상정원이 금세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다. 리조트 마리나베이샌즈(Marina Bay Sands·이하 MBS)다.

호텔보다는 뉴욕 맨해튼의 비즈니스 타워에 가까워 보이는 초대형 로비와 레스토랑은 지척에 있는 싱가포르 도심 금융가에서 방금 M·A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듯 말쑥한 차림의 비즈니스맨들로 가득하다. 이들은 아마도 금세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옥상정원의 짜릿한 수영장에 뛰어들거나, 시크한 여피(Yuppie) 스타일로 꾸며진 초현대식 카지노에서 칩을 던지게 될 것이다. 과연 일과 휴식을 동시에 즐기는 현대식 리조트를 지향해온 라스베이거스샌즈(Lasvegas Sands·이하 LVS)의 야심작답다.

RWS가 총천연색으로 치장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라면 MBS는 바우하우스를 연상케 하는 추상미술이다. 거대한 지하 아케이드에는 곤돌라가 떠다니는 실내 운하가 있지만, 그 역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추상화 버전이라는 듯 무채색과 금속성의 외장재로 디자인돼 있다. ‘번잡한 것은 곧 유치한 것’이라는 뜻일까. 휴식도 분초를 쪼개가며 즐겨야 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전사(戰士)들의 리조트라는 디자인 콘셉트가 곳곳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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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기│경희대 관광경영학과 교수 cklee@khu.ac.kr│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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