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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경영’ 실천하는 (주)삼구 박종구 회장

맨해튼 7번가 ‘실크 박’의 ‘비단결’ 봉사 인생

‘나눔 경영’ 실천하는 (주)삼구 박종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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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발전기금 120억원을 단번에 기증한 선배. 현금 50억원을 선뜻 출연해 만든 복지재단 이사장.
  • 한때 ‘홈쇼핑업계의 신화’로 불리던 박종구 회장의 요즘 삶은 이렇다. ‘욕심을 버리면 세상이 다르게
  • 보인다’는 그의 ‘상생 철학’ 이야기.
‘나눔 경영’ 실천하는 (주)삼구 박종구 회장
“사업을 하다 보면 늘 돈이 모자라게 돼 있어요. 외식 사업을 시작하면 프랜차이즈를 통째로 갖고 싶고, 카센터라도 하나 있으면 자동차 부품업체도 갖고 싶은 거예요. 그게 다 돈인데…. 그러니 돈은 언제나 모자라는 거죠. 그걸 다 하려고 욕심을 부리면 끝도 없지….”

(주)삼구의 박종구(朴鍾久·73)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각을 다투며 현장을 뛰는 기업인이라기보다는 40년 사업 경험에서 우러나온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덕 선생님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홈쇼핑업계의 신화’로 불렸던 삼구쇼핑을 성공적으로 대기업에 매각한 뒤 현재는 용산 알짜배기 땅에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고 있는 박 회장은 탄탄한 재력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박종구 회장이 최근 들어 후배 기업인들에게 해주는 이야기는 대부분 ‘어떻게 돈을 쓸까’에 관한 것들이다. 반면 ‘어떻게 돈을 벌까’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박 회장의 이런 스타일을 좀더 알기 위해선 최근 들어 그가 사회에 내놓은 기부금 내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 회장이 모교 후배들을 위해 발전기금으로 내놓은 돈은 무려 120억원이다. 복지재단에 출연한 돈도 70억원이나 되니 3~4년 사이에 사회에 환원한 돈만 200억원에 이르는 셈이다. 대한민국 모든 기업들이 너도나도 ‘최악의 불황’이라면서 투자는커녕 그동안 벌어들인 돈을 금고 속에 쌓아두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박 회장의 잇따른 ‘선행’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는 소리를 들을 법도 하다.



박 회장이 지난 2000년 설립해 지금까지 70억원을 출연한 삼구복지재단은 소년소녀가장이나 독거노인을 위해 생활비를 지급한다. 2004년에도 3억원 가까운 돈이 이들 불우한 이웃들에게 전달됐다.

이 같은 기부와 선행의 내막을 들여다보려면 박종구 회장의 40년 가까운 사업인생을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 박종구 회장이 대학 졸업 후 3년 남짓한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처음 손댄 사업은 미군부대로부터 불하받은 고철을 수출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 초 ‘신호사(新湖社)’를 창업했는데, 회사 이름은 박 회장의 고향인 경남 밀양의 신호리(新湖里)라는 마을 이름에서 따왔다.

미군 고철 수출로 사업 시작

“당시는 ‘미군 잉여물자불하처(USP-DSO)’가 주관해 미군이 폐기처분하는 각종 고철을 국제경쟁입찰을 통해 불하하던 시기였어요. 한번 입찰에 들어가면 대형 트럭부터 스리쿼터(4분의 3t 트럭), 비행기 날개나 포탄 등 별의별 것들이 다 나옵니다. 입찰을 통해 이런 고철을 불하받으면 보세지역 안에서 절단한 뒤 바로 수출하는 방식으로 5~6년 정도 재미를 봤지요.”

그러나 주한미군에서 흘러나오는 고철이 화수분처럼 무궁무진할 리도 없으니 고철 수출 사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철 수출을 접고 섬유 기계 수입을 시작했다. 오퍼업체를 운영한 경험을 살려 승승장구하면서 회사규모를 점점 키워갔으나 우여곡절끝에 1970년 결국 이 업체도 정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되팔아버린 이탈리아제 냉장고

수입업체를 운영하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적지 않았다.

“정부에서 냉장고를 수입할 수 있는 쿼터를 마지막으로 줄 때였어요. 부유층을 상대로 팔려고 꽤 비싼 이탈리아제 냉장고를 수입했는데 도무지 팔리지를 않는 거예요. 이유를 알아보니 당시만 해도 냉장고를 ‘전시용’으로 거실에 비치해놓던 시절이어서 폭이 넓은 일제 히타치(HITACHI) 냉장고는 잘 팔리는데, 용량은 크지만 폭이 좁은 이탈리아제 냉장고는 부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폼이 안 난다는 거죠. 당시 동아일보 조선일보에 광고도 내보내는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봤지만 결국 안 팔려서 전부 청산해버렸습니다. 대략 2000대쯤 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후 박 회장의 사업인생에서는 ‘실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1975년 ‘삼구통상(森久通商)’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오늘날의 (주)삼구를 이루게 된 것이 실크사업을 통해서였기 때문. 당시 서울 북창동의 한 건물에 10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어 직원 몇 명을 두고 사업을 시작한 후 처음 손댄 것이 실크제품을 들고 미국 시장을 개척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의욕만 앞섰을 뿐 미국 시장을 뚫는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 사람들은 일본항공(JAL)조차도 ‘위험하다’면서 이용하기를 꺼릴 때였어요. 전쟁에서 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가 운영하는 노선인데 믿을 수 있겠냐는 거죠. 오죽하면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가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JAL 비행기를 이용하는 광고를 만들어 미국 시청자들에게 보여줬겠습니까.”

한국에서 건너간 박종구 회장 역시 미국 진출 초창기에는 온갖 고생을 다 겪었다. 우선 ‘한국 제품을 믿을 수 없다’는 미국인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급선무였다. 무조건 실크 제품을 들고 태평양을 건너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의 전신)의 힘을 빌려 미국 실크업계 관계자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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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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