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세계 역대 정보 유출사고 중 3위에 해당한다. 국내에선 최다 규모인 데다, 단순한 개인정보가 아닌 금융 관련 정보의 유출이란 점에서 정부의 재발방지 대책 발표, 국회 국정조사, 카드 3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3개월 영업정지 조치 등에도 ‘카드런(Card Run)’ 행렬과 분노의 아우성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라는 옛말을 실감케 한다.
사실 주위만 둘러봐도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다. 롯데카드를 쓰는 기자 역시 홀라당 ‘신상털이’를 당했다. 이러니 ‘대책(對策)’에 반응하는 여론은 ‘대책(大責·큰 꾸지람)’일 뿐, ‘개인정보 대란’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피해구제 수단이라곤 결국 카드 3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라는 자구적 노력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서 새삼 화제로 떠오른 키워드가 ‘집단소송’이다. 법무법인 ‘조율’이 일찌감치 100명의 원고를 모집해 1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함으로써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포문을 연 데 이어, 법무법인 ‘평강’과 ‘시내’, 유철민 변호사, 금융소비자연맹과 원희룡 전 의원까지 가세해 소송 참여자를 모집한다. 유례없는 집단소송이다.
그중 단연 주목받는 게 이흥엽(54·이흥엽법률사무소) 변호사의 인터넷 카페다. 그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에 개설한 집단소송 카페에 가입한 소송 참여자 수는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변호사는 이미 2011년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을 대상으로 2만3000여 명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대리해 그해에 원고 개인당 10만~20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바 있다.
하나로텔레콤은 2005년 당시 자회사와 외부 업체에 고객정보 51만 건을 무단으로 넘겨 텔레마케팅에 이용하게 했다.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은 고객의 정보를 제3자에게 넘긴 것이다. 이 변호사는 포털사이트에 1인당 소송비용 6600원을 내건 집단소송 카페를 개설하고 소송에 임해 승소했다.
이 때문에 이 변호사가 이번 소송에 어떻게 임할지가 피해자들에겐 초미의 관심사다. 그를 만나 집단소송에 뛰어든 배경과 소송 준비과정에 대해 들었다.
‘카드사들 혼내주라’

이흥엽 변호사에게 소송을 맡긴 의뢰인 명단 서류.
“사고 소식을 접하고 즉시 유출 여부를 조회해보니 KB국민카드의 15개 항목이 털렸더라. 게다가 계열사 간에 공유한 정보까지 유출됐다고 뜨더라. 아내의 개인정보도 유출됐다. 금융회사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수집했고, 광범위하게 유출됐다는 데 변호사로서 큰 충격을 받았다.”
▼ 예전에도 본인 정보가 유출된 적이 있나.
“2011년 7월 SK커뮤니케이션즈가 운영하는 네이트·싸이월드 회원 3500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사고 때도 내 정보가 유출됐다. 당시 유출 범위를 직접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사이트 회원 가입 관련 정보였을 거라 추정한다.”
▼ 이번 소송을 맡게 된 계기는.
“그동안 개인정보 유출사건·사고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매번 해당 기업에 대한 제재는 경고나 과태료 부과 등으로 물렁했고, 정보 유출은 되풀이돼왔다. 그런 상황에서 사상 최다 규모의 유출사고가 터지자 국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공분(公憤) 상태에 빠졌다. 그들을 위해 누군가가 구원투수로 나서야 할 판인데, 때마침 예전 하나로텔레콤 승소 경험을 누렸던 집단소송 카페 회원들이 이번 소송도 맡아달라고 많이 권유했다. 패소해도 좋으니 카드사들을 혼내주라는 의견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